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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교 교리 분석 ] 재림교 구원론을 바로 세운다 ⑥
구원에 대하여 계속 염려하라는 ‘가라지’ 구원론
2017년 06월 01일 (목) 11:06:31 곽정환 목사 hosanna6408@hanmail.net

곽정환 목사

재림교 교회지남 2017년 5월호 이슈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와 재림전 심판의 관계(3)- 심판과 확신’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이 글에서 임 소장은 ‘미래에 있을 심판’에 대한 성구들 20여개를 제시하며 이 모든 본문들이 모두 조사심판 사상을 지지하는 것처럼 말했다.

“운명”이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쓰면서 이 심판이 그리스도인의 각인의 궁극적 운명에 영향을 주는 운명심판임을 분명히 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칭의된 그리스도인이라도 장차 모두 이 운명 심판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운명 심판이란 무엇일까? 그의 결론적 설명이다.

“그리스도를 믿노라고 공언한 자들의 행위를 따른 심판에 따라 두 가지 운명에 처할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영생이, 어떤 이에게는 영멸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런 심판의 결과로 어떤 이는 구원받고 어떤 이는 잃어버림을 당할 것이다.”

이런 주장은 크게 여러 면에서 확실한 오류며 가라지 구원론이다.


첫째, 예수님의 말씀과 정면 배치된다.

막 16:16, 개역 :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요 5:24, 개역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성경적인 신자라면 운명은 끝난 것이다.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운명(신분)이 바뀌었고 영생을 얻었고(과거) 생명으로 옮겼고(과거) (미래에 운명을 다시 가르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둘째, 아무리 신자라도 이런 운명 심판이 장차 있게 되니 확신은 금물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임 소장의 글 제목이 ‘심판과 확신’인데 전체적으로 보면 도대체 신자가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인지 없다는 것인지 아리송한데 적어도 이 글대로라면 재림교인들은 절대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오히려 구원의 확신을 갖지 말라는 말에 더 가까워 보인다.


셋째, 이 운명 심판의 합격을 위하여 반드시 “할 것”이 있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칭의된 그리스도인이라도 무사통과를 위하여 “할 것”이 있다는 얘기는 [오직 믿음]만 가지고는 부족하고 어림없다는 말이다. 믿음은 그저 일차 관문이고 시작일 뿐이다. 그렇다면 구원 완성을 위해 믿는 것 외에 이 “할 것”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임 소장의 말에 따르면 “그리스도를 믿노라고 공언한 자들의 행위를 따른 심판”이라고 했다. 결과에 따라 누군 영생과 누군 영멸, 어떤 이는 구원받고 어떤 이는 잃어버림을 당한다고 하니 영락없이 구원의 근거는 믿음과 행함이다. 이러고도 재림교가 ‘오직 믿음’ 구원을 말한다는 것은 거짓이다.


넷째, 재림교의 구원론은 신인협력(하이브리드) 구원론이다.

심판에는 심판의 표준이 있고 그 표준에 달하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표준에 도달하는 것이 “구속의 토대”라고 말하면서 은혜(롬 1-11)와 윤리(롬12-16)까지 포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과 하나님의 요구가 삶에서 온전히 융합되는 데서만 가능하다.”(27쪽)고 했다.

구속의 토대와 영생과 영멸의 기준, 심판의 표준으로서 믿음만으로 안 된다는 것을 자증한 셈이다. 이것이 어찌 성경적이라 할 수 있는가?

   
▲ 성경은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으며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고 한다.(요5/24) 그러나 이 그림은 칭의된 자일지라도 적어둔 일생 행위 기록을 조사하여 운명을 재결정한다는 재림교 측의 조사심판 상상도이다. 재림교는 불신자 심판정에 신자를 세우고 신자들의 상급 심판과 정죄 심판을 혼동하는 가라지 구원론에 빠져 있다.

