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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분석③ ] 이종윤 목사(서울교회 원로)의 표절을 밝힌다
보이스의 시편과 로마서… 서문과 목차 비교분석
2016년 06월 30일 (목) 21:31:17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최삼경 목사 / <교회와신앙> 상임이사

서론: 표절은 목회자에게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목회자들마다 설교 표절을 말하면 두려움 내지 동정심을 가질 수 있다. 해야 할 설교는 너무 많고, 준비할 시간도 부족하고 때로 실력도 부족하다. 웬만한 목회자는 일주일에 10여회 아니 그 이상 설교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누구나 표절의 유혹을 받고 그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그리고 표절의 잣대를 엄격하게 대면 댈수록 두려움을 가질 수도 있다.

필자도 한 교회에서 31년 동안이나 목회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점을 잘 알고 있고 또 충분히 동정심을 가진다. 비록 서울교회에 비하여 작은 교회지만, 필자는 이종윤 목사님께서 서울교회 목회하신 기간보다 더 긴 시간 동안 한 교회에서 목회했다. 표절은 누가했든 잘못이지만, 그래도 다른 분이 했다면, 필자가 과거에 이런 문제로 누구도 공격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종윤 목사님의 표절에 대하여도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가 설교를 석사나 박사 논문을 살피듯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종윤 목사님은 열 가지가 다른 목회자와 다르다.

첫째로 이 목사님은 작은 교회 목회자가 아니라 큰 교회 목사다. 한 마디로 대형교회 목회자다. 이 목사님 스스로 약하고 힘없는 목회자와 비교하지 않기 바란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에 대하여 권리를 축소하고 의무를 확대해야 한다.

둘째로 이종윤 목사님은 학자(영국 성 앤드류스대학원에서 박사학위)요,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 교수, 연세대와 장신대 객원교수와 겸임교수)요, 총장(전주대학교 총장)까지 역임하신 분이시다. 누구보다 표절이 가지는 의미를 잘 아시고도 남을 분이다.

셋째로 다른 사람이 따를 수 없는 고학력자이시다. 미국과 영국은 표절에 대하여 우리보다 훨씬 더 엄격하다는 것을 잘 아실 것이다. 바로 그 미국과(미국 웨스터민스터 신학교, B.D) 영국(세인트 앤드류스 대학교 신학부, PH.D)에서 공부하신 분이 이종윤 목사님이시다.

넷째로 이 목사님은 어쩌다 한두 번 표절한 것이 아니다. 한 두 달, 또는 한 두 해 하다가 그만 둔 것도 아니다. 40여년 동안 줄기차게 하셨다. 목회 초년생이나 젊은 목회자가 설교를 배울 때 하는 그런 표절이 아니다. 어떤 점에서는 표절 설교로 목회를 성공하셨고, 영광도 받으신 분이시다.

다섯째로 그것도 이 사람에게서 조금 저 사람에게서 조금, 이 주석에서 조금 저 주석에서 조금씩 표절한 것이 아니다. 한 사람 몽고메리 보이스 목사의 책을 보고 그것도 카피 수준으로 표절하였다. 입이 10개 아니 20개라고 변명의 여지가 없다.

