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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가?(정통교회측)
정통교회 vs 안식일교회 미주 진리토론 1-1
2000년 08월 01일 (화) 00:00:00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본고는 2000년 5월 16일 미국 타코마기독교회연합회(회장 이우천 목사) 주최, 타코마 새생명교회에서 열린 정통교회와 안식교회 간에 있었던 공청회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안식교의 이단성‘을 논제로 정통교회측 대표로 최삼경 목사가 안식교측 대표로 윤대화 목사, 강석배 목사, 김명호 목사 3인이 강연에 나선 것이다. 토론자가 상호 1:1로 참석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안식교측에서 자신들은 3인이 준비했다는 이유로 1:3형식을 고집해 그대로 토론이 진행되었다. 또한 안식교측에서 질문 자체를 주고받지 않겠다고 함으로 말은 논쟁이지만, 서로 주제 강의만 하고 만 형식이었다.

녹취중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연사자의 의도를 왜곡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괄호를 이용해 적절한 말을 넣어 문장의 완성도를 높이려고 노력했다. 안식교측에서 특히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어 연락을 취해올 경우, 사실 범위 내에서 수정보완 할 것을 약속해 둔다. 안식교측에서 이번 공청회의 내용을 소책자로 만들 경우, 최삼경 목사의 원고는 본고를 이용하면 된다. < 편집자주>

 

최삼경   빛과소금교회 담임목사


제가 미국에서 20여 년 전 미국에 있을 때 한 안식교 교인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화잇 여사의 잘못도 인정했고, 정통교인들에게 구원이 없다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그래서 혹 토요일 지키는 것이 성경적으로 옳은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누구를 이단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을 그 때도 하고 지금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어쩌다가 이단 사이비 연구하는 사명을 받아서 안식교를 연구해 보면서 제 주관적인 확신과 또 객관적인 진리의 기준에 의해서 안식교처럼 이단 사상이 충만한 단체가 없구나 하는 입장을 갖게 되었습니다.

먼저 서론적으로 조금만 말씀을 드리면 불행하게도 1992년 시한부 종말론으로 인해서 유혹받은 사람이 10만 명 정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식교의 시작인 1844년 10월 22일 밀러라는 사람이 예수님이 오신다는 예언을 했을 때 그때 미혹받은 사람도 역시 10만 명 정도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후에 약 50개의 분파로 서로 나뉘었는데 지금까지 현존하는 것은 여호와의 증인과 안식교와 미국의 재림 생명 연합, 세 개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증인은 밀러의 잘못을 철저하게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안식교는 (안식교가) 밀러로부터 시작했다는 말을 심히 듣기 싫어합니다. 그러면서도 안식교에서 절대로 부정하지 않는 화잇의 계시에 의하면 이는(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첫째 천사의 기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밀러의 영향을 성령 운동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안식교측의) 성서기초교리 299쪽에 있습니다. 그러면서 심지어 무슨 말까지 하는가 하면, 밀러가 첫째 천사 기별을 받았으나 그날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는데 그 실패의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날을 그렇게 경영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지혜로 당신의 백성들이 실망하도록 경영하셨다‘고 성서기초교리 303 쪽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 안식교는 어쩔 수 없이 시한부 종말론 줄기로 생겨났습니다.

