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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교 교리 분석 ] 재림교 구원론을 바로 세운다 ⑦
총론은 믿음 같은데 각론에 가선 믿음 '플러스 행위'
2017년 07월 11일 (화) 14:51:02 곽정환 목사 hosanna6408@hanmail.net

곽정환 목사

재림교는 개신교 칭의를 사법적 허구라고 비난했다. 칭의와 그 열매인 성화, 그리고 믿음과 행함은 하나라고 하고는, 이것을 근거로 “그리스도의 의를 입는 것”으로 묘사 했다(교회지남 7월호 p.26). 그러나 이는 완벽한 오류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와 재림전 심판의 관계]를 연재로 다루고 있는 재림교의 월간지 교회지남은 2017년 6월호와 7월호 2회에 걸쳐 ‘칭의와 심판 사이에 있는 긴장’ 문제를 다뤘다(교회지남 과월호는 시조사의 http://sijosa.com/2010/magazine/magazine3_1.asp 정기 간행물란에서 볼 수 있음).


역동적인 구원사적 견해?

재림교 한국연합회 성경연구소 임봉경 소장은 칭의와 심판간의 긴장을 해소를 위하여 있어 왔던 방법 4가지를 열거 비판하고 5번째를 정답으로 제시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묵시중심적 견해는 행위에 따른 심판을 부정하는 사상임으로 틀렸다고 말하고, 둘째 그리스도인들에게 심판이란 미래에 있을 실재가 아닌 것으로 말하기 때문에 반완전주의 견해도 틀렸다고 비판했다. 셋째 완전주의적 견해가 피력하는 ‘행위에 따른 심판’ 강조는 동의하지만 결국 완전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틀렸고, ‘칭의와 믿음을 뒤로 제쳐 놓’고 완벽한 행위만 강조함으로 이 견해 역시 오류라고 비판했다. 넷째, 보상적 심판 견해는 천국에서도 ‘모종의 계급제도’를 암시하고 성경 자료보다 ‘인간의 이성에 근거’한 것이라 비판 하면서 행위에 따른 심판으로 상급을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는 이 견해도 성경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4가지를 차례로 비판한 그는 마침내 대안으로 다섯번째 역동적인 구원사적 견해를 주장했다. 그 요지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이 관점의 골자는 이것이다. 오직 하나의 칭의만이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믿음이 시작될 때부터(이미) 마지막 심판에 이를 때까지 시종일관(믿음으로 믿음에) 신자와 함께 하지만 그 칭의 실재와 유지는 그것을 열매(아직 아니)로 시험되고 확증된다는 것이다.”

“믿음을 통해 이른 현재적 실재인 칭의가 마지막 일에 속함으로 마지막 심판에서는 신자에게 요구할 것이 더 이상 없다고 인간의 이성이 결론지으면 성경의 증언과 상충된다. 미래의 심판에서 있을 사면의 복이 현재도 작용하지만 성경은 마지막 심판에서 하나님이 보기 원하시는 것이 칭의된 신자가 은혜로 말미암아 그분의 영광을 위해 맺은 열매임을 분명히 한다.”

그럴 듯하지만 독이 묻은 다른 복음이다. 비판해 본다. 성경적인 칭의란 전가되고, 법정적 선언이고 순간에 이뤄지는 칭의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적 은혜와 선물이다. 그러나 위의 진술은 이것을 확실히 거부한다. 평생에 걸쳐 내가 열매로 유지하고 입증해야 비로소 종말론에서 합격당할 참된 칭의라는 주장이다. 열매가 있어야 종말에 사면의 복(용서)을 받는다니 교묘하게 칭의에 행위를 합성시키는 오류이다. 무조건적 은혜를 조건으로 바꾸어 복음을 가렸다. 이런 식의 칭의는 성경에는 없다.


재림교 구원론은 갈라디아서의 다른복음이다.

지금까지의 교회지남 이슈 연재를 곰곰이 씹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아무리 돌려봐도 돌고 도는 핵심은 구원이란 믿음과 행함으로 받는다는 얘기다. 균형이니, 역동적이니 바울 사상의 수미쌍관 두 기둥이니 하면서 거창하게 말하지만 정작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구원은 믿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얘기다. 행위로 증명된 믿음으로 구원의 자격을 얻는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는 다른 복음은 없다고 했다.

(갈 1:7-8)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다른 복음이란 바른 복음을 살짝 변형시켜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합리적으로 들리게 하고) 교란하게(헷갈리게, 그럴듯하게 만들어) 결국 저주를 받게 하는 요설인데 핵심은 십자가 공로 믿음만 가지고는 안되고 율법(십계명) 순종, 행위(할례)등을 덧 붙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 칭의와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적 은혜와 선물이다.