여섯째로 이 목사님은 표절한 자료로 <한국교회갱신연구원>에서 목사들에게 오래 동안 강의까지 하셨다. 그렇게 강의하는 동안 보이스 목사의 탁월한 사상과 영성 넘치는 지식으로 목사들에게 존경 받은 흔적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옹호자들은 이 목사님께서 <한국교회갱신연구원> 목회자들에게 강의하며 ‘보이스 목사의 것임을 여러번 밝혔다’고 주장한다. 만약 <한국교회갱신연구원>에서 목사들에게 보이스의 책을 그대로 강의한다는 것을 숨김없이 밝히며 강의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다음과 같은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먼저 그렇다면 왜 서울교회 교인들에게는 그것을 숨겼느냐는 것이다. <한국교회갱신연구원>의 강의보다 서울교회의 설교가 앞섰다. 먼저 서울교회 교인들에게 설교하고 그 후에 목회자들에게 강의한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서울교회>에서부터 교인들에게 밝히고 설교하지 못하였을까 하는 점이다. 어쩌면 서울교회가 있고 부흥되었기에 그 힘으로 목회자들에게 강의까지 하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서울교회 교인들에게 밝혔어야 더 정직하다. 진실은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나타나야 진실이다. 정작 가장 진실해야 할 서울교회 교인들에게는 숨기고, 다른 곳에서 진실했다는 말에 신빙성이 없어 보이며, 밝혔다고 하여도 표절 자체를 정직하게 다 밝혔을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만일 목회자들에게 최소한 밝혔다고 하여도, 더 이상 밝힐 수 없었던 이유는 서울교회 교인들에게 밝히지 않고 설교를 했던 점이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만일 교회에서 밝히고 설교했다고 가정한다면 표절 시비도 없었겠지만, 또한 오늘의 서울교회를 이루지 못하였을 것이다. 표절의 시작도 서울교회요, 돌이킬 수 없는 이유도 서울교회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밝혔다’는 말과 ‘표절을 하지 않았다’는 말은 서로 모순되는 말인데도 모순된 말로 이종윤 목사를 옹호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한걸음 나아가 왜 그것을 책에서는 밝히지 못하였느냐는 것이다. 그의 수십권의 책 어디에서도 보이스 목사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목회자들에게 밝혔다고 하여도 믿어지지 않지만, 책을 출판할 때, 자신을 저자로 하지 않고 역자로만 하였어도, 대다수의 서울교회 교인들은 과거에 받은 은혜와 은퇴하신 분의 명예를 생각해서 이렇게 문제를 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목회자들에게 표절을 밝혔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그 강의를 들었던 목사들은 ‘나도 이종윤 목사님처럼 표절을 해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했을 가능성이다. ‘저렇게 큰 목사님도 표절로 설교하고, 목회도 성공하실 수 있는데 나 같은 목사야 어떠랴’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일곱째로 백번 천번 양보한다고 하여도, 이 목사님은 말로 자신의 표절을 끝내지 않고, 20여권 이상을 원저자의 이름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이종윤 저자로 출판까지 하는 완벽한 표절을 하셨다. 그래도 표절을 하지 않았다고 하고 또 다른 변명과 구실을 삼는다면 표절한 죄보다 그 죄가 더 클 것이다.

여덟째로 이종윤 목사님은 다른 목회자들에게 결코 동정적인 분이 아니다. 누구보다 다른 냉정하고 엄격한 분으로 안다. 만일 그 점을 부인한다면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다. 이것을 부정한다면 다른 교단 다른 분들에 대하여 동정의 여지 없이 비판적인 멘트를 소개할 수도 있지만, 본 글에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겠다. 이종윤 목사님은 남에게 엄격하신 것을 보면 자신에게는 더 엄격하게 하실 것으로 믿고 싶다.

아홉째로 후임자의 설교에 대하여 이 목사님이 요구하신 말이 사실이라면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앞의 글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이종윤 목사님께서는 자신이 세운 후임자에게 설교에 대하여 훈계하고 책망하고, 심지어 ‘자신의 설교를 그대로 베껴서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2016년 06월 02일, <이종윤 목사 설교와 저서… '보이스' 표절논란>) 이 때 이 목사님은 자신을 대 설교자로만 생각하시고, 표절자란 사실은 잊으셨던 것으로 보인다.

열째로, 이종윤 목사님은 100점 설교자로 인정받은 일이 있다. 지난 2004년 10월 25일에 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민경배)이 주최한 '제9회 한국교회 설교가 연구-이종윤 목사의 설교와 신학' 심포지엄에서 이종윤 목사에 대하여,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100점이란 점수를 주었고, 논찬자마다 극찬을 쏟아놓았다. 온통 찬사와 박수로 가득 찬 자리였다는 기사가 있다.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9617)

과연 설교에 100점이 있을 수 있고, 그러면 99점 자리 설교가는 누구였으며, 그 이하의 점수를 줄 사람도 불러서 평가를 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 당시 이종윤 목사님께서 이렇게 표절하여 설교하셨다는 점을 알고도 과연 그런 후한 점수를 줄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분명히 몰라서 그랬을 것으로 안다. 100점 자리 설교가라면 거기에 걸 맞는 윤리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표절하여 잘 하는 설교는 아무리 잘 해도 낙제점이라고 봐야 한다.


