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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최대급 '고인돌' 발견… 한국엔 5만기
이집트에선 출애굽시대 라메세스 2세 추정 조각상 나와
2017년 03월 15일 (수) 23:43:27 김정언 기자 skm01_@daum.net

<교회와신앙> : 김정언 기자 】 한국의 고인돌처럼 문자 같은 문양이 새겨진 거대 고인돌이 이스라엘 갈릴리에서 발견됐다. 시리아와의 국경지대인 이스라엘 골란 고원의 서쪽이자 북부 갈릴리 북쪽인 키부츠 샤미르 근처 들판에서 웃돌(상석, 뚜껑돌, 덮개돌, 蓋石 등으로도 불림)의 아랫면에 고대 문자 같은 그림이 새겨진, 특이한 이스라엘 최대급 고인돌이 최근 발견돼 고고학자들의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고인돌에 비문이 새겨진 사례는 이번이 중동 최초이다. 발굴팀인 예루살렘  텔하이 칼리지의 고고학연구팀을 비롯한 현지 고고학자들은 비문이 새겨진 기존 사례로 한국의 고인돌을 인지하고 있다. 골란 고원엔 총 5천 600기, 갈릴리 북부에만 약 400기의 고인돌이 밀집돼 있어, 한국의 전남 지방을 연상시킨다.

   
▲ 갈릴리 최대의 고인돌 천장에서 문양을 발견한 샤론 교수(왼쪽)와 사적국의 버거 박사. ⓒHaaretz

고대의 거석 구조물인 고인돌(한국 : 지석묘, 支石墓, 영어: dolmen)은 지구촌에 공통되게 장례 문화와 직결됐다. 고인돌은 크게 북방의 테이블형과 남방의 바둑판형(기반)으로 나뉜다. 전자는 후자보다 굄돌(가운데 또는 양쪽에서 웃돌을 받치고 있는 돌)이 높다. 이번에 비문이 발견된 고인돌도 테이블형이다.

고인돌 수로 세계 최다급인 한국의 약 36,000개 고인돌들은 워낙 유명하다. '세계유산'의 일부로 지정된 고창, 화순, 강화도 등의 고인돌이 유명하며, 특히 순천 등 전남 지방에 즐비하게 밀집돼 있다. 가장 최근엔 충남 외연도에서 하나가 발견되기도 했다. 북한의 평양 주변에 밀집된 고인돌까지 합하면 한반도에 4~5만기가 산재해, 세계 전체 고인돌 수의 40%를 웃돈다.

근래 중동 고고학계에서 크게 주목 받고 있는 이 고인돌은 웃돌이 현무암(basalt)으로 약 4천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예수님과 그 선조들도 멀리서 바라봤을 가능성도 있어 크리스천들의 높은 관심을 끌기도 한다. 이 거대한 고인돌 속에는 여러 개 방이 형성돼 있고 방 하나는 2X3 미터 넓이다. 중앙 현실(玄室)에서는 뼈와 사기 조각들이 발견됐다.

   
▲ 해당 고인돌 ⓒHaaretz

해당 고인돌의 연구 결과, 여기 부속된 이차 매장지엔 성인과 어린이들 다수도 함께 묻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는 한 곳에서 시신을 부패시킨 다음 뼈를 거두어 다른 곳에다 옮겼다. 주변의 직경 약20미터 안에 고분군 또는 돌무더기들이 산재해 있으며, 이 고인돌 바로 아래에도 4개의 작은 고인돌들이 위치해 있다.

갈릴리 고인돌들은 골란 지역에서 발견된 석조물과 비슷한 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평원을 뒤덮은 수백 개 고인돌 한 가운데 자리 잡은 말굽 내지 자궁 모양의 돌무더기인 '루옘 헬 히리'도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다.

인접국인 요르단에도 고인돌이 많다. 그러나 갈릴리 이남 지역엔 현무암이 없고 그럴 만한 문화적 배경도 없어 고인돌이 분포돼 있지 않다. 그밖에도 중동엔 터키에서부터 예멘까지 수만 개의 고인돌이 있다.

발굴팀을 이끈 텔하이 칼리지의 갈릴리연구프로그램 담당 고넨 샤론 교수(고고학)는 "천정 아래 문양을 발견하는 순간 희열과 전율에 싸였다."고 토로했다. 이 고인돌도 기념비적인 복합구조물의 일부라는 점은 청동기 중기에도 아직 석기 문명이 붕괴되지 않았음을 입증해 주며, 따라서 기존 통념을 깨는 것이라고 시사했다. 진화론에 반기를 드는 증거물인 셈이다. 청동기 중기 거석문화 사회의 특징은 매장문화이며 그중에서도 고인돌은 두드러진다.

   
▲ 내부의 문양. 중동 최초이다. ⓒHaaretz

샤론 박사는 발굴 내용을 밝힌 관련 매거진 '플로스 원'에다 이 고인돌의 고유한 면모로서 그 규모와 둘러싼 구조물, 그리고 예술장식을 꼽았다. 이번 발견은 이스라엘 도처의 옛 거대석에 관해 새로운 여러 '계시'를 뿌려주고 있다는 중평이다.

