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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칼빈을 '배교자'로 정죄한 이단적인 교회론
[ 이단연구 / 김홍기 ] 지방교회 교리 비판 - 재반론 ③
2016년 06월 14일 (화) 10:19:30 김홍기 목사 yesusarang@shaw.ca

김홍기 목사 / Ph.D., D.Min. / 밴쿠버필그림교회 담임, 글로벌기독교이단연구원장

   
김홍기 목사

필자는 재반론을 함에 있어서 지방교회의 반론의 몇 가지 핵심 쟁점에 집중할 것이다. 지난 글이나 재반론에서 충분히 다룬 내용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가급적 반복하여 논하지 않을 것이다.

늑대의 발톱을 가지고 있으면 양이 아닌 늑대인 것이다

지방교회: “김목사는 “대만의 정통 교회 성도들을 포섭하여 …급격한 수적 성장에 기여 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정통 교회의 성도들을 포섭해서 이룬 성장으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식으로 함부로 말했다. . . . 김목사는  또한 위트니스 리가 워치만 니의 실행을 따랐을 것임으로 대만에서도 본토에서처럼 기성 교회 성도들을 뺏어 왔을 것이라는 억지 가설을 세웠다. 그런데 사실은 그 정반대였다.”

반박: 정통교회를 ‘영적 음행자요 음녀요 배교자요 큰 바벨론이요 사탄의 조직’이라고 정죄하는 지방교회의 이단적 교회론은 워치만 니에게서부터 시작되었지만 위트니스 리에 의해 훨씬 더 심화 발전되었다. 위와 같은 가혹한 용어로 정통교회를 비난하고 공격하면 지방교회는 단합되고 효과적으로 집안 단속을 하겠지만, 정통교회의 심장은 지방교회의 무자비한 창에 찔려 검붉은 선혈로 범벅이 된다. 특히 경쟁력이 약할 수 있는 소교회와 개척교회는 지방교회의 불법적인 무기의 위협 앞에 훨씬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 극소수의 연구실 중심의 작가들과 극소수의 상아탑의 신학자들이 색다른 이론을 존중한다며 내놓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연구 결과는 정통교회들, 특히 규모가 작은 교회들에는 독약(毒藥)을 처방한 결과를 가져다 준 것이다.

지방교회가 내놓은 소위 ‘객관적인 자료’라는 말은 그 자체가 모순이며 속임수이다. 지방교회의 자료는 지방교회의 자료일 뿐이다. 그 자료가 객관성을 가지려면 제삼자가 자료 제공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정통교회를 ‘음녀요 배교자요 큰 바벨론’으로 매도하고 정통교회 성도들을 빼가는 집단이 지방교회 외에 또 있다. 바로 악명 높은 이단 신천지 집단이다. 지방교회와 신천지 둘 다 비성경적이고 불법적인 이유를 들어 정통교회를 ‘음녀요 배교자요 큰 바벨론’이라고 부르며 정통교회를 공격을 한다. 늑대는 발톱을 보면 안다. 늑대의 발톱을 뽑지 않으면 양이 아닌 늑대인 것이 분명한 것이다! 지방교회여, 그 흉칙한 늑대의 발톱을 빼라.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늑대로 존속할 것이다. 

개혁교회의 창시자 존 칼빈을 ‘배교자’로 정죄한 지방교회의 이단적 교회론

지방교회: “김목사는 ‘큰 바벨론’ ‘배교한 교회’ 개념을 왜곡시킨 채 로마 천주교의 방패막이가 되려는가? . . . 우리는 김홍기 목사에게 정중하게 질문하겠다. 귀하가 보기에 로마 천주교가 참으로 ‘정통교회’인가? 그렇지않다면 왜 지금처럼 침례교 목사이면서도 로마 천주교의 하수인이 되어 방패막이를 자처하고 있는가?”

반박: 반종교개혁을 위해 개최된 트렌트 공의회(1545-1563)에서는 ‘이신칭의’의 교리를 다음과 같이 정죄했다. 그리고 지금도 이것은 로마 가톨릭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만일 누구든지 사람이 공식적으로 의롭다하심을 받는 것이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는다고 말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Session VI, Canon X).

만일 누구든지 사람이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에 의하여만 의롭다하심을 받는다고 말한다면 . . .  또는 심지어 우리가 의롭다하심을 받는 은혜는 오직 하나님의 호의뿐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Session VI, Canon XI).

만일 누구든지 사람이 확실히 자신이 사죄 받고 의로워졌다고 믿기 때문에 사람이 참으로 죄로부터 사죄 받고 의로워졌다고 말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Canon XI).

성경적 진리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모독하는 위와 같은 가톨릭의 선언을 들으면서 복음주의적인 개신교 목사들 중 피가 거꾸로 솟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복음의 진리와  그 진리를 순종하려는 사람들에게 퍼붓는 가톨릭의 악담과 저주를 보면서 ‘가톨릭은 확실한 구원론 이단’이라고 말하는  개신교 목사가 있다면 누가 그를 탓하겠는가?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전해준 ‘이신칭의’의 위대한 진리에 침을 뱉고 그 소중한 진리를 발로 깔아 뭉개는 가톨릭의 위와 같은 모습을 보고 ‘큰 바벨론’이요 ‘배교한 교회’요 ‘적그리스도’요 ‘거짓 선지자’라고 비판한들 복음적인 개신교 목사들 중 누가 개의할 것인가? 

필자는 위트니스 리가 가톨릭과 정통 개신교를 한 통속으로 몰아넣고 비판을 했기 때문에 지방교회를 비판하는 것이다. 어떻게 ‘적그리스도’ 같은 가톨릭과 정통 개신교가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어떻게 ‘거짓 선지자’ 같은 가톨릭과 정통 개신교를 동일시하여 비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도대체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리와 지방교회는 정통 개신교를 가톨릭과 동일시하여 모욕한 것에 대하여 정통 개신교 앞에 고개 숙여 사죄해야 마땅하다!  아래를 보면 위트니스 리가 정통 개신교를 가리켜 ‘영적 음행자요 음녀요 배교자요 큰 바벨론이요 사탄의 조직’이라고 말한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모든 분열들과 교파들은 큰 바벨론 안에서 완성된다”(Witness Lee, Life-study of Genesis, 463).

"계시록 17장과 18장에서 우리는 큰 바벨론, 즉 배교한 기독교 세계(Christendom) 위에 임하는 심판을 본다.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 외에 주님은 기독교 세계(Christendom), 즉 큰 바벨론을 특별히 심판하실 것이다"(Witness Lee, Revelation, 22).

