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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0억을 요구한 지방교회의 참담한 패소
[ 이단연구 / 김홍기 ] 지방교회(위트니스 리) 교리 비판 ⑥
2016년 02월 29일 (월) 12:46:14 김홍기 목사 yesusarang@shaw.ca

김홍기 목사 / 캐나다록키침례교회 담임, 교회부흥성장연구원장

   
▲ 김홍기 목사

지방교회는 1920년 워치만 니(1903-1972)의 회심과 더불어 시작되어 세 가지 다른 시기를 거치며 오늘에 이르렀다. 이전의 글들은 지난 77년간의 지방교회의 역사, 특히 교리 논쟁사를 다루었다. 첫째 글은 워치만 니의 회심과 투옥에 이르는 기간을 조명했고, 둘째 글은 위트니스 리(1905-1997)가 대만과 미국에서 활동한 기간에 관해 논했다. 여기서는 셋째 시기, 즉 위트니스 리의 사망에서 현재에 이르는 시기를 다루기로 한다.

3. 위트니스 리의 사망에서 현재에 이르는 시기 (1997-2016)

정통과 이단 시비로 얼룩진 처절한 교리 전쟁으로 긴 세월을 보낸 지방교회, 이제 그들은 카리스마적인 두 지도자가 없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했다. 니와 리의 보살핌 밑에서 77년을 커 온 지방교회는 이제 그들 없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들은 과연 새 술을 새 가죽부대에 담을 것인가? 아니면 옛 술을 새 가죽부대에 담을 것인가? 21세기 초에 지방교회가 취한 일련의 행동들은 그들이 옛 술을 새 가죽부대에 담아 놓기로 결정했음을 보여준다.

위트니스 리가 사망한 후 약 4년이 지난 2001년 12월 14일, 지방교회는 다시금 자신의 비판자들을 고소하기에 이른다. 이번에는 미국의 한 저명한 복음주의 방송인인 존 앵커버그(John Ankerberg)와 미국의 한 유능한 복음주의 저술가인 존 웰든(John Weldon) 및 하비스트 하우스 출판사(Harvest House Publishers)가 그 고소 대상이었다. 지방교회가 이들을 고소한 이유는 앵커버그와 웰든 및 하비스트 하우스가 1999년에 출판한 731페이지에 달하는 <이단 종파들과 새 종교들에 관한 백과사전>(Encyclopedia of Cults and New Religions) 안에 수록된 한 페이지 반 분량에 달하는 지방교회에 관한 글 때문이었다. 이 소송은 미국의 교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는데, 지방교회가 16년 만에 다시금 벌인 소송 사건이었을 뿐 아니라 1억 3천 6백만 불(약 1천 6백 50억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보상금 때문이었다. 가이슬러와 로즈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 사건을 바라보던 당시의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의 느낌을 잘 대변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 고소가 성공적이었다면 두 단체 모두를 파산시켰을 것이다”(Geisler and Rhodes, A Response to the Christian Research Journal’s Recent Defense of the “Local Church” Movement, 1).

2006년 1월 5일, 텍사스 주 항소법원(한국의 고등법원에 해당됨)은, 법정은 ‘종교적인 논쟁’에 관해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 선언하며, 사실 심리 없는 판결을 위한 피고의 발의 안을 거절했던 하급 법원의 결정을 번복하고 피고의 무죄를 선고했다(Elliott Miller, We Were Wrong, 12). 그러자 지방교회는 2006년 텍사스 주 대법원에 항소했고, 이어 2007년에는 미연방대법원에 항소를 했지만, 두 법정 모두 기독교의 교리적인 문제를 다루기를 거부함으로 패소한다.

‘회유책을 쓰는 사람’(The Mind Benders)이라는 책 때문에 소송을 걸어 승소했고(1983년), 하나님-사람(The God-Men)이라는 책으로 인하여 다시금 소송을 벌여 승소했던(1985년) 지방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이는 쓰라린 참패가 아닐 수 없다. 이 재판의 결과에 대하여 지방교회는 아직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지방교회와 그들의 열혈 옹호자들은 이 재판의 결과에 대하여 가시 돋친 불평과 원망을 지금도 쏟아 낸다. 그러나 미국의 텍사스 주 항소법원과 대법원 및 미연방대법원 세 곳이 동일한 판결을 내렸다면 이제는 비난을 그치고 깨끗하게 승복하는 것이 정정당당한 자세이다. 필자는 지방교회가 승소했던 앞선 두 번의 재판들에 관한 법정의 판단을 존중했을 뿐 아니라, 그 문제가 된 책들을 쓴 사람들을 책망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방교회와 그들의 옹호자들은 중립에 선 미국 최고의 베테랑 법관들의 객관적인 판단을 받아들일 뜻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지방교회와 그들의 옹호자들은 항상 자신들이 옳다고 말한다. 회개할 줄 모르는, 자신들만이 의롭다고 주장하는 현대판 바리새인들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반면에 미국의 복음주의 정통교회를 대변하는 다수의 이단 대항 사역자들은 이 판결을 크게 환영한다. 가이슬러와 로즈의 다음과 같은 진술은 이들의 생각을 잘 대변해 준다.

