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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아포라’에 대한 루터·칼빈의 입장
이상규 교수의 신학읽기(28)
2003년 09월 17일 (수)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이상규
교수 / 고신대학교 역사신학

루터와 칼빈은 근본적으로 성경에 기초한 개혁을 말했다는 점에서 이 두 개혁자의 형식적 원리(formal principle)는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점은 루터나 칼빈만이 아니라 쯔빙글리나 멜란히톤에게 있어서도 동일했다. 심지어 루터는 교황의 무오성의 문제도 만일 로마교가 성경에 근거하여 그 점을 밝혀낸다면 받아드릴 수 있다고 보았을 만큼 개혁에서의 성경의 권위에 의존적이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은 교황의 무오성을 성경으로 증명하지 못했다.

그런데 루터와 칼빈 간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는데, 그것은 아디아포라의 문제였다. 루터는 성경이 명백하게 금하지 않는 한에 있어서 로마교회의 전통(관습)은 구속력이 있고, 따라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칼빈은 성경이 명(命)하지 않는 한 로마교회의 모든 전통이나 관습들은 거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 원리는 교리적인 문제에서만이 아니라 교회관이나 교회정치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성경이 명백하게 말하고 있는 것을 디아포라(diaphora)라고 하는데, 이것을 존 머리(John Murry)는 ‘규정적 원리’(Regulative principle)라고 불렀다.

규정적 원리란 성경이 명백하게 말하는 ‘간섭받은 영역’을 의미한다. 이 용어 자체는 성경에 없다. 그러나 성경은 이 원리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서는 이 문제를 1장 6항에서 다루고 있다.

‘규정적 원리’와는 반대로 성경이 명백하게 말하지 않고 있고, 따라서 임의로 할 수 있도록 남겨진 영역을 아디아포라(adiaphora)라고 말한다. 이것을 불간섭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몇 시에 예배드릴 것인가, 예배 시에 어떤 색깔의 옷을 입어야 할 것인가, 예배순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등의 문제가 여기 속한다. 이런 것들은 우리의 신앙과 양심과 상식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것을 카이퍼(R. B. Kuiper)는 ‘성화된 상식’(sanctified common sense) 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칼빈은 루터에 비해 아디아포라의 영역이 훨씬 적었다. 시편송의 문제는 좋은 예가 된다. 루터는 스스로 곡(曲)과 가사를 만들어 불렀고, 그의 후예들도 그러했다. 그래서 루터교는 그 후 2세기 동안 교회음악에 영향을 끼쳤고 캐롤송의 발전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칼빈은 이와 같은 사람이 만든 찬송 가사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칼빈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영감으로 주신 시편의 노래, 곧 시편송 보다 더 좋은 찬송이 없으며, 따라서 이것 외에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교회음악으로 적절치 못하다고 보았다. 예수님께서도 만찬을 잡수시고 시편을 부르며 감람산으로 향하셨다는 기록을 중요한 근거로 삼았다.

그래서 칼빈은 <제네바 시편찬송>(Geneva Psalter)에서 시편 150편을 노래하도록 했고, 그 전통이 칼빈의 가르침을 따르는 후예들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 예배에서의 음악을 루터는 아디아포라로 보았으나, 칼빈은 디아포라로 보았다.

루터와 칼빈의 견해차를 볼 수 있는 또 한 가지 경우가 성상(聖像)의 문제였다. 쯔빙글리나 칼빈은 성상의 제거나 철거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고 이를 위해 고투했으나, 루터는 성상(聖像)의 문제를 아디아포라의 영역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이의 철거에 유의하지 않았다. 이런 루터의 견해는 1522년 3월 바트부르크성에서 비텐베르크로 돌아와서 행한 8편의 연속 설교 속에 잘 나타나 있다.

그의 영향으로 루터교회는 심지어 로마교처럼 10계명의 제2계명, 곧 “너는 나를 위해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아무 형상(形象)도 만들지 말라”는 계명을 1계명에 포함시켜 그 의미를 희석시켰던 로마 가톨릭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제2계명을 그 본래대로 회복하는 일에 루터교는 관심이 없었다. 이것은 루터가 상(像)의 문제를 아디아포라의 영역으로 이해했던 점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 두 개혁자 간의 뚜렷한 차이점을 볼 수 있다.

약간 다른 이야기이지만 규정적 원리, 곧 디아포라의 영역을 지나치게 협의의 개념으로 곡해한 경우가 재세례파라고 할 수 있다. 재세례파는 성경이 유아세례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고 이를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칼빈은 유아세례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했다. 고린도전서 1장 16절에서 “또한 내가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말씀 등에 근거하여 세례의 범위는 어린아이를 포함한 가족(household)이라고 보아 유아세례를 규정적 원리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재세례파는 그것에 대한 분명한 성경의 사례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이것은 규정적 원리를 지나치게 협의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증명된 예(approved examples)는 아디아포라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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