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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수 목사 설교 ] 때를 분별하는 비결
2017년 07월 26일 (수) 13:20:33 박봉수 목사 pspark@sdja.or.kr

박봉수 목사 / 상도중앙교회 담임

본문 / 요한복음 7장 1-9절         [ 동영상으로 보기 ]

   
▲ 박봉수 목사

저는 요리에는 문외한입니다. 제대로 배워본 일도 없고 그렇다고 자주 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잘 못하고 어설픕니다.

오래 전에 생선을 구워본 일이 있습니다. 석쇠에 생선을 올려놓고 굽는데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언제 이 생선을 뒤집어야 할지를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다 익었겠다 싶어 뒤집으면 아직 제대로 익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리 뒤집고 또 저리 뒤집으면 살이 으깨지고 부스러져 먹을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아직 익으려면 멀었다고 생각해서 기다리다 보면 새카맣게 타버리기 일쑤입니다.

세상 일이 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노자는 도덕경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치대국약팽소선”(治大國若烹小鮮) 직역해 보면 이런 뜻입니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작은 생선 굽는 것과 같다.’ 의역을 해보면 ‘나라를 다스릴 때 작은 생선 굽는 것처럼 때를 잘 분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때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성공을 하거나 실패를 하는 이유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때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때를 잘 분별하여 타이밍을 잘 맞출 수만 있다면 크고 작은 성공을 맛보게 될 것이지만, 반대로 아무리 실력을 갖추고 노력을 해도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실패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때를 잘 분별하셔서 실패의 위기를 잘 극복하신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동안 갈릴리 지역에 머무시면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갈릴리 지역에 사역의 초점을 맞추고 계시기도 했지만 유대 지역에 있는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친동생들이 예수님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사역을 하라고 권했습니다. 저들이 그렇게 권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유대 지방에 있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다시 모을 수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초막절을 지키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을 상대로 사역을 펼쳐서 크게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동생들의 권유를 물리치셨습니다. 8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님께서 지금은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가 아니기 때문에 동생들의 권유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때를 정확하게 분별하셨습니다. 동생들의 권유가 있었지만 분별이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분별하신 대로 그 때에 맞추어 행동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본받아야 할 가장 중요한 점 가운데 하나가 이것입니다. 바로 때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분별한 때를 따라 타이밍을 잘 맞추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때를 잘 분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이 그 답을 가르쳐줍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께서 본문에서 보여주신 본을 따르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생각하라

본문 6절을 보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이 나옵니다.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두 가지 때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는 내 때이고, 다른 하나는 너희 때입니다.

그러면 내 때는 무엇이고, 너희 때는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하면 내 때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려고 마음먹고 계신 때를 말합니다. 이에 비해 너희 때는 동생들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라고 판단하고 있는 때입니다.

그러면 이 둘은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요? 우선 동생들이 판단한 때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동생들이 볼 때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에서 나름대로 큰 성공을 거두셨습니다. 놀라운 말씀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게 됐습니다. 특히 오병이어의 이적으로 갈릴리의 수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분위기까지 조성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초막절이 다가옵니다. 초막절은 유대인의 명절입니다. 이때는 팔레스틴 각지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과 외국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순례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몰려듭니다. 그래서 평소에 인구가 3-4만 명에 불과하다가도 인구가 무려 200-300만까지 늘어날 정도입니다.

동생들은 이 점에 주목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초막절에 예루살렘에서 갈릴리에서처럼만 사역하신다면 정치적 메시야로 우뚝 서실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야 할 때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가 정치적 메시야로 인기를 얻고 권력을 잡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결정적 이유는 십자가를 지시고 인류의 죄를 대속하셔서 구원의 길을 여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아직은 십자가를 지실 때가 오지 않았다고 판단하신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직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는 그 어떤 말씀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가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두 가지의 때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의 때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때입니다. 사람의 때란 사람들이 결정하는 때입니다. 사람들이 상황을 판단해 보고, 사람들이 의논해 보고,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때를 말합니다. 이에 비해 하나님의 때란 하나님께서 섭리가운데 정해 놓으신 때를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계시해 주시는 때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들어가는 과정을 보면 40년의 광야생활이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시기 전에 저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하시는 과정이 바로 이 광야생활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40년의 광야생활을 ‘광야학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광야학교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훈련받은 것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때를 따르는 훈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름기둥 불기둥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 진을 치고 있다가 구름기둥이 하늘로 떠오르면 부지런히 짐을 꾸립니다. 그리고 구름기둥이 앞으로 나가면 그 뒤를 따릅니다. 그러다 구름기둥이 머물면 그곳에 다시 진을 치고 머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백성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때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훈련시키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이 때를 판단해서 이동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의논해서 때를 결정한 뒤 이동하지 않았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알려주시는 그 때를 따랐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의 때를 따르는 사람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때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때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우리가 때를 분별하기 위해 판단하고 의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결재가 필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판단하고 의논한 채 행동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때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판단하고 의논하더라도 하나님의 결재를 받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때를 따른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나님의 때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유혹에 흔들리지 말라

본문 3-4절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동생들이 예수님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씀드린 내용입니다.

