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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의 거짓 교리는 기독교 생존 위협할 정도"
"핵심적 본질적 필수적인 교리 부인하거나 일탈 하면 이단"
2016년 07월 08일 (금) 13:58:53 김정언 기자 skm01_@daum.net

<교회와신앙> : 김정언 기자 】 오늘날 지구촌에 수많은 이단들이 존재하며 또 계속 생성되고 있다. 이단들은 교회의 중대한 위협의 하나이다. 교계의 명 칼럼니스트이자 남침례교 신대원 총장인 신학자로, 열렬한 칼뱅주의자이기도 한 앨버트 몰러 박사가 이단 여부를 가리는 지침을 제시했다. 몰러 박사는 이단의 거짓 교리에 대해 “처단하고 정정하지 않으면 기독교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라도 강조했다. 간추려 본다.

나의 성인 시절 모두를 이단의 위험에 늘 대처하며 살아왔다. 젊은 신학자로서 초기교회사를 섭렵하면서 정통 기독교와 이단의 차이를 안다는 것이 교회의 삶과 죽음에 얼마나 중대사인지를 절감했다.

이단을 인식하고 거부하는 데 실패한다는 것은 곧 교회와 그 그리스도 증언에 대한 재앙을 뜻한다. 동시에 나는 두 가지 긴급하고 중대한 위험성을 보았다.

   
▲ 앨버트 몰러 박사

가장 위험한 첫째는 이단의 실제적 위험성을 인식하기를 꺼리는 수많은 신학자들의 안일한 태도이다. 진보(해방)신학은 이단의 가능성을 부인하더니 공개적으로 그것을 포용했다.

둘째 위험성은 늑대 소년의 우화와도 같은 것. 순수한 교리에 대한 일부 불일치는 정통과 이단 사이의 깊은 경계선과는 무관하다. 그런 한편 모든 헛 교리나 신학적 오류는 이단이다.

이단이라는 것은 기독교의 핵심적 ․ 본질적 ․ 필수적인 교리를 부인하거나 일탈하는 것이다. 교회는 과거의 슬픈 경험을 통해 이단 규명이 하나의 필요한 범주이고 부단한 관심사임을 배워왔다.

교회사 초기의 지도자들은 거짓 복음을 가리는 참 신앙을 정의하는 데 힘써야 했고, 가장 본질적인 교리인 성삼위일체성과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과 인성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을 수호해야 했다.

니케아 회의(325년), 콘스탄티노플 회의(381), 에베소 회의(431), 칼케돈 회의(451) 등의 교회회의에서, 그리스도와 성삼위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성경교리의 정의, 방어, 선포가 이뤄졌다.

신학적으로 정통(orthodoxy)이라고 정의되는 참 신앙과 그에 대조되는 사이비는 기독교에 대한 거짓 진술인 것으로 단죄되곤 했다. 그 위험성은 더 없이 높았다. 이단들은 단순히 거짓 교리만이 아니다. 처단하고 정정하지 않으면 기독교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의 거짓 교리이다.

교회가 일치하여 단죄한 첫 이단은 아리우스주의(Arianism)였다. 아리우스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장로이자 사제였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성자님을 피조된 존재로 가르치면서, 심지어 "성자는 한때 존재하지 않았다"고까지 선언했다.

아리우스는 또, 성자는 존재상 성부께 "절대종속된" 분이라고 주장해, 교회에 큰 논란과 분쟁을 야기한 결과,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이 신학적 위기를 해소할 교회회의를 소집했다.

아리우스주의자들은 325년 니케아(현재의 터키에 존재)에서 열리기 시작한 교회회의에서 치명적인 과오를 저질렀다. 자기네 나름의 신조를 제안한 것이다. 이 신조는 성경을 노골적으로 위배하여 당대의 보편적 교회신앙과는 너무나 쉽게 구분되었기에, 교회회의에서 강력히 배척당했다.

니케아 회의는 그 결과물로 정통교리를 세우고, 이단을 배척했으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필수적 교리를 고백하는 신조를 채택했다. 이 신조는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성부님에게서 비롯하신 하나님의 아들, 유일하게 독생하신 그 분은 빛으로부터의 빛, 참 하나님으로부터의 참 하나님으로서, 피조되지 않고 독생하셨으며, 아버지와 본질적으로 하나이시다."라고 고백했다.

이 신조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중요하지만, 이 특수용어들은 더구나 그렇다. 니케아 회의는 아리우스의 거짓 교리를 부정 ․ 거부하고, 성자 하나님은 참 신성에 있어 성부님과 동등하다고 선언했다. 또한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성자가 존재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거나, 태어나기 전에 계시지 않았다거나, 무(無)에서 생성되었다거나, 하나님이 아들은 뭔가 다른 실체 또는 딴 본질에서 왔다거나, 변질 또는 변화될 수 있다는 식의 주장들을 모두 단죄하고 파문화했다.

니케아는 정통 기독교에 꼭 필요한 승리였고, 니케아 신조에서 확인된 공식은 모든 진짜 기독교를 위한 기초였다. 니케아 정통으로부터의 일탈은 곧 중대한 결과를 의미했다. 성경만이 교리 이슈에 대한 최종 권위이지만, 신조와 고백들은 근본 교리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정의하고 오류를 단죄하는 필수적 목적에 기여했다.

니케아의 큰 성취는 아리우스 이단에 대한 배격과 함께, 성자님이 피조되지 않고 성부님과 한 본체로서 독생하셨다는, 그 분의 완전하고 영원한 신성에 대한 신앙이 기독교에 요구된다는 단언이었다.