"우리는 기독교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기독교 세계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교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은 큰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선언이다. 기독교는 무너졌다. 기독교 세계는 무너졌다. 카톨릭교는 무너졌다. 그리고 모든 교파들은 무너졌다. 할렐루야!”(Witness Lee, The Seven Spirits for the Local Churches, 97)

“주님의 말씀으로 어느 정도 회복이 된 개혁교회는 ... 다양한 이름으로 자신을 교파화해서 주님의 이름을 부정하고 있다. 주님의 말씀으로부터 일탈하는 것은 배교이다. 주님의 이름 외에 그 어떤 다른 이름으로 교회를 교파로 나누는 것은 영적 음행이다.”(Witness Lee, A Defense of the Gospel: Responses to an Open letter from Christian Scholars and Ministry Leaders” (2), p.98)

“로마 카톨릭 교회를 포함한 모든 교파 안에는 구원받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들은 주님께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속해 있는 교파들의 조직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교파의 조직들은 적절한 교회의 삶에 관한 하나님의 경륜을 파괴하는 사탄적인 조직을 세우기 위해 사탄에 의해서 사용되어 왔다”(Witness Lee, Life-study of Genesis, p. 464).

여기 리가 사용한 ‘모든 교파들’과 ‘기독교 세계’라는 말이 개신교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래서 보수적인 개신교인들은 너나 없이 이 문제에 관해서 공통의 인식을 가지고 있고, 이런 비판에 대하여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다. 가이슬러와 로즈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러한 공통의 느낌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기독교 세계의 나머지를 향한 이러한 공격의 언어는, CRI조차 인정하듯이, “유감스럽고”(regrettable) “가혹한”(harsh) 것일 뿐 아니라 개탄할 만하고(lamentable) 용납할 수 없는(inexcusable) 것이다(Geisler & Rhodes, A Response to the Christian Research Journal’s Recent Defense of the “Local Church” Movement, 4).

모든 분열은 ‘영적 음행’이요 “배교’라는 리의 말은 개혁자들과 그들의 개혁 사역을 다 포함한다. 지방교회는 이종성 박사의 글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종교개혁의 산물인 개신교의 출현까지도 ‘예수의 몸을 찢는 일’이고, ‘개신교회는 교회의 통일성을 파괴한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인들’ 이라고 말한다(152쪽).” 이러한 인용은 지방교회가 종교개혁을 분열의 죄로, 존 칼빈과 같은 개혁자들을 교회의 분열을 꾀한 ‘영적 음행자’요 ‘배교자’로 정죄하고 있음을 분명히 증거한다. 지방교회는 존 칼빈과 다른 개혁자들이 억지로 떠밀려서 가톨릭과 결별한 것으로 꾸미려 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 글에서 개혁자 존 칼빈이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소극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환경에 떠밀려서가 아니라 주도적으로 가톨릭과 결별하고 개신교 운동을 전개한 것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칼빈 자신의 글을 여러 차례 인용했다. 개혁교회의 기수 존 칼빈을 ‘영적 음행자,’ ‘음녀,’ ‘배교자,’ ‘큰 바벨론,’ ‘사탄의 조직’의 총수로  정죄한 지방교회의 교회론은 이단 교리가 분명하지 않은가!

고결한 개혁자 존 칼빈을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인’으로 정죄한 친(親)천주교 역사관

지방교회: “김목사는 정의도 모호한 정체불명의 ‘정통교회’ 개념을 토대로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죄인인 개신교 (교파 주의)” (이종성 박사)를 거듭 옹호하고 있지만; 통합교단 원로였던 고 이종성 박사도 <교회론>(대한기독교출판사, 1995)에서 종교개혁의 산물인 개신교의 출현까지도 "예수의 몸을 찢는 일"이고, "개신교회는 교회의 통일성을 파괴한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인들" 이라고 말한다(152쪽). 또한 장로교 통합측 교단의 원로 신학자였던 이종성 박사를 향해, “이종성 박사의 어림 반푼 어치도 안 되는 말, 좀 더 심하게 말한다면 적그리스도 편에 선 거짓 선지자가 하는 말 비스름한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폄하했다.”

반박: ‘이신칭의 교리’를 저주한 로마 가톨릭이 성경적으로 바른 집단인가? 성경에 명백히 선포되어 있는 ‘이신칭의 교리’를 저주하는 것은 성경과 바울을 저주하는 것과 동일하다. 사도 바울은 가톨릭이 가지고 있는 교리와 동일한 교리(은혜와 율법을 혼합한 가짜 복음)를 갈라디아 교회에 전한 사람들을 향하여 이런 준엄한 선언을 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6-8).

 사도 바울의 선언에 비추어 볼 때 ‘이신칭의’(성경의 가르침)의 가르침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 더 나아가 ‘이신칭의’의 교리를 저주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이신칭의’의 교리를 저주하는 로마 가톨릭을 개신교회의 영적인 어머니로 믿고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도대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가? 이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 개혁자 존 칼빈을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인들” 중 하나로 정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옛날에는 실로 로마가 모든 교회들의 어머니였다. 그러나 그것[로마교회]이 적그리스도의 교구가 되기 시작한 이후로 예전의 것[로마교회]은 죽어버렸다(John Calvin, Institutes 4.7.24, 1144).

이제 그들이 그들의 교회로부터 철수한 우리를 이단자들이라고 외치도록 놓아 두라. 왜냐하면 우리의 분리(separation)의 유일한 이유는 그들이 결코 진리에 관한 순결한 고백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 . 나는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갈 수 있도록 그들로부터 철수하는 것이 우리의 마땅한 도리라고 확신한다. (Ibid., 4.2.6, 1047-48).

만약 그들이 교회들이라면, 그 교회는 진리의 기둥이 아니라[딤전 3:15], 거짓의 받침대이다. 그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장막이 아니라 우상들의 그릇이다. 따라서 선지자는 그 회중들과 일치하는 것으로부터 떠나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악한 음모였을 뿐이다. . . . 똑같은 방법으로 만약 어떤 사람이 우상숭배와 미신과 불경건한 교리를 가지고 있는 현재의 회중들[로마 가톨릭]을 (그리스도인이 심지어 교리에 있어서 동의하는 지경까지 완전한 결합을 이루어야 할) 교회들로 인정한다면, 그는 크게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될 것이다. 만약 그들이 교회들이라면 열쇠들의 능력은 그들의 손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열쇠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말씀은 그들 가운데서 파괴되었다. 따라서 이렇게 생각해 볼 때 그들은 교회들이 아니든지 아니면 터키인들의 회중들과 합법적인 신자들의 회중들을 구별할 수 있는 표식이 전혀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이다. (Ibid., 4.2.10, 1050-1051).

우리가 로마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부를 때 어떤 사람들에게 우리는 중상하는 사람이고 악담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바울을 폭언을 퍼붓는 사람으로 정죄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실로 우리는 바울을 본받아 말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바울 자신의 입술을 빌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무도 우리가 로마 교황을 대항해서 악하게 바울의 말을 왜곡한다고 말하지 못하도록, 이것들은 교황직(papacy)이 아니면 그 어떤 다른 것으로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을 간단히 보여줄 것이다. . . .  로마 교황이 파렴치하게 하나님께만 속한, 특히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을 자신에게 이양(移讓)시켰음이 분명하므로 우리는 그가 저 불경스럽고 혐오스러운 왕국(that impious and hateful kingdom)의 지도자요 기수라고 의심을 해야 마땅하다(Ibid., 4.7.25, 1144).

