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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수 목사 설교 ] 서로 사랑하는 교회
2017년 07월 19일 (수) 11:51:51 박봉수 목사 pspark@sdja.or.kr

박봉수 목사 / 상도중앙교회 담임

본문 / 요일 4장 7-12절       [ 동영상으로 보기 ]

   
▲ 박봉수 목사

일전에 한 청년의 신앙상담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인터넷 방송으로 예배를 드려도 되느냐는 질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자기는 지금 취업을 준비하고 있답니다. 여러 해 동안 도전을 했는데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해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답니다. 그런 중에 교회에서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편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옮겼답니다. 그런데 옮긴 교회에서도 자꾸 물어보고 관심을 가져서 교회 가기가 편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교회에 나가지 않고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렇게 해도 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방송이나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릴 수는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영적 유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득이한 경우, 예를 들어 몸이 아파서 교회에 갈 수 없거나 여행 중이나 출타중인데 주변에 예배드릴 마땅한 교회가 없을 경우 일시적으로 그렇게 라도 예배를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방송 예배나 인터넷 예배가 온전한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배는 콘서트처럼 그저 관람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예배 현장에 임재하시는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 현장에서 내 입으로 정성을 다해서 찬양을 드리고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 현장에서 내게 주시는 말씀을 성령의 감동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 현장에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안을 받고 참된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송 예배나 인터넷 예배는 참된 예배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방송 예배나 인터넷 예배가 교회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예배만 드리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교회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엡 4:11 이하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한 마디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모든 성도들이 지체로 하나를 이룬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주님께서 은사자들을 세우셔서 저마다 받은바 은사로 성도들을 섬기며 그리스도의 몸이 제 기능을 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6절을 보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성도들이 함께 참여하고 서로 연합하고, 그리고 자기 분량대로 섬기면서 몸인 교회를 자라가게 하고 세워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만들어 내는 공동체입니다. 함께 모여 예배하고, 서로 믿음과 은사와 가진 것을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함께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세상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공동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지체로 참여하여 상도중앙교회를 더욱 아름다운 공동체로 만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사랑하고 그 안에 지체로 참여할 교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 줄을 깨닫고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pixabay.com / lumpi / heart-1104639_640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우리가 교회를 사랑할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회 안의 성도들도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7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도 요한은 당시 목회하고 있고 영적 지도를 하고 있던 교회들의 성도들을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도들에게 서로 사랑하자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 볼 것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이나 요한 서신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는 사랑의 대상과 마태, 마가, 그리고 누가가 공관복음서를 통해서 말씀하고 있는 사랑의 대상이 차이가 있어 보인다는 점입니다.

공관복음서를 보면 사랑의 대상이 여럿입니다.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들, 그리고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성도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마태복음,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이 쓰여질 때는 사도행전에서 보듯이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였습니다. 교회 내의 성도들은 서로 위해서 기도하고 나누기를 힘쓰고 사랑으로 하나를 이루어왔습니다. 그래서 구지 성도들끼리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강조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그리고 원수까지 사랑하는 일에 힘쓰도록 말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요한이 요한복음을 쓰고 요한서신으로 권면할 때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단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끼리 서로 다투거나 교회가 분열되는 일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박해가 극심할 때입니다. 교인들 가운데 박해 때문에 큰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심지어 박해를 이기지 못하고 배교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시급하게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라는 점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요 13:34-35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사도요한은 다른 복음서 기자들이 생략하고 있던 예수님의 말씀을 특별하게 강조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새계명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 이것이 예수님께서 주신 새계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 이것이 새계명입니다. 특히 한 교회로 부름을 받아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교우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 이것이 새계명입니다. 예수님께서 특별하게 명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성도들이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고,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명령을 잘 지켜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도 잘 지켜야 하겠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기 힘든 상황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성도들이 개인주의적 신앙의 성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성도들이 함께 하기 어렵고, 서로를 알기 어려운 신앙 환경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더욱 서로 사랑하는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두 가지 일이 일어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본문 7-8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이 말씀은 성도들이 서로 사랑할 때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자식들이 부모의 사랑을 나름대로 압니다. 부모님이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을 느끼면서 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압니다. 특히 부모님이 자신을 위해 큰 수고를 하실 때 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자기가 결혼해서 자식을 키워보면 부모의 사랑을 다른 차원에서 알게 됩니다. 잔소리로만 느껴졌던 부모님의 말씀이 정말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자신을 위해 얼마나 희생하셨는지를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을 보다 깊이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피상적인 앎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도들을 실제로 사랑하다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올바로 알게 됩니다.

