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개혁 500주년에 던지는 심상치 않은 메시지가 영남신학대학교(총장 오규훈) 신문인 <영신학보>(편집국장 김경란) 4월 4일자에 실렸다. 영남신대 교회와목회연구소장인 채승희 교수(역사신학)가 기고한 “개혁정신, 나로부터...”라는 제목의 글이다. 시기적으로 좀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한국교회와 특히 <교회와신앙> 독자들에게 이 글을 소개하고 싶어 채 교수로부터 신문에 기고한 글을 받아 가감 없이 그대로 게재한다. / 편집자 주 ]

“개혁정신, 나로부터...”

채승희 교수 / 영남신대, 교회와 목회연구소장

▲ 채승희 교수

개신교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2017년은 한국 개신교회 133살이 되는 해이다. “다시 거룩한 교회로”의 슬로건을 내걸고 본 총회(예장통합)와 총회 휘하의 교회, 기관, 여러 부서들이 종교개혁 500주년의 정신을 회복하고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안타깝게도 뜻깊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목전에 두고 한국교회는 ‘제2의 종교개혁’을 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 세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하며 놀라운 성장을 해왔지만 세상으로부터 외면과 질책을 동시에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겠지만 누가? 무엇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대답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개혁의 주체는 누구이어야 하는가? 나인가? 교회인가? 교단인가? 개혁의 주체에 대한 질문과 함께 과연 개혁의 대상은 무엇인가? 나인가? 교리인가? 교회인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주체는 나를 선택하고 개혁의 대상은 교리나 교회의 도덕성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미래의 주역이 될 우리가 진정으로 시작해야 하는 개혁은 그 주체와 객체가 동일한, “나”부터라는 것을 깊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16세기 개신교 종교개혁의 봉화를 올린 루터는 당시 교회의 문제가 교리적인 일탈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교리의 개혁에 열정을 불살랐다. 루터와 달리 가톨릭 교회의 반동 종교개혁의 핵심 역할을 한 “예수회”의 창시자 이냐시오 로욜라(Ignatius, Loyola, 1491-1556)는 교회의 문제가 교리적인 일탈이 아니라 교회의 가르침과 전통으로부터 개인적인 일탈로 보았다. 따라서 로욜라에게 있어서 교회의 개혁은 개인들의 개혁으로부터 이루어진다고 보고 개인들의 개혁은 인간의 의지의 극기를 통해 이루어지며 이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봉사와 자신 및 타인들의 구원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와 그의 종단을 통해 우리는 개인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르네상스 정신과 영혼의 완전성을 강조하는 중세 신비주의의 요소를 동시에 볼 수 있다. 그들은 수구적인 믿음과 전통을 철저한 훈련을 통해 지키고, 재확립하고, 개선하면서 만연했던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개혁하려했다.

개신교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면서 가톨릭 종교개혁의 주자가 된 예수회를 언급하는 것에 대해 혹자는 뜬금없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병들고 생기를 잃은 교회에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개혁”에 초점을 둔다면 예수회의 정신에서 우리는 큰 교훈을 얻게 되리라 믿는다. 16세기 가톨릭 교회는 개신교들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 반등에 성공하였다. 예수회는 카톨릭 교회의 개혁을 주도하면서 침체된 교회를 일으켜 반등할 수 있게 한 주요 공신이었다. 물론 종교재판과 트렌트 공의회라는 큰 무기들도 작용 했지만 개인의 영적 갱신을 통해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예수회였다.

중세의 영성이 공동체적이고 명상주의적이었다고 한다면 예수회의 창시자 로욜라가 주장한 영적 훈련의 중심은 개인주의적이면서 행동주의적이라는 것이 특징이었다. 공식적인 예전적인 경건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내재적 종교적 체험, 곧 개인의 기도와 명상, 자기훈련, 개인의 성화, 그리고 영적 성장을 더 강조한 것이다. 영성의 개인화는 동시에 강렬한 능동적인 삶을 권고하는 것이었다. 로욜라는 행위와 도덕성의 결합, 사랑의 미덕의 강조, 타인들에 대한 봉사에의 열망, 목회 사역의 갱신, 그리고 선교적 열정의 실천을 중시했다.

