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 , 신천지
전체기사 | 상담제보 | 후원신청 | 배너달기
> 뉴스 > 이단&이슈 > 안식교
       
[ 안식교 교리 분석 ] 재림교 구원론을 바로 세운다 ③
믿음과 행함을 비벼 넣는 재림교의 퓨전 구원론
2017년 04월 04일 (화) 00:13:11 곽정환 목사 hosanna6408@hanmail.net

곽정환 목사

성경은 분명히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틀린 믿음”이라면 “틀린 구원”을 받을 것이다.


재림교도 “믿음으로 구원”이란 말을 쓴다. 그래서 성경적이겠거니 하다가도 유심히 들어 보면 그 믿음 개념 자체에 이미 행함이 다분히 섞여있다.


그러므로 재림교가 아무리 이신칭의를 주장해도 빗나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될 뿐임을 재림교인들은 생각해야 한다.


[믿음과 행함]의 문제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와 ‘행위에 따른 심판’의 관계를 밝히는” 재림교 연재 이슈를 비판하는 중이다. 재림교의 [칭의와 심판]의 관계 문제는 재림교만의 독점 이슈가 아니다. 어느 나라, 어느 교회나 성경공부 모임이라면 있어왔고 있게 될 [믿음과 행함] 혹은 [복음과 율법]의 문제다.

재림교 내에서도 [믿음과 행함]의 조화 문제 역시 금년 교회지남 이슈가 처음도 전부도 아니고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다. 차제에 재림교에서 발간한 <믿음과 행함>(FAITH AND WORKS, Sermons and Articles by Ellen G. White)이란 책(이하 ‘믿음’으로 표기) 을 다시 살펴보았다.

이 책은 “그(화잇)의 가르침을 사실 그대로 제공해 주기 위하여 1881년부터 1902년까지의 18개의 기사들을 엘렌 G. 화잇 유산 관리 위원회가 특별한 체계없이 연대순으로 ....율법과 복음에서 체계화 된 그대로 구원의 근본 진리들을 조리있게 개설(槪說)”(믿음, 11)한 책으로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칭의와 성화의 위대하고 주요한 진리들에 관하여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고 주님의 기별자가 여러 해에 걸쳐 그것들을 설명한 그대로 그에게 자세히 듣는 것이 좋을 것이다”(믿음, 11)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는 재림교가 [믿음과 행위], [칭의와 심판]에 관한 조화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즉 구원의 근거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분명하게 말해 주는 재림교 원자료라 볼 수 있다.

결론은 무엇일까?


가짜 휘발유를 만드는데 제일 많이 들어가는 것은 진짜 휘발유.

가짜 휘발유를 만드는데 제일 많이 들어가는 것이 진짜 휘발유라는 말이 떠오를 뿐이다. 이 책은 구원에 대하여 - 믿음과 칭의 은혜에 관하여 – 오려두고 새길만한 감동적인 문구들과 성경적 진술이 많다. 그런데 문제는 후반부 쪽으로 가면 이것을 뒤집어 버리고 상쇄시키는 진술이 곳곳에 많다는 점이다. 이 범벅되어 있음이 문제이고, 필자가 퓨전 구원론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가짜가 10% 포함 되면 진짜가 90% 있어도 그것은 유사 휘발유이다.

구원의 근거로서 [믿음과 행위]를 반반씩 섞는 것은 확실히 율법주의이다. 그런데 재림교우들은 왜 못 깨닫는가? 윤리(성화)에 대한 보편적 타당성 강조와 믿음과 성화(행위)를 “균형 있게 강조한다”는 말에 재림교 신도들이 속고 있는 것이다. 중용과 균형이 중요한 말이지만 구원의 근거를 논하면서 믿음과 행함을 비벼 넣으며 균형을 말하는 구원론은 심각한 오류다.

이번 글은 교회지남 이슈 내용을 넘어 재림교 [믿음과 행함]이라는 책의 내용을 인용 소개하면서 재림교가 구원론이 얼마나 한심한 비빔밥 구원론인지 증명해 본다. 편파적 인용이 되지 않도록 문맥까지 인용했다. 이러한 대조를 통하여 오류를 직시하고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유함을 얻고 종의 멍에(갈 5:1)에서 벗어나길 기도한다.