이것이야말로 요 5/24절의 예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것이고 엡2/8, 딛3/5; 갈2/16/ 롬3/27-28과 어긋나는 가라지 구원론이다. 철저히 조건적이고 엄위적이다. 이것을 어찌 ‘오직 믿음’ 구원론이라 할 수 있는가? 행위를 구원의 근거로 두고 있는 주장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꾸준히 헌신하라, 하나님의 요구에 최선을 다하라. 그러나 합격여부는 조사심판 끝나 봐야 아니 확신은 그 때까지 보류하라 ! 이것이 재림교 조사심판 구원론이다.


심판의 종류

임 소장이 인용한 20여개의 심판 구절들이 조사심판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 자체가 오류다. 이것들이 조사심판이면 성경의 은혜 구원론 전체가 뒤집어진다.

성경의 심판에는 종류가 있고 종류마다 대상이 다르다. 단어가 나오면 문맥에서 무슨 심판이고 대상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한다. 심판의 성격과 대상을 혼돈하면 치명적인 오류로 오도된다.

운명심판

태어나면서 모든 사람은 신분상 심판/정죄 아래 있다(롬3/19; 히9/27).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다. 필멸의 운명이다.

이런 심판아래 있는 줄도 모르는 자들에게 심판이 있음과 그 심판을 피하는 길로서 예수님 믿고 죄사함 받으라는 것이 복음이다. 그리하여 복음을 듣고서 내 대신 심판 받으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운명이 영생으로 바뀐다(요3/16). 그런 의미에서 복음을 전하는 시간은 그들에게 운명을 결정하는 심판인 셈이다.

믿음으로 한 사람의 운명은 큰 갈래 멸망과 영생으로 나뉜다.(막 16/16; 요3/16). 이 세상의 사람은 오직 두 종류 뿐이다. 그리스도 안 사람과, 밖 사람이다.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사람은 없다(롬8/1).

② 영접하지 않는 그리스도 밖 사람(불신자)에게 해당되는 백보좌 심판((계20/11-12)

③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 안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징계 심판과 상급심판이 있다. 신자에게는 운명심판은 더 이상 없다.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믿었다는 것은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예수님의 죽음(심판)을 내 죽음(심판)으로 믿어 운명의 문제가 끝난 자이기 때문이다. 신자에게 운명심판이 또 있다면 일사부재리 원칙에도 어긋나고 예수의 죽음(심판)과 우리의 예수 믿음을 모조리 헛 일로 돌리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나에게 조사 심판 같은 것이없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조사심판을 믿으면 예수님을 안 믿고 자기 행위를 믿는 것이다. 징계심판이란 아버지로서 하시는 사랑의 채찍(시89/32)이며 상급 심판이라는 것도 본질상 은혜이다.

④ 재림전심판 – 이것은 심판의 한 종류라기보다는 심판이 재림 전에 있다는 시간적 구분이다. 이 심판은 초림 후 재림 전까지 이뤄지는 심판으로서 누가 참으로 믿는 신자인가 아닌가에 대하여 100% 정확한 것은 하나님만이 아신다. 사람은 성경의 바른 구원론을 믿고 확신할 수 있으며 믿음에 행위를 섞는 가라지 구원론에 대해선 확실히 분별할 수 있다. 어떤 실명자가 가라지인지 아닌지는 하나님처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음으로 겸손해야 한다.

표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성경에 심판은 있지만 조사심판은 없다. 일반 법정에서도 피고를 바꾸어 재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데 재림교 조사심판은 칭의된 신자를 비신자 심판석에 바꿔 세우는 오류이다. 조사심판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의 신분이 확정된 과거를 미래로 바꾸고 은혜로 완성된 구원을 미완성 행위 구원으로 바꾸고 순간인 구원을 점진적(진화론적) 구원론으로 바꾸고 감사와 확신의 구원을 염려와 부담의 구원론으로 바꾸는 가라지 구원론 사상이다.


조사심판이라고 인용한 성구들에 대한 반박

고후 5장 9~10절 :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고후 5:10, 개역)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임 소장이 제시한 첫 구절이다. 이 구절에서 “행한 것을 따라” 받는 것은 엄연히 상(급)이다. 구원은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지 않고 은혜로, 믿음으로 선물로 받는다.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구원받는다면 그것이 어떻게 은혜 구원인가? 누가 행한 것을 따라 구원이 가능하단 말인가? 재림교는 더 이상 어줍잖은 조사심판 교리 사수를 위하여 성경절을 구부려 해석해서는 안된다.

