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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수 목사 설교 ] 주일, 어떻게 지킬 것인가?
2016년 11월 23일 (수) 12:08:15 박봉수 목사 pspark@sdja.or.kr

박봉수 목사 / 상도중앙교회 담임

본문 / 출애굽기 20장 8-11절           [ 동영상으로 보기 ]

   
▲ 박봉수 목사

교인들 가운데 안식일 문제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한 주일의 마지막 날 토요일인 안식일을 지키라고 했는데, 왜 기독교는 한 주일의 첫 날 일요일인 주일을 지키는 것일까 의문을 품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 주일을 지키는가?

우리 기독교는 왜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일을 지키게 된 것일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님 때문입니다. 특히 예수님의 부활이 주일을 지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 다음날에 부활하셨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날을 ‘주의 날’이라고 선포하고, 이 날을 거룩하게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성령이 강림하신 날 역시 안식일 다음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강림하여 교회가 시작된 날 역시 주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일에 모여 예배하고 성찬을 거행했습니다.

초기에 기독교인들이 주로 유대인들이었을 때 저들은 안식일도 지키고 주일도 또 지켰습니다. 안식일은 유대인으로서 율법을 지킨다는 차원에서 지켰고, 주일은 기독교인으로서 예배를 드리며 지켰습니다. 그러다 이방인 기독교인들이 생겨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이방인 기독교인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일만 지키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독교가 유대교와 분리되었고, 점차 기독교회는 주일만 지키는 방향으로 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선 성경에서 그 실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행 20:7입니다.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고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 새...” 드로아의 성도들이 주일에 모여 성찬을 나누고 말씀을 들으며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 드로아는 이방지역이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교회는 주일만을 지켜왔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기독교 역사적 문서에서도 그 실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2세기 초에 기록된 기독교 예배와 교육과 목회의 지침서인 ‘디다케’(Didache)를 보면 당시 교회는 매 주일마다 모여 함께 예배드리며 성찬예식을 거행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초대교회 때부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주님의 날이라고 선포하고 이 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켜왔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도 이 주일에 강림하셔서 이것을 더욱 확증해 주셨습니다. 이런 초대교회 때부터 주일을 지켜온 기독교는 2000년 동안 변함없이 주일을 거룩한 날로 구별하여 지켜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기독교는 안식일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 십계명에 분명하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하셨는데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역시 예수님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여러 차례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과 안식일 문제 때문에 논쟁을 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교 지도자들이 결정적으로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했던 빌미 역시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마 12:8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신 분이시라는 말씀이고, 안식일을 지키도록 명하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유대교가 안식일을 잘못 지켜오고 있는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분이라는 말씀이기도 한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오신 후에 구약의 제사는 다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우선 제사 장소가 바뀌었습니다. 예수님 이전에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요 4:21에서 예수님께서 장소를 뛰어넘는 변화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이 말씀 그대로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드리지 않았습니다. 곳곳에 세워진 새로운 예배 처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다음으로 제사 방법이 바뀌었습니다. 예수님 이전에는 성전에서 제물을 제단에 태워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레위기에 그 자세한 제사 방법이 소개된 대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이후 제사 방법이 달라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온전한 제물이 되셔서 단번에 이 제사를 완성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이런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게 된 것입니다.

마찬 가지로 날도 바뀌었습니다. 예수님 이전에는 율법에 제시된 대로 안식일에 제사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이후에는 주의 날에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이전과 이후 제사는 예배로 바뀌었습니다. 그 장소, 그 방법, 그리고 그 날까지 다 바뀐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 성경의 명령을 폐기한 것은 아닙니다. 구약 성경의 명령은 예수님 오실 때까지 지킬 명령이기에 그 명령들은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명령들은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잘 지켜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신 후에는 이 명령들이 변화되었습니다. 제사가 예배로 바뀌면서 과거 보다 더 깊은 제사를 드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과거 구약의 명령들이 형식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이제 그 안의 의미를 온전하게 실현할 수 있는 자리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안식일은 폐기되고 주일이 새로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안식일이 주일로 대치된 것 역시 아닙니다. 안식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 명령에 담아 두신 그 의미와 본질이 더욱 충실하게 지켜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일입니다.


어떻게 주일을 지켜야하는가?

이렇게 주일이 안식일의 완성이라면 주일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그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첫째,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8절에 “안식일을 기억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안식일을 기억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여기서 “기억하라”는 말씀은 히브리어 동사 “자코르”(zqr)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 자코르라는 동사는 문법적으로 일종의 강조적 명령입니다. 그리고 그 뜻은 “착오와 예외 없이 지키라”는 명령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안식일을 착오와 예외 없이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이 명을 받들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천 년 동안 이 안식일을 생명처럼 귀하게 여기며 지켜왔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이 기억하라는 말씀을 그대로 주일을 지키는데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주일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주일성수와 기도의 대통령 아이젠하워>라는 책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1959년 9월 27일 주일, 구소련의 흐루시초프 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흐루시초프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교회에 가자고 권했다. 흐루시초프가 거절하자 아이젠하워는 1시간30분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선 예배에 참석한 뒤 회담장으로 갔다. 당시 초강대국 소련의 총리를 예배 때문에 기다리게 한다는 것은 외교적 상식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젠하워는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직무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과 쌍벽을 이루고 있는 소련의 총리가 미국을 방문해서 정상회담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주일이 되자 아이젠하워는 잠시 양해를 구하고 예배를 드리러 다녀온 것이다. 바로 이것이 주일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주일을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 섰던 아이젠하워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셨습니다. 독일이 세계대전을 일으켰지만 그가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서 연합군이 승리하게 됐고, 이 때로 부터 미국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이젠하워를 높이 세워주셨던 것입니다.

