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디르사선교회 대표 김희종 선교사의 글로, 세 아이를 뉴질랜드에 두고 한국에 오가며 어린이 선교(4세~7세)를 하는 가운데 뉴질랜드에서 한국 어머니들께 쓴 편지이다. / 편집자 주 ]

김희종 선교사 / 디르사어린이선교회 대표

▲ 김희종 선교사

아직 이곳은 내 세 아이 외에는 한국 아이들은 전혀 없습니다. 동양인으로는 일본, 홍콩, 태국에서 온 몇 명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 묻고 싶은 것들, 고맙고 미안한 마음조차 시원히 말을 할 수 없는 답답함을 묻으며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삶이 안쓰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파란 눈의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친절, 푸른 초장의 양 떼와 소 떼, 가끔 사슴들이 노니는 정경은 코발트색 하늘과 어우러져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이국땅에 드리워진 새로운 이야기들은 낯선 생활이 그런대로 익숙해갑니다.

어쨌든 유학생을 통해 학교시설을 보수하고 늘리는 재미가 붙은 이곳 학교는 이런 유학생의 마음을 가라앉히려 주변 여행을 보내주거나 다양한 문화체험을 해줍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 셋은 외국에서 온 학생이긴 하지만, 학비를 내지 않는 이민자 학생이라 외국 유학생에게 마음껏 베풀어주는 친절을 평등하게 받지 못하는 외국사람 자국민 학생이 됩니다.

▲ ⓒ디르사선교회

엄마한테 말해봤자 소용이 없다 싶은가 시무룩한 아이들 표정에 나까지 시무룩해집니다. 자상한 돌봄을 받고 가족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우리 세 아이가 받는 대접은 당연합니다만, 세 아이만 덩그러니 있는 우리 집 형편은 내 마음을 저리게 합니다.

개도 혼자 두지 않고 차에 싣고 다니는 이곳 사람들입니다. 14세 미만 아이를 혼자 집에 두고 외출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어 우리 세 아이 이야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학교 선생님에게 사정을 이야기할 수도 없습니다. 어쨌든 돈 주는 아이들만 눈에 보이나 싶어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올라 뉴질랜드가 싫어지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따라 이곳에 왔으니 무조건 이 상황은 좋은 일일 겁니다.

18세, 그것도 12월생 여자아이에게 동생 둘을 맡긴 나 자신이 미쳤다 싶기도 합니다. 어쨌든 한국에서 엄마한테 배운 대로 아침에 모여 기도하고 저녁에 성경 읽고 기도하기, 일주일에 한 번씩 토요일 오후면 성경 구절을 아래 위층 전화기를 들고 외워대는 일이 세 아이를 지켜주는 유일한 방패고 힘입니다. 셋 중 한 녀석이 성경을 보고 읽는 듯하면 서로 눈감고 외우라고 난리를 칩니다.

암송한 성경 구절을 떡으로 삼고 살도록 하나님 묶어 놓았나 봅니다. 어차피 모든 일은 십자가에서 담당하실 거니까 염려 말라고 하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아이 떼놓고 이국만리 떠나온 엄마 마음이 어떤지 너희가 겪어 보았느냐고 속으로 삿대질하고 싶습니다. 어쨌든 장대에 달린 놋뱀인 내 주제를 알고 있는 난 할 말은 없습니다.

내 자식 안쓰럽다고 찌뿌둥한 가슴이 꽉 차 좀처럼 풀어지지 않을 땐 억지로라도 예수님 생각을 해봅니다. 온몸 찢기며 날 찾아오신 손님을 우울하고 찌그러진 방 안에 모셔놓고 말도 안 되는 일 아니냐고 내게 말해줍니다.

유학생을 환대하는 학교에 화를 내는 한심스러운 내 모습에 스스로 엎드려 보지만, 역시 분이 안 풀려 기도도 잘 안 됩니다. 주님 손에 모든 기쁨이 있다는 걸 모르는 일 아니나, 가슴이 힘들고 아파지니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런 못난 나 때문에 예수님은 오신 거라고 애써 마음을 가라앉힌 날이면 그래도 신나는 일을 하나님 만들어 주십니다.

점심시간에 막내가 용감하게 노랑머리 아이들 잔뜩 모아놓고 작곡한 피아노곡을 쳐대 인기 짱이었다고 착한 누나들이 어깨가 으쓱해져 신통한 소식을 전합니다. 이 소리에 내 마음은 “예수님은 나의 짱!”이라는 소리가 밖으로 튀어나오려 합니다. 간사스럽게도 내 마음은 시골학교치곤 꽤 괜찮은 학교 같다고 은근히 생각이 바뀝니다.

그 위에 더 신나는 소식은 어떤 엄마가 이렇게 청음 좋은 아이로 교육했느냐 말했다니 날 우쭐거리게 합니다. 난 사실 클래식 음악을 들어야 귀가 좋아진다고 무식한 말로 우겼습니다. 그러나 막내는 몰래 자기 방에서 록과 재즈를 들었다고 누나들이 일렀었습니다. 난 무식한 엄마인 건 사실입니다. 청음을 키운 분은 당연히 예수님 선생님입니다.

아, 인간은 간사합니다. 세 아이의 진짜 주인은 오직 주님, 예수님이심을 날마다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