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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수 목사 설교 ] 믿음으로 노래하는 사람들
2017년 02월 08일 (수) 13:14:42 박봉수 목사 pspark@sdja.or.kr

박봉수 목사 / 상도중앙교회 담임

본문 / 스바냐 3장 14-20절          [ 동영상으로 보기 ]

   
▲ 박봉수 목사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Nabucco)’에 나오는 ‘히브리인의 합창’이라는 노래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제 2의 애국가라고 여길 만큼 애창하는 노래입니다.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의 통치를 받고 있을 때 나라의 독립을 열망하던 국민들의 마음속에 애국심을 불러일으켰던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이 노래는 구약성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오페라 제목 ‘나부코’는 성경에 나와 있는 바벨론의 왕 ‘느브갓네살’이라는 이름을 이탈리아 말로 줄여서 붙인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느브갓네살 통치하에 비참한 삶을 살던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노래인 것입니다. 당시 이탈리아 국민의 처지가 이와 같다고 여겨서 베르디가 이 오페라를 작곡했고, 이탈리아 국민들이 이심전심으로 이 노래를 그렇게 사랑하며 불렀던 것입니다.

이 노래를 잘 들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 즉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히브리 노예들이 강제 노역에 시달리면서 정말 하루하루 힘겨운 삶을 이어갑니다. 그런데 그런 고달픈 시절을 보내면서도 저들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바벨론 강변에 앉아서 두고 온 고향 땅 요단강변을 그리워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미 무너져 내린 예루살렘 성전을 안타깝게 회상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에는 깊은 슬픔이 가득 배어있습니다.

그러나 이 노래는 단지 슬픔을 하소연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그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꿈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에는 슬프지만 희망의 장엄함이 스며들어있습니다.

베르디는 이 노래를 통해 당시 슬픔과 절망 가운데 있던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희망을 갖게 했습니다. 이탈리아 국민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조국의 독립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는 이탈리아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로 지금도 애창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힘겨울 때도 노래합니다. 절망의 순간에도 노래합니다. 심지어 장례식의 그 깊은 슬픔 중에도 노래합니다. 무엇이 절망의 순간에도 노래하게 할까요?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절망의 순간에도 믿음으로 노래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노래를 통해서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고, 새로운 희망을 찾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노래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래하라는 권고

오늘 본문은 노래를 권고하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1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이 말씀을 보면 스바냐 선지자는 세 가지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온의 딸아”, “이스라엘아”, 그리고 “예루살렘 딸아”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여기서 이 셋은 다 같은 대상을 지칭한 말입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스바냐 선지자 당시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면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떤 상태에 있었을까요? 스바냐 선지자가 지칭했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스바냐 선지자가 예언하던 시대는 남왕국 요시야 왕이 통치하던 때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왕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종교적인 상황은 물론이고 정치적인 상황과 나라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스바냐 선지자가 지켜보아야 했던 당시 남왕국 유다의 형편은 한 마디로 말하면 총체적인 위기 상황입니다.

당시의 위기 상황을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당시 나라를 다스리던 요시야 왕은 불과 8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갑작스럽게 아버지 아몬 왕이 반역자들에 의해 살해됐고, 천신만고 끝에 반역이 진압이 된 후 여덟 살 꼬마가 등 떠밀려 왕 자리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당시 나라 형편은 여덟 살짜리 왕이 수습하기에는 상황이 너무도 좋지 않았습니다. 우선 정치적으로 부왕이었던 아몬 왕이 2년간 너무도 큰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민심이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반역이 일어나고 또 진압되는 과정에서 정치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생은 파탄이 나고, 국력은 쇠약해 질대로 쇠약해 졌습니다.

더 큰 문제는 종교적인 상황입니다. 역대기 33장을 읽어보면 요시야 왕의 할아버지인 므낫세 왕이 55년동안 왕으로 통치하면서 나라는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의 나라라고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므낫세 왕은 아버지 히스기야 왕이 무너뜨린 모든 우상의 산당들을 다시 복구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만 예배해야 하는 예루살렘 성전 뜰에 우상의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자기가 앞장서서 하나님께서 금하신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이런 시기를 지나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망해가는 나라를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성전에서 우상숭배가 자행되는 처참한 일을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진노가 쌓여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한 마디로 절망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우상 숭배의 산당이 되었고, 왕이 앞장서서 하나님의 종들을 핍박했고, 우상숭배를 선동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런 상황 속에서 절망하고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절망 속에서 노래를 잃어버리고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하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 ⓒpixabay.com / church-1137784_640