대신에 텍사스 대법원은 앵커버그와 하비스트 출판사에 대한 그들의 고소에 동의하지 않았다. 지방교회는 미연방대법원에 항소했으나 이 역시 실패했다. 이것은 우리가 “지방교회 운동과 텍사스 주 대법원: 이단대항 운동을 위한 큰 승리” (www.normgeisler.com에서 글들을 찾아볼 수 있음)라는 제목을 단 우리의 글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복음주의적 정통을 보존하기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과 이단 대항 운동을 위한 큰 승리이다. CRI는 지방교회를 신학적으로 혹은 사회학적으로 이단(cult)이라 칭하는 합헌성에 관한 텍사스 주 항소법원의 결정을 거부한다. 사실은 그 판결은 모든 정통적이고 보수적이며 복음주의적인(all orthodox, conservative, and evangelical)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큰 승리였다. 우리가 (텍사스 주 항소법원의 결정을 인정했던) 텍사스 주 대법원에 보낸 우리의 법정 의견서에서 지적했듯이, 이것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비정통적인 신앙으로부터 그들[이단]을 구별하는 것에 의해서 우리 자신의 정통의 범위를 정의하는 우리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교회는 바르게 그러나 마지못해서 다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지방교회는 신학적인 의미에서 ‘이단’이라는 것은 종교적인 자유의 한 표현에 불과하다. 이것은 국교설립금지조항에 의하여 당연히 보호되는 종교적인 의견의 한 유형이다 ...” (9쪽, 강조가 더해짐). 앵커버그와 웰든과 하비스트 하우스가 지방교회를 사회학적인 의미에서 중상모략적으로 딱지를 붙였다는 그들의 나머지 고소에 대하여, 응당 그래야 했었던 것처럼, 법정은 이것 역시 거부했다. 그들[앵커버그와 웰든]은 지방교회에 대해 거짓된 혹은 중상모략적인 고소를 어디에도 하지 않았다. 참으로 CRI가 그들[지방교회]의 주장을 지지하여 말할 수 있는 최선은 앵커버그와 웰든이 지방교회를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정확한” 진술들을 했다는 것이다, 또한 “부정확한 주장들이 인격 살인과 따라서 명예를 훼손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43). 그러나 이러한 근거 위에서라면 내가 아는(수많은 찬송가 작사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의 신학자들과 그리스도인 저술가들이 감옥에 들어가야만 한다! 지방교회의 소송들에 대한 CRI의 옹호에 관하여 마지막 언급을 하나 해야 한다. 앵커버그에 대한 지방교회의 수억 불 고소는 “실수”(44)였다고 동의하고 있으면서도, 그들[CRI]은 “지방교회는 항상 상대 측이 그리스도인 형제들로서 그들을 만나기를 절대적으로 거부했을 때 최후의 방편으로 법적 행동을 취했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지방교회의 고소를 정당화시키는 데까지 나아갔다. 앵커버그와 하비스트 하우스에 의해 제공된 (상급 법원들을 확신시켰던) 그 반대되는 사실에 기반을 둔 증거에도 불구하고, 성경적인 근거 위에서 이러한 종류의 고소를 정당화시키는 일은 매우 어렵다. 고린도전서 6장은 이러한 종류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분쟁에 관하여 분명하다. 마태복음 18장은 우리가 따라야 할 유형을 설정한다. 그리고 이 유형 안에서 최후의 수단은 그 분쟁을 세상 법정이 아닌 “교회”로 가져가는 것이다(17절). 고린도전서 6장에서 결론은 이것이다.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7절). 게다가 CRI는 이러한 종류의 신학적 혹은 도덕적 쟁점과, 한 회사가 정당한 재정적 차용을 취할 수 있는 다른 우호적인 혹은 재정적인 고소 사이에 존재하는, 도덕적(혹은 성경적) 동등성을 보여주려고 헛되이 시도한다. ‘우리는 가볍게 혹은 이유 없이 하지 않았다”(46)고 주장함으로, 또한 다른 길이 없을 때 미국에서 고소를 하도록 강요 받았다고 설득력 없이 주장함으로 자신들의 고소를 정당화시키려는 지방교회의 시도는 공허한 소리일 뿐이다.

사실은 아무도 지방교회가 고소를 하도록 강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자신들의 자유 의지로 고소를 한 것이다. CRI가 바울이 자신의 생명을 포함했던 거짓된 고소에 대해 그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가이사에게 호소한 경우(46)를 이용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을 정당화시키려는 필사적인 시도이다. 지방교회가 취하기를 거부했던 다른 대안이 항상 있었다. 말하자면, 고소를 중단하는 것과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고소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을 중단하고, 성경의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거짓된 진술들을 인정하고 수정하며, 다른 그리스도인 단체들을 향해 “영적 음행”이니 “사탄적”이니 하는 가혹한 진술들을 사용한 것을 사과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Geisler and Rhodes, 14-5)

21세기를 시작하며 지방교회는 이단이라는 오명을 씻고 정통교회로 인정을 받기 위하여 강온 전략을 동시에 구사한다.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스는 적극적인 로비 활동을 통하여 그리스도인 서적상 협회 및 복음주의 그리스도인 신용조합에 가입했고, 2002년에는 복음주의 그리스도인 출판사 협회에 가입하는 일에도 성공한다. 물론 지방교회의 이러한 시도는 리의 다음과 같은 글에 반영된 그들의 정체성과 가치관에 비추어 볼 때 이율배반적인 것이다.

“이것은 치열한 전쟁이다. ... 우리는 전통적인 신학의 사소한 것들이 아닌 근본적인 것들을 반박하고 수정해야 한다. ... 오늘날 우리는 유대교, 가톨릭, 개신교, 기독교를 대항하여 주님의 회복의 증언을 한다 .... 이것은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특별한 사명이다”(Witness Lee, The Governing and Controlling Vision in the Bible, Chapter 3, Section 4) 

리가 선언한 바와 같이, 지방교회는 정통교회와 정통 신학을 반박하고 수정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종파이다. 달리 말하면 정통교회와 정통 교리는 지방교회의 원수인 것이다. 따라서 지방교회가 원수들이 만든 단체의 일원이 되는 것은 지방교회의 정체성과 가치에 반하는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세계의 70여 명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지방교회에 보내는 ‘공개 항의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을 한다.

우리는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스와 ‘지방교회’가 복음주의적인 교회들과 사역들을 중상 비방하는 위트니스 리의 다음과 같은 말을 계속 홍보하면서 복음주의 교회들과 사역들의 연합체에 회원으로 가입하려는 모순되고 정당화할 수 없는 시도를 비난한다. (An Open Letter To the Leadership of Living Stream Ministry and the "Local Churches"

이러한 항의에 대해 지방교회는 교활한 답변을 내놓는다. 즉 이러한 단체들(그리스도인 서적상 협회나 신용조합이나 출판사 협회 등)은 상업적인 단체들로서 자신들은 이러한 단체들에 ‘상업적인 목적’으로 가입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주의자들의 정당한 비판을 교활하게 빗겨가는 속임수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지방교회는 기회만 나면 이러한 단체들에 가입하게 된 것을 마치 지방교회가 정통교회의 주류에 속하게 된 것인 양 거짓 선전하는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중적이고 기만적인 행동을 지속하는 지방교회는 비둘기 같이 순결한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일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제자들은 어린 양을 닮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아니라 권모술수에 능한 마키아벨리(Machiavelli)의 제자들인 것이다! 지방교회의 이러한 위선과 거짓된 행태는 순전한 어린 양의 형상이 아닌 ‘옛 뱀의 본질’을 반영한다. 따라서 우리는 70여 명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다음과 같은 비판에 깊이 공감한다.