그 다음, 최근에 보니까, 안식교에서 이 공청회가 있기 전에 월터 마틴(W. Martin)의 주장 등을 통해서 ‘우리가 정통교회와 같다‘고 하고, 월터 마틴이 말했으니까 ‘우리가 정통교회라‘고 말하는데, 과연 월터 마틴이 다 옳은 사람입니까? 월터 마틴을 저도 존경합니다. 한 이단 연구가로서 (말입니다). 그러나 제가 보니까 유명한 사도들도 다 실수를 합니다. 사도 바울도, 베드로도. 아브라함도, 노아도 (다 실수하였습니다). 에드워드 영(E. Young) 같은 훌륭한 구약학자도 심지어 아가서를 성경이 아닌 것으로 구분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루터도 (실수를) 많이 했습니다. 칼빈도 많이 실수했습니다. 그런데 왜 칼빈, 호크마, 호머 턴컨, 고든 루이스, 그 다음에 트로티크, 쥬이트 이 많은 사람들이 안식교를 이단이라고 말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느냐 하는 점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래도) 월터 마틴을 인용한 것은 이해가 되지만 이흥선이라는 사람의 글을 가지고, 더욱이나 안식교측에서 대문짝 만하게 신문에 내고, 더욱 또 제 명에 죽지 못한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 귀신이라고 주장하고, 한국교회의 교리적 기준으로 이단 사상을 말한 장본인(베뢰아 아카데미 김기동측을 말함)이 한국교회 교리의 대표자가 최삼경인데 사탄주의자라고 공격했던 김기동측에서 쓴 남의 글을 갖다가 신문에 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김기동 씨와 안식교에 있어서 영혼멸절설에 있어서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는 사실이고, 이흥선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안식교가 테이프까지 돌리면서 안식교를 옹호를 한다고 하는데 이흥선이라는 사람은 신학을 충분히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합동측 목사였는데 면직을 받은 사람이고(기독신보 1996년 3월 9일 공고), 그것도 사이비 언론인으로 구속돼 감옥에 들어갔던 사람이라고, 저를 고소해서 법정에서 패소한 사람이고, 더 기가 막힌 사실은 이 사람은 김기동, 이명범, 이초석 씨 등을 이단이 아니라고 옹호하는데 거기에 안식교를 포함시켰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역시 안식교측에서 볼 때 김기동, 이명범, 모두 다 영혼이 영원히 살아서 귀신으로 우리 몸에 붙어서 질병을 일으킨다는 사상이 그들의 핵심 사상인데 도대체 무슨, 어떤 칼을 쓰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 더욱이나 이흥선 씨는 완벽하게 여호와의 증인을 이단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증인과 안식교는 영혼멸절과 지옥 부재에 있어서 똑같다는 사실입니다.

화잇을 빼고 안식교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여러분! 화잇이라는 사람은 심지어 노예 제도가 예수님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화잇의 초기 문집에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심지어 노예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까지 했습니다. 이것은 인간관이 잘못되었음에 틀림없습니다. 1865년의 대 총회에서 살아서 예수님을 맞을 사람도 있다고 예언을 했습니다. 이것은 한두 번 예언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 번 예언을 한 것입니다.

또 (안식교는) 화잇의 계시를 계시로 인정하며 참 선지자로 인정하고 또 화잇으로 계시의 문을 닫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열고, 한편으로 닫았는데 화잇의 저 천체에 대한  계시를 보니까 목성에 위성이 네 개가 있고, 토성에 일곱 개가 있고, 천왕성에 여섯 개가 있다고 말했는데 실제로는 목성에는 열 두 개의 위성이 있고 토성에는 열 개가 있거든요. 이런 계시야 말로 ‘개시‘가 아닌가 염려가 됩니다. 이 계시를 말할 때 그 자리에는 화잇의 남편인 화잇 장로가 옆에 있었고 안식교의 대표자이자 지도자였던 요셉 베이츠까지 그 옆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안식교인들은 돼지고기를 안 먹죠. 그런데 1859년에 화잇이 쓴 글에 한 성도가 돼지고기를 안 먹으니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대들이 자양분 있는 식물을 거절함으로(돼지고기를 안 먹어서 자양분 있는 음식을 거절함으로) 그대들의 몸을 괴롭히는 것에 관하여 그대들이 그릇된 관념을 갖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까 자양분 있는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화잇을 따르신다면 돼지고기를 잡숴도 됩니다. (안식교에서는) 심지어 뭐라고 했는가 하면 “17세의 연약한 몸으로 재림운동에 참가하여 그 책임을 감당하게 된 이 여성의 손에서 쏟아져 나온 수십 권의 책들만큼 높은 영적 수준에 있는 책은 없다“라고 자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981년 뉴스위크지에서, 저도 확인을 한 내용에 의하면, 80%정도가 (이더 샤임)이라는 사람의 글을 그대로 표절했다는 사실입니다. 저하고 안식교의 대표자(김대성 목사)하고 이미 한국에서 열 달 동안 (지상)논쟁을 하고 책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것은 공적으로 동일하게(대등하게) (만들어진) 책자입니다. 있다가 (김대성 목사의 말을) 확인했으면 좋겠는데 거기서는 ‘차용‘을 했다고 그랬습니다. ‘차용‘. (좋습니다) 때로는 성경에도 다른 책에서 한두 마디씩 차용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계시로 차용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차용이라는 것은 인용을 했거나 한두 마디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화잇은) 80%가 넘는 것을 아예 그냥 이름만 바꿨어요. ‘가인, 아벨‘ 그러면 ‘아벨, 가인‘ 이런 식으로 바꿨는데 그래서 뉴스위크지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이 차용은 한 곳에서 한 문장으로 옮겨 쓰고 다른 곳에서 한 말을 옮겨 쓴 것이 아니고 그(이더 샤임)의 저서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 그(화잇)의 습관이었다“고 1981년 1월 19일자 종교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을 많은 안식교인들이 모르고 있어요.