J. N. D. 켈리가 잘 설명한 대로, 니케아 교부들은 "성자님의 완전한 신성과, 성부님과의 동등성과, 성부로부터 그 분의 존재가 비롯했고 따라서 성부의 성품을 공유하신다."는 진리를 확인했다.

성삼위일체 교리는 중대한 신학적 도전을 던져준다. 사방팔방으로부터 잠재적인 이단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성삼위의 단합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양태론(modalism)에 빠지게 되고 성삼위의 다양성을 너무 강조하면 삼위이체론(tritheism, 일명 삼신론)에 빠지게 된다.

해럴드 O. J. 브라운은 이 애로점을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은 신적인 한 본체 또는 존재이시지 세 존재들이 아니시라는 진리를 파괴하지 않고, 세 위격의 구분에 대하여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우리의 모든 시도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실재를 묘사하기엔 너무나 부족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성경이 명백히 드러내주는 바를 조금도 감(減)해선 안 될 것이며 그렇다고 더하는[加] 것도 매우 조심해야 할 것이다.

정통은 어찌 보면, 겸손의 행위다. 시대에 충실한 기독교란, 신실한 크리스천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늘 확인하고 확신해온 대로 믿고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남녀의 서로 다른 역할에 대한 성경적 패턴을 강조하는) 일부 '보완주의자들'(complimentarians)이 "성자는 성부께 영원히 복종한다."고 주장하면서, 니케아 신조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갖고 시시덕거리거나 4세기 논쟁에 기초한 고전적인 친(pro-)니케아 삼위일체론 공식에 위배되는 언행을 일삼고 있다. 니케아 신조는 굳건한 토대였지만, 이 신조가 우리의 모든 물음을 다 답해주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성자의 존재 양식에 있어 영원한 종속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런 유의 주장은 니케아 신조가 긍정한(affirm) 것을 부정하는 것이고, 니케아가 부정한 것을 도로 긍정하는 셈이 된다. 성삼위의 사회적 차원을 묘사한다는 것은 더 어렵다.

나는 성경이 가라고 하지 않는 이상 더 나아가는 것을 피하지만, 성부가 영원히 성부이시고 성자는 영원히 성자이시라는 진리엔 설명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 있다. 하나님의 뜻을 성삼위 안에서 서로 구분한다는 것은 이단이지만, 이 교리들을 이해하기 쉽게 정의하고 또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인간의 적절한 범주가 없다. 하나님은 모든 답을 주시지 않으며, 우리의 유한한 생각으로는 무한한 신적 실재를 충분히 이해할 수가 없다.

신학자들은 니케아 신조를 바탕으로, 성자가 계시지 않았던 때가 결코 없었다고 명언하여, 성자의 영원한 실재를 확인해 왔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성령의 영원한 진행(procession)을 말해야 한다. 성령께서 계시지 않았던 때가 없었다.

최근 웨인 그루덤(Wayne Grudem)이나 브루스 웨어(Bruce Ware) 등 존경받는 복음주의 신학자들에 대하여 '니케아 위배' 운운하는 일각의 도전은 정통을 업신여기고 진짜 이단을 희석하려는 소치에 불과하다. 그루덤이나 웨어의 가르침은 결코 니케아 신조에 어긋나지 않으며 오히려 두 분 다 열정적으로 확신해왔다.

   
▲ 웨인 그루덤(좌)과 브루스 웨어(우)

나는 성부에 대한 성자의 영원한 '굴종'(submission)에 관한 두 분의 제안을 지지하진 않아도, 두 분은 아리우스 이단 또는 그것을 닮은 그 어떤 것도 가르친 적이 없음을 잘 안다. 오히려 두 신학자는 정통 기독교의 완전한 영역을 확인시켜주면서 교회의 신실한 교사임을 입증해 왔다.

따라서 두 분에 대한 그런 규탄은 근거 없고 무분별한 것이며 무가치하다.

신학자들은 모든 이슈에 관해 일치하는 법이 거의 없으며 또 그런 일치는 거의 불가능하다. 필요한 것은 성경에 대한 절대 신뢰이며 교회의 근본 신조들에 대한 정당한 확신 ․ 확언이다(특정 교단의 고백도 포함). 보완주의는 영원한 종속에 교리적으로 연계될 필요가 없고 (성경적인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에 대한) 댄버스 진술이 요구하는 바도 아니다.

분명히 일부 비평가들에게 보완주의는 실제적 이슈인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이들에게는 현대 복음주의에 대한 거부가 우려를 낳는 이슈이다.

어떤 경우이든, 사실은 오래 견지하지도 못할 무분별한 (두 학자에 대한) 무근한 혐의를 갖고 바로 자신들이 내세우는 정통을 오히려 더 위협하는 셈이 되고 있다.

진짜 위험은 이런 논쟁이 이단의 실제적 위험에 대한 경계심을 흐려놓는다는 것이다. 비록 이단이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더라도 니케아 정통에서 멀어졌다거나 친 니케아적 발전을 부정했다는 주장의 진짜 위험은 바로 그런 것이다.

이단의 위험성은 상존한다. 브라운의 말대로 지옥문은 때때로 교회에 아주 가깝게 다가온다. 질문을 흐려놓는 것은 교회를 위험하게 만들며, 어떤 신학자도 그런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사람은 없다.

복음주의권에서는 흔히, 니케아에서 시작되어 칼케돈 회의 때까지 발달한 성삼위일체론이나 기독론에 대한 진지한 평가를 잘 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는 다들 머리를 정돈하고 역사적 신학과 신학적 겸허-양쪽 다 잘 활용하고 발휘할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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