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종 선교사 / 디르사어린이선교회 대표

[ 이 글은 디르사선교회 대표 김희종 선교사의 글로, 세 아이를 뉴질랜드에 두고 한국에 오가며 어린이 선교(4세~7세)를 하는 가운데 뉴질랜드에서 한국 어머니들께 쓴 편지이다. / 편집자 주 ]

▲ 김희종 선교사

커튼을 닫지 않은 창문에 빛이 들어옵니다.

달빛과 별빛이 환하여 밤이 푸른빛을 내 마음을 씻는 듯합니다.

아이들과 모여 말씀을 모읍니다. 하루 동안 각자의 몸속에서 함께 살아주신 하나님에 대해 증거하며 심각하기도 웃기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바람처럼 밀려오는 힘이 조금씩 집으로 느껴오면서 벽에 걸린 시계가 흔들립니다. 통째로 집이 물결 타듯 하더니 약간 어지러움이 오다 멈췄습니다.

여섯 명의 아이들과 나는 예고 없이 온 지진을 직감하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정원에 드리운 달빛은 유난히 밝고 별빛도 초롱초롱 여전합니다.

집집에서 불빛이 켜집니다. 자정 12시가 좀 넘어 잠을 자다 모두 깬 듯합니다. 개들은 짖는데 새들은 모두 어디론가 가버렸나 죽은 듯 조용합니다. 간간이 들리던 새들의 소곤거림이 어디론가 가버린 적막함이 깊게 감도는 밤입니다.

눈은 떴으나, 시대를 분별치 못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우신 하나님께서 침묵 가운데 찾아오신 아픈 고요함입니다. 피할 길 없는 하나님의 징계 - 몇 해 전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지진을 만난 터라 그리 놀라진 않았지만, 내 영혼의 잠이 깨는 듯 말씀의 생명 운동이 속에서부터 꿈틀거려집니다. 보이지 않는 내 속 하나님과 나를 잇는 성령의 말씀이 몸의 아픔으로 진동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

예수 생명은 나를 찌릅니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쓰나미 경보 사이렌 소리가 다시 요란히 울립니다. 서서히 가득한 두려움이 가슴에 차오르며 내 영혼이 제자리를 찾아 하나님께 엎드려집니다.

아이들과 가졌던 아주 잠시 전 마음과는 사뭇 다른 생각으로 제각기 침대로 돌아갑니다. 나를 도우신 성령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닌, 진정 나로부터 나타나진 예수님의 사랑이 하루 중 있었나를 자신에게 반문했을 겁니다. 나로부터 출발한 생각과 말이 잠깐 사이에 예수님으로 바뀌었습니다.

잘살고 있는 걸까 잘 죽을 수 있을 것인가…. 삶을 되돌아보며 죽음을 만날 준비를 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빚진 자 되어 예수 자랑하며 사는 삶에 빚이 그대로 남아있는 내게 그의 풍성한 사랑으로 덮음은 더욱 초라함을 느끼게 합니다.

▲ ⓒ제공 : 디르사선교회

지우개처럼 지워진 죄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내 온몸을 새것으로 만드셨다는 말씀이 지금도 날 살리고 있건만…. 하나님의 책망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잘해주면 더 교만해진다’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날 무디게 한 내 교만에 대해 짚어봅니다.

예수님의 상한 몸으로 엮어진 내 몸에서 습관적으로 붙어있던 불필요한 것들이 가련한 누더기가 돼 흩어내리는 듯합니다. 나뭇잎으로 앞을 가린 아담의 피가 느껴지며 예수님의 이름표를 달아주시고 살길을 여신 하나님의 이야기에 깊은 감사가 약해졌음을 실감합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흑이 섞인 백은 인간적 회색으로 까만 마음이 확실합니다.

자질구레한 조각 마음이 날 속이고 있었던 것들이 만져집니다. 정신을 차리고 과감히 잘라내고 정리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버림받은 외로움 속 고통이 피눈물로 저려 옵니다.

30초도 안 되는 짧은 흔들림은 피부처럼 밀착된 내 몸의 거짓소리를 벗기고 있습니다. 비닐로 딱 달라붙은 것 같이 세상에 보이는 듯 아는 듯한 진리의 얕음은 접선 안 좋은 전기선처럼 예수님의 심장과 공감이 됐다 반감이 됐다 합니다.

깊이 체감되지 못한 십자가 사랑은 실속 없이 분주한 열심으로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며 자기 눈을 가립니다. 세상과 좀 더 선명한 간격을 두는 분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의 거룩함은 진한 감동으로 내 삶에 기쁨이어야 합니다.

사람 속에서 나오는 힘이 얼마나 독하기에 피와 살을 찢기며 용서하신 예수님의 기억을 죽일 수 있을까…. 이제 내 삶에 남은 시간을 제대로 채워야 할 것입니다.

먼 여행 같은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됐습니다. 사람들은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움직입니다. 남섬에서 시작된 지진은 내가 사는 북섬에서 날 돌아보게 합니다.

이번 지진에 사람들 마음의 집이 새로워지길 기도합니다. 마음에 새집이 지어지면 무너진 옛집은 까맣게 잊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