구원(칭의)에 관한 옳은 진술들 (A)

“잃어버린 인류를 위한 구원의 계획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오직 믿음만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기초를 둔다. 이 교훈은 아담과 그의 후손들이 희생제물이 된 양을 죽였을 때에 에덴의 문 앞에서 가르쳐졌다. 그것은 모세가 구리뱀을 쳐들었을 때에 광야에서 가르쳐졌고, 그리하여 혈관 속에 독사의 독을 가진 백성들이 구원의 상징을 바라보므로 회복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제사 제도를 통하여 가르쳐졌다. 그것은 선지자와 사도들을 통하여 가르쳐졌다. 우리는 거듭거듭 구원은 믿음을 통하여 얻는 은혜에 의한 것임을 배우고 있으며, 또한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믿음, 12)

“타락한 인간이 자신의 가장 좋은 선행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보다 더욱 열렬하게 강조하고, 보다 빈번하게 되풀이하고,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보다 확실하게 정립시켜 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요점은 없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믿음, 19)

“피조물의 공로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는 일에나 하나님 앞에 서게 하는 어떤 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을 그 주제가 뚜렷하고 분명하게 밝혀주도록 하자. 믿음과 행함으로 어떤 사람이 구원의 선물을 살 수 있다면 창조주는 피조물에 대하여 의무 아래 놓이게 된다. 여기서 거짓이 진리로 받아들여질 기회가 주어진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행하는 어떤 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그는 자신의 죄 때문에 고해성사를 해야 하는 가톨릭과 동일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구원은 품삯처럼, 일해서 얻을 수 있는 채무의 일부분이 된다. 그러나 만일 자신의 선한 행위 중 어떤 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면, 구원은 오로지 한 사람의 죄인으로서 그가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믿기 때문에 받은 은혜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완전히 값없는 선물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자신의 선한 행실 안에 있는 타락한 인간의 공로로는 자신을 영생으로 이끌 수 없다는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이 모든 논쟁은 끝이 난다.”(믿음, 19-20)

“칭의는 오로지 은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어떤 행위로도 얻을 수 없다. ”(믿음, 20)

“만일 그대가 사람에게 있는 선하고 거룩하고 고상하고 사랑스런 모든 것을 함께 모아서 그것들이 인간의 영혼의 구원이나 공로에 한 몫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천사들에게 제시한다면 그 제안은 반역으로 간주되어 배격당할 것이다.”(믿음, 24)

“인간이 자신의 구원을 얻게 하고, 또한 하나님 앞에 값지고 훌륭한 무엇인가를 바치는 데 있어서 인간에게 있는 공로로는 어떤 것이 있는가? 돈과 집과 땅을 바침으로써 그대 자신을 가납될만한 대열에 둘 수 있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믿음에 공로를 둘 때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에 위험이 생긴다. 그대가 그리스도의 의를 값없는 선물로 받아들일 때 그대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여 값없이 의로워진다”(믿음, 25)

“ 의란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다. 율법은 의를 요구하는데 바로 이것을 죄인이 율법에게 빚지고 있다. 그러나 죄인은 그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 그가 의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얻는 것뿐이다. 그는 믿음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공로를 하나님께 가져갈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의 손종하심을 죄인의 계정에 두신다. 인간이 실패한 자리에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시고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믿는 영혼을 받으실 뿐만 아니라 용서하시고 의롭게 하시며 그를 마치 의인인 것처럼 취급하시고 당신의 아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그를 사랑하신다. 믿음이 의로 간주되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에서이며 용서받은 영혼은 은혜에서 은혜에 이르게 되며 빛에서 더 큰 빛으로 나가게 된다. 그는 기뻐하면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3:5-7)고 말할 수 있다.”(믿음, 101)

“영생은 무한한 선물이다. 영생은 무한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가 일해서 얻을 수 없는 곳에 위치해 있다. 그것은 반드시 선물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의 선물로서 믿음으로 얻어져야 하고, 그 결과로 감사와 찬양이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믿음, 27)

위와 같은 내용은 분명히 구원의 근거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공로에만 두는 복음과 은혜에 대한 바른 진술들이다. 초지일관되게 이랬다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다. 살펴보자.


