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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봉식 칼럼 ] 목사의 은사와 인격은 같이 가야 한다
비도덕적인 삶을 은사로 상쇄하려는 생각 버려야
2017년 05월 19일 (금) 14:16:18 양봉식 목사 sunyang@amennews.com

양봉식 목사 / 칼럼리스트(The Way), <교회와신앙> 객원기자

   
▲ 양봉식 목사

목회사역에서 은사와 기적은 큰 힘이 된다. 적어도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의 성도가 아플 때 심방을 가서 손을 얹고 기도했을 때 씻은 듯이 낫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대부분 목사들의 간절한 심정일 것이다.

은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 후회함이 없고 버릴 것도 없다(롬 11:29). 어떤 이들은 자신의 특정한 신학의 틀을 따라 기적이나 은사를 거부하지만 초대교회에 나타난 각종 은사들은 여전히 지금도 목회사역 현장과 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부에서는 그것을 부인하고 혹 다른 영역에서 온 것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물론 분별을 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다. 또한 성령님은 지금도 역사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조명하시며 가르치신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이름과 그분이 교회에 부여하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은사와 기적이 나타남을 시비하는 것이 더 문제일 수 있다.


은사를 추구는 것이 목적이 되면 문제

그렇지만 은사를 추구하거나 기적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 되었을 때가 문제이다. 예수님의 사역은 그 증거 하는 복음과 말씀을 확증하는데 그 표적이 뒤따랐다. 초대교회에서 나타났던 은사와 기적들도 그런 형태였다.

하지만 오늘날, 분명히 말씀을 전하는데 표적과 이적을 경험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부분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복음만 전할 뿐 이적이 나타나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 까닭일 수 있고, 또 다른 하나는 복음이 아닌 것을 전하기 때문일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여기서 시비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은사와 기적이 복음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도행전을 살펴보면 사도들이 분명한 복음을 전하면 그 확증을 따라 각종 병 고침과 귀신이 쫓겨나가는 일이 일어났다.


인격이 나타나는 것도 하나의 사역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자신의 은사만을 가지고 사역해서는 안 된다. 거기에는 인격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정립되고 자라나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는 그 사람의 인격과 상관없이 주어질 수 있다. 은사는 선물이고 선물을 주시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점에서 선물을 주시는 분을 탓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자신의 인격이 괜찮아서 각종 은사를 주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사람의 됨됨이를 따라 은사를 나눠주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바로 세우고 신앙의 유익을 위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주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륜적이고 주권적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은사가 탁월한 이들이 많다. 탁월한 은사를 가진 사역자들을 매우 경외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탁월한 은사가 나타난다고 해서 그들의 인격자체가 하루아침에 성스럽게 변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해 아래 의인이 하나도 없었듯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는 것이지 그분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아님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오직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깃들지 않으면 우리는 여전히 죄 아래 있는 것이다.

성경은 인간의 의는 헌 옷가지 보다 못하다고 말한다. 우리의 가치와 정체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사역자들이 정서적이고 정신적이며 영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님이 베푸시는 은사들을 통해서 신비한 일들이 나타나게 하신다. 그렇다고 사역자들이 가진 약점을 하나님이 즐거워 하신다거나 칭찬하신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인격적인 결함을 지속해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지속적으로 자라나야 한다. 삶에서 인격이 성숙하게 자라나지 않으면 은사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들이 오히려 선하고 좋은 열매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위해서는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아침마다 죽었음을 선언한 바울의 고백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한다. 우리는 생명을 얻었지만 그것이 풍성해지지 않으면 생명이 삶 가운데 능력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은사만이 아니라 뭇 사람이 알고 있는 살아 있는 편지가 되기를 원하신다(고후 3:22).


향기는 어디서나 동일하다

대학생 시절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옛 습관은 내 몸에 여전히 있었다. 하루 두 갑의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 담배를 끊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지체들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지체들이 없는 다른 곳에서는 한두 개피를 피웠다. 그 때마다 “하나님, 이건 죄가 아니에요.”라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삼촌네 공장에 가서 직원과 이야기 하나가 자연스럽게 담배를 얻어 피웠다. 시간이 지나서 점심시간에 직원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담배를 주었던 직원과 자리를 마주앉아 식사를 했다. 식사 전에 식사 기도를 하려고 머리를 숙였다. 그 때 성령께서 내게 한 마디 하심을 느꼈다.