제가 지난 번에 안식교와 논쟁을 할 때, (먼저 안식교측에서) 저보고 공청회를 하자고 했어요. 안식교 본부에서. 그래서 “공청회라는 것은 서울 안 간 사람하고, 간 사람하고 말하다가 말 잘하면 서울 안 간 사람이 간 사람을 이겨 버리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저도 지금까지는 말로 누구에게 저 본 일이 없는 사람인데 먼저 우리가 진리를 밝히는데 객관적인 지상논쟁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서 (지상논쟁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안식교인들은 안식교를 비판했던 호크마 책도 다 사다 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책도 읽기 바랍니다.)

그래서 논쟁 후에 출판을 하기로 서로 계약을 하고 그리고 지상 논쟁을 한 후에 공개토론을 하기로 하고 시작했습니다. 그 대신 (안식교측에서는 지상논쟁하는 것을 자신들이 출판하는 잡지에) 선전만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지상논쟁이) 세번째 딱 지나고 나니까 (그나마) 약속을 어기고 광고도 못했습니다. 다 끝나고 나서 “책을 출판하라“고 하니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왜 못하느냐“그랬더니 마지막에 나오는 “무슨 내용 때문에 못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 내용은 삭제하고 책을 출판하라“ 그랬는데 “그래도 못한다“고 했어요. “그러면 당신들의 변증서를 하나 더 넣어서 책을 출판하라“. 그랬는데도 “못한다“고 했어요. 그래도 “못한다“고 했어요. 그러면 “장신대하고 총신대하고 삼육대에서 공청회를 하자.“ 그런데 역시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처음에 공청회를 “(하나씩 주제를 따라 질문과 답을) 주고받고 하자“ 그랬는데 “그렇게 피나는 싸움은 싸우지 않겠다“고 그랬다는데 우리 다 인격적인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30분씩 해서 두고 보면 아시겠지만 제가 질문한 많은 부분들이 (대답되지 못할 것입니다.) 또 지금도 즉흥적으로 질문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입니다만,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약속하게) 되었으니 그냥 이 방법대로 하겠습니다.

적어도 이 안식일 문제에 있어서 제가 지금까지 보니 ‘콘스탄틴이 초대교인들이 안식일을 지키고 있던 것을 태양신을 섬기도록 (일요일로) 바꿔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요일을 지키는 자들은) 태양신을 섬기는 사람들이고 안식일은 (곧 참 하나님의 조물주 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다른 변명이 많지만, 일요일을 지키는 사람들은 음녀요, 그리고 태양신을 섬기는 사람들이라고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교의 주장에 의하면 어차피 일요일을 지키게 된 것은) 처음 시작이 짐승의 표로 시작을 했으니까 (주일을 지키는 자들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옳은 줄 알았는데 콘스탄틴이 일요일 즉 태양신을 섬기는 날로 (안식일을 바꾸어) 만들어 주니까 그들이 고마워서 “우리가 이렇게라도 핍박받고 순교하며 살지 말고 그저 태양신을 섬기는 날이면 무슨 상관이겠느냐, 일요일로 바꿔서 지키도록 하자.“ 그래서 (안식교의 주장에 의하면) 그때부터 배도가 시작된 모양입니다.