다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이룰 수 있게 됩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마 18:21 이하를 보면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임금에게 만달란트 빚진 종이 있었습니다. 만달란트는 환산해 보면 약 6조나 되는 천문학적인 돈입니다. 그런데 이 종은 도저히 갚을 길이 없었습니다. 임금이 불쌍히 여겨서 그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종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가 있었습니다. 백 데나리온은 환산해 보면 1000만원 정도 되는 돈입니다. 6조와는 비교할 수 없이 적은 금액입니다. 그런데 이 동료가 빚을 갚지 못하자 옥에 가두었습니다. 임금이 이 소식을 듣고 다시 이 종을 불러 옥에 가두었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은 만달란트처럼 측량할 수 없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동료들에게 백 데나리온의 작은 사랑을 베풀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히 이룰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하면 우리를 통해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베풀어진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작은 사랑을 통해 교회 안에 가득해 지고, 나아가 이 세상 속에서 널리 드러나게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상도중앙교우들은 서로 사랑하여 우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려면

그러면 우리는 서로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서로의 발을 씻어야 하겠습니다.

요 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1절을 보면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4-15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제자들에게도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주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기 위해 서로 발을 씻어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발일까요? 팔레스틴 지방은 더운 곳이어서 샌들을 신고 다녔습니다. 건조한 곳이고 대부분의 길이 비포장이어서 길에 늘 먼지가 많습니다. 그래서 발은 늘 더럽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사랑은 상대방은 더러운 것을 씻어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랑을 말할 때 상대방의 아름다운 것을 주목합니다. 매력적이고 자기 마음을 사로잡는 것을 생각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발을 주목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가장 아름답지 못한 것을 씻어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발에 주목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의 허물과 약점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발을 씻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허물과 약점을 덮어주고 치유해 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함께 해야 하겠습니다.

요 15장을 보면 포도나무 비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예수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들인데 가지들이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에서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 1;1로 서로 사랑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누가 어려우면 교우들이 함께 팔을 걷어붙여 돕는 것을 말합니다.

지난주에 가슴 따뜻한 해외토픽이 전해졌습니다. 미국 플로리다 주 해변에서 80명이 인간띠를 만들어 일가족 9명을 구조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로버타 우르슬리 가족은 멕시코만 밀러카운티 피어에서 물놀이를 하다 조난 사고를 당했습니다. 로버타는 아들이 사라진 걸 알고 그를 구하러 바다로 뛰어들었다가 아들과 함께 조류의 흐름 속에 갇혔습니다. 다른 가족 7명도 이들을 구하러 보드를 타고 나갔다가 조류에 휩쓸렸습니다.

이 때 해변에 있던 한 여성이 위급 상황을 목격하고 남편에게 구조를 요청했고, 그의 남편은 주변에 있던 청년들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 80여명이 모여들어 손의 손을 잡고 인간띠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 가족을 구조해 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이렇게 해야 합니다. 어려운 교우가 있으면 손에 손을 잡고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교우가 있으면 손에 손을 잡고 함께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사랑할 때 서로의 발을 씻어야 하겠습니다. 서로의 약점과 허물을 덮어주고 씻어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할 때 모두 함께 나서야 하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도움의 손을 펴야 하겠습니다.

지금은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로 더욱 교회다운 교회로 세워져 가야 할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무엇보다 서로 사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개인주의적 신앙이 그 어느 때보다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서로 함께 하기 힘든 상황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더욱 서로 사랑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하나 되어 서로를 섬겨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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