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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봉식 칼럼 ] 진리로 세워져라
지성이 성령께 순복 않으면 능력 나타나지 않아
2017년 03월 10일 (금) 13:55:09 양봉식 목사 sunyang63@naver.com

양봉식 목사 / 칼럼리스트(The Way), 전 <교회와신앙> 기자

   
▲ 양봉식 목사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구원을 얻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새로운 피조물의 탄생은 하늘에서는 큰 기쁨의 일이지만 어둠의 세계에서는 큰 근심거리가 생기는 사건이다. 사단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정체성의 의미를 온전하고 바르게 알기를 원치 않는다. 새로운 피조물의 탄생이 일어났을 때 그 때부터 치열한 영적 씨름이 일어난다. 어둠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자신들의 신분을 따라 살지 못하게 하고 종의 의식을 가지고 살기를 원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무엇에 의해서 생각이 세워지고 길들여지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왕의 자녀로 태어나면 곧바로 왕의 자녀로 교육을 받는다. 조선시대의 신분으로 구별된 엄격성은 생득적인 태어남과 함께 의식도 양반은 양반의식을 노비는 노비의식을 가졌다. 인도의 카스트제도를 보면 이 의미를 쉽게 알 수 있다. 사회제도가 신분을 고정화시켜 가장 하층의 사람들은 사람으로 취급을 받지 못한다. 그런데 하층민들은 자신들의 부당한 취급에도 전혀 항거하지 않는다.

인도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카스트 제도의 가장 하층에는 ‘수드라’라는 계급이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어느 카스트제도에도 속하지 못하는 최하층민 ‘불가촉천민’이 있다.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평생을 계급의 굴레 속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살아 나가야하는 아이들은 주어진 신분으로 배움의 기회조차 쉽사리 주어지지 않는다. 인도의 하층민이 사회적으로 신분에 대한 차별을 당연시 하는 것은 자신들의 신분에 대한 이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신분 제도가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사회적 제도가 마련되고 하층민들이 자신의 신분이 바뀐 것에 대한 이해가 생기면 더 이상 차별을 받지 않으려 할 것이다. 신분은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그 신분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법적으로 제도가 바뀔지라도 문화적인 풍습이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 여전히 신분적인 차별이 생기게 된다. 이때에 깨어있는 사람은 자신의 법적 권리를 주장하고 투쟁할 것이다. 사람들이 압력과 반대를 해서 어려움을 겪을지 모르지만 법으로 보장한 권리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거듭난 그리도스인이 자신의 권리와 특권 등 새로운 피조물에 대한 이해가 생길 때 그 이해를 따라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리스도인이 이런 삶을 살아가기 시작할 때 가장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는 그룹이 어둠들이다. 어둠은 본능적으로 한 그리스도인이 진리로 돌이켜 세워지는 것을 싫어한다. 그것은 자신들을 대적하고 훼방하는 용사가 세워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류가 시작하기 전에 존재했고 이 땅이 타락으로 신음할 때부터 주인 노릇했다. 그래서 타락한 인간들에 대한 임상 자료를 축적해왔다. 인간들의 삶을 어떻게 허물고 망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노하우가 아주 많다.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신분을 이해하고 정체성을 세우는 것을 전략적인 접근을 통해 방해하려 둔다.

어둠이 사용하는 전략 중에 하나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영역에 가라지를 뿌리는 것이다. 교회 안에 가리지를 뿌리고 신학에 가라지를 뿌린다. 잡초가 밭에 나면 그것이 각종 채소나 먹는 곡식들이 자라지 못하게 괴롭힌다. 잔디밭을 유지하기 위해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잔디밭이 제 기능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사단은 가라지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죄인으로 살아가도록 한다. 의인이라고 고백하는 것보다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겸손한 것처럼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죄인은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한다. 의롭지 못한 자가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경배를 드릴 수 있겠는가?

의인이란 죄의 본성이 하나님의 본성으로 바뀐 것을 말한다.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어 아무런 거리낌이나 부담 없이 바라보고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죄와 상관이 없는 자가 의인이다.

   
▲ 망치든 사람 ⓒ양봉식

요한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했다(요일 3:9).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이 죄를 짓는다면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피조물은 육이 아니라 영임을 알 수 있다. 육신을 가진 존재에게는 여전히 죄가 들어올 수 있다(롬 7:8, 9, 11, 17). 이 때 죄가 발생하는 영역은 육의 영역이지 새로운 피조물의 영역은 아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하나님과 연합되어 있다. 본성적으로는 여전히 하나님의 의와 성품이 그대로 있다.