만약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스와 ‘지방교회’의 지도자들이 복음주의적인 그리스도인 교회들과 단체들과 사역들을 정당한 그리스도인 독립체들로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이 복음주의적인 교회들과 사역들의 모든 협의체들 안에 있는 그들의 회원 자격을 공개적으로 포기해 줄 것을 요청한다. (An Open Letter To the Leadership of Living Stream Ministry and the "Local Churches"

지방교회가 획책하는 정통교회 안으로의 침투 전략은 CRI(Christian Research Institute-크리스천연구소)를 포함한다. CRI는 미국에서 지방교회를 최초로 비판한 단체이고, CRI의 비판은 지방교회를 향한 광범위한 비판 여론에 불을 당겼다. 따라서 CRI의 비판을 잠재우는 것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발하는 것이다. 지방교회는 CRI를 상대로 적극적으로 로비를 했고, 그 결과 CRI는 재평가를 결정하고 6년간의 재조사에 들어간다. 그리고 2009년 자신들의 이전의 평가를 뒤집고 ‘We Were Wrong’(‘우리가 틀렸었다’)이라는 참회록(연구보고서)을 발표하면서 지방교회를 정통으로 선언한다. 이것은 지방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극적인 반전 드라마요 쾌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방교회가 기쁨으로 환호하기에는 시기상조다. 왜냐하면 CRI의 입장 변화는 극적이지만, 지방교회의 엄격한 비판자들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CRI의 재평가는 근본적인 오류와 의문들로 점철되어 있는 이단 교리 및 종파를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문서(‘We Were Wrong’)를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CRI의 참회록(‘우리가 틀렸었다’)은 2007년 발표된 70여 명의 복음주의자들의 ‘공개 항의서’(An Open Letter To the Leadership of Living Stream Ministry and the "Local Churches")를 비판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밀러(CRI 연구보고서의 주 저자)의 글은 ‘공개 항의서’를 지방교회의 주장을 의도적으로 왜곡할 목적을 가지고 문맥을 무시한 채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몇몇 진술들을 뽑아 나열해 놓은, ‘나쁜 이단 사냥의 표본이 될 만한 파렴치한 문서’로 형편 없이 매도한다. 밀러의 글에는 지방교회를 비판하는 정통 복음주의자들과 변증가들에 대한 증오심과 편견이 여과 없이 드러나 있다. 밀러의 글은 그러나, 한국의 지방교회의 비판자들의 안목으로 볼 때, 성경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여러 가지 오류와 모순을 노정하고 있는 문제투성이의 글이다. 앞선 글(일반 양태론보다 위험한 지방교회의 양태론)에서 필자가 상세한 예를 들어 지적한 바와 같이, 밀러의 글은 신학적으로 균형 잡힌 글이 아니라 명백한 모순을 덮어 버린, 혹은 적당히 얼버무린, 이단 교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글인 것이다. 밀러의 글은 CRI가 지방교회의 이단 교리의 일부를 용인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CRI는 지방교회와 더불어 정통교회를 혼동케 하고 분열시키는 일에 앞장 서고 있다! 또한 지방교회와 더불어 정통 삼위일체 교리를 부패시키며 정통 교리에서 벗어난 길을 걸어가고 있다! 필자는 CRI 참회록(‘우리가 틀렸었다’)의 문제점들을 이전의 글에서 다루었고 이후의 글에서도 지속적으로 다룰 것이다.

그러면 CRI 참회록에 대하여 ‘공개 항의서’에 서명한 세계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가이슬러와 로즈의 반박문(‘A Response to the Christian Research Journal’s Recent Defense of the “Local Church” Movement’)은 이들의 입장을 잘 대변하고 있다. 두 저자의 반박문은 총 17페이지(전문은 완역하여 다음 글에 게재함)에 달하는데, CRI 보고서와 지방교회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져 철저하게 비판한다. 그 중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1) 지방교회를 반대한 대법원의 최종 결정에도 불구하고, 2) 지방교회를 반대하는 이단 대항 운동의 다수의 견해에도 불구하고, 3) 많은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공개 항의서에 있는 명확한 요구들에 대해 지방교회가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일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4) 본인의 거실에서 Hank Hanegraaff(CRI 대표)에게 이 길을 가지 말라고 본인(노먼 가이슬러)이 간곡히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5) CRI가 오랜 동안 지방교회를 ‘일탈한,’ ‘이단적(heretical)’이 아니라면 ‘광신적 종교 집단(cultic)’(49)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6) CRI가 지방교회를 정당화하는데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이전의 기본적인 자료들을 지금도 소유하고 있다고 CRI가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CRI가 지방교회에 대한 완전하고도 철저한(full-scale) 방어를 시작했고, 지방교회를 ‘견고하게 정통인’(47), 여러 모로 ‘본이 되는 그리스도인들의 단체’(29)라고 말하는 데까지 나아갔다는 것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다”(Geisler and Rhodes, 2). 

한편, CRI는 저렇게 일탈한, 회개할 줄 모르는 단체를 “견고하게 정통적”(47)이며 많은 점에서 “본이 되는 그리스도인 단체”(29)라고 말하면서 [지방교회를] 거의 전면적으로 정당화시키는 일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실로 그들의 모든 노력은 자기 고백(self-confession)이라기 보다는 자기 정당화(self-justification)인 것이다. 나의 친구들이자 그렇지 않았다면 좋은 이단 대항 연구가들(엘리옷 밀러와 그레첸 파산티노 콜번)이 자신들이 한 때는 비정통적이라고 믿었던, 그리고 대부분의 이단 대항 학자들(most countercult scholars)이 여전히 그렇게 [비정통적인 것으로] 믿고 있는 한 무리를 과도하게 방어하는 일에 그들의 훌륭한 재능들을 사용하도록 어떻게 설득이 되었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수수께끼가 여전히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 게다가 우리는 이 나라[미국]의 이단 대항 단체들 중 가장 유명한 단체 하나가 이 일탈한(aberrant) 또한 이단적인(cultic) 단체를 거의 절대적으로 정당화하는 작업을 하면서 그 단체의 이전의 높은 신뢰성을 희생시킬 수 있음을 지켜보며 매우 실망하고 있다. (Geisler and Rhodes, 15) 

