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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분석④ ] 이종윤 목사(서울교회 원로)의 표절을 밝힌다
보이스와 이종윤의 로마서 2, 3권의 목차 비교 대조
2016년 07월 12일 (화) 18:01:36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최삼경 목사 / <교회와신앙> 상임이사

서론: 이종윤 목사님께서도 보이스 목사가 쓴 원저서의 대지를 사용(표절)했음을 인정했다.

아직 이종윤 목사님은 자신의 표절 문제에 대하여 공적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단지 소위 ‘대리 옹호자’의 반론만 나왔는데, 필자는 대리 옹호자와 논쟁할 마음이 지금은 없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이 문제는 어차피 이종윤 목사님의 문제요, 그 진실도 이 목사님께서 가장 잘 알 것이기에 이종윤 목사님의 입으로 직접 변명 내지 회개를 해야 할 것이고, 할 것으로 믿고 기다린다.

둘째, 옹호자는 자신의 말에 대한 책임을 지지 못하고 지지 않는다. 옹호자의 글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이종윤 목사님의 의중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도 옹호자의 말로 이종윤 목사님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 후에 불리하면 그 책임을 옹호자에게 넘길 가능성이 없지 않다.

셋째, 핵심은 ‘표절을 했느냐 안 했느냐’ ‘표절의 정도가 어느 정도냐’ 그리고 ‘그 표절에 대한 도의적, 신앙적 책임은 어디까지냐’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표절을 하나씩 밝혀가는 것이 더 필요하고 더 중요하다고 본다.

넷째, 옹호자의 주장을 보면 모순투성이다. 이 말과 저 말이 맞지 않는다. 옹호에만 급급한 나머지 말을 만들어 변호를 하다 보니 생긴 결과다. 진실 자체를 말하고 사과할 것을 사과하고 회개할 것을 회개하면 되는데 그렇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서 그 때마다 논리를 개발하여 변호하다 보니 생긴 필연적 결과이다.

예를 두 가지만 들어보자. 첫째는 보이스 목사의 에베소서 6장의 첫 설교 경험과, 이종윤 목사님의 동일한(?) 경험에 대한 변호이다. 이 부분의 진실도 이종윤 목사가 말해야 한다. 천만분의 일 아니 억만 분의 일로 보이스 목사와 이종윤 목사가 같은 본문의 첫 설교 경험을 에베소서 6장에서 했다고 하자.

그러나 네 가지 점에서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첫째, 도입 멘트까지도 같다는 점이다. ‘남자는 첫 번째 여자 친구를 잊지 못한다’는 말도 같았는데 이 말에 대한 조크 형태의 해석도 같았다. 단지 다른 것은 보이스 목사는 14살 때의 한 경험이고, 이종윤 목사님은 19세 때에 경험했다는 것만이 다르다. 그런데도 동일한 경험으로 믿어달라는 그 순진한 요구를 믿을 정도로 필자는 순진하지 못한 것 같다. 둘째, 이종윤 목사님은 40여 년 동안 보이스 목사의 책을 표절하여 설교하시고 또 책을 출판하신 일종의 ‘표절 전과자’라고 할 수 있다. 평소에 이 목사님께서 한 분 보이스 목사의 설교만을 중심으로 표절 설교를 하지 않았다면 우연의 일치로 볼 수도 있었을 것이고, 아니 그보다는 그런 일 자체가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른 곳에서 자신의 첫 번째 설교 경험을 말했다면 그냥 ‘이종윤 목사님께서 19세(대학 2학년 때)에 이 본문으로 첫 번째 설교를 했구나. 될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구나’ 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목사님께서 보이스 목사의 에베소서를 표절하면서 말한 경험이기에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 그런데 이 사실을 설교할 때는 말로는 하고, 책에서는 그 내용을 뺐다는 점이다. 보이스 목사의 책에서 보고 설교하고, 책에는 그것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종윤 목사님의 경험은 보이스 목사의 경험을 각색한 것으로 보여 지는 것이다. 넷째, 이 목사님께서 이렇게 하셨다면 표절 시비는커녕 존경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내가 보이스 목사의 에베소서 책을 읽다가, 놀라운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보이스 목사는 14살 때 에베소서 6장에서 첫 설교를 했다고 하였는데, 나는 같은 본문에서 첫 설교를 19살 때 했습니다.”라고 했다면 표절 시비도 없었을 것이다. 보이스 목사의 책을 표절하여 한 수도 없는 설교들과, 20 여권이 넘는 것으로 보이는 방대한 표절 서적 어디에도 보이스 목사의 이름을 언급한 곳이 없었다. 이 목사님은 보이스 목사의 사상과 경험과 학문은 자기 것으로 사용하는 용기는 있었지만 그 분의 이름을 밝힐 용기와 진실은 없었다는 말이다.