그것이 짐승의 표를 받았다고 했으니까. 일요일을 지키는 사람은 적어도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의 후예임에는 틀림이 없고 적어도 그때 당시에 안식일을 주일로 바꾼 그 초대교회 그 많은 교부들과 그 많은 신앙인들이 모두다 짐승의 표를 받았다는 것이고, 궁상스럽게도 “마지막 말세에 로마 법황을 통해 (일요일 준수가) 정해질 때 이것을 거절하면 그것이 소위 짐승의 표를 받은 음녀라“고 그렇게 (옹상스럽게) 말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안식교인들 마음속에는 “일요일을 지키는 사람은 태양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자“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의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십계명 중에서 왜 네번째 계명만 지키지 않느냐?“ 이것에 정통교인들이 제일 (많이) 미혹받는 내용입니다. 가만히 보니까 다 지키는데 십계명 중에 네번째 계명만 안 지키는 것 같거든요. 주일날로 바꿨거든요. 그러면서 “어디에 주일로 바꾼 증거가 있느냐?“ 이게 안식교인들의 질문입니다. (그래서 정통교인들이 많은 미혹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선 (이 주장이 맞으려면) “십계명이니까 영원히 지켜야 된다“라는 말의 전제가 가능할 때만 위의 질문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구약에 보면 “영원한 규례“라는 말을 상당히 많이 했습니다. 무교절과 유월절도 영원한 규례라고 출애굽기 12장 14, 17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이 성막에 등불을 관리하는 것도 영원한 규례라고 하셨고, 제사장 직분도 영원한 규례라고 출애굽기 29장 9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는 물두멍에 수족을 씻는 것을 영원히 지킬 규례라고 출애굽기 30장 21절에 말씀하셨고, 기름과 피를 먹지 말 것도, 속죄일을 지킬 것도 영원한 규례라고 레위기 16장 29, 34절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암송아지의 재를 거둔 자는 그 옷을 빨 것인데 이것도 영원한 규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한 규례라고 했는데 안식교인들이 또 그 규례 자체를 형식적으로 안 지키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영원한 규례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의미는 같습니다. 그러면 안식일 문제도 영원한 규례라고 했지만 안식일을 그대로 옛날 구약처럼 안식일 개념을 갖고 지키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문제고 그것이 더 율법주의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희년과 안식년은 안 지키느냐? 안식일을 통해 생겨난 것이 안식년이고, 역시 희년인데 제가 알기로는 그것이 십계명이 아니기 때문이고, 십계명에 기록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율법 중에서 어떤 것은 지키고 어떤 것은 안 지키냐? 그랬더니, 제사 제도 같은 것은 ‘의문에 속한 법‘이기 때문에 안 지키고 나머지는 ‘도덕법‘이니까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절대로 그것을 그렇게 나누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6절과 7절에 분명히 이렇게 말했어요. 처음부터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후 3:6). 그리고 나서 보세요.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돌에 써서 새긴 게‘ 뭡니까? 십계명이죠.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그러니까 이 십계명도 의문의 법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7장 6절과 7절에는 뭐라고 했는가 하면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안식교측에서는 이 ‘율법‘이라는 말을 십계명을 제외한 제사 제도만을 말한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뭐라고 했는가 하면 “그런데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다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탐내지 말라는 계명은 십계명 마지막 열번째 계명입니다. 그리고 제가 볼 때 (안식교인들에게) 제일로 문제가 되는 것이, 안식교인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내용인데 즉 골로새서 (2장 16절)에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왜, 이곳에서 폄론 못하게 했는데 안식교인들은 맨날 이 문제를 갖고 폄론을 하느냐? (그런 것입니다.) 일단, 여기 이 ‘안식일‘이 토요일 안식일을 의미한다면 (안식교인들이) 안식일 문제를 가지고 (폄론하여) 말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시인해야 합니다. 그런데 (안식교에서는) “여기 안식일은 토요일 안식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절기 안식일을 말한다“고 그렇게 주장합니다.