지방교회의 ‘이단 탈피 전략’은 신학 교육기관과 언론 기관을 포함한다. 지방교회는 명망 있는 신학교의 인정을 받기 위해 미국의 풀러 신학대학원(Fuller Seminary)을 택해서 활발한 로비 활동을 펼쳤다. 그 결과 지방교회는 풀러 신학대학원으로부터 그들이 원하는 정통 인정을 받아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지방교회가 마키아벨리적 사고방식으로 정치쇼(political show)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지방교회는 교파와 관련된 모든 교회들과 그리스도인 단체들을 ‘영적 음행,’ ‘큰 바벨론,’ ‘음녀,’ ‘배교’ 등과 같은 가혹한 표현으로 정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음녀’로 정죄하는 자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갖은 교태를 부리며 그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을 유혹하는 행위는 ‘음녀’의 행실과 같은 낯뜨거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음녀’ 지방교회여, 다른 사람들을 고치려 하기 전에 먼저 당신들의 ‘교리적 음행’부터 버리라! 당신들이 정죄한 ‘음녀’로부터 인정을 받으려 구걸하는 당신들의 행위가 수치스럽지도 않은가? 지방교회가 로비를 한 상대인 풀러 신학대학원 역시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하여 가이슬러와 로즈의 주장을 들어 보자.

CRI는 풀러 신학대학원이, 지방교회의 교리들에 관한 이른바 철저한 조사 후에, “지방교회의 가르침과 그 회원들의 행실은 모든 본질적인 면에서 참된 역사적, 성경적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나타낸다”고 선언했다(2006년 1월 5일에 발표된 지방교회를 위한 서신에서)는 것을 언급한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에 관한, 문서에 의해 충분히 입증된, 풀러 자신의 정통으로부터의 일탈에 비추어 보면, 이것은 거의 찬사가 아니다. 풀러의 교수들 중 하나인 폴 주이트(Paul Jewett)를 수년 간 조사한 후에, 풀러 신학교는 그가 정통이라고 결론 짓고 그를 그들의 교수로 존속시켰다. 그런데 폴 조이트는, >남자와 여자로서의 사람>(Man as Male and Female)이라는 그의 책에서, 사도 바울은 그가 참된 것이라고 확언했던 바에 관해서 틀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만약 (B.B. Warfield나 ICBC “시카고 선언”이 확언한 바와 같이) “성경이 확언하는 것은 곧 하나님이 확언하시는 것”이라면, 그들의 교수 폴 조이트는 [성경의] 무오성(inerrancy)을 부인한 셈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풀러 신학대학원이 ‘설립될 당시의 교리적 성명’(founding doctrinal statements)으로부터 무오성을 제거한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또한 풀러 신학교는 정통의 수호자로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며, 이단들과 일탈한 종교들에 관해 정교한 분별력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도 않다. 다른 신학대학원들, 예를 들어 달라스, 덴버, 그레이스, 매스터즈, 트리니티, 혹은 웨스트민스터 같은 신학대학원들이 지방교회의 혐의를 풀어주었더라면 사람들은 더 잘 들었을 공산이 크다. 진실은 이러한 종류의 분석을 하는데 가장 익숙한 부류의 그리스도인들, 즉 이단 대항 운동(countercult movement)이 지방교회 운동을 대항하여 소리 높여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Geisler and Rhodes, 7)

2007년, 지방교회가 1천 6백 50억을 요구하는 재판을 막판까지(텍사스 주 항소법원과 대법원 및 미연방대법원) 끈질기게 벌인 후 참담한 패배를 하고 나자, 세계의 복음주의자들은 지방교회의 다음 행보에 대해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70여 명의 복음주의 학자들과 이단 변증가들이 연대 서명한 ‘공개 항의서’(an open-letter)인 것이다.

동년 2007년, 7개국을 대표하는 70여 명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연대 서명한 공개 항의서(An Open Letter to the Leadership of Living Stream Ministry and the "Local Churches")를 지방교회로 보낸다. 전례가 없는 이런 공개 항의서에서 서명자들은 이렇게 서두를 꺼낸다. “고 위트니스 리에 의해 설립된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스와 ‘지방교회’ (주님의 회복으로도 알려진)는 수십 년간 잘 알려진 그리스도인 기관들과 지도자들과 법적, 신학적 논쟁을 해왔다. 고소와 다툼의 역사를 감안하여 우리 서명인들은 이러한 공개적인 호소를 한다. 다음과 같은 위트니스 리의 발언들은 그리스도인의 본질적인 가르침과 상치되거나 그 가르침을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스와 ‘지방교회’의 지도자들이 이러한 선언들이나 이와 비슷한 선언들을 부인하거나 출판하는 일을 중단해 줄 것을 정중하게 요청한다.”

이 공개 항의서의 서명자들은 현금(現今)의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인사들이다. 이들 중에는 이 시대의 최고의 변증학자인 노먼 가이슬러,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 총장 페이지 패터슨, 달라스 신학대학원 교수 대럴 보크, 리버티침례신학대학원 학장 엘군 카너, 탈봇신학대학원 신학과장 알란 곰즈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외에도 다수의 신학대학원 학장들과 교수들 및 여러 이단 연구가들과 변증 사역 지도자들이 함께 하고 있다.

‘공개 항의서’가 다루는 4가지 주제는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본질, (2) 인간성의 본질, (3) 복음주의 교회들과 교파들의 적법성, (4)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고소. 아래는 필자가 번역한 ‘공개 항의서’의 전문(全文)이다.

공개 항의서의 본문 바로 위편에는 이 문서에 관한 간략한 소개가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

이 서신은 하나님에 관한 교리와 사람에 관한 교리에 관해 그들의 창시자인 위트니스 리에 의해 만들어진 논쟁적인 진술들을 거부하거나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공개적인 호소이다. 이 서신은 또한 “지방교회”(the “local churches”)와 리빙 스트림(Living Stream)이 리에 의해 만들어진 복음주의적인 그리스도인 교파들과 단체들을 폄하하는 진술들을 포기할 것을 요청한다. 마지막으로 이 서신은 ‘지방교회’와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스 지도자들이 비판들과 분쟁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 개인들과 단체들을 대항해서 고소들과 소송 위협을 사용하는 것을 중단할 것을 호소한다.