또 갈6/7절 심는대로 거둔다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구원은 우리가 심는 행위에 따라 좌우된다는 뜻으로 말했다. 오류다. 구원은 은혜로 받지 심는대로 받지 않는다. 인간이 심은 것은 오직 죄 뿐임으로 심는대로 받는다면 멸망뿐이다. 따라서 갈 7장의 거둠은 상급이다. 심는대로 구원을 받는다면 지구상에는 구원받을 사람이 없다.

고전 3:13, 개역 :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구원은 절대 공력 따라 받지 않는다. 공력 따라 상급을 받는다. 따라서 이 구절은 운명심판이나 조사심판이 아니라 상급 심판이다. 상급을 구원으로 아는 것은 혹독한 오해다. 구원은 상이 아니라 은혜다.

골 3장 5~6절 :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갈 5:21 :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고전 6:9 :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엡 5:5~6 :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이 구절들을 신자가 이 땅에서 도덕적으로 형편없이 살면 구원이고 유업이고 조사심판 때 모두 불합격이다. 합격하기 위하여 행동 처신을 잘하라는 의미로 인용했다. 옳아 보이지만 자신에게 적용해 보라. 합격인지. 어찌하여 구원의 근거로 십자가가 아닌 자신을 보게 하는가?

이 구절은 신자로서 고급한 윤리 제고를 위한 강력한 경고의 말씀이다. 새겨두어야 할 중요 말씀이다. 순종하면 아버지께 빛이 되고 영광 되는 삶이고 그렇지 않으면 욕이 되고 전도가 막히는 삶이다. 그러나 이는 신자의 (징계)상급을 위한 말씀이지 구원의 신분 얻는데 우리의 처신이 일조한다는 말이 아니다. 품성의 결격으로 구원 박탈된다는 말씀이 아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행위구원론이고 지구상에 구원받을 사람 하나도 없다.

히2장 1~3절 :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이 말씀 역시 은혜로 받은 구원의 가치를 잘 모르고 구원을 ‘성숙 발전’시키는 대신 ‘소홀히 여기는 것’에 대한 경고이다. 등한히 여기면 피할 수 없는 것은 상이지 ‘구원 잃음’이 아니다. 이것을 구원으로 해석했는데 오류다. 많은 신자들은 구원의 지고한 가치를 모르고 날마다 등한히 여기는 데 모두 다 멸망을 피할 수 없다는 의미인가?


겉과 달리 재림교 심판 사상은 골수 율법주의 구원론

5월호 이슈 결론은 이렇다. ‘그리스도의 은혜에 지속적으로 의존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나 구원에 대한 염려가 없겠지만 성경은 행위에 따르는 조사 심판이 있음으로 구원의 확신을 갖지 말고 구원에 대하여 계속 염려하라.’ 그래서 재림교인들은 확신 없이 늘 염려한다. 이게 어찌 정상이란 말인가?

재림교인들은 이상한 훈련이 되어 있다. 구원에 대하여 물으면 입으로는 [오직 믿음]이라고 하면서 속으론 ‘무슨 소리야? 행위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지! 행위 없는 구원이 말이 돼?’ 하면서 [행위]만은 아니지만 적어도 ‘믿음과 행함’으로 구원 받는다고 여기고 있다. 속이 터질 지경의 현실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5월호 교회지남 논고 같은 잘못된 구원론으로 세뇌된 덕분이다. 가끔 정직한 의심이 나지만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교단의 말이니 무조건 옳겠거니 하면서 편견에 사로잡혀 자신의 영혼이 속은 줄도 모르고 끌려 종교생활을 계속한다. 생각 있는 자라면 알아봐야 한다. 따져봐야 한다. 이런 가라지 구원론에 반박을 하든지 직시하든지 깨어나야 한다. 어떻게 잘 되겠지 할 일이 아니다. 영혼의 구원이 달린 문제가 아닌가.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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