절기 안식일과 토요일 안식일을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성경은, 항상 안식일, 유월절, 무교절 이렇게 절기와 안식일을 집단으로 묶어서 사용합니다. 구약에도 레위기 23장, 역대하 2장 4절에도, 이사야 66장 22절과 23절에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본문이 핵심적인 성경구절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절기, 월삭, 안식일 그랬을 때, 여기 패널리스트로 나오신 윤대화 목사님(안식교측 첫번째 강의자: 녹취자 주)이 쓰신 <주일 논쟁>이란 책에 보면 복수로 되어 있으니까 여기의 안식일은 속죄일을 말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말하면 (복수로 되어 있으니까) 여기 안식일은 절기 안식일을 말한다(는 주장입니다). 우리 정통교인들은 ‘안식일‘ 그러면 대부분 (토요일 안식일을 생각합니다.) 대부분 성경이 ‘안식일‘ 그랬을 때 토요일 안식일을 의미하는 게 상식인데, (물론 성경에는) 절기에도 안식일이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안식교측의 말에 의하면 본문의 말은) “토요일 안식일에 대해서는 폄론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절기 안식일에 대해 말하지 말란 말이다“ (그런 주장입니다.)

그러면 우선 절기, 월삭, 안식일을 인하여 너희가 폄론하지 말라고 했을 때, 안식일이 절기 안식일을 말한다면 앞에다가 절기(라는 말을 넣었어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다가도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절기 안식일, 월삭 안식일, 안식일 안식일“(을 인하여 폄론하지 말라) “And“라고 하는 것은 사상이 대칭이 될 때 (가능합니다) 앞에 ‘절기‘라는 말을 해 놓고 뒤에다가 안식일을 (말하여 또 절기 안식일을 말한다면 맞지 않습니다) 뒤에 안식일은 토요일 안식일이 아니고 절기 안식일이라는 것이 우선 문법적 상식으로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두번째는 여기 복수형으로 나왔다고 했는데 복수니까(절기 안식일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성경은 어느 때는 단수를 통해서 복수를 의미할 때가 있고, 복수를 통해서 (단수를 의미할 때가 있습니다) 안식일도 여럿을 묶으면 안식일들이 되죠. 그런데 성경에서는 복수로 얼마든지 안식일을 말했습니다.

윤대화 목사님 말로 (복수이기에) 이것을 속죄일로 바꾸려면 마태복음 28장 1절의 안식일도 마치 절기 안식일로 바꿔야 할 것이고, 거기도 복수로 썼으니까. 마가복음 16장 2절의 안식일도 역시 그렇게 바꿔야 하고, 누가복음 4장 16절의 “예수께서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안식일을 지켰다“고 했는데 역시 이것도 (복수입니다.) 안식일 교회에서는 “예수님께서 규례대로 들어가셨으니까 봐라 안식일을 지켰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이 말도 ‘안식일‘을 지키러 간 것이 아니고 ‘속죄일‘을 지켰다는 말로 바꿔야 합니다. 누가복음 23장 56절에도 제자들이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었다고 했을 때도 그 안식일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복수입니다.) 그런데 (저와) 변증할 때 어느 누구도, 신계훈 씨도(신계훈 씨가 논쟁을 했다는 말은 아니다: 녹취자 주), 저하고 논쟁을 한 김대성 씨, 어느 누구도 절기 안식일이라고 말한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러 갔다고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이제 콘스탄틴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기독교인들이 토요일을 지키고 있는데 태양신을 섬기게 하기 위해서 “저 사람들(기독교인들)에게 일요일날로 바꿔서 태양신을 섬기도록 해 주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참된 크리스천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정통교회 모든 학자들이 다 (의심하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콘스탄틴이 처음에 자기 어머니가 십자가를 들고 가게 해서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그리고 나서 기독교인들에게 자유를 준 것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초대교회에는) 그렇게 많은 순교자들이 있었는데 안식일을 지켜야 되는 그들이 주일날로 (바꾸어) “너희가 이제는 주일날 이 날로 태양신을 섬기게 하는 날로 바꿔 줄 테니까 그 날(안식일)을 포기하고 이 날로 지키라“고 했을 때 상식적으로 어느 누구라도 “그거 안됩니다“ (그럴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또 내가 볼 때 신사참배를 결의할 때도 신사참배에 대한 갈등을 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기록이 충분합니다. 그런 것들이(신사참배가)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조차 신사참배를 하기도 한다 이 말입니다. 그리고 누가 뭐하더라도 신사참배 결의 안 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한국에 고신측처럼 언제나 순교자가 있는 법입니다. 항상 핍박자가 있을 때마다 순교자, 남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로 인해서 즉 안식일 문제로 콘스탄틴과 대항을 해서 순교를 한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역사 속에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윤대화 목사님이 (쓰신 책에서) 말하고 있는 ‘안식일의 순교자들‘은, 여기 기록된 사람들은 제가 볼 때 기독교인들이 아니고 모두 다 유태인들이었습니다.