공개 항의서

-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스와 ‘지방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고 위트니스 리에 의해 설립된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스와 ‘지방교회’ (주님의 회복으로도 알려진)는 지난 수십 년간 잘 알려진 그리스도인 기관들과 지도자들과 법적, 신학적 논쟁을 해왔다. 고소와 다툼의 역사를 감안하여 우리 서명인들은 이러한 공개적인 호소를 한다.

다음과 같은 위트니스 리의 발언들은 그리스도인의 본질적인 가르침과 상치되거나 그 가르침을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스와 “지방교회”의 지도자들이 이러한 선언들이나 이와 비슷한 선언들을 부인하거나 출판하는 일을 중단해 줄 것을 정중하게 요청한다.

하나님의 본성(nature)에 관하여

아들은 아버지로 불리워진다. 그러므로 아들은 아버지이심이 틀림없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분은 아버지로 불리워지시지만 참으로 아버지는 아니시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분이 아버지로 불리워지심에도 불구하고 어찌 아버지가 아니실 수가 있는가? ... 아무도 그분께 가까이 가지 못하는 곳에서(딤전 6:16)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다. 그분이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서 오실 때 그분은 아들이시다. 그래서 한 아들이 주어졌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영원하신 아버지”로 불리워진다. 우리에게 주어진 바로 이 아들은 바로 그 아버지이시다. Witness Lee, The All-Inclusive Spirit of Christ (Los Angeles: The Stream Publishers, 1969), pp. 4-5

하나님 전체, 삼일 하나님이 육신이 되셨다. Witness Lee, God's New Testament Economy (Anaheim: Living Stream Ministry, 1986), p. 230

삼위일체에 관한 전통적인 설명은 대단히 부적절하며 거의 삼신론과 같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합쳐졌을 때(joined with us), 하나님은 뒤에 남겨지신 것이 아니었고 그리스도도 보좌에 남아 계시지 않았다. 이것이 기독교가 주는 인상이다. 그들은 아버지가 한 위이시며 다른 위이신 아들을 보내사 구속을 성취하셨고, 그 후에 아들이 또 다른 위이신 성령을 보내셨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생각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은 보좌에 남아 계시고 성령이 신자들 속에 오신 것이다. 신자들이 기도할 때, 그들은 아들의 이름으로 아버지 앞에 고개 숙여 기도하도록 가르침을 받는다. 하나님을 이렇게 분리된 위들(separate persons)로 가르는 것은 성경의 계시가 아니다. Witness Lee, Life Messages (Anaheim: Living Stream Ministry, 1979), p. 164

‘아들은 아버지이시고, 아들은 또한 성령이시다. .. 그리고 아들이실 뿐 아니라 영원한 아버지이신 주 예수님. 우리의 주님은 아들이시고, 그는 또한 아버지이시기도 하다. 할렐루야! Witness Lee, Concerning the Triune God (Anaheim: Living Stream Ministry, 1973), pp. 18-19

그러므로 다음은 확실하다. 주 예수님은 아버지이시고 아들이시며 성령이시고, 그분은 바로 그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또한 주님이시다. 그분은 아버지이시고 아들이시며 성령이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주님이시다. Witness Lee, The Clear Scriptural Revelation Concerning the Triune God
www.contendingforthefaith.org/responses/booklets/triune.html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은 분리된 세 인격들이나 세 하나님들이 아니다. 그들은 한 하나님, 한 실제, 한 인격(one person)이다.’ Witness Lee, The Triune God to Be Life to the Tripartite Man (Anaheim: Living Stream Ministry, 1970), p. 48

인간의 본성에 관하여

‘그리스도는 두 가지의 본성, 즉 인간적인 본성과 신적인 본성을 가지고 계시다. 우리 또한 그와 동일하다. 우리는 인간적인 본성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신적인 본성으로 덮여 있다. 그분은 하나님-사람(God-man)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사람들(God-men)이다. 그분은 금으로 덮여 있는 나무로 만들어진 궤이고, 우리는 금으로 덮여 있는 나무로 만든 판자들이다. 수에 있어서 우리는 다르지만, 본성에 있어서 우리는 틀림없이 동일하다.’ Witness Lee, The All-Inclusive Christ (Anaheim: Living Stream Ministry, 5th ed. 1989), p. 103

‘하나님은 그분의 신자들(His believers)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수 있다. “나는 신(divine)이고 인간이다.” 그리고 그분의 신자들은 다음과 같이 응답할 수 있다. “주님 당신을 찬양합니다. 당신은 신이고 인간이시며, 우리는 인간이고 신입니다.”’ Witness Lee, The Triune God to Be Life to the Tripartite Man (Anaheim: Living Stream Ministry, 1990), pp. 51-52

‘나의 부담은 당신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경륜과 계획은 그분 자신을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이며, 또한 그분이 창조하신 존재들인 우리를 ‘하나님’으로 만드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 그분은 “인간화되시고(man-ized)” 우리는 “신격화되는 것(God-ized)”이다. 마침내 그분과 우리, 또한 우리와 그분 모두가 하나님-사람이 되는 것이다.” Witness Lee, A Deeper Study of the Divine Dispensing (Anaheim: Living Stream Ministry, 1990), p. 54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났다. 사람으로부터 난 것은 사람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은 하나님이어야만 한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났다. 그러므로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이다. Ibid., p. 53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이심으로, 우리는 이제 삼일 하나님은 사위일체 하나님(‘four-in-one’ God)이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넷은 아버지, 아들, 성령, 그리고 몸이다. 신적인 삼위일체의 셋은 혼동되거나 분리될 수 없고, 삼위일체도 분리되거나 혼동될 수 없다.’ Ibid., pp. 203-204

복음주의적인 교회들과 교파들의 정당성에 관하여

우리는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스와 ‘지방교회’가 복음주의적인 교회들과 사역들을 중상 비방하는 위트니스 리의 다음과 같은 말을 계속 홍보하면서 복음주의 교회들과 사역들의 연합체에 회원으로 가입하려는 모순되고 정당화할 수 없는 시도를 비난한다.