은혜를 뒤 집는 율법주의 진술들 (B)

계명을 어기는 자는 아무도 하늘에 들어가도록 허락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한 때 순결하고 고상한 덮는 그룹이었던 그가 하나님의 정부를 반역하므로 쫓겨났기 때문이다.”(믿음, 29)

계명을 범한 자로서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음 - 진리의 빛을 가지고 있는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계명을 범한 자로서는 하나님의 도성에 들어갈 수 없다. 그분의 율법은 하늘과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기초가 된다. 만일 그들이 고의적으로 지상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짓밟고 경멸하면, 그곳에서도 동일한 일을 하도록 그들은 천국으로 데려가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품성의 변화는 없다. 은혜의 시기 동안에 품성 형성이 계속 되어야 한다. 날마다 그들의 행동은 하늘의 책에 기록되며, 그들은 하나님의 큰 날에 그들이 행한대로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그때에 누가 축복을 받는지 알려질 것이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 22:14).”(믿음, 43)

상급과 구원을 혼동하고 있다.

우리가 의롭다 하심과 거룩하게 됨과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는 데는 엄연한 조건들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형제가 제시한 의미들을 알고 있습니다만 실제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릇된 감명을 주었습니다. 선한 행실로 말미암아 단 한 사람의 영혼도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와 반면에 어떤 영혼도 선한 행실이 전혀 없이 구원받기란 불가능한 것입니다.”(믿음, 111)

"죄의 용서는 회개하고 믿는 자에게 약속되어 있다. 생명의 면류관은 끝까지 충성한 자의 상급이 될 것이다.”(믿음, 48)

“그리스도께 나온 율법사는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는 질문으로 그리스도를 곤경에 빠뜨리고자 하였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율법사에게 그 짐을 지었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었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눅 10:25-28). 이 말씀은 우리 각 개인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우리는 그 조건에 즐겨 일치되고자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킬 것인가? 우리는 말씀을 듣는 자일뿐만 아니라, 행하는 자가 될 것인가? 하나님의 율법은 그분의 품성처럼 변경되지도 변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율법을 무효로 만들기 위하여 어떤 말과 행동을 할지라도 율법의 주장은 변치 않으며, 그 율법을 순종해야 하는 의무감에서 그들을 해방시킬 수도 없다.”(믿음, 42)

“그리스도교계에는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이 믿음을 갖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다시 말하면 행함은 아무것도 아니며, 믿음만이 필수적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기를 거절하면서도 믿음에 관해서는 많이 언급한다. 그러나 믿음에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모두 조건부로 이루어진다. 만일 우리가 그분의 뜻을 행하면, 만일 우리가 진리 안에서 걸어가면,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바를 구할 수 있으며 그 때에 그것이 우리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가 순종하고자 열렬하게 노력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탄원을 들어주실 것이다. 그러나 불순종할 때 그분께서는 우리를 축복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하고자 택하면서 우리가 믿음, 믿음, 오직 믿음을 갖자라고 부르짖는다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것이라”(2:20)는 대답이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올 것이다. 그런 믿음은 다만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와 같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덕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몫을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성실하게 행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믿음, 47)

“가장 흉악한 죄인이 용서를 받고 순종의 생애를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은 그분의 공로와 회개와 믿음의 행사를 통해서였다. 죄인은 죄 속에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고 죄로부터 구원을 얻는다.”(믿음, 31)

“세상에는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와 불순종하는 자 두 부류만 있게 될 것이다. 어떤 경우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청중 앞에 심판의 사업을 제시하셨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믿음, 44)

믿음과 행함은 동반됨” - “율법으로도 불순종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음” -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반면에 우리는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순종 없이 구원을 받을 수도 없다. 율법은 품성을 측정하는 표준이다. 그러나 우리는 중생케하는 그리스도의 은혜 없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수 있다. 그분은 율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시며, 율법을 불순종할 때도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실 것이다.”(믿음, 95-96)

역설인가 혼돈인가? 율법을 강조하는 듯하면서 경계를 넘어 구원의 조건 됨을 슬그머니 그러나 강하게 암시해 나감으로 독자들은 개념 없이 읽다 보면 오류에 율법주의 빗물에 옷이 다 젖어버린다


재림교에서 [계명과 행함]의 위치

더 많지만 지면상 짧게 인용했다. 열 번을 읽어봐도 논리는 처음에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하다가 뒤에 가선 행함도, 계명 순종도 있어야 구원 얻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거짓말이다. 이것은 우길 일이 아니라 수정할 일이다. 혹 필자가 곡해한 의심이 든다면 구원론적 관점을 가지고 직접 읽어보면 누구나 단박에 알 것이라 사료된다.