“향기는 어디서나 동일하단다.”

담배를 피운 것을 두고 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즉각 깨달았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디서나 동일한 향기가 나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 다음부터 담배 냄새가 너무 싫어졌다. 내가 노력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내 논리를 깨뜨리시고 담배를 끊도록 은혜를 베푸셨다.

인격이란 저절로 자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회개와 겸손의 삶을 살도록 끊임없는 자기 죽임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은사로 사역을 하는 것보다 우리의 인격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나타나시기를 원하시는지도 모른다.

   
▲ ⓒ양봉식

말씀이 세상을 위해 육신이 되셨다. 이것은 우리 삶에 임한 믿음의 은사는 물론 인격적인 그리스도의 모습이 내 안에서 반사되어 나타나야 함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원하신다. 그렇지만 그 능력이 그 사람이 위대하게 된다는 말은 아니다.

성경은 그러한 사실을 잘 상기시킨다. 루스드라의 사람들은 앉은뱅이를 고친 바울과 바나바를 신이라고 여겼다(행 14:11-12). 멜리데 섬의 토인들도 독사에게 물린 바울이 죽지 않자 그를 신으로 여겼다(행 28:6).

두 경우 모두 바울은 그런 의견과 생각을 부정하면서 자신은 단지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들이 실수하는 것 중에 하나가 신적인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기화로 추앙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때 제지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는 일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를 따라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다. 귀신을 쫓아낼 수 있으며 질병을 고칠 수 있다. 그러나 가지는 붙어 있기 때문에 열매를 맺는 것이지 가지가 능력이 있어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 또한 그러하다.

성락교회의 김기동 씨가 귀신을 축출하는데 뛰어났다고 여긴 것이 성락교회 교인들이었다. 그렇지만 그 교회가 실수한 것은 성경보다 김기동 씨의 어록에 더 매달리고 그를 특별한 목회자로 여겼다는 점이다. 한 사람을 추앙한 결과가 오늘날 나타나는 성락교회의 현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출발 역시 진리에 서지 못한 것이 더 문제였지만 말이다.


목회자는 신령한 체하려는 태도 버려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 자도자를 선출하라고 말하면서 지도자의 요건을 길게 나열했다. 바울이 언급한 자격 요건에는 능력과 이적을 일으키는 각종 은사를 가진 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은사 중에 언급한 것이라고는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능력에 관한 것뿐이었다.

바울이 언급한 지도자의 요건은 도덕성과 인격이었다. 신실하고 절제하고 신중하며 존경할 만하고 온화하고 친절하며 평화를 좋아하며 탐욕스럽지 않고 호전적이지 않으며 자기 집을 잘 다스르는 사람을 뽑으라고 했다(딤전 3:2-7). 여자들 역시 이런 인격을 나타내야 한다(11절).

비록 영적인 은사가 있을지라도 그것은 지도자 덕목에 들어 있지 않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은사를 무시한다는 말이 아니다. 은사가 강력하게 나타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의 자리에 마땅히 서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은사는 언제나 인격이 수반되지 않으면 지도자로 세웠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

교회는 지도자에게서 은사가 나타난다고 해서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또한 지도자 역시 자신의 은사가 탁월한 것을 두고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종이라고 착각하고 비도덕적인 삶을 은사로 상쇄하려는 어리석은 생각과 행동을 버려야 한다.

고린도교회의 상황을 보면 잘 이해할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은사가 풍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말했다. 은사가 영적인 것이라고 말함에도 불구하고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곧 그들의 삶이 비도덕적이었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은사가 있을지라도 끊임없이 자기를 살펴서 인격이 성숙을 이루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 디모데에게 말한 덕목이 지도자 자신에게 나타나는지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비록 은사가 탁월할지라도 그 은사로 인해 교만해지고 멸망의 길로 가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문제된 삶을 해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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