갈라디아 거짓교사들은 인간의 행위, 순종 등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대체하자는 것이 아니라 율법순종(행위)으로 구원을 균형 있게 마무리 하자는 얘기다. 얼마나 그럴듯한가?

비참하게도 재림교 구원론이 바로 이 꼴이다. 듣고 들어도 총론은 믿음인데 각론으로 가면 믿음 플러스 행위. 저들의 운명적 구절 계 14장 12절의 성도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 믿음]을 지킨다는 해석의 끈에 종속된 구원론일 뿐이다. 계명순종과 예수믿음을 등가(等價)의 조건으로 놓는 구원론이다.

개신교 칭의를 사법적 허구라고 비난하면서 칭의와 그 열매인 성화, 그리고 믿음과 행함은 하나라고 하면서 이것을 근거로 “그리스도의 의를 입는 것”으로 묘사 했다(7월호 p.26). 이런 개념이 바울과 루터가 이해한 믿음의 의의 정수라니 감당키 어려운 착각이다.

[오직 믿음으로!]라는 바울과 종교개혁자들의 구원론을 역동적이란 이름으로 변형시켰다. 믿음 외에 계명순종(행위)를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덧붙이는 바람에 잘 보지 않으면 속기 십상이다.


구원후 성숙을 구원전 조건으로 놓는 오류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수님의 대속을 믿지 않으면 불신자다. 그는 정죄아래, 심판 아래 있다. 이 심판의 두려움을 깨닫고 자기 인생의 항복(해체)을 선언하고 예수님의 대속을 믿는 자는 칭의된 자다. 거듭난 자다.

참으로 칭의된 자는, 은혜를 받은 자는 구원받은 것으로 끝이 아니라 분명히 모종의 결과(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거듭남은 생명임으로 반드시 생태(生態) 즉 성장의 과정과 열매가 있다. Saviour를 만난 감동이 Lordship으로 연결되어 순종과 헌신의 모습이 보여지고 의무가 있고 사명감이 동반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재림교는 여기서 더 한 걸음 나아가 이런 열매, 제자됨, 변화됨이 없으면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말한다는 점이 바로 오류이다.

재림교 역동적인 오류가 무엇인가? 현재의 칭의가 마지막 심판에서 신자에게 내 놓으라고 요구할 것이 있고 하나님이 보기 원하시는 그 요구물, 열매, 칭의된 신자가 그분의 영광을 위해 맺은 열매가 없으면 마지막 심판에서 구원이 얼마든지 짤릴 수 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철저히 조건적인 복음이다. 열매가 없으면 칭의를 소급하여 무효화 시켜버리겠다는 칭의는 천번을 받아도 선물도 은혜도 아니다. 조건이고 거래이다. 그런 생색용 칭의가 성경적 칭의란 말인가?


성화주의 구원론

참 믿음을 가졌는지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것은 성경적이지만 참 신자라 할지라도 믿음만 가지고는 안 되고 그 믿음(칭의)를 입증하고 성취하는 열매를 조사(확인)해서 없으면 버림받고 구원이 짤린다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재림교는 칭의 받은 자답게 살지 않으면 구원이 취소되고 자비도 취소된다고 했다. 이것은 성화주의다. 성화주의는 결국 율법주의다.

“개인이 주관적으로 (믿음으로) 소유한 칭의가 그 목적을 다하여 성화된 삶을 통해 그 온전한 의도를 드러낼 때, 그 칭의가 영생이라는 목적지에 당도”한다고 했다(7월호 p.24).

믿음+성화=구원완성 도식은 결국 행위 구원론이라는 것을 어찌 모른단 말인가? 성화 안 되면 믿음도 무효된다는 발언은 행위주의이다.

“거룩한 삶(성화) 살기를 거절하는 것은 구주로서의 그리스도와 주로서의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이다”(7월호 p.25).

성화 안 되면 과거에 믿은 것, 현재 믿는다는 것 모두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품성 성화(聖化)를 어디까지 이루어야 믿음이 합격인가?

이런 구원론을 말하면서 ‘확신을 가질 수 있다’라고 가르치는 것은 모순이다. 이렇게 틀린 구원론을 가르치는 단체를 마지막 남은 교회로 알고 출석하고 있는 사람들이야 말로 여느 이단 집단이 틀렸음을 알면서도 못 나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갈라디아서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전하는 자 마귀의 종이라고 갈파했다.


교회지남에 드러난 재림교회 다른복음(율법주의)의 어록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확실히 가능하게 된 그리스도인의 행함(열매)이 심판에서 드러나며, 은혜가 제자 됨이라는 열매를 내지 못하면 그 결과로 영생을 잃어버릴 수도 있음이 분명하다.”(6월호 p.25)

“심판을 말하는 진술들을 살펴보면, 최종적인 운명은 심판에서 결정되며 참된 믿음에서 비롯된 행위(믿음의 열매)가 그 최종적 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띤다는 것이 분명해 진다.”(6월호 p.27)

또 마 25장 양과 염소의 “비유는 단순히 믿는다고 공인하는 것만으론 심판을 통과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자비의 행위)만이 심판을 통과할 것이라고 명백하게 가르친다. .... 이 비유는 ‘신자’라도 천국의 근본적인 품성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잃어버림을 당할 수도 있다는 원칙을 분명하게 가르친다.”고 한다.