‘주님은 배교한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 교파들로 구성된 기독교 세계 안에 그분의 교회를 세우고 계신 것이 아니다. 이 예언은 주님의 회복(the Lord’s recovery)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으며, 주님의 회복 안에서 참된 교회의 설립이 성취되고 있다.’ Witness Lee in The New Testament Recovery Version, note 184 (Matthew 16:18) (Anaheim: Living Stream Ministry, 1991), p. 99
http://online.recoveryversion.org/FootNotes.asp?FNtsID=639

배교한 교회는 주님의 말씀으로부터 일탈했고 이단적이 되었다. 주님의 말씀으로 어느 정도 회복이 된 개혁교회는 루터교회, 웨슬리교파, 영국 성공회, 장로교, 침례교 등과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자신을 교파화해서 주님의 이름을 부정하고 있다. 주님의 말씀으로부터 일탈하는 것은 배교이다. 주님의 이름 외에 그 어떤 다른 이름으로 교회를 교파로 나누는 것은 영적 음행이다. Witness Lee in The New Testament Recovery Version, note 83 (Revelation 3:8) (Anaheim: Living Stream Ministry, 1991), p. 1256.
http://online.recoveryversion.org/FootNotes.asp?FNtsID=8759

나는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기독교 세계의 부정적인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지 않은지 우려한다. 우리 모두는 오늘날 주님이 우리를 완전히 회복시켜 주시고 기독교 세계 밖으로 이끌어 내실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Witness Lee, The History of the Church and the Local Churches (Anaheim: Living Stream Ministry, 1991), p. 132

로마 가톨릭 교회를 포함한 모든 교파 안에는 구원받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들은 주님께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속해 있는 교파들의 조직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교파의 조직들은 적절한 교회의 삶에 관한 하나님의 경륜을 파괴하는 사탄적인 조직을 세우기 위해 사탄에 의해서 사용되어 왔다. Witness Lee, "Message Thirty-Four" in The Life-Study of Genesis (Anaheim: Living Stream Ministry, 1987), Vol. 1, p. 464

‘우리는 기독교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기독교 세계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교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은 큰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선언이다. 기독교는 무너졌다. 기독교 세계는 무너졌다. 가톨릭교는 무너졌다. 그리고 모든 교파들은 무너졌다. 할렐루야!’ Witness Lee, The Seven Spirits for the Local Churches (Anaheim: Living Stream Ministry, 1989), p. 97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도 충분치 않다. 심지어 교회를 아는 것으로도 충분치 않다. 우리는 지방교회들(the churches which are local)을 아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만약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일에 첨단을 걷는다면, 현재는 지방교회들의 시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Ibid., p. 23

우리는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스와 ‘지방교회’의 지도자들이 이러한 선언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선언들을 거부하고 이러한 것들을 출판하는 것을 중단해 줄 것을 정중하게 요청한다.

복음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과의 소송에 관하여

만약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스와 ‘지방교회’의 지도자들이 복음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을 동료 그리스도인들로 여긴다면, 우리는 그들이 비판들과 분쟁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복음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을 대해 소송을 일으키거나 소송을 위협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거부해 주기를 요청한다. 신약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있는 분쟁들을 해결하기 위해 소송을 하는 것을 강력하게 제지하고 있다(고전 6:1-8을 보라).

만약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스와 ‘지방교회’의 지도자들이 복음주의적인 그리스도인 교회들과 단체들과 사역들을 정당한 그리스도인 독립체들로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이 복음주의적인 교회들과 사역들의 모든 협의체들 안에 있는 그들의 회원 자격을 공개적으로 포기해 줄 것을 요청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스와 ‘지방교회’의 지도자들이 비평들에 답하기 위해서나 그리스도인 단체들이나 개인들과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소송을 일으키거나 소송을 위협하는 관행을 중단해 줄 것을 정중하게 요청한다.

위에 있는 ‘공개 항의서’는 역사적인 문서이다. 지방교회가 미국에서 활동을 시작한지 무려 반 세기 만에 나온 이 문서는 지방교회에 대한 미국과 세계의 복음주의자들의 깊은 우려와 강력한 항변을 담고 있다. 그러면 지방교회와 그들의 옹호자들은 복음주의자들의 ‘공개 항의서’에 대하여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과연 지방교회는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위와 같은 정중한 요청을 겸허한 마음으로, 다만 일부라도 수용했는가? 그들의 반응은, 한 마디로 말해서, 가장 거칠고 강경하며 오만하고 간교하며 철두철미한 배척이었다. 그래서 가이슬러와 로즈는 지방교회를 가리켜 “저렇게 일탈한, 회개할 줄 모르는 단체”(Geisler and Rhodes, 15)라고 비판했던 것이다. 지방교회와 그들의 옹호자들은 ‘공개 항의서’를 소위 ‘나쁜 마녀 사냥’의 표본이요, 불공정하기 짝이 없는 문서요, 부정확하기 이를 데 없는 문서로 매도하기 위해 정당치 못한 갖은 구실을 붙여 ‘공개 항의서’의 신빙성을 깎아 내리려 노력해왔다. 이들의 노력은 그러나 헛수고에 불과했다. 적어도 ‘공개 항의서’의 서명자들의 경우에는 그러하다. 70여명의 서명자들은 이제 ‘공개 항의서’를 조목조목 비판한 CRI의 참회록(‘우리가 틀렸었다’)을 가지고 있다. 또 CRI의 참회록을 강력하게 비판한 가이슬러와 로즈의 반박문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이슬러와 로즈의 반박문을 비판한 지방교회의 4권의 소책자들(Brothers, Hear Our Defense, DCP Press, 2011)도 가지고 있다. 서명자들은 세계적으로 탁월한 학자들이고 베테랑 이단 전문가들이다. ‘공개 항의서’가, 지방교회와 그들의 옹호자들이 함부로 주장하는 바처럼, 그들의 지성과 양심에 반하는 문서라면 서명자들은 이미 오래 전에 서명을 철회했을 것이다. 행동은 말보다 더 진실하다. 행동은 또한 말보다 더 강하다. ‘공개 항의서’와 관련하여 지방교회의 요란하고 교활하며 파렴치하고 사기적인 말 잔치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시간과 정력의 낭비일 뿐이다!