왜 스바냐 선지자는 절망 중에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노래하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선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노래하는 사람들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상황도 하나님의 백성들의 입에서 노래를 빼앗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노래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세워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래를 통해 위로를 받고, 노래를 통해 용기를 얻고, 그리고 노래를 통해 희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찬 413장 1절 가사를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이 찬송을 작사한 사람은 스패포드(H. Spafford)라는 사람입니다. 아주 행복하고 평탄한 삶을 살던 사람입니다. 유명한 변호사였고, 대학교수였습니다. 아름다운 아내와 사랑스런 네 딸과 함께 행복한 삶을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아내와 네 딸이 프랑스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여객선 하브호가 영국 배와 충돌해서 승객 2백 26명이 익사하는 대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네 딸은 모두 익사했고, 아내만 겨우 생명을 구했습니다.

스태포드는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딸들이 수장된 그 바다를 바라보며 딸들의 이름을 부르며 절규했습니다. 이 때 아내가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 아이들은 지금 천국에 있어요, 우리와 잠시 헤어져 있을 뿐이에요” 스태포드는 이 말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비극의 현장에서 시 한편을 썼습니다. 그 시로 만들어진 찬송이 바로 413장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노래하는 사람들입니다. 환란 중에서도 노래하고, 절망 중에서도 노래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믿음으로 노래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겪고 있는 시련 때문에 노래를 잃어버리시지는 않으셨습니까? 너무도 절망이 깊어서 노래를 잃어버리지는 않으셨습니까? 그래도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 그래도 노래해야 합니다.

 
노래해야 할 이유

스바냐 선지자가 절망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래도 노래하라고 권고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저들 안에 아직도 노래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

본문 15절을 보면 스바냐 선지자가 이렇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그리고 17절에 또 이렇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스바냐 선지자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 앞에 펼쳐지는 상황을 보면서 그 누구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신다고 단호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그 누구도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하신다는 증거를 내어놓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만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지금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면서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노래하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 14장을 보면 베드로가 잠시 물위를 걸었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다가 큰 풍랑을 만나 큰 위기를 겪게 됐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물 위를 걸어서 찾아오셨습니다.

이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보고 뜬금없는 청을 드립니다. 자기도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걷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청을 들어주셔서 오라고 명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말씀에 순종해서 물 위로 나갔습니다. 정말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걷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마침 강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베드로가 그 바람을 보는 순간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믿음이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다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주님께서 저를 건져주셨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바로 시선의 중요성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풍랑이 이는 바다 속에서도 예수님을 바라볼 때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으로 바다 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보다가 바람과 풍랑을 바라보는 순간 믿음이 흔들립니다. 주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다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노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엄습해 오는 위기 상황을 바라볼 때 우리는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고 노래마저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주님께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세상에 한눈을 팔게 되면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위기 상황을 바라보게 되면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노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찬양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지금 이 시간 다시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회복하십시오. 그러면 다시 노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일하신다는 믿음

본문 19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을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스바냐 선지자는 절망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일하고 계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차 괴롭게 하는 자들을 벌하실 것이고, 저는 자를 구원하시고, 쫓겨난 자를 모으시고, 온 세상에서 수욕을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스바냐는 절망 중인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위해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들을 위해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고 다시 노래를 부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인 선교사 크리스터 윌슨이라는 선교사가 아프카니스탄에서 사역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갑자기 전염병이 돌아 양들이 죽어나가는 것입니다. 나라가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이 일은 선교 사역에도 큰 장애가 되었습니다.

윌슨 선교사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때 마음속에 오리를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믿고 미국에서 오리 알을 들여왔습니다. 들여온 24개 알 가운데 겨우 두 개만 부화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 이 오리들이 알을 낳았고, 오리 수가 점점 많아졌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오리들이 먹성이 좋아서 지렁이들을 잡아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오리 수가 크게 늘어나자 먹거리가 부족해 진 오리들이 뱀까지 잡아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뱀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뱀들이 사라지면서 양들의 전염병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양들의 전염병을 옮긴 것이 뱀들이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국왕이 윌슨 선교사를 불러 큰 상을 주며 치하했습니다. 그러면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할 수 있도록 특별한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일로 선교의 길이 활짝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윌슨 선교사는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일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위기를 만나서 절망할 상황이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일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절망 가운데서도 자기들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러분을 위해 일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 눈으로 볼 수 없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손길로 일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노래할 수 있습니다. 절망 중에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노래하라고 명하십니다. 믿음의 노래를 부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깊은 슬픔 중에 있어도 노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절망 중에 있더라도 노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노래할 상황이 아니어도 노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노래가 우리를 위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노래가 우리에게 용기를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노래가 우리에게 희망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함께 믿음으로 노래를 부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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