이스라엘 사적국(IAA)의 우리 버거 박사도 "고인돌에 새겨진 예술물이 발견된 것은 중동 최초"라는 데 큰 의의를 두고 "15개의 새겨진 문양은 중심을 향해 나란히 나열돼 아치형을 이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형태의 문양은 중동지역의 바위 비문 가운데서도 유일하다며 "그 의미성이 자못 신비롭다."고 평했다.

아울러 이 최대급 고인돌의 무게는 고위층 집안의 무덤이라는 것도 시사해준다. 샤론은 약 50톤으로 추산되는 이 거석의 규모가 의심할 것 없이 대단한 인력과 상당 기간이 소요되는 공적인 대규모 건립 공사였음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당대의 왕족이나 사제, 또는 귀족들의 무덤이었을 이 고인돌 공사 기간중 모든 인부들에게 거처와 식사가 제공됐을 터이며, 소규모의 유랑민들로선 불가능한 당대 최고의 공법과 건축학, 설계학 등이 총동원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한 강력한 정부가 있어 장기간 인력과 물자를 공급 관리했음이 명백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 갈릴리 고인돌 분군에서 발견된 고대 장신 구슬 ⓒHaaretz

학자들에 따르면, 이 고인돌과 주변의 여타 석조 기념물들은 청동시대 초기의 도시사회가 붕괴된 이후인 '암흑시대'의 것이다. 제4초기 청동시대 및 제1중기 청동시대가 이에 해당한다. 청동기 도시국가들이 폐기되자 당대의 대규모 산업사회, 농업과 무역업 등의 복합 사회경제 구조가 해체됐다. 그 정치적 공백을 메우려고 유목민이 아닌 해변 민족인 불레셋 족이 일어났다는 것. 유목시대의 이 암흑기는 주전 약 2350년-2000년 사이를 차지했고 청동시대 중기의 도시개혁이 뒤를 이었다.

암흑기의 정착촌과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남아있지 않은 주된 이유는 중앙집권 체재 없는 유랑민 종족사회가 주를 이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를테면 몽골은 사상 최대의 제국을 이뤘지만, 중동의 베두인 족 같은 유목민족이었기에 이렇다 할 고고학적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연구팀은 히브리대학교의 고고학 컴퓨터 실험실에서 이 문자 문양을 스캔하여 3차원 모델을 만들어냈다. 실험디렉터 리오르 그로스만 교수는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3차원 스캔을 통해 밝히 보게 된다."고 설명.

키부츠 샤미르의 고인돌 무리를 처음 연구하기 시작한 사람은 1950년대의 고 모쉐 카간 박사였다. 그후 훌라 계곡 곁에 산재한 400개의 거대한 구조물들이 발견됐다. 그러나 건립 당시의 역사적 상황이나 건립자들의 정체 등은 고고학자들에게 아직도 수수께끼 같은 신비의 대상이다.

앞서 같은 지역 고인돌 주변에서는 색깔이 영롱한 구슬 등 고대의 장신구 부속물도 상당량 발견됐다. 이와는 무관하지만 족장 야곱도 가족들의 귀고리 등 장신구와 아람 가신들의 신상을 거두어 매장한 바 있다(창세기 35:4). 귀고리 같은 고대의 장신구가 우상숭배 및 미신과 직결된 부적 역할도 했기 때문이다.


이집트 라메세스 2세 조각상

한편 인접국인 이집트 카이로 근교의 슬럼가인 마타리야에서는 약 3천년 전 것으로 추측되는 출애굽 시대 파라오(바로)로 알려진 라메세스 2세(한글성경의 '라암셋')의 오벨리스크와 그의 거대 조각상이 새로 발견됐다.

이집트-독일 발굴팀이 카이로 빈민가의 지하수에서 발견한 규암으로 된 석상은 깨어져 두상과 귀 부분, 왕관과 어깨 부위 등으로 각각 흩어져 있었다. 여호와께서 징벌하신 신상들의 하나로 파괴된 것은 아닐지(출애굽기 12:12하). 당시 바로들도 신으로 숭상됐기 때문이다.

   
▲ 이집트의 라메세스 2세(?) 석상 ⓒHaaretz

라메세스 2세의 석상으로 거의 확실시되는 이유는 헬리오폴리스에 그가 세운 태양신전 바로 부근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그의 손자인 세티 2세의 석회암 조각상의 상체 부분도 발견됐다. 룩소르의 카르낙 신전의 약 2배 크기인 헬리오폴리스 신전은 그리스-로마 시대 때 이미 파괴됐다. 신전 주위의 오벨리스크(방첨탑)들은 알렉산드리아 또는 유럽 등지로 옮겨졌고 무너진 돌들은 카이로 도시개발 건축에 사용되기도 했다.

관련 이집트 당국은 발견된 석상 조각들을 조합, 복원해 봐서 라메세스 2세가 분명할 경우, 대이집트 박물관(GEM) 입구에 건립해 2018년 공개할 계획이다. 발굴팀 독일인 단장인 디트리히 라우에 박사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마타리야의 헬리오폴리스를 창조신인 태양신이 실제로 거주하는 곳으로 여겼고, 이에 따라 왕족들의 주거지가 인근에 조성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바로들도 마타리야에서 온 세계가 창조돼 나온 것으로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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