자녀가 넘어진다고 자녀가 취소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의인은 넘어져도 의인이다(잠 24:16). 예수님의 말씀처럼 목욕한 자는 다시 목욕하지 않고 손과 발만 씻으면 된다.

가라지들로 인해 생각 그릇된 사고방식은 많은 그리도스인들이 여전히 이 땅에서 쓸데없는 고난을 받도록 한다.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십자가의 고난이다. 그러나 복음으로 인한 고난이 아닌 것들은 거절해야 한다. 가령 질병이나 연약한, 지독한 가난함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질병에 걸릴 수 있고 가난해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것이 아니므로 거절해야 하며 거기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주님이 죄를 담당하셨듯이 질병 또한 짊어지셨다. 우리 대신 채찍에 맞으심으로 나음을 입게 하셨다.

대부분 가난함을 돈이 많이 있고 적게 있는 것으로 기준을 삼으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기준은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재물을 땅에 쌓아 놓지 않으셨다. 부동산이 되는 건물이나 땅을 소유하지도 않았다. 그분의 사역에서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을 위한 삶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그러나 항상 부요하셨다.

예수님이 가난해지심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셨다(고후 8:9).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의 질병을 가져가신 것은 진리이다(벧전 2:24). 그분은 죄가 되셔서 우리의 모든 저주를 가져가셨다(갈 3:13).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요하고 건강하며 의인이다. 거룩하며 흠이 없을 뿐만 아니라 생명 안에서 왕노릇한다(롬 5:17).

이것을 죽어서 천국에서나 누리겠다고 한다면 이 땅에서 구원만 받고 겨우 사는 삶이 눈앞에 펼쳐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예수님 안으로 들어간 자는 이미 모든 것을 다 받았다(엡 1:3). 바울은 이런 사실을 새로운 피조물은 새언약의 백성들이 알기 위한 간구를 했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8~19).

바울이 교회를 향한 기도한 것들은 곧 우리 자신들이 해야 할 간구이기도 하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이 우리 삶 가운데 이뤄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또한 우리 새로운 피조물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용사로 태어났을지라도 모든 탄생은 영적인 어린아이이다. 육체가 음식을 섭취해야 하듯이 영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자라난다. 이것은 단순히 지식이나 정보를 위한 활동이 아니다. 음식이 몸으로 들어가 에너지가 되듯이 말씀을 영으로 먹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지성적 활동인 성경공부만으로 영이 자릴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은 영성과 지성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해서이다.

무엇을 안다는 것 자체가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도둑질하는 사람은 몰래 숨어서 한다. 도둑질이 나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자신의 도둑질을 막지 못한다. 영을 따라 살라고 하는 것은 곧 지성이 성령께 순복되지 않으면 능력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리새인들이 정말 열심히 성경을 상고했지만 지성에만 머물렀다. 그들 안에 성령님이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지성의 이해를 따라 메시아를 거부하고 대적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에 순복하지 않고 자신의 지혜만을 따라 복음을 이해하려 든다면 실패하고 말 것이다.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첫 단계가 말씀을 영으로 먹는 것이다. 조지 물러가 5만 번의 기도를 응답 받은 비결도 바로 말씀을 영으로 먹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 비밀을 깨달은 것은 적어도 10년 이상 설교를 한 뒤였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조지 물러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 안에 거하도록 함으로써 그가 구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지적 이해가 믿음이 아니듯이 단순히 성경 공부하는 것은 머리만 키울 수 있다. 그러나 성경공부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동기와 관점을 점검하고 철저하게 성령께 의존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진리를 알아가고 정체성이 확립되어갈 때 어둠의 방해가 시작된다.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일어난다. 관계가 좋았던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불편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가족이 원수가 되고 교회 목사님의 설교가 자신을 괴롭히기도 한다. 몸이 아프거나 뜻밖의 일로 곤혹을 치르기도 한다.

어둠은 다양한 방법으로 공격을 한다. 개인의 기질을 따라 우울하게 하거나 분노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령님이 계신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분의 몸으로 존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우리의 것이 되었다.

진리로 세워지고 자신의 신분에 대한 정체성 확립을 위해 애써야 한다. 그렇게 할수록 자신 안에 있는 이미 주신 하나님 나라의 자원들을 나타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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