고결한 개혁자요 개혁교회의 창시자인 칼빈의 말에 비추어 볼 때 “저 불경스럽고 혐오스러운 왕국”이요 “적그리스도의 교구”인 로마 가톨릭을 돌아가야 할 모(母)교회로 신봉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참 선지자인가?  또한 “적그리스도”인 로마 교황을 목자로 믿고 따르도록 부추기는 사람들이 참 선지자인가? 지방교회여, 답을 해보라!

친(親)가톨릭과 반(反)가톨릭을 혼합한 ‘음녀’ 지방교회

지방교회: “우리는 김홍기 목사에게 정중하게 질문하겠다. 귀하가 보기에 로마 천주교가 참으로 ‘정통교회’인가? 그렇지 않다면 왜 지금처럼 침례교 목사이면서도 로마 천주교의 하수인이 되어 방패막이를 자처하고 있는가?”

반박: 지방교회는 로마 천주교를 ‘음녀요 배교자요 큰 바벨론’으로 비판한다. 반면에 그들은 천주교를 돌아가야 할 모(母)교회로 여기고 그리워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다음과 같은 말을 감히 인용할 수 있단 말인가?  “통합교단 원로였던 고 이종성 박사도 <교회론>(대한기독교출판사, 1995)에서 종교개혁의 산물인 개신교의 출현까지도 ‘예수의 몸을 찢는 일’이고, ‘개신교회는 교회의 통일성을 파괴한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인들’ 이라고 말한다(152쪽).”

개신교의 출현은 ‘예수의 몸을 찢는 일’이라는 말과 ‘개신교회는 교회의 통일성을 파괴한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인들’이라는 말은 친(親)천주교 역사관 혹은 천주교 중심의 역사관이다. 이것은 종교개혁자들의 위대한 사역을 죄악으로 단정하고 개혁자들을 심히 모독하는 말이다. 이런 말을 인용하는 것은 지방교회가 천주교를 모(母)교회로 여기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지방교회는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음녀 같은 속성을 가진 집단이다! 가이슬러와 로즈의 다음과 같은 말이 지방교회의 음녀 같은 속성을 잘 증명해 준다.

리에 의하면, 로마 교회는 “사탄의 악한 영들”이 우글거리고 “온갖 종류의 악들로 충만해 있다. 악한 사람들과 악한 행실들과 악한 것들이 거기에 머물고 있다.” 그것은 “누룩 (악한, 이단적, 이교적인 것들을 상징함)을 첨가했던 음녀”이다. 그것은 “음녀의 어미”이고 “배교한 교회”이다. 한 번 더, 그것은 “우상숭배로 충만하고” “하나님의 경륜에 반하며” “마귀적이고 사탄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만약 종교적인 중상을 위한 근거가 있다고 한다면, 이것이 바로 그것인 것이다. 하지만 지방교회는 어떤 다른 사람이 그들을 “이단”이라고 부를 때면 강력하게 또한 소송을 일삼아(litigiously) 반대한다. 이것은 냄비가 주전자 보고 검다고 한다는 말의 전형적인 사례인 것이다!”(Geisler & Rhodes, A Response to the Christian Research Journal’s Recent Defense of the “Local Church” Movement, 4)

지방교회는 한편으로는 천주교를 비판하고 다른 편으로는 천주교를 옹호한다. 필요에 따라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방교회를 ‘음녀’라고 부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정통교회를 배척하고 비진리와 야합하는 이단적 교회론

지방교회: “지방 교회들은 결코 개신교 내의 믿는 이들에게 배타적이지 않다. 비록 다른 교단에 속했어도  참되게 거듭났다면 하나님 눈에 그 사람은 ‘그 지방에 있는 교회’의 구성원(지방 교회)이기 때문이다. . . . 지방 교회측은 한번도, 한 순간도 “진리 없는 몸안의 일치”를 주장한 적이 없다. 진리는 주님 자신이신데 어찌 주님 없는 몸이 가능하며, 일치 또한 있을 수 없다.”

반박: 지방교회가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배타적이지 않다면 왜 70여 명의 세계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시정을 요구하고 있는가? “만약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스와 ‘지방교회’의 지도자들이 복음주의적인 그리스도인 교회들과 단체들과 사역들을 정당한 그리스도인 독립체들로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이 복음주의적인 교회들과 사역들의 모든 협의체들 안에 있는 그들의 회원 자격을 공개적으로 포기해 줄 것을 요청한다(An Open Letter To the Leadership of Living Stream Ministry and the "Local Churches").

정통교회를 ‘영적 음행자요 음녀요 배교자요 큰 바벨론이요 사탄의 조직’이라고 비난하면서 어떻게 지방교회가 “결코 개신교 내의 믿는 이들에게 배타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정통교회에 대하여 가장 배타적이고 가혹한 용어를 사용하여 비난하면서 어떻게 배타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가? 지방교회는 자신들의 특정한 교리에 동의하지 않으면 위와 같은 용어들을 동원해서 몰상식하고 무자비하게 매도하고 비난하면서 어떻게 정통교회를 배척하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가? 왜 절대 다수의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지방교회의 배타성을 비판하고 시정을 요구하고 있는가? 총신(總神) 출신의 재미 이단 연구가인 서춘웅 목사는 그의 책(‘교회와 이단’)에서 지방교회의 배타적 교회론에 관해 이렇게 썼다.

한국의 지방 교회 책임자 이희득 씨의 <지방 교회의 신앙과 생활>에서 특기할만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 . 이희득의 교회론은 은연중에 지방 교회만이 그리스도와 성령 위에 선 참 교회이며 교파에 속한 기성 교회는 참 교회가 되기에 부적절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한 지방에 한 교회가 참된 교회요, 그것이 곧 지방 교회라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서춘웅, 교회와 이단, 563-64).