표절은 참 쉬운 일이다. 노력 없이 성공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표절을 하고도 숨겨지는 행운(?)을 얻기만 하면 그 소득처럼 큰 것은 없다. 실력이 없는 자도 실력이 있는 자로 둔갑하고, 영성이 없는 자도 영성 깊은 자로 인정받고, 가난 한 사람도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거기에다 천한 자도 존귀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석학의 책을 표절하면, 낙제생도 석학의 영광을 다 누릴 수 있다. 거기다 똑똑하고 임기응변이 좋은 사람이라면 원저자의 약점까지 보완하여 원저자의 것보다 더 좋은 것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표절로 교회도 부흥시킬 수 있고, 인기도 누릴 수고, 학위도 얻을 수 있고, 좋은 학교 교수도 될 수 있고, 큰 교회 담임 목사도 될 수 있다. 그래서 표절은 큰 유혹이며 또한 큰 죄가 되는 것이다.
 

본론: 이종윤 목사님의 표절 서적 서문(시편, 로마서)과 로마서를 중심으로 표절을 밝힌다.

1. 표절시 표절자의 양심에 가장 큰 고통을 주는 곳은 서문(preface)이다.

표절을 하면 원저자만의 경험, 연구, 사상을 자신의 것으로 도적질을 하게 되고 그 때마다 양심을 속여야 하는 고통을 느낄 것이다. 그 중에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은 책의 서문(preface)이다. 왜냐하면 책의 서문은 거의 다 원저자만의 경험과, 저자만이 할 수 있는 멘트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원저자의 솔직한 심정이 토해지는 곳이 서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문은 그대로 번역하여 사용할 수도 없고, 아니면 저자로서 자기 멘트를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용도 하고 또 자기에게 맞게 각색까지 하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여기에서 표절자의 거짓이 잘 드러난다. 이 점은 이종윤 목사님도 동일하다. 이 점을 우선 <시편>과 <로마서>의 서문 두 곳만 살펴보겠다.

(1) <시편> 서문에서 보이는 이종윤 목사님의 거짓

이종윤 목사님께서 저자로 되어 있는 <시편 1권>(2006년 5월 8일, 필그림출판사)은 보이스 목사가 쓴 <시편>을 그대로 요약 번역해서 출판한 표절서적이다. 보이스 목사의 영문 원서도 시편 1장에서부터 41장까지로 되어 있는데, 이종윤 목사의 표절서적도 이 점에서 같다. 단지 완역이 아니라 요약했기 때문에 볼륨만 보이스 목사의 책보다 얇은 점이 다르다.

그 서문 중에 이 목사의 이런 멘트가 나온다. “본래 5권으로 된 시편(1-14, 42-72, 73-89, 90-106, 107-150)을 세권으로 묶어 출판키로 한다”라고 되어 있고, 또 “강해설교의 보고를 캐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본문이 시편인지라 필자는 한없는 희열과 은혜를 받았다”고 했고, “시편연구를 위한 자료들이 너무 방대한 것에 비해 그 모든 것을 다 소화하지 못한 것은 필자의 부족함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냥 보면 아무 잘못이 없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우스꽝스런 말이 된다. 하나씩 보자.

   
▲ 보이스 목사의 <로마서> 번역본과 <시편>의 원서

첫째, “본래 5권으로 된 시편(1-14, 42-72, 73-89, 90-106, 107-150)을 세권으로 묶어 출판키로 한다”는 그 결정은 이종윤 목사가 한 결정이 아니라 보이스 목사가 한 결정이다. 단지 이 목사님은 그것을 따라서 사용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목사님의 책 서문에는 이 목사님은 자신이 한 결정처럼 되어 있다. 이것은 이 목사님의 결정이 아니라 보이스 목사의 결정이다.