이 같은 예수회의 정신은 로욜라의 <영적 훈련들>(Spiritual Exercises, 1548)에 잘 나타난다. 그는 교회와 관련된 모든 것을 찬양했다. 죄의 고백, 성례전 참여, 기도(물론 가톨릭식의 예전적 기도), 종교의 서약들, 금식 등등 개인의 영적 훈련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또한 강조했다. 그는 그의 종단 수도사들에게 훈련을 통해 개인의 삶에 부여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이에 헌신하도록 가르쳤다. 철저한 영적 훈련과 함께 높은 학문성을 강조하였는데 말씀과 교리전통의 결여는 신앙의 근본을 흔들기 때문이었다. 로욜라의 개혁정신은 철저히 그리스도를 향한 종교적 열정에서 시작하여 이를 위한 철저한 개인 훈련에 바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든 것 위에 로욜라가 가장 중요하게 강조한 것은 ‘순종’이었다. “완전한 순종(perfect obedience)”에 대한 훈련과 가르침은 예수회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규약> 6.1에서 로욜라는 “다른 종단들이 금식, 철야, 식사 및 복장에 관한 엄격함에 있어서 우리와 다를 것이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참되고도 완전한 순종 그리고 우리의 의지 및 판단의 부인에 있어서 나는 우리 예수회가 남들보다 특출하기를 원한다.”라고 했다. 그는 <영적 훈련들>에서 “모든 개인적 판단을 차치해 두고, 우리는 우리 주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에게 진정으로 순종하기 위해 준비되어야 한다.”고 했다. 훗날 많은 부분에서 이들의 맹종에 가까운 순종은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하지만, 부정적인 면을 차치하더라고 예수회가 규정하는 엄격한 순종과 학문성 때문에 이 종단은 반동 종교 개혁의 성공과 가톨릭 교회를 보호하고 그 재기의 선봉에 설 수 있었다. 로욜라의 개혁에 대한 이해는 곧 전체 가톨릭 교회의 개혁의 이상으로 떠올랐고 개신교의 공격으로부터 카톨릭 교회를 보호할 수 있었다.

당시 프로테스탄티즘들은 루터파, 츠윙글리파, 스위스 형제단을 위시한 과격파, 그리고 영국의 성공회 등이 각각 사분오열되어 통일된 개혁을 이루는데 난항을 겪는 동안 개인의 영적 갱신에 주력한 예수회의 개혁 운동은 가톨릭 교회를 다시 결속시켰고 신학적 입장을 확고히 재정립하게 도와주었다. 예수회를 통해 가톨릭 교회는 선교, 교육, 그리고 훈련의 범세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프란시스 자비에르나 마테오 리치같은 동방의 사도들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는 당시 그 어느 개신교단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개인 영성에서 출발한 순종의 훈련은 교회에 탄탄한 중앙 집권력을 가능케 했고 교회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출동할 수 있는 기동대와도 같은 순발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본고는 결코 가톨릭 교회를 옹호하거나 그들의 개혁이 옳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의 개혁의 방법과 출발점을 모색하는 일환으로 16세기 교회 역사를 통해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만약 한국교회가 교리적 개혁을 찾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이신칭의”를 비롯한 개신교의 교리를 진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만약 교회와 사회의 윤리와 제도, 그리고 예배의 개혁을 추구한다면 츠윙글리와 칼뱅이 이룩한 개혁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제도적 교회에서 희망을 찾기 힘들다고 판단한다면 칼슈타트나 스위스 형제단 같은 과격파들의 신앙을 배워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개혁을 꿈꾸는 자들이게 권하고 싶다. 백번 천번 한국교회의 환골탈퇴를 외친다 하더라도 진정한 개혁의 시작은 그리스도인인 나 한사람의 영적 갱신과 개혁으로부터 라는 것을. 이를 위해 로욜라의 영적훈련은 주목 할 가치가 충분히 있을 것이다.

필자는 “다시 거룩한 교회로”의 총회 주제가 개혁 500주년을 앞둔 한국교회의 과제를 잘 표현했다고 믿는다. 교회가 참 교회되고 성도가 참 성도되고 성직자가 진정한 성직자가 되는 것이 교회가 본연의 자리를 찾아가는 길일 것이다. 본연의 자리를 그리워하고 꿈꾸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충분한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개혁, 시작해보자, 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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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쓴 채승희 교수는 경북대학교(B.S.)를 졸업한 후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M.Div.(목회학석사)와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Th.M.(신학 석사)를 그리고 유니온 신학교에서 철학박사(Ph.D.)를 받았다. 현재는 영남신학대학교 역사신학 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