계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이는 재림교가 택한 최고의 정체성 성구인데 계명 순종과 믿음을 정확히 반반씩 넣고 있는 것이 안성맞춤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을 최고의 정체성으로 가지고 있는 한 재림교는 영원히 율법주의 단체이다. 이 성구의 계명이란 말씀으로서 구원의 말씀이지 곧이곧대로 10계명이라면 구원받을 사람누가 있을까?

   
▲ 재림교의 비빔밥식 퓨전 구원론은 구원의 확신을 무너뜨린다.

필자의 글을 보고 어떤 재림교인은 구원을 위해서 [믿음과 행함]을 동시에 강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성경 말씀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그에 대한 필자의 되질문은 이것이다. 그럼 귀하는 (1)종합적 결론으로서 성경은 오직믿음 구원을 말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2)믿음 플러스 행위 구원을 말한다고 생각하는가? 만약에 성경이 (2)번이라서 재림교가 (2)번 이라면 할 말은 없다. 다만 그 사람은 기독교 무늬신자 일뿐 속살은 천주교나 불교 신자 아닐까?


양두구육(羊頭狗肉)가르침 같은 재림교 구원론의 속을 간파해야 한다.

“만일 인간이 자신의 선행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다면,그리스도와 갈바리의 십자가가 왜 필요하였겠는가.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구원의 계획에는 단 한 오라기라도 인간의 행위가 개입될 수 없다. 다만 갈바리의 희생을 통하여 이루어 놓으신 값없는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데는 무슨 복잡한 이론이나 힘든 노력이 요구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이다.”

이 진술은 [믿음과 행함]이라는 화잇의 책을 발간한 편집국장의 머리말 내용이다. 맞는 말이다. “엘렌 G. 화잇 여사는 본서를 통하여 이러한 점들을 분명히 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니다. 다음은 많은 진술들 중에 하나이다. 똑 바로 보시라. 옳은 말들 속에 얼마나 어떻게 틀린 속살을 슬그머니 교묘하게 넣었는지를 말이다.

“율법을 지킴으로써 자기 자신의 행위로 천국에 이르려고 노력하는 자는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순종함이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다. 자신의 모든 수고가 자기 자신의 힘만으로 행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안에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행하셔야만 한다. 만약 인간이 자기 자신의 행위만을 가지고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면 그는 자기 안에 기뻐할 수 있는 어떤 요소를 갖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의 능력만을 가지고 구원을 얻으려는 노력은 가인의 제물로 상징된다. 그리스도가 없이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이기심으로 부패하여진 것과 죄뿐이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행하여진 것만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천국을 얻으려고 노력할 때에 영혼은 향상하게 된다. ”(믿음, 94)

어떤 노력, 행함, 선행 이전에 은혜로 의로워 졌음을 믿는 자가 성도이다. 노력과 동시에 의()를 얻거나 노력 중이어야 의가 유지된다는 개념은 은혜가 아니다. 성령님과 함께 노력하고,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임어 노력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야 말로 마귀의 속삭임이다. 이런 식으로 행위를 넣다니 기상천외함에 놀랄 뿐이다. 재림교가 정말 “행함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결과”라고 주장한다면 결과가 부족하면 거듭난 것이 아니라느니 하늘을 못 간다느니 하는 말을 하면 안 된다. 그런데 너무 많다.

다음엔 이 책에서도 많이 언급하였고 재림교우들이 속는 지점인 “행함 없는 믿음”에 대한 이해를 비판해 본다. < 계 속 >

ⓒ 교회와신앙(http://www.amen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최근 많이 본 기사
[ 폭로 ] “베뢰아 김기동… 성
육군 참모총장 공격 받아… 동성애
법원 “이만희 위한 ‘굿’ 했을
인터콥 최바울… 트레이드 마크 ‘
검찰, 카이캄 비판 윤태열 신우선
[ 안식교 교리 분석 ] 재림교
한교연, 한기총과 통합… ‘다락방
   <교회와신앙>소개걸어온길만드는 사람들광고안내후원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한국교회문화사 / 서울 종로구 대학로 19, 303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발행인·편집인 : 장경덕 | 사장 : 엄무환(청소년보호책임자) / Tel 02-747-1117 Fax 02-747-7590 E-mail : webmaster@amennews.com
Copyright 2005 교회와신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amennews.com | 등록번호:서울아01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