CRI의 참회록(연구보고서)은 ‘공개 항의서’를 비판한 것으로, ‘공개 항의서’가 발표된 지 2년 후인 2009년에 나왔다. 필자는 이전의 글들에서 CRI의 참회록(‘We Were Wrong’)을 강력히 비판해왔다. 이러한 비판은 앞으로도 간단없이 계속될 것이다. CRI의 참회록은 대학자인 가이슬러와 베테랑 변증가인 로즈에 의해서 강력하게 비판을 받았는데, CRI 측은 이들의 비판에 대해 아직도 답을 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키고 있다. CRI는 가이슬러와 로즈뿐 아니라 정통교회를 향해 적절한 답을 해야 할 큰 빚을 지고 있다. 반면에 지방교회가 가이슬러와 로즈의 반박에 대해 재반박했다는 소책자들(Brothers, Hear Our Defense)을 읽어 보면 현자 앞에 서 있는 ‘악동’을 연상케 한다. 또한 대학자 앞에 서서 동문서답, 현문우답을 반복하고 있는 ‘낙제 학생’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검사 앞에 서 있는 ‘닳고 닳은 사기꾼’을 기억나게 한다. 이 마지막 표현이 조금 지나치다고 생각된다면 지방교회의 주장을 직접 살펴 보고 판단하면 된다.

예를 들어 지방교회는 소책자 2권(‘Concerning the Divine Trinity’)에서 “주는 영이시니”(고후 3:17)라는 말씀을 다루며 아들과 성령은 동일한 분이라고 주장한다(Brothers, Hear Our Defense, vol. 2, 81-89). 지방교회의 견해에 의하면, 제2위격이신 아들과 제3위격이신 성령은 동일한 분(person), 즉 동일한 위격(person)이시다. 따라서 지방교회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면, 아들과 성령의 위격의 구별은 사라진다. 이것은 삼위의 구별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성경에 반하는 이단 사상이며, 성경에 기초한 정통 삼위일체론의 관점에서 볼 때 확실한 이단 교리이다. 지방교회가 “주[아들]는 영[성령]이시다”(고후 3:17)라는 구절을 해석할 때 아들과 성령은 본질상 동일한 분이라고 말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위의 구절을 해석하며 아들과 성령의 위격을 구별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아들과 성령은 동일한 분(person)이라고 주장하면, 또한 실제로 그렇게 주장하기 때문에, 지방교회는 아들과 성령의 위격을 구별하지 않는, 일위일체론, 즉 양태론 이단이 되는 것이다.

   
▲ 출처: (Norman Geisler, Systematic Theology, Vol. 2: God, Creation, p. 298)

필자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강조해서 지적을 해도 지방교회는, “주[아들]는 영[성령]이시다”라는 말씀을 해석하면서, 아들과 성령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분이지만 위격상으로는 다른(구별된) 분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아들과 성령은 동일한 분(person), 즉 동일한 위격(Person)이시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대답을 계속 회피하고 딴청을 부리는가? 결국 지방교회는 아들과 성령의 위격의 다름(구별됨)을 분명히 말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방교회의 관점에서 볼 때 삼위(three Persons)는 참으로 세 분(three person), 즉 ‘세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지방교회의 말처럼 삼위가 삼신론을 뜻한다고 말하면서 삼위를 믿는다고 말하면, 자기 말에 스스로 얽혀, 삼신론자가 되는 것이다(참조. 필자의 이전 글 ‘일반 양태론보다 위험한 지방교회의 양태론’). 이런 면에서 지방교회는 확실한 삼신론자들이다. 또한 일위일체를 주장할 때, 즉 아들과 성령은 본질적으로 동일하시지만 위격상으로는 다른(구별된) 분이라고 말하지 않을 때, 지방교회는 분명히 양태론자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삼신론과 양태론을 동시에 주장하면서 지방교회는 혼돈의 ‘큰 바벨론’이 된 것이다.

지방교회 측은 필자의 지난 글(‘일반 양태론보다 위험한 지방교회의 양태론’)에 대한 반론 #5 (지방교회의 반론들은 필자의 연재 글이 마치면 공개될 것이고 필자는 이에 대해 철저하게 반박을 할 것임)을 보내오며, 필자의 글을 “허수아비 때리기”로 묘사했다. 달리 말하면 지방교회가 믿는 실상이 아닌 허상을 만들어 비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방교회여, 당신들이 말한 것을 당신들이 허수아비라고 칭하면 당신들은 ‘허수아비를 믿고 있는 자들’이란 말인가? 당신들 눈에는 가이슬러와 로즈 및 필자가 지적한 당신들 교리의 ‘모순’이 허수아비로 밖에 보이지 않는가? 미혹하기 위해 딴청 부리지 말고 필자 및 가이슬러와 로즈가 지적한 모순에 대해 직접적으로 상세하게 만족할 만한 답을 제시하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은 ‘영원한 양태론 이단’으로 존속할 것이다.

가이슬러와 로즈 및 필자는 지방교회가 ‘삼위의 상호내주’를 주장하기 때문에 이단이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삼위의 상호내주’를 믿는다. 그러나 지방교회의 ‘공간적 상호내주’가 아닌 ‘본질적 상호내주’를 믿는다. 우리는 또한 지방교회와 달리 삼위의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상호내주’ 하시나, 위격으로는 분명히 ‘구별’되어 계심을 믿는다. 달리 말하면, ‘삼위의 본질적 상호내주’는 위격의 혼동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에 지방교회의 ‘공간적 상호내주론’은 위격의 ‘혼동’을 가져온다. 지방교회는 이것을 ‘경륜적 동일시’라고 말하며 정당화시키려 하지만, 삼위의 하나님은 경륜적(기능적 혹은 사역적 혹은 활동적)으로 나타내실 때에도 위격에 있어서 분명히 ‘구별’되신다! 따라서 지방교회가 말하는 ‘삼위의 상호내주’는 삼위의 구별됨을 무시하고 철폐함으로 일위일체론이 되는 것이며, 따라서 필자는 지방교회의 상호내주론을 ‘이단적 상호내주론’이라 칭하는 것이다. “삼위를 혼동하지 말며, 본질을 나누지 말라(Neither confounding the Persons: nor dividing the Substance.).” 아타나시우스 신조의 경고이다!