하나 더 변증해 보자. 이종윤 목사님은 자신의 저서처럼 된 표절 서적에 붙여진 주들은 보이스 목사의 책에 붙은 주를 그대로 사용하였다고 했다. 로마서에서만 300개 가량의 주가 붙어 있는데 다 보이스 목사의 주를 그대로 붙였다는 것이다. 이는 보이스 목사의 내용을 그대로 소개하려는 이종윤 목사님의 의도였고 그래서 악이 아니고 선이라고 하는 말 같다. 필자는 말이란 이렇게 악도 선으로 쉽게 바꿀 수 있는 편리한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첫째, 위의 논리로 하면 이종윤 목사님의 표절 서적들은 필요에 의하여 설교집도 되었다가 학문 서적도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어느 때는 이종윤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며 주석서인 보이스 목사의 책을 인용했으니 표절시비 대상이 아니라고 하였다. 어느 때는 설교집에는 주를 붙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강해서인 보이스 목사의 책을 밝히지 않아도 아무 죄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는 이종윤 목사의 책에는 주가 붙어 있으니 그것도 강해서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상한 논리가 어디에 있을지 모르겠다. 책으로 볼 때는 강해서가 되고, 강단에서 입으로 설교할 때는 설교가 되고, 거기에도 주를 붙여서 출판을 하면 다시 강해서가 된다는 말은 손오공의 여의봉처럼 편리한 것이 되고 만다. 그러면 ‘강해 설교는 강해인가 설교인가’ 모르겠다. 그 때는 강해라고 하면 문제에 걸리면 설교라고 할 것이고, 설교라고 할 때 문제가 되면 강해라고 할 것이다.

둘째, 반대로 생각해 보자, 만일 이종윤 목사님이 보이스 목사가 붙인 주 외에 자신의 연구에 의한 다른 주를 더 붙였다면 뭐라고 할 것인가? 그것은 이 목사님이 보이스 목사의 책을 표절만 하지 않고 자신의 연구를 첨가한 증거로 활용할 것이 분명하다. 이종윤 목사님은 주를 붙여도 문제가 없고, 안 붙여도 문제가 없게 된다. 그것도 원저자의 주를 자신의 연구처럼 하든지 안 하든지 그 분의 선에는 아무 지장이 없게 된다. 그분의 하신 행위는 이래도 선이고 저래도 선이란 말인가?

아니다. 원저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주를 그대로 붙였다면 저자의 학문적 연구를 훔친 것이고, 붙이지 않고 사용했다고 해도 정직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며, 자신의 연구를 주로 넣었다고 해도 도적질은 똑 같은 도적질이다. 아무리 깨끗한 물이라도 더러운 물을 조금 부었다고 해도 더러운 물이 되는데, 하물며 더러운 물에 깨끗한 물을 조금 부었다고 해서 깨끗한 물이 된다는 말인가?

이래도 저래도 표절은 죄다. 보이스 목사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설교한 것 자체가 죄요, 더더욱 책까지 출판한 것은 더 큰 죄다. 표절이란 큰 거짓 속에 나타난 진실은 진실이 아니다. 그것은 간신배 나라의 충신은 충신이 아닌 것과 같다. 보이스 목사가 붙인 주까지 그대로 붙여서 책을 출판한 것은 정직한 행위가 아니라, 보이스 목사의 학문적 노력까지 이 목사님께서 훔친 죄라고 보아야 맞다.