오늘과 같이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주일을 착오와 예외 없이 지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한 집사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해외 출장을 가게 됐는데 부득이 하게 주일을 끼고 가게 됐다는 것입니다. 숙소 근처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는데 숙소 근처에 교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 일정도 아침 일찍부터 시작이 될 것 같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것입니다.

우선 그런 상황인데도 주일 지키는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것은 귀한 일이라고 칭찬을 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일찍 일어나서 혼자서라도 숙소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주일에 그런 출장을 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일을 기억하십시오. 주일을 착오와 예외 없이 지키십시오. 만일 부득이 한 일로 주일에 정한 시간에 교회에 나올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면 우선 새벽이나 저녁이라도 다녀가십시오. 아예 주일에 교회에 올 상황이 아니라면 근처 교회를 찾으십시오. 그것도 어려우면 혼자서라도 시간을 내서 예배를 드리십시오. 그리고 주일을 잘 지킬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를 드리십시오.

둘째, 거룩하게 지켜야 하겠습니다.

본문 8절을 보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할 뿐 아니라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당연히 안식일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주일 역시 거룩하게 지켜야 하겠습니다.

‘거룩’이라는 말은 본래적인 뜻이 ‘구별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이 날을 다른 날과 다르게 구별해서 지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하여 시내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곳에서 저들을 애굽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새롭게 빚으시는 여러 가지 작업을 하셨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성막을 짓게 하는 것입니다. 저들에게 구별된 거룩한 장소를 마련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들에게 이 구별된 거룩한 곳에 나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또 하나 안식일을 지키게 하신 것입니다. 저들에게 구별된 거룩한 시간을 마련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들에게 이 구별된 거룩한 시간에 하나님 앞으로 나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거룩한 날 거룩한 곳에 나와 하나님과 만나는 거룩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거룩의 체험을 통해서 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일은 단지 기억하는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착오와 예외 없이 지키는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이 날 주님을 만나는 거룩의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 거룩이 우리가 누구인지 새롭게 깨닫게 해 줍니다. 그 거룩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닫게 해 줍니다. 그 거룩이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갈 새 힘을 줍니다.

사 1:12을 보면 우리가 깊이 새겨보아야 할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성전은 찾지만 정작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음을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바로 내 마당만 밟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일을 지킨다고 교회에 나오지만 이와 같은 교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성소로 들어와야 하는데 마당만 밟다가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의 전에는 왔는데 정작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 4:16에서 인간을 겉사람과 속사람으로 구분한 바가 있습니다. 겉사람이란 사람들의 겉모습으로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부분이고, 속사람이란 사람들의 속모습으로 하나님의 눈에나 보이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주일을 지킨다고 교회에 왔는데 겉사람만 주일을 지키지 속사람은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주일을 지키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 주일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주일을 지킬 때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거룩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이신 하나님과 영적인 만남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감격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복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하고 타락한 인생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습니다. 저들이 세상으로 쫓겨난 뒤 노동을 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노동을 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루만 이 일로부터 해방되게 하신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안식’이라는 복을 주신 것입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이 안식이란 에덴동산의 삶의 회복을 뜻합니다.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관계 안에서의 쉼을 말합니다. 세상에서 삶의 무거운 짐으로부터 벗어나 쉼을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 염려와 근심,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좌절과 절망으로부터 벗어나 참된 평안을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마 11:28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께서 주 앞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참된 쉼을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 쉼은 겉사람의 쉼에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의 속사람도 쉼을 얻게 됩니다. 마음의 평안을 누립니다. 영혼의 회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르바 던이 쓴 <안식>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 한 무리의 마차들이 중부 세인트루이스를 떠나 서부 오리건으로 향했습니다. 모두가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주일이면 이동을 멈추고 예배를 드리며 쉬었습니다. 그런데 겨울이 다가오고 있어서 일부 사람들이 폭설이 내리기 전에 도착하기가 어렵겠다고 하여 주일에도 행군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그래서 한 무리는 주일에도 강행군을 하고 다른 한 무리는 주일에는 예배를 드리며 쉬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주일에 쉬었던 무리가 훨씬 일찍 도착했습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쉼이 주는 복 때문입니다. 주일을 지켰던 사람들은 주일에 쉬면서 몸과 마음이 재충전되었습니다. 몸도 쉼을 통해 활력을 얻었고, 그 심령이 평안을 누리며 새 힘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일은 복된 날입니다. 주님 품안에서 참된 쉼을 누리는 날입니다. 우리의 겉사람과 속사람이 재충전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주일은 우리에게 의무가 아니라 특권입니다. 어쩔 수 없이 지켜야 하는 날이 아니라 지키며 복을 누리는 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일을 기억하십시오. 거룩하게 지키십시오. 그리고 주일에 주시는 복을 누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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