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동산의 정신적 지도자입니까?"

"앞에 나서서 말을 많이 하긴 했지만 지도자로 생각하고 행동한 적은 없습니다."

"피고인 일기장에 김기순 씨를 신처럼 떠받들어 쓴 글은 김기순 씨가 교주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 아닙니까?"

"그냥 마음에 아가야에 대한 개인의 생각을 표현한 것일 뿐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1월 27일 오후 아가동산 사건 1심 첫 공판이 열린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 2호 법정. 검사의 신문에 김기순 씨는 자신이 아가동산의 지도자가 아니라고 말했다. 아가동산 핵심간부 정재각 씨를 비롯해서 피고인들은 한결같이 김기순 씨가 교주라는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아가동산은 종교집단이 아니라 협업농장이라는 것이다. 몇몇 교계 신문에서도 아가동산을 사이비종교집단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못마땅해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의 주장대로 아가동산은 정말 종교집단, 나아가 사이비종교집단이 아닌가. 아가동산측이 협업농장일 뿐 종교집단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는 속사정은 무엇인가.

아가동산 이탈자들은 검찰의 수사가 착수되기 전까지는 아가동산에서 주일 저녁마다 종교적 집회가 열렸다고 주장한다. 집회는 일요일 저녁 9시 무렵부터 11시 정도까지 2시간 가량 진행됐었다는 것이다. 예배는 특별한 형식이 없이 김기순 씨가 등단한 가운데 찬송가나 가요를 부르고, 나름대로 김씨가 설교도 하는 등의 내용이었다는 주장이다.

아가동산 피해자대책위원회의 부위원장인 명해순 씨는 아가동산에서 종교행위가 있었다는 근거로 당시 자신이 사용했다는 찬송가책을 제시하고 있다. 명해순 씨의 주장을 들어 보자.
"김기순 씨는 말씀의 시대는 끝이 났고, 자신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성경은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김기순 씨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성경이 따로 필요 없었던 것입니다. 당시 찬송가책이 없는 사람도 있었지만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집회때 그것을 들고 참석했습니다."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착수된 직후인 96년 12월 18일 아가동산을 이탈한 정순옥 씨도 "이번 사건이 터지자 아가동산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성경과 찬송가 따위의 종교관련 서적들을 불살랐다"고 주장하면서 분명히 아가동산에서 신앙활동이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반면 아가동산측은 주일 저녁모임은 종교집회가 아니라 일반적인 회의였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교리도 없고 포교활동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종교집단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 피고인 중 한 명인 정재각 씨가 쓴 일기에도 분명 아가동산이 종교적 색체를 띠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씨가 쓴 일기의 몇 구절을 살펴보자.

"아가야시여, 당신은 밝고 밝은 그 아름다운 세계의 본체이신 아가여. 날마다 날마다 경이로움이 내속에 역사하나이다. 내 아가야의 감사와 그 사랑을 안다면 어느 한 시간도 놓칠 세 없이 나를 단장하여 아름다운 아가야로 바꾸는 일이겠지요."

"수천 개의 눈동자가 지켜본다. 많은 신(아가들) … 삼차전쟁 이것이 전쟁이다. 치열한 나와의 싸움."

"아가야는 나의 사랑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로 하여금 푸른초장에 눕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인도하시는도다 진실로 선함과 사랑하심이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아가야 전에 영원토록 거하리로다."

"영광의 왕 사랑의 아가야 온 누리의 화평과 사랑의 왕이시로다."

"평화의 왕 주재시요 사랑의 주재이신 아가야 만왕의 아가야께 부복하나이다. 산이 바다에 연결되어 다시 산으로 이어지듯 아가야를 옹위한 우리 사랑의 기업은 영원 무궁하리로소이다."

정재각 씨의 일기에는 이밖에도 '아마겟돈 전쟁', '성도' 따위의 무수한 종교용어가 등장하고 있다.

이렇듯 정씨의 일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김기순 씨는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 모두가 신이 될 수 있다고 미혹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탈자들도 모두 초창기 자신들이 신이 되어 이 땅을 다스릴 것으로 믿고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한 마디로 종교집단 생활이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89년도 김기순 씨의 생일 잔치를 담은 비디오테잎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김기순 씨의 생일축하 행사는 아가동산측이 주장하는 연극 이상의 초호화 종교쇼였다.

비디오의 내용을 보면, 김기순 씨가 화려한 꽃으로 치장한 배를 타고 등장하고 있다. 아가동산 사람들이 그를 향하여 손을 흔들어 환영하고 있는 장면도 나온다.  심지어 단상에서 일부 사람들이 십자가를 메고 행진하는 장면에는 "그 때 그 무리들이 예수님 못박았네. 녹쓴 세 개의 그 못으로…"라는 복음송 배경음악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행사 중간쯤에는 김기순 씨가 마이크를 붙잡고 "우리들은 신들의 축제에 모인 신들입니다"라는 말도 하고 있다.

김씨의 말 그대로 이 행사는 종교일색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아가동산측의 주장대로 단순히 김기순 씨의 생일날에 가졌던 연극이라면 비디오 내용에 '십자가'나 '신'이라는 말이 등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김기순 씨의 사진에 '왕 중 왕'이라는 글자가 김씨 옷의 가슴부위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점도 김씨를 신으로 한 종교집단이었음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아가동산 피해자들은 말한다.