필자는 대리 옹호자의 엉터리 변호를 보면서 고마운 점이 한 가지가 있다. 이종윤 목사님이 보이스 목사의 책의 대지를 그대로 사용하여 설교하고 책을 출판하였다는 점 하나는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옹호자를 통하여 상당한 진실들이 밝혀졌다. 보이스 목사의 주를 그대로 붙였다는 진실, 대지를 그대로 사용했다는 진실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진실에 대하여 놀랄 것은 없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필자가 바로 앞의 글에서(세 번째) 로마서 1권의 목차를 비교하여 그 표절성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아무도 이 목사님이 보이스 목사의 대지를 그대로 이용(표절)했다는 것을 시인하거나 인정한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것을 시인한 것은 필자의 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드러낸 진실(?)이라고 보여 진다. 그러나 위의 말은 ‘대지는 표절을 하였으나 내용은 아니다’고 말하기 위하여 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만일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사람이라면, 스스로 인정한 대지를 사용(표절)한 그 점에 대하여 사과하고 또 회개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지를 표절한 것도 표절이며 또 대지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종윤 목사님은 보이스 목사의 책의 대지만 표절한 것이 아니라 엄청난 양의 핵심 사상을 표절했다. 옹호자는 ‘보이스 목사 책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창의적인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이 이종윤 목사님께서 보이스의 책을 표절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결코 아니다.

필자는 이제부터 20여권 이상의 책에서, 비록 어떤 것은 표절이 심하고 어떤 것은 표절을 덜 하였지만, 분명한 것은 다 표절 서적이란 점이요 대부분 보이스 목사의 사상을 도용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비교 분석하여 밝혀 갈 것이다. 그 때는 또 무슨 새로운 논리를 개발하여 옹호할 것인지 기대감을 가지고 말이다.

필자는 현재 출타하여 자료들을 섬세하게 살펴볼 수 없어서 우선 본 4번째 글에서도 2권의 로마서의 목차 비교를 하려고 한다. 그것은 아직도 독자 중에, ‘과연 이종윤 목사님께서 그렇게 표절을 하였을까’라고 의심하는 자가 있고, 더욱이 옹호자의 글을 접한 사람들은 더욱 혼돈스러워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냥 목차만 보아도 이 목사님이 어떻게 표절을 했는지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본론: 로마서 2, 3권 목차를 통하여 이종윤 목사님의 표절을 밝힌다.

필자는 옹호자의 엉터리 옹호를 보면 분석하고 비판하고 싶은 욕망을 억제할 길이 없다. 그 점은 다음이나 다른 분에게 미루고, 아직도 이종윤 목사님의 표절의 심각성을 모르는 독자들을 위하여 로마서 2권 3권의 목차 비교를 하여 그 표절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게 하기 원한다.

그것은 로마서 자체가 가지고 있는 중요성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이종윤 목사님께서 무려 4년 반에 걸쳐 한 설교가 로마서이며, 또 그 후 은퇴 직전에도 또 다시 로마서 강해를 했다는 점에서 이종윤 목사님의 표절의 진실을 밝히는데도 로마서 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성경을 연구할 때 대지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성경 본문이 주는 주제는 어느 정도 정해졌다는 점에서 유사한 대지가 쉽게 나올 수 있지만 또 어떻게 대지 이름을 붙이는가에 의하여 그 내용이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지부터가 중요하다. 왜 이종윤 목사님은 보이스 목사의 대지를 그대로 사용(표절)했는가 하는 점이다.

저자의 보는 견해와 각도와 연구 방향이 대지에서부터 나타난다. 만일 이종윤 목사님께서 로마서를 목차만 표절을 하고 내용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만일 이종윤 목사님께서 독자적이고 독창적인 연구를 했다면 그 대지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표절을 하지 않고 쓰여진 책이라면 저자의 연구와 영성에 의하여 대지도 달라져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보이스의 책과 이종윤 목사님의 대지만 보아도 번역상의 차이만이 아니라, 표절을 숨기려고 의도적으로 바꾸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목차 비교를 해 보자, 필자는 바로 앞 글(세 번째)에서 사용했던 방법을 그대로 사용하겠다. 앞에 보이스 목사가 쓴 책의 목차를 밝히고 콜론(:)을 찍고 동일한 또는 유사한 제목으로 쓴 이종윤 목사님이 자신의 이름으로 낸 로마서의 목차와 비교하겠다.