지방교회는 배타적 교회론뿐 아니라 비진리와 야합하는 교회론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교제와 일치를 위해서는 교리를 따지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방교회는 정통교회의 신조를 ‘분열의 죄악과 영적 음행과 배교’로 정죄를 하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비진리에 대해 문을 활짝 열도록 만든다. 더 나아가 비진리와 야합하도록 만든다. 이것은 비성경적일 뿐 아니라 개혁자들의 가르침과도 반한다. 그리스도인의 일치에 있어서 그리스도만을 강조했던 워치만 니와는 달리 존 칼빈은 진리(가르침 혹은 교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제 이러한 친밀한 관계(communion)는 두 가지 끈(bond), 즉 바른 교리(sound doctrine)와 형제 사랑(brotherly love)에 의해 함께 유지된다. . . . 바울은 주님의 말씀을 떠나서는(apart from the Lord’s Word) 믿는 자들의 동의(agreement)는  없고 오직 악한 자들의 당 짓는 일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John Calvin, Institutes, 4.2.5, 1047).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져 있다. . . . 바울은 우리에게 교회는 사람의 판단력이나 제사장직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엡 2:20]. 요컨대, 교회는 그리스도의 왕국이며 그리스도는 그분의 말씀만으로 통치하신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왕국이 그분의 홀 (笏) (즉 그의 가장 거룩한 말씀)을 떠나서 존재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말은 거짓말[참조. 렘 7:4]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명백해지지 않는가? (Ibid., 4.2.4, 1046)

풀러 신학교 동문들에 관한 간교한 발언

지방교회: “한국에 약 500여명의 동문들이 중진급 목회자들로 활동하는 풀러 신학교처럼, 지방 교회 측의 열린 자세를 참되게 이해하고 교제의 악수를 청하는 이들이 계속  늘어가고 있다.”

반박: 풀러 신학교의 3명의 교수 패널이 지방교회를 인정해 주었다고 풀러 신학교 동문들이나 교수들이 모두 지방교회를 인정해 주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명백한 속임수이다. 지방교회를 정면으로 비판한 공개 항의서의 서명자들 가운데 풀러 신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여러 명 있을 것이다. 그 중 한 사람은 현재 필자의 모교인 탈봇신학대학원에서 교회사를 교수하고 있는 알란 곰즈(Alan W. Gomes) 박사이다. 그는 풀러 신학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미국에서 잘 알려진 교회사가이다. 풀러 신학교 동문들이 모두 지방교회를 인정하는 것처럼 어물쩡 속이려 드는 것은 지방교회의 교활함과 나약함을 동시에 내비치는 것이다. 보수적인 풀러 신학대학원 동문들이 지방교회가 자신과 자신들의 사역을 향하여 ‘영적 음행자요 음녀요 배교자요 큰 바벨론이요 사탄의 조직’이라고 몰상식하고 부당하게 비난하는 것을 좋아하고 인정해 줄 이유가 과연 어디 있는가?

가이슬러 박사에 대한 부당한 인식공격의 사례

지방교회: “지방 교회 측은 미국 EPS(Evangelical Philosophical Society) 회장을 역임한 Paul Copan의 공식 초청으로, 지난 해 11월 미국 아틀란타에서 있었던 EPS와ETS연합 정기 학술 대회 때 폴 코펜과 공동으로 신화(神化)관련 논문을 청중들 앞에서 발표한 바 있다. 저명한 복음주의 신학자인 웨인 그루뎀 박사도 그 회합에 참석했지만, 김목사가 두둔하는 노먼 가이슬러는 자신의  치우친 독선적인 태도로 인해 이 학술 잔치에 초대 받지도 못했고 자발적으로 오지도 않았다.”

반박: 노먼 가이슬러(Normal Geisler) 박사는 신학과 철학을 두루 전공한 미국의 탁월한 조직신학자요 기독교 철학자이자 현존하는 최고의 변증학자이다. 그는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교의 양대 명문인 트리니티 신학대학원과 댈러스 신학대학원에서 수십 년간 종교철학 교수 및 조직신학 교수로 봉직했다. 그는 미국의 복음주의 철학협회(The Evangelical Philosophical Society)의 설립자요 초대 회장이었고,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협회(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의 회장을 역임했으며, 국제 기독교 변증학 협회(the International Society of Christian Apologetics)의 설립자요 현 회장이다. 그는 베리타스 복음주의 신학대학원(Veritas Evangelical Seminary) 및 남부 복음주의 신학대학원(Southern Evangelical Seminary )을 공동으로 설립했고 학장으로 섬겼다. 그는 100여 권의 책을 저술하고 편집했다. 실로 그는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계의 거목이고 정통신학의 보루로서 평생을 미국과 세계의 복음주의 신학과 교회를 위해서 헌신해 온 대학자이다.

가이슬러 박사는 지방교회와 같이 체계적인 학문성이 결여된 집단이 함부로 인신공격을 할 수 있는 대상이 결코 아니다!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 여기에 해당되는 말이다. 또한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이 난다’는 말이 이런 경우의 지방교회를 두고 하는 말이다. 가이슬러 박사가 자신이 회장을 역임했던 미국 복음주의 신학협회를 탈퇴한 이유는 소위 ‘열린 신론’(open theism) 때문이다. 세상 철학에서 비롯된 이 새로운 신학 이론(하나님은 어떤 면에서 일시적이고 변할 수 있으며 감각적이라고 주장함)은 미국의 개신교 학자들, 특히 칼빈주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 예를 들어 존 파이퍼, 밀리아드 에릭슨, 노먼 가이슬러, 브루스 웨어, 톰 슈라이너, 존 프레임 같은 저명한 학자들에 의해 강력하게 비판을 받아 왔다.

가이슬러 박사는  미국 복음주의 신학협회가 ‘열린 신론’을 주창하는 클라크 피녹(Clark Pinnock)를 제명시키지 않는 것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2003년ETS를 탈퇴했다. 이렇듯 미국의 신학계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는 가이슬러 박사의 용기와 결단은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지방교회가 경건과 학식을 두루 갖춘 이러한 대학자를 “치우친 독선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으로 비난하는 이유는 가이슬러 박사에 대한 원한 감정 때문이다. 그리고 이 원한 감정은 가이슬러 박사가 지방교회의 소위 ‘삼일신론’을 ‘경륜적 양태론’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학회를 탈퇴한 가이슬러 박사가 모임에 초대 받을 이유는 무엇이고 갈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쓸데없는 인신공격과 명예훼손이 지방교회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로부터 물려 받은 영적, 정신적, 도덕적 유산이란 말인가! 지방교회여, 누워서 침뱉는 또한 스승들을 욕보이는 이런 악하고 쓸데없는 중상모략은 이제 그만 하라!

이렇게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친(親)지방교회 사람을 통해서 “[지방교회는] 모든 교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교제하는데에 아무런 담이 없다고 봅니다”(고오든 멜튼, 공개서한, 29쪽)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또 다음과 같은 리의 말도 인용하고 있다. “우리는 싸우거나 반대하거나 따지는 태도나 영을 갖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틀린 것이다.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는 영과 자세를 항상 지녀야 한다”(위트니스 리, 성경의 기본 계시, 80-81쪽). 지방교회의 위선적인 말과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위선의 악(惡)을 성경은 이렇게 책망한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약 3:10-11).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한 가이슬러 박사의 글(‘A Response to the Christian Research Journal’s Recent Defense of the “Local Church” Movement’)은 필자에 의해 완역(제목: 가이슬러가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한 이유 1 & 2)되어 현재 ‘교회와 신앙’에 게시되어 있음]

필자에 대한 교활한 인신공격의 사례

지방교회: “김홍기 목사는 본인의 성서침례교단 공식 친교 공간에서 지방 교회측과 대화시, 침례교만이 유일한 참교회로 믿고 장로교와 감리교와는 강단 교제를 끊은 랜드마크 침례교단을 극찬했다.”