동생들은 아직 자기 형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라고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 그리고 승천하신 뒤 성령을 받고난 뒤에야 비로소 자기들의 형님이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자기 형님을 정치적 메시야로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동생들 생각에는 예수님께서 정치적 메시야시라면 갈릴리와 같은 이런 촌에서 활동하면서 힘없는 사람들이나 모아서 고작 그들에 인기나 얻는 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생각에 갈릴리에서 보여주신 그런 능력이라면 예루살렘에서도 얼마든지 통할 수 있다고 확신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힘 있는 사람들의 세를 모을 수 있고, 여기에서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제자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형님을 부추기고 있는 것입니다.

동생들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이미 예루살렘에서 사역하시면서 동생들의 말과 같은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셔서 말씀을 전하시고 이적을 베푸시면 삽시간에 정치적 세를 모을 수 있고, 그 세면 얼마든지 판을 뒤집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동생들의 말에 결코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며칠 전 아내와 함께 모처럼 쇼핑을 갔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함께 하지 못했는데 큰마음 먹고 따라나선 것입니다. 창고세일을 하는 외국계 쇼핑센터입니다.

들어서자마자 그 규모에 압도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습니다. 그리고 각종 상품들이 정말 없는 것이 없어보였습니다. 가격을 살펴보았습니다. 동네 슈퍼나 가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쌉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카트에 주어 담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가로막는 것입니다. 기분이 나빴지만 아내 말을 따랐습니다.

조금 더 가다보니 식품을 파는데 3+1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세 개를 사면 하나는 공짜로 준다는 뜻이랍니다. 가만히 따져보니 세 개를 사는 값도 일반 가게보다 싼데 거기다가 하나를 더 공짜로 준다니 이게 웬 횡잰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카트에 담으려고 했습니다. 아내가 또 가로막는 것입니다. 그러다 둘이 쇼핑센터 한 복판에서 카트를 사이에 두고 다툴 뻔 했습니다.

아내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이곳에는 물건이 싼데 한 개씩 파는 것이 아니라 묶음으로 팔았습니다. 그 묶음을 사면 여러 해를 써야 하기 때문에 결국은 다 쓰지 못하고 버려야 할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치약도 7개에서 10개 묶음으로 팔았습니다. 우리 집에 식구가 단촐해서 치약 1개를 6개월에서 1년씩 쓰는데 여기서 치약을 사면 5년 치를 사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3+1도 보니까 유통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이것을 사면 유통기간 동안 다 먹지도 못하고 결국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만 사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자칫 물건을 살 때를 잘못 판단할 뻔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때를 판단할 때 이런 유혹에 흔들리기 쉽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 때문에 분별력이 흔들리기 쉽습니다. 사람들이 부추기는 분위기에 휩쓸려서 분별력이 흔들리기 쉽습니다. 욱하는 감정, 술에 취한 듯한 들뜬 감정에 분별력이 흔들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냉정한 분별력을 잘 유지해 가야 합니다.


기다리라

본문 6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아직 때가 아니기 때문에 기다리시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동생들의 말을 들으셨습니다. 이번 초막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이 좋겠다는 저들 말을 들으셨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지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결국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후 부활 승천하셔야 하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결정적인 이유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때는 예수님께서 스스로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때를 기다리셨다가 올라 가셨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창 6장에서부터 9장까지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 명하셔서 노아가 말씀 그대로 방주를 지었습니다. 홍수가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방주에 태울 짐승들을 선별해 주셨고 노아가 그 말씀대로 그 짐승들을 다 방주에 태웠습니다. 그리고 노아 가족들이 방주에 탔습니다.

   
▲ ⓒpixabay.com / 5727184 / ingleton-2443101_640

드디어 홍수가 시작됐습니다. 40일 밤낮으로 비가 쏟아졌습니다. 땅의 모든 것이 다 물에 잠겼습니다. 150일이 지난 후 서서히 물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224일이 지난 후 물이 점점 줄어들어 크고 작은 산의 봉우리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40일이 지난 264일이 되는 날 노아가 창문을 열고 까마귀를 날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271일이 되는 날 다시 비둘기를 날려 보냈습니다. 그 후 일주일 후 278일이 되는 날 다시 비둘기를 날려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번에는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물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또 일주일을 기다려 285일이 되는 날 비둘기를 날려 보냈습니다. 이번에는 비둘기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314일이 되는 날 노아가 방주 뚜껑을 열고 보니 지면에 물이 걷혔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아직 방주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홍수가 그치고 땅도 다 말랐고, 비둘기가 방주에 돌아올 필요 없이 살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얼마든지 방주에서 나와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아직도 방주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370일이 되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이제 방주에서 나오라 명하셨습니다. 노아는 그제 서야 하나님의 명을 받고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노아는 자기 눈으로 땅에 물이 걷힌 것을 확인한 뒤에도 56일이라는 긴 기간을 방주에서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때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판단에 얼마든지 시작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하나님께서 명하실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지루하고 견디기 힘들더라도 인내하며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조급함입니다. 빨리빨리 일을 처리하고 싶은 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빨리 처리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제대로 처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 초조함입니다. 남들이 저 만큼 앞서가는데 나는 아직 시작도 못한 것 때문에 초조해 하는 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남들보다 앞서가는 것보다 하나님의 뒤를 따르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하는 것을 여럿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때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주신 대로 때를 분별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특히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때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세상 유혹을 뿌리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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