(콘스탄틴이) 일요일에 태양신을 섬기게 하려고 했으면, 그러면 그 당시 일요일에 태양신을 섬기는 예식들이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우상 숭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12월 25일은 태양신을 섬기는 날로, (미트라)를 섬기는 대축제일로 틀림없는 역사적 기록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까지 일요일날을 태양신을 섬기는 날로 휴업령이 내려졌거나 무슨 예식을 행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태양신을 섬기는 자체가 고등 종교가 아닙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때로는 이것도 섬기고, 저것도 섬기고 나무도 섬기고 그럴 수 있죠. 인류 역사가 제일 많이 섬긴 것이 태양이죠. 그것도 인정하겠어요. 그런데 (안식교측에서는) 12월 25일을 태양신을 섬기는 날로 성탄절을 만들었다고 해서 성탄절을 지키지도 않고 성탄절이 태양신을 섬기는 날로 생각을 하는데 천만에요. 콜럼비아 대학의 물리학 교수, 이 사람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패러티라는 사람이 쓴 책에 뭐라고 나와 있는가 하면, 기독교인들이 보니까 너무 12월 25일을 태양신 축제일로 지키니까 어떻게 하면 이 문화를 기독교 문화로 바꿔볼까. 그러니까 태양신을 섬기기 위한 날이 아니라 태양신을 섬기는 것을 기독교문화로 바꿔볼까 생각해서 맞불 작전으로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세웠다고 하는 증언입니다.

보십시오. 그 작전이 맞았어요. 아무도 태양신을 12월 25일에 섬기지 않아요. 태양신을 섬겼던 로마인들도 (지금 12월 25일에 태양신을 섬기는 날로) 지키고 있지 않아요. 역시 12월 25일은 예수님의 탄생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탄생일로 착각하고 지킬 만큼 기독교 문화화되고 있어요. 그래서 한 기독교 교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태양신의 탄생을 축하하는 이교도와는 달리 태양을 만드신 이를 축하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날을 거룩하게 지킨다“고 했고 성탄절을 지키는 것을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태양신을 섬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태양신을 섬기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나는 안식일 교인들이 태양신을 섬기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왜? (그렇다면) 토요일은 지신을 섬기고, 목요일은 나무의 신을 섬기고, 월요일은 달신을 섬깁니까? 제가 볼 때 콘스탄틴의 칙령에 뭐라고 되어 있는가 보아야 합니다. 콘스탄틴의 칙령을 그래도 신계훈 목사는 정확하게 ‘태양의 날‘이다 그렇게 말했어요. 그런데 윤대화 목사님의 번역에는 그것을 ‘태양을 존경하는 날‘이라고 번역을 했어요. 원문을 보면 정확하게 번역된 말에는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때 내린 칙령에 이렇게 되어 있어요. “모든 재판관과 시민, 그리고 기술자들은 존엄한 태양의 날에 쉬어야 한다.“ 태양의 날이란 말이 태양신을 숭배하는 이 날에 태양신을 숭배하도록 쉬어야 된다는 말이 아니에요. 그냥 일요일이 태양의 날입니다. 월요일은 그냥 달의 날입니다. 그러니까 그 날을 쉰다 이 말이에요.