반박: 소위 ‘랜드마크 침례교단’이라는 것은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랜드마크 주의’(배타적 침례교 역사관)를 신봉하는 소수의 침례교회들이 있을 뿐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몇몇 (랜드마크 주의를 표방한) 침례교회들은 적극적인 전도, 철저한 경건생활, 진리를 위한 성별(聖別), 강력한 설교 등의 큰 장점이 있다.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잭 하일스(Jack Hyles) 목사는 지난 세기의 수십 년간 세계에서 가장 큰 개교회와 주일학교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랜드마크 침례교인이다. 필자는 랜드마크 침례교인들의 장점을 존경하고 존중한다. 그러나 필자는 그들 중 하나는 아니다. 즉 랜드마크 침례교인들의 ‘배타적인 침례교 역사관’을 공유하지 않는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이전의 글(#2: ‘지방교회는 교리 사기를 전문하는 집단인가’)에 속해 있는 ‘배타적 침례교 역사관(Landmarkism)은 주류가 아니다’라는 제하의 단락을 참조하기 바람.

무분별한 분리주의와 성경적인 성별주의를 혼동하는 큰 바벨론적 사고방식

지방교회: “이처럼 김목사가 속으로는 오만한 분리주의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겉으로는 <모든 거듭난 믿는 이들을 조건없이 받아야 한다>는 ‘지방교회 원칙’을 독선적, 배타적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적반하장이 아닌가?”

반박: 지방교회는 필자를 무분별하고 무차별적인 분리주의자로 옭아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나 분리주의와 성별(聖別)주의는 다른 것이다. 분리주의는 정당한 혹은 부당한 명분과 이유를 다 가질 수 있지만, ‘성별주의’는 진리를 타협하지 않는 ‘성경적인 자세’를 가리킨다. 필자는 성경의 핵심적인 진리를 공유하는 사람들과는 교파에 상관 없이 폭넓게 교제하며 협력한다. 또한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고 포용한다. 그러나 성경의 근본적인 진리를 타협하는 사람들과는 동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로부터 성별(聖別)한다. 이것은 고결한 개혁자 존 칼빈과 위대한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의 신학적 입장이었다. 존 칼빈은 그리스도인의 일치와 성별(聖別)에 관한 그의 신학적 관점을 이렇게 표현했다.

분립과 이단의 혐의에 대한 방어(Defense against the charge of schism and heresy.) . . . 이제 이러한 친밀한 관계(communion)는 두 가지 끈, 즉 바른 교리(sound doctrine)와 형제 사랑(brotherly love)에 의해 함께 유지된다. . . . 그러나 이러한 사랑의 결합은 믿음의 일치(unity of faith)에 상당히 의존되어 있으므로 믿음의일치는 친밀한 관계의 시작과 끝 그리고 결국은 친밀한 관계의 유일한 규칙이 되어야 한다. . . . 실로 바울이 우리가 동일한 것을 느끼고 동일한 뜻을 가지라고 가르치는 곳 어디에서나, 바울은 즉시 ‘그리스도 안에’[빌 2:1,5] 혹은 ‘그리스도를 본받아’[롬 15:5]라는 말을 추가한다. 바울은 주님의 말씀을 떠나서는(apart from the Lord’s Word) 믿는 자들의 동의(agreement)는  없고 오직 악한 자들의 당 짓는 일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John Calvin, Institutes, 4.2.5, 1047).

그리고 로이드 존스는 영국교회 안의 자유주의의 심화와 에큐메니칼 운동의 확산을 심히 우려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일치와 성별에 관한 그의 신학적인 입장을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는 신앙고백(Confessions of Faith)을 굳게 믿는다. 우리는 신조(Creeds)를 확고하게 믿는다. 현재 우리를 기독교 교회(Christian church) 안에 있는 다수로부터 구별해 주는 것이 바로 거기[신앙고백과 신조]인 것이다”(Iain H. Murray, David Martyn Lloyd-Jones, The Fight of Faith 1939-1981, 433).

공식적인(official) 교회들 안에 있는 노골적인 불신앙이 표면화되고 있다. 복음주의자들의 사고 안에 미묘한 강조의 변화의 증거가 있다. 즉 창세기의 초반의 장들과 기적들에 관한 미진한(looser) 견해의 수용 및 서평에 있어서의 새로운 강조와 교리에 관한 무관심과 학식을 흡족해하는 경향이 있다. (Ibid., 433-34)

빌리 그래엄은 복음의 진리에 있어서의 일치가 없이 그리스도인의 일치에 관한 에큐메니칼 아이디어에 굴복했다. 그리고 그의 본보기는 필연적으로, 마틴 로이드 존스의 말을 빌리면, 복음주의자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 ‘사람들의 확신’을 흔들어 버리는 일에 있어서 하나의 영향력이 되었다. (Ibid., 440-441)

우리는 인간이고 하나님이라는 지극히 도발적인 신인합일론

지방교회: “김홍기목사는 예수님의 인성도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믿는가? . . . 지난 해 11월 미국 아틀란타에서 있었던 EPS와ETS연합 정기 학술 대회 때 폴 코펜과 공동으로 신화(神化)관련 논문을 청중들 앞에서 발표한 바 있다.”

반박: 지방교회는 필자가 제기하지도 않은 문제를 가지고 시비를 걸어 왔다.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을 피조물로 전락시킨 이단이다. ‘지방교회’는 창조주이신 예수님의 피조물화(化), 피조물인 사람의 창조주화(化)를 말하는 집단이다. 그러나 정통신학은 하나님과 사람 혹은 창조주와 피조물을 동격에 놓고 말하지 않는다. 앞으로 적절한 시점에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룰 것이다. 여기서는 공개 항의서에 있는 내용을 인용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

‘하나님은 그분의 신자들(His believers)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수 있다. “나는 신(divine)이고 인간이다.” 그리고 그분의 신자들은 다음과 같이 응답할 수 있다. “주님 당신을 찬양합니다. 당신은 신이고 인간이시며, 우리는 인간이고 신입니다.”’ Witness Lee, The Triune God to Be Life to the Tripartite Man (Anaheim: Living Stream Ministry, 1990), pp. 51-52

‘나의 부담은 당신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경륜과 계획은 그분 자신을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이며, 또한 그분이 창조하신 존재들인 우리를 ‘하나님’으로 만드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 그분은 “인간화되시고(man-ized)” 우리는 “신격화되는 것(God-ized)”이다. 마침내 그분과 우리, 또한 우리와 그분 모두가 하나님-사람이 되는 것이다.” Witness Lee, A Deeper Study of the Divine Dispensing (Anaheim: Living Stream Ministry, 1990), p. 54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났다. 사람으로부터 난 것은 사람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은 하나님이어야만 한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났다. 그러므로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이다. Ibid., p. 53

지방교회에서는 모여서 이런 노래를 함께 부른다. “우리는 하나님이 되리. 우리는 하나님이 되리. 우리는 하나님이 되리.” 달리 말하면, ‘피조물이 창조주가 되리. 피조물이 창조주가 되리. 피조물이 창조주가 되리’라고 합창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단 연구가인 서춘웅은 이 같은 교리를 ‘일원론과 만신론’으로 규정하고 이렇게 비판한다.