둘째, 이종윤 목사님은 “강해설교의 보고를 캐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본문이 시편인지라 필자는 한없는 희열과 은혜를 받았다”라고 했다. 여기 한없는 희열과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그 ‘필자’는 이종윤 목사가 표절한 책에서는 형식상 이종윤 목사 자신을 지칭하지만, 그러나 그 희열과 은혜의 산물인 책 내용은 다 보이스 목사가 느낀 희열과 은혜의 산물이다. 이종윤 목사님이 다른 책에서 이런 멘트를 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여기 ‘필자’는 이종윤 목사가 아니라 마땅히 보이스 목사기 되어야 한다.

이종윤 목사님께서 정직하게 말한다면 “이 책에서는 보이스 목사가 시편을 통하여 느낀 희열과 은혜를 역자(이종윤) 나도 느꼈다”라고 했어야 정직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 책 내용이 밝히고 있는 희열과 은혜는 이종윤 목사님이 느낀 희열과 은혜가 아니라 보이스 목사가 느낀 희열과 은혜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이종윤 목사님은 “시편연구를 위한 자료들이 너무 방대한 것에 비해 그 모든 것을 다 소화하지 못한 것은 필자의 부족함 때문이다”라고 했다. 여기 “필자” 역시 형식적으로는 이종윤 목사님이지만, 사실은 보이스 목사이다. 이 멘트는 위의 말보다 더 표절자의 거짓을 나타나는 멘트가 아닐 수 없다. 책의 내용은 보이스 목사가 깨닫고 연구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시편의 진리를 밝혀졌다면 그것은 보이스 목사의 노력과 수고와 경건의 열매다. 결코 이종윤 목사님의 노력과 수고와 경건의 열매가 아니다. 혹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 역시 보이스 목사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보아야 맞다.

그런데 이종윤 목사님은 자신이 필자처럼 통상적으로 저자들이 책을 쓰면서 하는 것처럼 개인적인 인사도 빠지지 않았다. “이 책을 만들기 전에 강의 노트를 정리해 주고 교정해 주기위해 수고의 땀을 흘린 박00 집사님께와 필그림 출판사의 유00 선생님께 독자 여러분과 함께 큰 감사를 드린다”고 하였다.

여기 필자는 이종윤 목사님이 아니다. 보이스 목사다. 그런데 이종윤 목사님은 번역본을 만들면서 저자 보이스 목사가 보여야 할 겸손을 자신이 보인 꼴이 되고 말았다. 이런 겸손은 겸손일 수 없다. 그래서 ‘이종윤 목사의 표절된 책의 저자는 이종윤 목사인가 보이스 목사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넷째, 이종윤 목사님은 그의 서문 끝에 인용한 성구가 보이스 목사가 시편에서 쓴 서문의 성구를 그대로 인용하였다. 하고 많은 성구 중에 두 분이 같은 성구를 인용하는 것도 우연의 일치가 될 수는 없다. 그 성구마저 보이스 목사의 서문에서 취한 것이 분명하다. 그 성구가 바로 시편 41:13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아멘 아멘”이다. 그런데 이종윤 목사님은 이 성구를 인용하면서, 실수이겠지만, 그 장절을 시편 43:13로 오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섯째, 이 목사님은 “시편연구를 위한 자료들이 너무 방대한 것에 비해 그 모든 것을 다 소화하지 못한 것은 필자의 부족함 때문이다”라고 할 때, 마치 이 목사님께서 많은 자료들을 연구하고 참조한 것처럼 보인다. 아니다. 이 시편 속의 인용된 자료들은 보이스 목사가 연구할 때 참조한 자료들이다. 이종윤 목사님이 참조한 자료는 오직 보이스 목사가 쓴 책 한권이다. 이 목사님이 이 시편을 쓰면서 참조한 자료들이 따로 있다면 제시해 주기 바란다.