콘스탄틴은 “그러나 시골 사람들과 방해를 받지 않고 농사일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종종 이 날은 씨를 뿌리고 수확하기 가장 알맞은 날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일요일 휴업령‘ 을 내린 것이지 ‘일요일 태양신 제조령‘을 내려 준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선입견이 작용을 하니까 그것이 그렇게 작용을 한다는 것이죠. 콘스탄틴이 321년에 일요일 휴업령을 내리기 이전에 안식일을 지킨 흔적이 유태인 이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A.D. 107년에 베드로의 후계자로 알려진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티우스가 “구약의 관습적인 안식일은 끝나고 주일 예배에 의하여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안식교인들도 인용하고 있는 바나바 서신에도 A.D. 70년에서 80년에 쓴 <바나바 서신>에도 일요일에 예배를 드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훨씬 이전에도 많은 기록들이 일요일을 그대로 자연스럽게 지켰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중요합니다. 성경이 (뭐라고 했는가가 중요합니다). 안식교인들은 “성경에. 신약 성경에 안식일을 지키란 말이 한 번도 없지 않느냐“ 그렇게 질문을 했더니 “한번도 없다“는 말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면서 해석적 측면에서 안식일을 지켰다고 말을 합니다. 김대성 목사와 같은 경우는 “한번도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이 없다면 없는 이유는 너무나 안식일을 지키는 일이 당연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신약에 할례를 행하라는 말이 한번도 없는데 할례를 행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서 안 썼느냐? 유월절을 지키라는 말이 없는데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서 안 썼느냐? (그런 질문이 생깁니다)

그런데 (안식교측에서) 안식일을 지켰다고 제시하는 일련의 성경 구절들마다 그것이 안식일을 지켰다는 의미라고 한다면 (다른 곳에 명확하게 안식일을 지킨다, 지켰다)는 말 정도 하나 넣어졌어야 하는데 (없습니다) (이 말에) 그렇게 인색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사도행전 17장 2절(을 봅시다.) (이 말은 안식교인들이) 좋아하는 성구로, 곧 뒤에 나오시는 분이 말할 것으로 추측합니다. “안식일에 자기의 규례 대로 들어갔다.“ 여기서 규례대로라고 했는데 규례라는 말은 언제나 성경에 어떤 것을 의무적으로 지킨다고 할 때 그 지키는 그런 의미의 규례는 ‘디카이오마(dikaioma)‘라는 말을 씁니다. 그러나 하나의 관습적인 의미의 규례를 지킬 때는 ‘에토(etho)‘라는 말을 씁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다키이오마가 아니라) 에토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중추절의 시작은 조상신을 섬기는 날로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중추절을 지킵니다. 그런데 조상에게는 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추절을 지킨다는 말이 가능합니다. 그냥 그 날을 하나의 날로 지키는 것입니다. 자꾸 안식일을 지켜야만 구원의 인을 받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인을 받지 못하니까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율법주의적인 개념이 남아 있으니까 자꾸 (구약의 율법주의적으로) 그런 생각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안식일을 지켰다라는 말이 역시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23장 56절에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더라고 했습니다. (안식교측에는) 이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증거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 ‘쉬더라‘고 했습니다. 쉬더라. 그런데 십자가 사건 후에도 폐해진, 예를 들어서 고린도전서 5장 8절에 보면 유태인들이 그 유월절 지키는 모습이 그곳에 나왔는데 “너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주의에 대해서 우리 주님이 얼마나 저주를 했습니까? 마귀라고 저주를 했으면서도 그러나 그 지키는 날짜 자체를 대치개념으로 가져서 “이 날 안 지키면 인을 못 받고 이 날을 안 지키면 너는 지옥에 가니까 안 된다“는 그런 개념으로 지키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도행전 16장 13절에 사도들이 강가에 기도처를 찾아갔다고 했는데 (안식교측에서는) 이것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라고 항변합니다. 그런데 보니까 놀라운 사실은 (바울이) 그 전에 먼저 회당에 갔습니다. (안식교측에는) 사도들이 회당에 들어간 것을 안식일을 지켰다고 말했는데 사도들이 그곳에 들어간 것이 안식일을 지켰다면 무슨 말이 되는가 하면 예수님이 유대주의를 인정했다는 말이 됩니다. (바로 안식교측의 위의) 그 말이 안식교인들은 율법주의란 것을 증명하는 제일 대표적인 말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안식일은 지켜야 하더라도 유태인들은 저주하고 유태인을 멸시했다면 유태인들이 지키는 그곳에 가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로 지켰어야 옳습니다. 그런데 유태인들의 회당에 들어가서 지켰다고 한다는 말은 예수님이 율법주의자라는 말과 동일한 말이 됩니다.