또 그는 교회와 그리스도에 관해 말하자면 수에서는 다르지만 본성에서 우리는 정확하게 같다고 한다. 삼위 하나님과 부활된 인간이 하나로 표현될 날이 오게 될 것이며, 마침내 하나님이 우리가 될 것이라고 한다. . . . 여기서 위트니스 리는 교회와 그리스도,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구별을 인정하지 않는다. 신앙의 핵심을 인간과 하나님의 연합과 합일로 봄으로써 하나님이 인간이 되고 인간이 하나님이 되는 신비주의적인 일원론과 만신론에 빠져들고 말았다. (서춘웅, 교회와 이단, 564).

설교로 전달된 이단 교리는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논리

지방교회: “청중을 상대로 전한 육성 메시지를 조직신학 책처럼 만들라는 식의 요구는 무리이다. . . . 삼위일체처럼 복잡한 주제를 일반 청중을 대상으로 하는 집회에서 조직신학 책 쓰듯이 다루기란 누구라도 쉽지 않다.”

반박: 원고에 매이지 않는 설교는 글에 비해 감성적이고 감각적이며 즉흥적이다. 경험이 풍부한 설교자들은 이러한 특징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글보다 설교에 대하여 관대한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설교가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단 교리를 전하는 것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비평가들은 위트니스 리의 설교의 약점과 실수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설교 안에 있는 지속적이고 일관된 이단 교리들을 비판하는 것이다. 성경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정통 설교자들과 학문이 높은 정통 신학자들의 눈을 속일 수는 없다. 서로의 시간과 수고의 낭비를 피하기 위해 구차하고 불필요한 변명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

가이슬러 박사에 대한 명백한 중상모략 

지방교회: “지방 교회측과 오랜 원한을 가진 일부가 문맥을 무시하고 떼어 내어 제공한 자료만을 토대로 함부로 이단시 하고 있는 노먼 가이슬러나, 그를 지지하는 김목사는  CRI로부터 공정한 이단 연구 하는 법을 배우기 바란다. . . . 사실 노먼 가이슬러는 지방 교회측을 연구한 적이 없다. 단지 소위 오픈 레터의 초안을 입안한 일부 사람이 위트니스 리의 책에서 앞뒤 자르고 문제가 될 부분만 떼어 낸 것만 보고 분노하며 ‘경륜적 양태론’ 운운 하고 있을 뿐이다. . . . 노먼 가이슬러는 앞뒤 자르고 왜곡된 내용만 보았기에 이단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이처럼 문맥을 무시하고 떼어낸 자료만 보고 이단시 하는 것을 엘리옷 밀러는 ‘나쁜 이단 사냥’이라고 표현했다. 지방 교회측은 물론이고 사실은 노먼 가이슬러(그리고 김홍기목사) 역시 이러한 ‘나쁜 이단사냥의 희생양’들일 뿐이다.”

반박: 노먼 가이슬러와 로즈가 쓴 글은 “지방교회 측과 오랜 원한을 가진 일부가 문맥을 무시하고 떼어 내어 제공한 자료만을 토대로” 한 것이 결코 아님을 지방교회 측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필자가 완역을 해서 ‘교회와 신앙’이 게시한 글(#7 & #8-‘가이슬러가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한 이유)을 누구나 한 번만 읽어 보아도 지방교회 측이 ‘지극히 의도적인 명백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가이슬러와 로즈는 CRI와 엘리옷 밀러의 자료 및 위트니스 리의 여러 저서들을 연구하고 분석해서 비판했으며 지방교회의 기관지의 편집장 캔거스에게 질문한 내용들을 글에 담았다. 공개 서한이 제기한 ‘논쟁적이고 모순되는 진술들(Controversial and Contradictory Statements) 5가지’를 열거했지만 그것들 역시 CRI가 그것들을 다룬 내용들을 철저하게 비판하며 인용한 것이다.

노먼 가이슬러와 로즈의 학식과 명성과 글은 지방교회가 얕잡아 볼만한 수준이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자를 폄하하고 매도하는 지방교회의 몰상식한 자세와 저급한 수준을 강력하게 규탄한다!  지방교회의 명백한 거짓말, 지극히 의도적인 중상모략, 무조건적인 자기 방어, 객관적인 판단 결여 등은 지방교회와의 대화가 결코 유익하고 생산적일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지방교회여, 당신들이 강조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들의 지극히 육신적인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분이시다! 당신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마키아벨리의 제자들’로 불리우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스도를 참되게 따르는 자들은 먼저 순결하고 정직해야 한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대상 29:17).

삼신론에 대한 완전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진술

지방교회: “‘<진술2> 삼위일체에 관한 전통적인 설명은 대단히 부적절하며 거의 삼신론과 같다. ... 그들은 아버지가 한 위이시며 다른 위이신 아들을 보내사 구속을 성취하셨고, 그 후에 아들이 또 다른 위이신 성령을 보내셨다고 생각한다.’ 해명: 삼위가 세 사람처럼 각각 분리되신 분이 아니라,  구별은 되나 분리되지 않는 분임을 전제한 말이다.”

반박: 소위 ‘전통적인 설명’을 하는 사람들은 “삼위가 세 사람처럼 각각 분리되신 분”이라고 믿고 있다는 말인가? 그들은 삼위가 “구별은 되나 분리되지 않는 분임”을 전제하지 않고 있다는 말인가? 위에서 지방교회가 한 말은 ‘삼위와 삼 본질’을 믿는 삼신론자들을 상대로 한 말이다. 그렇다면 ‘삼신론’이라고 해야지 왜 “거의 삼신론과 같다”고 말하는가? 지방교회는 “삼위가 세 사람처럼 각각 분리되신 분’으로 믿는 사람들을 ‘삼신론자’라 부르지 않고 ‘거의 삼신론을 믿는 사람,’ 즉 ‘준(準)삼신론자’라고 부르는가? 실제로 지방교회는 삼신론이 무엇인지를 정말 모른다. ‘삼위 삼 본질’과 ‘삼위 한 본질’의 차이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집단이다.