지방교회는 ‘기능적 동일시’를 믿는다고 주장한다. 즉 삼위의 하나님은 경륜적으로 볼 때, 즉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 아들이 아버지, 혹은 아들이 성령과 동일시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주[아들]는 영[성령]이시다”(고후 3:17)라고 말씀했을 때, 아들과 성령은 동일한 분, 동일한 위격이 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삼위의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볼 때(본질적 삼위일체-essential Trinity)도 경륜적으로 볼 때(경륜적 삼위일체-economic Trinity)도 분명히 구별되신다. 왜냐하면 삼위의 하나님은 경륜적으로 볼 때도, 즉 삼위의 하나님은 일하실 때에도, 구별되시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실 때, 즉 삼위의 하나님이 일하실 때 아버지와 아들은 동일한 위격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다른 위격이신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보내시고 아들은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오셨으나, 아버지와 아들은 다른(구별된) 위격이시라는 것이다. 즉 ‘경륜적인 삼위일체’(economic Trinity)에 있어서도, 즉 삼위의 하나님이 일하실 때에도, 아버지와 아들은 분명히 다른 분(위격)이신 것이다. 물론 두 분은 보내시는 일과 보냄을 받으신 일을 각각 맡으시나 본질상 한 분으로서 결코 분리되실 수 없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성령, 아들과 성령은, 본질적으로나 경륜적으로나(일하실 때나), 확실히 구별된 위격이시다. 삼위는 본질적으로나 경륜적으로나 결코 동일시되지 않는다! 이것이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이다. 그러나 지방교회는 이것을 확실히 부정한다. 따라서 지방교회는 명백한 이단인 것이다!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아들은 아버지시요 아버지는 아들이시라고 말씀하신 적이 결코 없다(가이슬러와 로즈, 7). 또한 신약에서 예수님은 200번 넘게 아버지를 당신이 아닌 다른 분으로 구별하셨다(Ibid., 7). 그리고 신약의 같은 구절 안에서 50번 넘게 아버지와 아들이 구별된다(롬 15:6; 고후 1:4; 갈 1:2-3; 빌 2:10-11; 요일 2:1; 요이 3)(Ibid., 7). 반면에 지방교회는 (경륜적으로 볼 때) 아들은 아버지이시고, 아들은 성령이시라고 말한다. 물론 이제 우리는 이러한 주장이 비성경적인 것이며 이단 교리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지방교회는 이러한 자신들의 이단 교리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정통신학자들을 끌어 들인다. 다시 말해서 정통신학자들이 자신들의 이단 교리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처럼 거짓으로 꾸미는 것이다. “주[아들]는 영[성령]이시다”(고후 3:17)라는 말을 한 후, 여러 정통신학자들의 이름을 (무려 50여 명이나) 나열하며, 이들도 자신들과 동일한 주장(‘경륜적으로 볼 때 하나님은 일위이심’)을 하고 있는 것처럼 거짓으로 포장을 한다(Brothers, Hear Our Defense, vol. 2, 89-90). 이 명단 가운데에는 찰스 핫지(Charles Hodge) 같은 19세기의 위대한 장로교 신학자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핫지는 지방교회와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다. 그는 아들이 성령이시라는 것은 위격상이 아닌 본질상 그렇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명확히 한다.

“주는 성령이시다,” 즉 그리스도는 성령이시다. 그들은 하나이시고 동일하시다. 하나이시고 동일한 위격이 아니라, 하나이시고 동일한 존재(Being)이시다. . . .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시라”고 주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의미로서의 존재를 말한다. 이것은 본질과 능력의 동일함을 말한다. 그리스도는 성령이시다”(Charles Hodge, A commentary on 1 & 2 Corinthians, 73).

찰스 핫지를 포함하여 정통신학자들을 지방교회의 양태론 이단 교리의 들러리로 세운 지방교회는 정통 신학자들의 이름만을 악용한다. 그들은 정통신학자들의 위와 같은 가르침의 진수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러한 행위는 정통을 이단으로 둔갑시키는 일이요, 거의 ‘교리 사기’에 준하는 일이다. 이것이 가이슬러와 로즈의 반박을 재 반박했다는 소책자들(Brothers, Hear Our Defense)에 있는 내용이다. 이제는 필자가 왜 지방교회의 소책자와 관련해서 지방교회를 ‘검사 앞에 서 있는 닳고 닳은 사기꾼’ 같다고 표현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교회의 속임수는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의 글들을 보면 곳곳에 이런 속임수로 충만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마틴 로이드 존스나 빌리 그래엄 같은 정통 설교자들이 마치 일위일체를 주장하는 것처럼 거짓으로 꾸민다. 그러나 로이드 존스나 그래엄 같은 정통 삼위일체론자들이 하나님을 한 인격(a person)이라고 지칭한 것은 ‘일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지, 정, 의를 소유하신 ‘인격적인 분’(a personal being)으로 묘사한 것이다(이에 관해서는 이후의 글에서 자세히 다룰 것임). 이것은 그들의 진술이 들어 있는 문맥을 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David Martyn Lloyd-Jones, God the Father, God the Son, 55-6).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이드 존스나 빌리 그래엄 같은 정통 설교자들을 마치 ‘일위’를 주장하는 양태론자들인 것처럼 둔갑시켜 놓은 지방교회의 행위는 확실한 ‘교리 사기’이고, ‘학문적인 범죄’인 것이다! 지방교회는 진리를 논하기 전에 먼저 진실해져야 한다. 지방교회와 같은 ‘마키아벨리의 제자들’은 순결한 하나님의 말씀을 논할 자격이 전혀 없다! 지방교회가 이와 같은 파렴치하고 기만적이고 사기적인 자세를 계속 견지한다면, 지방교회의 지난 100년의 처절한 교리 전쟁사는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며, 이후의 교리 전쟁사도 피투성이로 기록될 것이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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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김홍기 목사 소개
미국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철학박사(Ph.D.)
미국 탈봇신학대학원(Talbot School of Theology) 목회학 석사 및 목회학 박사(M.Div., D.Min.)
교회부흥성장연구원 원장
캐나다록키침례교회 담임목사
WWW.21CHURCH.COM (신천지 관련 동영상 설교 63편, 지방교회 관련 동영상 설교 4편, 여러 이단 관련 동영상 설교가 유투브에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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