 (2) 로마서의 서문에서 보이는 이종윤 목사님의 거짓

이종윤 목사님께서 표절하신 <로마서>를 보면 서문에 이런 글이 나온다. “이같은 로마서를 필자의 역량으로는 강해하기에 역부족임을 자인하면서도 구름떼와 같이 응원해 주는 성도들의 기도의 함성과 경향각지에서 몰려오는 목회 동역자들의 격려에 힘입어 부족하지만 이 책을 내기에 이르렀다.”고 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 이 목사님은 여기에서도 보이스 목사의 로마서를 자신이 쓴 것처럼 하고 있다. 이종윤 목사님은 이 로마서 연구를 위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으셨다. 요약 번역만 하셨다. “역량”이니 “역부족”이니 언급할 자격도 없다. 그것은 원저자 보이스 목사가 보일 겸손이다. 그런데 이종윤 목사님은 앞선 시편에서처럼 보이스 목사의 겸손을 대신 부렸다.

둘째, 이 강의로 목회자들에게 강의를 하시면서 많은 인기를 누리셨음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이 서문에 나온다. ‘구름떼 같은 응원’이란 말이나, ‘기도의 함성’이란 말이나, ‘경향각지에서 몰려오는 목회 동역자들의 격려’라는 말이 그렇다. 그러나 이 책은 그들의 응원이나, 기도의 함성이나, 격려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이종윤 목사님께서 보이스 목사의 책을 표절할 결단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그리고 그 격려와 함성은 다 보이스 목사가 취해야 할 격려요 함성이다. 단지 이종윤 목사가 취할 격려와 함성은 좋은 책을 번역해준 공로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과연 이 목사님께서 남의 책을 표절하였다는 것을 알고도 그렇게 응원하고, 격려하고 찬사를 보냈을지 모를 일이다.

셋째, 이 서문은 역자로서 할 수 없는 서문이다. 저자만이 할 수 있는 서문이다. 이종윤 목사님께서 “이 책이 햇빛을 보기까지 뒤에서 수고한 이들이 많다.”고 하였는데, ‘이 책이 햇빛을 보게 되었다’는 말은 책이 처음 출판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로마서>는 이종윤 목사님이 출판함으로 햇빛을 처음 본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 보이스 목사를 통하여 처음 햇빛을 보게 되었다. 이 멘트 역시 자신이 저자가 아니라 역자라는 점을 잊고 한 말이 아닐 수 없다.

2. 이종윤 목사님은 보이스 목사의 책을 계속해서 표절하다 보니, 그 표절성은 보이스의 책에서만 직접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설교나 강의에서도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이종윤 목사님만 그런 것은 아니다. 표절자는 누구나 다 같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목사님에게도 예외가 아닐 것으로 확신한다. 같은 관점에서 발견된 한 가지를 소개만 하고 다음에 구체적으로 밝히겠다.

이 목사님은 2014년 11월 23일 “무엇이 교회를 개혁주의로 만들까?”라는 설교를 하셨는데, 미국 보스톤에 있는 고든카넬 신학교의 교수 에프 웰(F. Wells)이라는 교수가 쓴 <No place for Truth>(진리에 자리가 없다)라는 책을 인용하신 일이 있는데, 역시 보이스 목사의 책에서 표절했다고 보아야 맞다. 보이스 목사가 쓴 사도행전(Acts) 서문(Preface)에서와, 역시 보이스 목사가 쓴 <개혁주의서론>(부흥과개혁사, 2010)의 내용에서 표절된 것이 분명하다. 다음번에 취급하기로 한다.

3. <로마서 1>를 통하여 보이스 목사와 이종윤 목사님을 비교한다.

로마서의 성경의 위치와 그 가치는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이점을 이종윤 목사님도 인지했고 보이스 목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종윤 목사님은 서울교회에서 무려 두 번이나 로마서로 강해를 했다고 들었다. 첫 번째로는 무려 4년 9개월이나 그것도 서울교회 주일 낮에 설교하였고(98년 6월 28일-2003년 3월 30일까지), 두 번째는 서울교회 주일 저녁 예배시간에 1년 4개월 정도 하다가(2009년 8월 23일-2010년 12월 12일까지) 은퇴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처음에도 보이스의 책을 표절하여 설교하였지만, 두 번째 설교도 거의 처음 것과 같았다는 점이다.