그래서 제가 김대성 목사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이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저 강원도를 지나가다가, 안식교회가 없는데 당신들에게서 나온 이단자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엘리야 박명호가 있고, 안식교에서 나온 하나님 안상홍이 있다면 그곳에서 토요일을 지킵니까? 지금 한국교회에 안상홍 증인회 피해가 보통 큰 게 아닙니다. 그러면 “당신 김대성 목사는 안식교회가 없을 때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엘리야복음선교회나 안상홍증인회 가서 안식일을 지키겠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안식을 지키려고 예수님이 그렇게 미워하고 저주하시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셨다고 하는) 그것이 안식교가 이단이라는 증거입니다.

기도처에 갔다는 이 말이 (안식교의 주장처럼)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갔다는 말이라면, 그전에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간 것이 안식일을 지키려 갔다는 말과 모순됩니다. (언제는 안식을 지키려고 유대인 회당에 가지 않고 강가로 갔다고 하고 언제는 회당에 들어갔다고 하니: 최삼경 주) 공동번역에서도 이것을 “안식일이 되어 우리는 성문으로 나가다가 유대인의 기도처가 있으리라고 짐작되는 강가에 이르렀다. 그리고 거기 앉아서 모여 든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그랬어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는 말을 가지고 이것이 예수님이 안식일을 지켰다고 말을 하는데 (이 말도 잘못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자나시다) 밀을 잘라다 잡수시면서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그랬어요. 그런 의미라면(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최삼경 주) 예수님은 안식일을 안 지켰다는 말이 됩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 자체가, 토요일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주님은 안식일의 주인임으로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반대 개념입니다. (역시) 골로새서 2장 16절. 이 월삭과 절기와 안식일을 인하여 폄론하지 말라. 이 말을 마음에 잘 기억해야 합니다.

안식교에서는 에스겔서 20장 20절의 말씀의 ‘표짰이라는 말을 가지고 요한계시록 7장의 ‘하나님의 인‘이라고 가르칩니다. 에스겔서 20장 20절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짰이 되어“라고 했는데 표징이 인이니까 안식일을 안 지키는 사람은 인을 못 받은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다음 분이 대답해 주시죠. 정통교인들 중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화잇이 한 것으로 압니다. 그러면 인 못 받은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는지? 인 안 받고 구원 받는 사람, 인 받고 구원받는 사람이 (따로) 있는지?

저같이 안식일을 연구하고도 안식일교를 사탄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안식교 입장에서) 진짜 음녀의 자식임에 틀림없겠죠? 그런데 (원어로 표징은 ‘오트‘로서) ‘오트‘라고 하는 이 말은 하나님의 재앙도 오트고, 가인이 받은 표도 오트고 창세기 언약의 증거도 오트고, 할례도 오트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나는 토요일보다 주일 지키는 것이 성경적으로 옳다고 믿지만 혹 토요일을 지키는 것이 성경적으로 옳지 않다고 해도, 그것을 인이니, 음녀니, 태양신을 섬기느니, 하지 않았다면 안식교를 이단이라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안식교는 그것을 하나님의 인이라고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단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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