아가동산이 종교집단이라는 피해자들의 일관된 주장의 타당성 여부를 좀더 확인해 보기 위해 이들의 주장을 더 들어볼 필요가 있다.

아가동산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앙적 원조격인 이교부 씨(현 주현교부 교주)의 품을 떠나 김기순 씨를 따라 나설 당시 김씨는 "이교부는 세례 요한으로 나를 예비한 자이고 나는 예수"라고 현혹했다고 이탈자들은 말한다. 김씨의 추종자들은 이 말을 믿고 결국 그를 따라 나섰다고 한다. 애초부터 종교적인 이유과 색체를 띠고 아가동산이 출범했다는 주장이다.

이탈자 강소재 씨는 충남 예산에서 과수원을 하고 있다가 전재산을 팔아 김기순 씨에게 바치고 그의 인도하에 살았다는 사람이다. 81년 남편 윤용웅 씨(아가동산에서 의문의 사망)와 함께 김기순 씨 밑으로 간 것은 협업농장이라는 말 때문이 아니라 '우리는 1차 부활에 참여한 자라', '지상낙원을 이룰 수 있다'는 등의 종교적인 이유가 동기부여를 했다고 한다.

심지어 강소재 씨는 아가야 김기순 씨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의 말만 따르면 죄를 지어도 죄가 되지 않는 것으로 믿었다고 말할 정도로 김기순 씨에 대한 종교적 믿음이 대단했던 사람이다. 아가동산이 협업농장이라면서 무공해 농산물을 생산해 판매한다고 경기도 이천에 야채가게를 운영할 당시 그 곳에서 가게 일을 보았다는 강씨의 증언이다.

"당시 화물차를 이용해 가락동에서 물건을 사와 아가동산에서 나온 무공해 농산물이라고 속여 팔았습니다. 하나님이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김기순 씨가 '멸망할 자들에게 속여 팔아도 괜찮다'는 말을 해왔기 때문에 그것이 죄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탈자들의 증언대로라면 김기순 씨는 아가동산을 종교적 카리스마로 지배해 왔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함에도 아가동산측은 이번 재판과정에서도 나타났듯이 자신들의 종교적 색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무슨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일까.

이번 사건을 맡고 있는 검찰측은 이렇게 판단하고 있다. 강민구 검사의 말이다.
"김기순 씨의 주장대로라면 재판의 결과는 신나라 레코드의 세금포탈과 임금착취에만 적용된다. 하지만 이탈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재판결과는 종교사기와 살인교사가 추가되게 된다. 김기순 씨가 종교집단임을 극구 부인하는 이유는 바로 종교사기와 살인교사죄를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들이 맹신하고 있는 신적인 존재가 어떤 명령을 한다면 이에 불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배경하에 결국 살인 지시도 가능했을 것이고, 이는 살인교사죄가 성립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아가동산은 종교집단이 아니라고 그렇게도 부인하는 것이라고 검찰은 보고 있다.

역으로, 아가동산측의 주장대로 단순히 협업농장이라면 그 동안 소득분배가 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어떠한 재산분배도 없었을 뿐 아니라 그 동안 임금 한 푼도 지불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극단적이고도 종교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고는 이해될 수 없는 대목이다.

부실한 교리나 미숙한 예배활동 등을 이유로 아가동산은 종교집단이 아니라거나 심지어 사이비종교집단도 아니라고 하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무지한 판단이라는 지적이다. 신론, 구원론 등의 교리체계가 사회적 통념의 범위안에서 분명하고, 체계적인 예배활동이 있었다면 '정상적인' 종교집단일 것인데, 이 모두가 인정될 만한 수준이 아니면서도 나름대로 종교적인 색체를 유지해온 것이기 때문에 소위 '사이비' 종교집단이라는 것이다.

아가동산 이탈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하나님을 잘 믿어 보려고 한 것이 결국 이 꼴이 되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탈자들 모두가 아가동산에 합류하기 전부터 하나님을 믿던 기성 종교인이었다. 아직 아가동산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기독교인이었으며, 이 중에 두 명은 전직 목회자이고 다섯 명은 전도사였다고 하는 사실은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아가동산 사태와 관련하여 한국교회는 강건너 불구경하듯 방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마치 아가동산이 기독교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듯한 자세이다.

이단 사이비 문제가 사건화 돼 사회적 문제가 될 때마다 '적극 대처'를 외치지 않은 기관이나 지도자들은 없을 정도이면서도 정작 구체적인 실행에 있어서는 팔짱만 끼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고작 한기총 사이비이단대책위원회에서 아가동산 피해자들을 위해 연락 사무실 하나를 내주었을 뿐이다.

"현재 아가동산 사람들 중 50%는 이교부 씨를 심정적으로 그리워하고 있고, 나머지 50% 중 2/3는 이렇다 할 방안이 없어 남아 있는 것이다"고 하는 아가동산 피해자대책위원회측의 분석은 지금 한국교회가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월간<교회와신앙> 1997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