이종윤 목사님의 책들의 내용을 하나씩 다 분석하려면 이종윤 목사님께서 출판하신 분량만큼 책을 내야 할 것이다. 본 글에서는 우선 간단한 목차 비교를 하겠다. 그것만으로도 이종윤 목사님의 표절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교회 소위 친 이종윤 목사님 측 장로들이(노문환 외 17인) <교회와신앙>을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했는데, 그 핵심 내용 중에 하나가 ‘이종윤 목사는 표절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미련보다 더한 일이다. 우선 20여권이 넘는 표절 서적들의 목차라도 비교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럴 때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본 글에서는 로마서 1권의 목차만 비교하겠다.

앞에다 원저자 보이스 목사의 번역된 책 목차를 그대로 소개하고, 뒤에다 이종윤 목사님의 서적 목차를 그대로 소개하겠다. 그 가운데는 콜론(:)을 찍겠다. 보이스 목사의 목차는 원본처럼 아라비아 숫자로 하고(예 1. 2. 3 …), 이종윤 목사님의 책 역시 원본처럼 제1강, 제2강과 같은 형식으로 소개하겠다.

제1부: 서설

1.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1:1) : 제1강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 (1:1)

2. 하나님의 위대하고 유서깊은 복음(1:1-2) : 제2강 하나님의 가장 크고 오래된 복음(1:1~2)

3.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1:2-4) : 제3강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1:2~4)

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1:4하) : 특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1:4)

5. 믿음의 순종(1:5) : 제 4강 은혜와 사도의 직분(1:5)

6. 로마의 그리스도인들(1:6-7) : 제5강 로마의 성도들(1:6~7)

7. 받을 가치가 있는 명성(1:8) : 제6강 믿음의 소문(1:8)

8. 항상 위해서 기도함(1:9-12) : 제7강 계속적인 기도(1:9~12)

9. 응답받지 못한 기도(1:13) : 제8강 응답 없는 기도(1:13)

10. 온 세상을 위한 온전한 복음(1:14-15) : 제9강 전 세계를 위한 복음(1:14~15)


제2부: 성격적 신앙의 핵심

11. 편지의 주제(1:16-17)

12. 부끄러워하지 않음(1:16-17)

13. 마르틴 루터의 본문(1:17) : 제10강 구원의 복음(1:16~17)


제3부: 멸망에 처해 있는 인류

14. 진노하시는 하나님(1:18) : 제11강 진노하시는 하나님(1:18)

15. 자연 계시(1:18-20) : 제12강 자연계시(1:18~20)

16. 무신론의 심리(1:18-20)

17. 핑계치 못함(1:20) : 제13강 핑계할 수 없나니(1:20)

18. 비열한 배은망덕(1:21) : 제14강 배은망덕(1:21)

19. 미련한 사람들(1:21-23) : 제15강 미련한 자여(1:21~23)

20. 하나님이 저희를 내어 버려두사(1:24-28) : 제16강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셨는가?(1:24~28)

21. 지옥의 뚜껑을 열어본즉(1:29-31) : 제17강 합당치 못한 일(1:28~31)

22. 얼마나 낮게 내려갈 수 있는가?(1:32) : 제18강 버리심을 받았으나(1:32)

23. 첫 번째 핑계 : 도덕성(2:1-3) : 제19강 하나님의 판단(2:1~3)

24. 길이 참으시는 하나님(2:4) : 제20강 하나님의 인자하심(2:4)

25. 쌓이는 진노(2:5) : 제21강 진노를 쌓는 자 (2:5)

26. 선에는 선으로 악에는 악으로(2:6-11) : 제22강 악한 자와 선한 자(2:6~11)

27. 들을 뿐만 아니라 행하는 사람들(2:12-15) : 제23강 듣는 자와 행하는 자(2:12~15)

28. 모든 마음들을 환히 보시고 모든 욕구들을 아시는 하나님(2:16) : 제24강 폭로된 비밀(2:16)

29. 두 번째 핑계 : 종교(2:17-24) : 제25강 유대이이라 칭하는 네가...(2:17~24)

30. 할례(2:25-29) : 제26강 마음의 할례(2:25~29)

31. 유대인들은 유리한 처지에 있는가?(3:1) : 제27강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뇨(3:1)