(1) 로마서 제2권(로마서 5장-8장)의 목차 비교를 통하여 이종윤 목사님의 표절을 밝힌다.

제6부 :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함

60.하나님과 더불어 화평함(로마서 5:1)

61.은혜 가운데 섬(로마서 5:1-2) : 제1강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5:1-2)

62.영광의 소망(로마서 5:1-2)

63.인간의 고난에 담긴 하나님의 목적(로마서 5:3-5) : 제2강 고난 중에 있는 하나님의 뜻(5:3-5)

64.하나님께서 그 사랑을 추천하심(로마서 5:6-8) : 제3강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5:6-8)

65.완전한 구원(로마서 5:9-11) : 제4강 확실한 구원(5:9-11)

 

제7부 : 그리스도와 연합함

66.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함(5:12) : 제5강 그리스도와의 연합(5:12)

67.그리스도와 아담(5:12-14) : 제6강 아담과 그리스도(5:12-14)

68.사망의 왕 노릇(5:14) : 제7강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5:14).

69.아담 : 오실 자의 표상(5:14) : 제8강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5:14)

70.세 가지 큰 대조(5:15-17) : 제9강 죄와 의의 결과(5:15-17).

71.은혜(5:15-17) : 제10강 넘치는 은혜(5:15-17)

72.은혜로 의롭다 하심(5:18-19) : 제11강 은혜로 구원(5:18-19).

73.율법과 은혜(5:20) : 제12강 율법과 은혜(5:20)

74.넘치는 은혜(5:20) : 제13강 더 큰 은혜(5:20).

75.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는 동기(5:20-21) : 제14강 왜 하나님은 은혜를 주셨나? (5:20-21)

76.은혜의 왕 노릇(5:20-21) : 제15강 은혜가 왕노릇 해야(5:20-21)

77.우리는 여기서 어디로 가는가?(6:1-2)

78.죄에 대하여 죽음(6:2) : 제16강 죄에 거하게 되면(6:1-2).

79.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받음(6:3-4) : 제17강 그리스도와 연합하여(6:3-4)

80.이제 예수님과 함께 삶(6:5-10) : 제18강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6:5-10).

81.그것에 근거하여 여길 수 있음(6:11) : 제19강 산 자로 여길지어다(6:11)

82.하나님의 병기(6:12-14) : 제20강 하나님의 병기(6:12-18)

83.당신은 누구의 종인가?(6:15-18) : 제21강 누구의 종인가?(6:15-18)

84.핵심(6:19-22) : 제22강 그의 마지막은?(6:19-22)

85.죄의 삯과 하나님의 은사(6:23) : 제23강 죄의 삯과 하나님의 은사(6:23)

 

제8부 : 율법에서 벗어나는 자유

86.율법에서 벗어나는 자유(7:1-4) : 제24강 율법으로부터의 자유(7:1-4).

87.열매 맺는 우리의 두 번째 연합(7:4) : 제25강 미스(Miss) 죄인, 미세스(Mrs.) 크리스챤(7:4)

88.그때와 지금(7:5-6) : 제26강 그때와 지금(7:5-6)

89.죄가 하나님의 선한 율법을 어이없이 (7:7-12) : 제27강 율법의 본질(7:7-12)

90.도대체 죄는 어떻게 되었는가?(7:13) : 제28강 무엇이 죄가 되냐?(7:13)

91.로마서 7장의 그 ‘사람’은 누구인가?(7:14-20)

92.내면의 전쟁(7:21-24) : 제29강 내적 전쟁(7:14-24)

93.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은 승리(7:25) : 제30강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승리(7:25)

 

제9부 : 성령으로 행하는 생활

94.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장(8:1-39)

95.결코 정죄함이 없음(8:1-4) : 제31강 예수 안에서 정죄함이 없다(8:1-4).

96.기독교가 가르치는 거룩함(8:3-4) : 제32강 그리스도인의 성화(8:3-4)

97.육적인 사람과 참된 그리스도인(8:5-8)

98.누가 그리스도인인가?(8:9-11) : 제33강 누가 참 크리스챤인가?(5:5-11).