박형용 박사와 개핀 박사의 교리에 대한 노골적인 왜곡

지방교회: ‘아들이 아버지이시다’ 라는 말은 위 이사야 9장 6절에 근거하고, ‘주는 또한 성령이시다’ 라는 말은 고린도 후서 3장 17절에 근거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이러한 동일시는 ‘경륜적인’ 동일시이다. 참고로 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교수 리차드 개핀 박사, 박형용 박사(신학지남 1978년 봄호 28-39 쪽)도 동일한 관점을 견지한다.

반박: 참으로 개핀(Richard B. Gaffin, Jr.) 박사와 박형용 박사가 지방교회가 말하는 것과 동일한 개념을 말하는가? 천만에 말씀! 정통 신학자들이 ‘경륜적 동일시’라는 말을 한다면, 그것은 지방교회가 말하는 ‘경륜적 동일시’라는 개념과 전혀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다! 개핀 박사와 박형용 박사가 지방교회와 동일한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려면 지방교회가 말하는 것과 동일한 말을 하고 동일한 개념을 말해야 한다. 그러한 말과 개념을 직접 인용하며 글을 쓰지 않으면 (그리고 필자에게 박사들이 이에 관해 쓴 글 全文을 보내지 않으면) 이는 단지 지방교회의 속임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박형용 박사가 아직도 생존해 계시니 삼위일체에 관해 지방교회의 교리와 동일한 교리를 신봉하고 있는지를 직접 묻고 확인하여 박사의 말을 직접 인용하라. 이에 더하여 아래와 같은 말을 했는지 확인해 보고, 만약 있다면(물론 없다!) 박사들의 글을 직접 인용하라. 그렇지 않으면 지방교회의 말은 정통 신학자들의 교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들은 아버지로 불리워진다. 그러므로 아들은 아버지이심이 틀림없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분은 아버지로 불리워지시지만 참으로 아버지는 아니시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분이 아버지로 불리워지심에도 불구하고 어찌 아버지가 아니실 수가 있는가? ... 아무도 그분께 가까이 가지 못하는 곳에서(딤전 6:16)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다. 그분이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서 오실 때 그분은 아들이시다. 그래서 한 아들이 주어졌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영원하신 아버지”로 불리워진다. 우리에게 주어진 바로 이 아들은 바로 그 아버지이시다. Witness Lee, The All-Inclusive Spirit of Christ (Los Angeles: The Stream Publishers, 1969), pp. 4-5

하나님 전체, 삼일 하나님이 육신이 되셨다. Witness Lee, God's New Testament Economy (Anaheim: Living Stream Ministry, 1986), p. 230

‘아들은 아버지이시고, 아들은 또한 성령이시다. .. 그리고 아들이실 뿐 아니라 영원한 아버지이신 주 예수님. 우리의 주님은 아들이시고, 그는 또한 아버지이시기도 하다. 할렐루야! Witness Lee, Concerning the Triune God (Anaheim: Living Stream Ministry, 1973), pp. 18-19

그러므로 다음은 확실하다. 주 예수님은 아버지이시고 아들이시며 성령이시고, 그분은 바로 그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또한 주님이시다. 그분은 아버지이시고 아들이시며 성령이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주님이시다. Witness Lee, The Clear Scriptural Revelation Concerning the Triune God www.contendingforthefaith.org/responses/booklets/triune.html

본질(本質)보다 수(數)를 앞세우는 지방교회의 이단적 사고방식

지방교회: “건전한 양식이 있는 성도라면 한 하나님을 믿으면서 무려 약 4만개의 교단들로 갈라진 오늘날의 교계 현실을 가슴아파하고 안타깝게 여기지 김목사처럼 그것을 두둔하거나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는다.”

반박: 이러한 말은 마틴 로이드 존스를 비판할 때 사용하던 말과 동일하다. 1960년대에 로이드 존스는 영국의 복음주의자들이 진리를 타협하는 교파들을 떠나 진리를 수호하는 새로운 연합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항하여 한 성공회 신부가 마틴 로이드 존스의 견해를 비판한 것을 존 피터스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의 전반적인 논증은 이것이다. 즉 다른 새로운 혹은 독립된 그룹을 창설하는 것은 전세계에 걸쳐 교회가 이미 거의 21,000개나 교파를 이루고 있는 슬프고 우울한 상황을 더욱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게 만드는 것이 될 것이다.”(John Peters, Martyn Lloyd-Jones Preacher, 90).

그러나 관건은 교파의 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즉 성별인 것이다. 대한민국에 8만 개의 개신교회가 있기 때문에 또 다른 개신교회를 개척하지 말아야 하는가? 한국에 병원이 너무 많기 때문에 또 하나의 우수한 병원을 세우지 말아야 하는가? 천만에 말씀! 이처럼 질(質) 혹은 본질(本質)보다 수(數)를 앞세우는 것은 가치의 전도일 뿐 아니라 지방교회의 양태론적 사고(삼위일체의 본질보다 수를 중시함)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희생 제물의 크기나 숫자가 아닌 희생의 본질에 관심이 있으시다. 기드온은 전쟁에 나갈 군사들의 숫자에 관심을 두었지만 하나님은 전쟁을 위해 구별된 사람들, 즉 군사들의 본질에 관심을 두셨다.

공개 항의서와 가이슬러 박사에 대한 중상모략

지방교회: “그럼에도 오픈 레터 입안자들은 교묘하게 1차 자료의 중간 내용을 삭제하고 양쪽 끝을 이어서 짜집기한 후 “변절한 교회”가 마치 전체 기독교계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노먼 가이슬러는 지금도 이런 사실도 모른 채 분노에 사로잡혀 있고 . . . 사실 노먼 가이슬러는 지방 교회측을 연구한 적이 없다. 단지 소위 오픈 레터의 초안을 입안한 일부 사람이 위트니스 리의 책에서 앞뒤 자르고 문제가 될 부분만 떼어 낸 것만 보고 분노하며 ‘경륜적 양태론’ 운운 하고 있을 뿐이다.”

반박: 가이슬러와 로즈가 쓴 논문과 공개 항의서와 관련된 지방교회의 위와 같은 비판이 얼마나 일방적이고 부당하며 중상모략적인 것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필자의 이전 글(#6-‘1,650억을 요구한 지방교회의 참담한 패소’)의 일부를 여기 인용하도록 한다.

‘공개 항의서’는 역사적인 문서이다. 지방교회가 미국에서 활동을 시작한지 무려 반 세기 만에 나온 이 문서는 지방교회에 대한 미국과 세계의 복음주의자들의 깊은 우려와 강력한 항변을 담고 있다. 그러면 지방교회와 그들의 옹호자들은 복음주의자들의 ‘공개 항의서’에 대하여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과연 지방교회는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위와 같은 정중한 요청을 겸허한 마음으로, 다만 일부라도 수용했는가? 그들의 반응은, 한 마디로 말해서, 가장 거칠고 강경하며 오만하고 간교하며 철두철미한 배척이었다. 그래서 가이슬러와 로즈는 지방교회를 가리켜 “저렇게 일탈한, 회개할 줄 모르는 단체”(Geisler and Rhodes, 15)라고 비판했던 것이다.