32. “그 책을 내게 주십시오!”(3:1-2) : 제28강 성경이 주는 유익 (3:1~2)

33. 그 밖의 질문들 (3:3-8) : 제29강 또 다른 질문들 (3:3~8)

34.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3:9-11) : 제30강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3:9~12)

35. 의지의 속박(3:11)

36.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3:12)

37. 파멸에 처해 있는 인류(3:13-18) : 제31강 멸망 받을 인생(3:13~18)

38. 종국에는 입을 다물게 됨(3:19) : 제32강 심판자 앞에서 잠잠하게 될지니(3:19)

39.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육체가 없나니(로마서 3:20) : 제33강 착한 행실로는 의로와 질 수 없다(2:20)


제4부: 멸망에 처해 있는 인류

40. 그러나 이제는(3:21) : 제34강 그러나 이제는...(3:21)

41. 율법과 무관한 의(3:21-24) : 제35강 하나님의 의로 주어진 구원(3:21~24)

42. 놀라운 은혜(3:22-24) : 제36강 놀라운 은혜(3:22~24)

43. 값을 지불하고 사신(3:24)

44. 화목 제물 : 잊혀진 교훈(3:25)

45. 의와 의롭다 하는 분(3:25-26) : 제37강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3:24~26)

46. 믿음(3:25-26) : 제38강 구원의 적용(3:25~26)

47. 그의 피를 믿는 믿음(3:25)

48. 자랑할 근거가 없음(3:27-28) : 제39강 자랑할 것이 없나니(3:29~30)

49. 모든 삶을 위한 하나의 길(3:29-30) : 제40강 오직 한 길(3:29~30)

50. 믿음으로 세우는 율법 (3:31) : 제41강 율법을 세운 믿음(3:31)


제5부: 구약으로 입증된 복음

51. 아브라함의 사례(4:1-5) : 제42강 아브라함의 믿음(4:1~5)

52. 의로 여기신바 된 믿음(4:3) : 제43강 믿음으로 의를(4:3)

53. 다윗의 증거(4:6-8) : 제44강 죄를 용서하시고, 가리우시고, 인정치 않으시는 하나님(4:6~8)

54. 의식(儀式)없이 얻는 구원(4:9-12) : 제45강 예전과 구원(4:9~12)

55. 믿음의 자취(4:12) : 제46강 순례의 길 (4:12)

56. 율법과 무관하게 얻는 구원(4:13-17) : 제47강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4:13~17)

57. 아브라함이 지녔던 믿음의 본질(4:18-22) : 제48강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4:18~22)

58. 아브라함이 지녔던 믿음의 근거(4:18-22) : 제49강 아브라함 신앙의 근거(4:18~22)

59. 기독교 신앙(4:23-25) : 제50강 우리의 믿음(4:23~25)

 

결론: 이종윤 목사님은 회개도 쉬우실 것으로 본다.

필자는 보이스 목사의 책과 이종윤 목사님의 책을 비교하면 할수록 ‘보이스 목사가 이종윤 목사이고, 이종윤 목사가 보이스 목사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보이스 책을 보려면 이종윤 목사님의 책을 보면 되고, 또한 이종윤 목사님의 책을 보면 보이스 목사의 책을 볼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그대로 하셨고, 그대로 책을 내셨기 때문이다.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이종윤 목사님과 보이스 목사가, 보이스 목사와 이종윤 목사님이 일치되어 있다.

그러나 이제 회개하셔야 한다. 이제 이종윤 목사님께서 직접 나서야 한다. 가만히 계시면 이종윤 목사님 지지자들로 죄를 짓게 한다. 만일 이 표절 사건이 <충현교회>에서 목회하실 때나, <서울교회>에서 목회하시는 도중에 터졌다면 더욱 어려우셨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다 은퇴까지 하셨다. 그렇다면 이제 회개하기에 자존심 하나만 내려놓으신다면 쉬울 것이다. 이제 잃을 것이 별로 없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회개의 모범을 보이는 선배님의 모습을 보기 원하며 세 번째 글을 마친다.

     관련기사
· [ 집중분석④ ] 이종윤 목사(서울교회 원로)의 표절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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