99.성화 : 도덕적 명령(8:12-13) : 제34강 성화 명령(8:12-13)

100.하나님의 가족(8:14) : 제35강 하나님의 가족(8:14-17)

101.더 이상 종이 아니라 아들이 됨(8:15-16)

102.하나님의 성도가 받을 유업(8:17) : 제36강 고난과 영광(8:17)

103.고난 : 영광에 이르는 길(8:17)

104.비교할 수 없는 영광(8:18) : 제37강 비교할 수 없는 영광(8:18)

105.피조물의 구속(8:19-21) : 제38강 피조물의 구원(8:19-21).

106.우리 몸의 구속(8:22-25) : 제39강 몸의 구속(8:22-25)

107.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님이 도우심(8:26-27) : 제40강 성령의 중보기도(8:26-27)

108.하나님의 뜻을 알기(8:27) : 제41강 하나님의 뜻대로(8:27)

 

제10부 : 막을 수 없는 사랑

109.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룸(8:28) : 제42강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110.다섯 고리로 된 황금 사슬(8:29-30) : 제43강 구원의 서정(8:29-30).

111.예지와 예정(8:29) : 제44강 예지와 예정(8:29).

112.하나님의 유효한 부르심(8:30) : 제45강 효과적 부르심(8:30).

113.칭의와 영화(8:30) : 제46강 칭의와 영화(8:30)

114.성도의 견인(8:30)

115.대답할 수 없는 다섯 질문(8:31-36) : 제47강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8:31-36).

116.영원한 사랑(8:32)

117.우리의 완전한 구원(8:33)

118.우리의 놀라운 중보자(8:34)

119.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음(8:35-36) : 제48강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자 없다(8:35-39)

120.넉넉히 이김(8:37)

12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8:38-39)

 

(2) 로마서 제3권(로마서 9장-11장)의 목차 비교를 통하여 이종윤 목사님의 표절을 밝힌다.

   제11부 : 바울과 그의 민족

122.하나님은 도대체 무엇을 행하시는가?(9:1-5) : 제1강 하나님의 약속은 깨어진 것인가?(9:1-5)

123.위대한 민족을 향한 큰 근심(9:1-4) : 제2강 동족을 위한 슬픔(9:1-4)

124.위대한 민족의 큰 혜택들(9:4-5) : 제3강 특혜는 받았으나 구원받지 못한 이스라엘(9:4-5)

125.하나님이신 예수님(9:5) : 제4강 예수, 하나님(9:5).

 

제12부 : 하나님의 칭의

126.참이스라엘(9:6) : 제5강 참 이스라엘(9:6)

127.선택받은 삼 대(9:7-12) : 제6강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9:7-12)

128.이중 예정(9:13-18) : 제7강 선택과 유기(9:13-14)

129.그러나 하나님은 의로우신가?(9:14-15) : 제8강 하나님은 불의하시뇨?(9:14-15)

130.‘긍휼’은 하나님의 이름(9:15)

131.구원은 주께 속했다(9:16) : 제9강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다(9:16)

132.심판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9:17-18) : 제10강 하나님의 권능은 심판 중에도 나타난다(9:17-18)

133.토기와 토기장이(9:19-21) : 제 11강 토기장이와 진흙(9:19-21).

134.하나님의 인내(9:22-24) : 제12강 하나님의 길이 참으심(9:22-24)

135.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들(9:25-26) : 제13강 누구를 부르셨나?(9:25-26)

136.이사야의 증거(9:27-29) : 제14강 이스라엘이 다 이스라엘은 아니다(9:27-29).

 

제13부 : 유대인의 불신

137.행위에 의지하여 잘못 구하는 의(9:30-32) : 제15강 어떻게 의로와질 수 있나?(9:30-32).

138.그리스도에게 부딪힘(9:32-33) : 제16강 거치는 돌(9:32-33).

139.이스라엘을 위한 기도(10:1-2) : 제17강 민족을 위한 기도(10:1-15)

140.두 가지 종류의 의(10:3) : 제18강 하나님의 의와 우리의 의(10:3).

141.그리스도 : 율법의 성취(10:4) : 제19강 율법의 마침이 되시는 그리스도(10:4).