지방교회와 그들의 옹호자들은 ‘공개 항의서’를 소위 ‘나쁜 마녀 사냥’의 표본이요, 불공정하기 짝이 없는 문서요, 부정확하기 이를 데 없는 문서로 매도하기 위해 정당치 못한 갖은 구실을 붙여 ‘공개 항의서’의 신빙성을 깎아 내리려 노력해왔다. 이들의 노력은 그러나 헛수고에 불과했다. 적어도 ‘공개 항의서’의 서명자들의 경우에는 그러하다. 70여명의 서명자들은 이제 ‘공개 항의서’를 조목조목 비판한 CRI의 참회록(‘우리가 틀렸었다’)을 가지고 있다. 또 CRI의 참회록을 강력하게 비판한 가이슬러와 로즈의 반박문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이슬러와 로즈의 반박문을 비판한 지방교회의 4권의 소책자들(Brothers, Hear Our Defense, DCP Press, 2011)도 가지고 있다.

서명자들은 세계적으로 탁월한 학자들이고 베테랑 이단 전문가들이다. ‘공개 항의서’가, 지방교회와 그들의 옹호자들이 함부로 주장하는 바처럼, 그들의 지성과 양심에 반하는 문서라면 서명자들은 이미 오래 전에 서명을 철회했을 것이다. 행동은 말보다 더 진실하다. 행동은 또한 말보다 더 강하다. ‘공개 항의서’와 관련하여 지방교회의 요란하고 교활하며 파렴치하고 사기적인 말 잔치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시간과 정력의 낭비일 뿐이다!

 ‘사위일체 하나님’이 성경적이라고 강변하는 황당무계함

지방교회: “김목사는 지방 교회의 입장이 터무니 없다는 예증으로 위트니스 리가 ‘우리는 이제 삼일 하나님은 사위일체 (four-in-one-God)이시다’라고 한 가이슬러의 비판을 소개했다. 그러나 삼위 하나님과 그분의 믿는 이들이 하나되는 것은 주 예수님의 마지막 간절한 기도 내용이다(요17:21). 지극히 성경적인 내용이다.”

반박: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이 아닌 ‘사위일체(四位一體) 하나님’이 지극히 성경적이라는데 무슨 할 말이 더 있겠는가? 여기서는가이슬러와 로즈의 다음과 같은 글을 다시 인용하는 것으로 족하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이심으로, 우리는 이제 삼일 하나님은 ‘사위일체 하나님’(‘four-in-one’ God)이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넷은 아버지, 아들, 성령, 그리고 몸이다. 신적인 삼위일체의 셋은 혼동되거나 분리될 수 없고, 삼위일체도 분리되거나 혼동될 수 없다’(Lee, A Deeper Study, 203-204). 아무리 많은 해석학적 회전(hermeneutical gyrations)도 이 신학적 부조리(absurdity)를 풀 수 없다. 분명히, 리는 그리스도의 몸(교회)과 하나님이 하나가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어떤 피조물이나 피조물들일지라도 삼위일체의 구성원들과 하나가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정통 삼위일체의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지방교회의 법정 다툼의 결과에 관한 완전한 왜곡

지방교회: “김목사는 미국에서의 지방교회 역사를 다루면서 . . . 존 앵커버그와 존 웰던이 하비스트 하우스를 통해 출간한 <신흥종교 백과사전>을 언급했다. . . . 특히 마지막 사례[존 앵커버그와 존 웰던]에서는 출판사와 저자들은 자신들이 ‘지방 교회 측을 이단이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발뺌 함으로 교리적인 분쟁으로 몰아가 재판을 끝냈다. 이로서 그들은 명예훼손 혐의에서 벗어났고, 지방 교회측은 이단이 아님이 상대방의 자백에 의해 밝혀졌으니 결국 모두 윈윈한 셈이다.”

반박: 지방교회는 재판에서 1,650억을 보상으로 요구했으나 3번 다 패소했다. 텍사스 주 항소법원과 대법원 및 미연방대법원은 연거푸 존 앵커버그와 존 웰던의 손을 들어 주었다. 윈윈 한 것이 아니라 지방교회는 세 번 싸워 세 번 다 참패를 당한 것이다. 지방교회는 요구했던 보상금을 1센트도 받지 못했다. 윈윈을 했다니? 지방교회 측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미국의 최고 법원 세 곳은 다 지방교회의 패소를 선고했다. 지방교회는 완패를 당한 것이다! 이제 지방교회는 다시는 함부로 자기를 비판하는 복음주의자들을 상대로 고소하는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가이슬러와 로즈가 이것에 관해 쓴 내용을 여기 인용하도록 한다.

CRI는 지방교회를 신학적으로 혹은 사회학적으로 이단(cult)이라 칭하는 합헌성에 관한 텍사스 주 항소법원의 결정을 거부한다. 사실 그 판결은 모든 정통적이고 보수적이며 복음주의적인(all orthodox, conservative, and evangelical)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큰 승리였다. 우리가 (텍사스 주 항소법원의 결정을 인정했던) 텍사스 주 대법원에 보낸 우리의 법정 의견서에서 지적했듯이, 이것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비정통적인 신앙으로부터 그들[이단]을 구별하는 것에 의해서 우리 자신의 정통의 범위를 정의하는 우리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교회는 바르게(rightly) 그러나 마지못해서 다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지방교회는 신학적인 의미에서 ‘이단’이라는 말은 종교적인 자유의 한 표현에 불과하다. 이것은 국교설립금지조항에 의하여 당연히 보호되는 종교적인 의견의 한 유형이다. ...” (p. 9, 강조가 더해짐).

앵커버그와 웰든 및 하비스트 하우스가 지방교회를 사회학적인 의미에서 중상모략적으로 딱지를 붙였다는 그들의 나머지 고소에 대하여, 응당 그래야 했었던 것처럼, 법정은 이것 역시 거부했다. 그들[앵커버그와 웰든]은 지방교회에 대해 거짓된 혹은 중상모략적인 고소를 어디에도 하지 않았다. 참으로 CRI가 그들[지방교회]의 주장을 지지하여 말할 수 있는 최선은 앵커버그와 웰든이 지방교회를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정확한” 진술들을 했다는 것이다, 또한 “부정확한 주장들이 인격 살인과 따라서 명예를 훼손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43). 그러나 이러한 근거 위에서라면 내가 아는(수많은 찬송가 작사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의 신학자들과 그리스도인 저술가들이 감옥에 들어가야만 한다! (Geisler & Rhodes, A Response to the Christian Research Journal’s Recent Defense of the “Local Church” Movement,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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