또 25장 달란트 비유 23절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는 말씀을 “잘 하였도다라는 선언은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는 선언에 앞서 나온다 곧 전자는 후자의 전제 조건이다. ... ‘잘 하였도다’ 없이는 아무도 천국에 들어가 천국의 즐거움에 참여할 수 없다는 말이다.”고 푼다.

고전 3장과 관련하여 “무조건적으로 아무나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모두 주의하시라. 잘못 지은 자들은 겨우 구원을 얻을 수도 있으나 성전을 더럽힌(멸한) 자들은 결코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다.”고 한다.

이런 해석들은 부분적 오해(誤解)나 오도(誤導)도 아니다. 이렇게 가르치는 재림교회가 율법주의가 아니면 지구상에 율법주의는 없다고 봐야 한다. 재림교는 강변일색에서 벗어 성경적 비판에 진실의 귀를 가지고 자각해야 할 것이다.


심판에 간단하게 말하면,

첫째, 모든 자연인, 비신자들은 영과 혼과 몸이 현재 정죄 심판아래 있다. 심판하고 말 것도 자동 정죄다. 영적으로 죽어 있다. 예수 영접 사건 없으면 백 보좌 심판 아래 처하게 될 것이다(히 9:27; 계 20:11-15).

둘째, 십자가 심판이다. 세상의 모든 죄가 2000년 전 성육신 하신 하나님 나사렛 예수께 담당되어 갈보리에서 끝내졌다. 제거하셨다. 속죄하셨다. 이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고 믿어지면 그는 신자이고, 그리스도 안에 속한 것이며 그리스도와 연합된 한 몸이다. 그리하여 더 이상 구원의 신분에 관한 한 확정되었고 봉인되었고 더 이상 정죄(운명)심판은 없고 영화롭게 되었다(롬 5:1; 8:1-2; 요 5:24; 10:28; 엡 1:13; 4:30).

셋째, 이미 구원 받았으나 몸은 이 땅에서 아직 구속을 기다린다. 우리 육신은 성령께 복종하면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은혜(구원)받는 자로서 의의 병기로 드리며 살아야 한다. 대신 방종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며 사는 자라면 아버지의 권고(도우심)와 사랑의 징계의 심판이 있다. 바로잡음과 일으켜 세우시는 일생 동안의 심판이다(롬 8:30; 고전 11:23, 29-31; 히 12:6).

넷째, 그리스도의 심판대 – 신자들만 대상이다. 생전 행위들과 관련된 것으로서 신실함(승리)에 대한 보상(칭찬) 심판이다. 보상이 많은 자도 있고 손실되는 자도 심판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구원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오직 보상에 관한 것이다. 상에 관한 구절이 많다는 것을 확인해 보라(마 6:6; 16:27; 눅 6:22; 고전 4:5; 골 3:24; 살전 3:13; 벧전 1:7; 히 11:6; 계 22:12; 마 25:19)


칭의와 심판의 갈등은 없다.

네 가지 심판에 대하여 바로 이해하면 칭의와 심판 사이의 갈등은 없다. 있다면 ①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지 않거나 ②구원과 상급을 혼돈하는 자들 뿐이다. 구원이 상이고 상이 구원이라고 말한다면 구원의 기초가 부재한 사상이다. 상은 노력해서 받는 것이고 구원은 선물이다. 어찌 구원이 상이겠는가? 믿어서 받는 상이 구원이라면 그것은 성경적 믿음도 성경적 구원도 아니다.

재림교는 행위심판으로 구원 취소를 주장하는데 생각해 보자. 구원 전 우리는 최악의 죄인이었다. 구원 전 보다 더 악한 상황이란 없다. 이런 형편에서 구원 받았다. 그런데 취소사태가 벌어졌다면 이는 구원 전보다 더 악한 죄로 떨어졌다는 것인데 대관절 신자가 무슨 죄를 지으면 구원 전보다 더 악한 상황이 되어 취소가 발생하는가? 어떤 죄가 하나님도 예측 못하고, 십자가의 피로도 사함이 안 되어 그 구원이 취소된단 말인가?

신자의 일생을 합산한 행위를 조사 심판한 것으로 은혜 받을 자, 구원 받을 자, 부활 합격자를 결정한다는 미래적(최종적) 칭의 개념은 외경(위경) 만큼이나 멀리 떠난 비성경적 요설로서 구원의 확신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암초교리요 저주받을 다른복음이다(갈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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