142.믿음은 어떻게 말하는가(10:5-9) : 제20강 믿음이 말하는 것(10:5-9)

143.표적과 기사의 거짓 종교(10:6-7)

144.기독교 설교(10:8-9) : 제21강 우리가 전파하는 것(10:8-9)

145.주권적 구원(10:9) : 제22강 주 예수가 구원(10:9).

146.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함(10:10) : 제23강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10:10)

147.건강과 부 그리고 무엇인가?(10:10)

148.부끄러움에서 자유롭게 된 것인가?

아니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인가?(10:11) : 제24강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10:11).

149.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10:12-13) : 제25강 만민 구원(10:12-13)

150.선교를 위한 호소(10:14-15) : 제26강 구원받은 자의 전도사명(10:14-15).

151.하나님의 아름다운 사람들(10:15) : 제 27강 아름다운 사람들 (10:15).

152.불신앙이라는 슬픈 현실(10:16) : 제28강 불신앙의 슬픈 현실(10:16)

153.삶을 변화시키는 성경의 능력(10:17) : 제29강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10:17)

154.변명들(10:18-20) : 제30강 핑계치 말라(10:18-20)

155.하나님의 벌리신 손(10:21) : 제31강 손을 벌리신 하나님(10:21)

 

제14부 : 이방인의 때

156.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셨는가?(11:1) : 제32강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셨나?(11:1).

157.하나님의 남은 자(11:2-5) : 제33강 하나님의 남은 자(11:2-6)

158.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음(11:6)

159.하나님의 모든 것:요약(11:7-10) : 제34강 선택과 유기(11:7-10)

160.이방인들의 부요함(11:11-12) : 제35강 이방인의 부요함(11:11-12)

161.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남(11:13-15) : 제36강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11:13-16)

162.여호와께 거룩하라(11:16)

163.뿌리와 가지(11:17-24) : 제37강 참감람나무와 돌감람나무(11-17-24)

164.이방인 교회들에게 내리는 경고(11:17-22) : 제38강 이방인 교리에 대한 경고(11:17-24)

165.하나님의 옛 백성이 맞이할 장래(11:23-24) : 제39강 이스라엘의 미래(11:23-24)

166.유대인이 완악하게 된 비밀(11:25) : 제40강 왜 이스라엘은 완악해졌나?(11:25)

167.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11:26-27) : 제41강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11:26-27)

168.철회할 수 없는 하나님의 언약(11:27) : 제42강 변경할 수 없는 하나님의 언약(11:27)

169.하나님의 후회함 없는 부르심(11:28-29) : 제43강 후회없는 하나님의 부르심(11:28-29)

170.모든 사람에게 베푸시는 긍휼(11:30-32) : 제44강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11:30-32)

 

제15부 : 송영

171.아무도 하나님과 같지 않음(11:33-35) : 제45강 하나님 같은 이 없도다(11:33-35)

172.하나님의 완전한 지식(11:33)

173.하나님의 깊은 지혜(11:33)

174.하나님의 측량치 못할 판단들(11:33)

175.하나님의 놀라운 길들(11:33)176.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11:34) : 제46강 불가사의한 분(11:34)

177.모든 것이 풍성하심 하나님(11:35) : 제47강 하나님은 우리에게 빚진 분이신가?(11:35)

178.기독교 세계관(11:36)

179.솔리 데오 글로리아(11:36) : 제48강 하나님께만 영광(11:36)

 

결론: 이종윤 목사님 자신의 정직한 고백과 사과와 회개를 기대해 본다.

누구나 자신이 비록 1천의 죄를 지었어도 느끼는 죄가 10이라면 10만큼의 회개 밖에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진실한 사람이라면 느끼는 만큼은 계산 없는 회개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느낀 10의 죄를 정직하게 회개하다보면 1천의 죄까지 깨닫게 되고 온전한 회개를 하게 된다.

이 목사님께서 필자를 미워할 것인지 고마워할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고마워할 것 같지는 않지만, 이 목사님께서 주관적 진실을 보여주신다면 존경할 것 같다. 회개처럼 쉽고 은혜로운 것은 없지만 또 회개처럼 어려운 것도 없다. 그러기에 이종윤 목사님에게 회개를 기대해 보는 것이다. 가능하면 다음 글에서는 로마서 못지않게 표절이 심하다고 느끼는 시편과 사도행전의 표절도 밝혀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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