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종 선교사 / 디르사어린이선교회 대표

[ 이 글은 디르사선교회 대표 김희종 선교사의 글로, 세 아이를 뉴질랜드에 두고 한국에 오가며 어린이 선교(4세~7세)를 하는 가운데 뉴질랜드에서 한국 어머니들께 쓴 편지이다. / 편집자 주 ]

▲ 김희종 선교사

커튼 사이에 살짝 비친 별빛을 보면서 낮의 일을 스스로 위로합니다. 별이 가득한 밤 가운데 머뭅니다. 창밖 새들의 노래는 빛으로 만든 색깔들과 함께 아침을 감사함으로 맞이합니다.

새들의 아침 식사는 볼품없이 튀어나온 줄기에 달린 꽃 같기도 열매 같기도 한 플랙스에 담긴 꿀입니다. 휘청거리는 줄기 속에 숨어 들어있는 꿀단지에 둘러앉은 나비만 한 새들이 다정히 식탁에 앉아 사랑스럽게 조잘댑니다.

플랙스는 원주민 마오리들이 카펫이나 가방, 깔개 등 생활용품에 쓰이는 줄기를 가진 아주 질긴 식물입니다.

이사 오는 날부터 뒤뜰 울타리 겸 심어진 플랙스가 눈에 거슬려 뽑아버리고 싶었지만, 손을 못 댄 채 그대로였습니다. 먼저 살던 동네가 새 보호지역이라 각종 새소리는 고품질 음질이었기에 그나마 뒤뜰 새들의 노래라도 아쉬운 실정입니다.

그러나 쭈뼛쭈뼛 멋없이 뻗쳐있어 질감이 거칠어 싫습니다. 일 년 내내 억센 잎을 굽히지 않고 버티고 있어 그 거만함이 맘에 안 듭니다. 이곳 사람 중 어떤 이는 보기 싫으니 뽑으라 합니다. 혹 어떤 이는 울타리도 되고 새들도 불러오니 그냥 두라 합니다.

난 보이는 visual에 약한가 싫은 쪽이 크지만, 듣는 귀에도 약해 선뜻 결정 못한 마음은 플랙스와 새, 둘이 합해져 힘이 세 날 꼼짝 못하게 합니다.

▲ 플랙스 ⓒ디르사선교회

온종일 책에 눈을 박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면, 부드럽고 그윽한 느낌이라곤 전혀 없는 뒤뜰이 정말 못마땅합니다. 그러다 대낮에 잠깐 플랙스에 앉아서 노래 불러주고 날아가는 플랙스의 새들 노래는 날 혼돈케 합니다. 밑동부터 뻣뻣하고 날카로워 실용적이라 여러모로 전통 물건에 사용이 됐나 본데, 감정을 뭉개버리는 것 같은 곤두세운 잎의 모양이 영 맘에 안 듭니다.

사람도 좋고 싫은 것을 둘 다 가지고 있듯 좋은 일, 궂은일은 인생과 함께 가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사람의 감정은 묘합니다. 굶어 죽을 일도 지옥 가게 할 일도 아닌 바에야 뭐 그리 대단하다고…. 쓸데없는 시간 낭비로 에너지소모를 시키는 잡념은 하나님 일이 아닙니다.

늘 겁이 많아 부딪히거나 따질 일을 피하는 내 성격도 있지만, 언제나 아이들 감정과 공감대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책임의식에서 고운 것과 부드러운 느낌에 민감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진리 자체의 진실성으로 고운 가루 같지만,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뭔가 속아있었다는 감이 옵니다. 날카롭고 예리한 말씀의 검만이 최고 순수한 생명력이라고 정리돼 하나님의 메시지를 찾아냅니다. 서서히 새들에게 꿀을 줄 수 있는 플랙스가 부럽다고 느껴집니다.

이사 오기 전, 집을 보러 왔다가 멀리 하얀 눈이 덮인 겨울 산을 바라보며 자목련 백목련이 심어진 정원을 그려놓았던 내 상상을 지워냅니다. 외모를 취함이 죄라고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내 생명의 운동은 범사에 감사를 찾는 일이어야 합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하와의 범죄는 보는 것과 듣는 것에서 왔다는 말씀이 끄덕여집니다.

언제나 제멋대로 달리는 감정은 고집을 피웁니다. 아이들한테 고집 피우지 말라는 언성을 높이다 ‘고집’이라는 단어가 내게 되돌아와 지릅니다. 죽지도 살지도 않은 것 같은 어정쩡한 감정을 산뜻하게 잘라내고 싶다고 내 심장에서 소리를 칩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쁨을 채워주시는 성령께 조용히 내 마음을 속삭여드리며 노래를 드리고 싶어졌습니다.

고집은 몰래 들어온 욕심을 버리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정을 좇으면 보는 것과 들리는 것을 이길 겁니다. 언제나 듣고 보는 육신이 허물어지지 않아 마귀의 농간에 놀아납니다. 자질구레한 것들로 사망의 독이 온몸에 퍼지면 근심을 만들어냅니다.

돈보다 귀한 시간에 감정의 실오라기라도 예수님의 피와 잘 연결돼 있어야 예수님이 실감나게 믿어지는 것 같습니다. 플랙스 위에 새들처럼 꿀단지를 놓고 둘러앉아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정한 이야기 하며 기뻐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