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혁 간의 대결과 세대간의 갈등, 집단 이기주의 등 우리 사회의 갖가지 병리현상을 보는 국민들은 참담하기만 하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속에 정치자금 수수로 구속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이 사회를 바르게 이끌어 가는 원칙과 대안은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공동대표이자 고려대학교 법학과 교수인 김일수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 해법을 들어본다. ‘법정신으로 본 사회와 교회의 제문제’라는 주제로 우리 사회와 한국교회의 여러 문제를 진단한 이번 인터뷰는 9월 2일 고려대학교 신법학관에서 진행됐다. <편집자주>

▶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이래 우리 사회는 보혁 갈등을 비롯해 한꺼번에 분출되고 있는 온갖 갈등으로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갈등이 있다는 것은 곧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이 있음을 뜻합니다. 보수와 개혁의 갈등에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지도자들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일단 대통령이 되었으면 국가 경영을 위탁받았기 때문에 모든 계층과 모든 지역, 모든 견해를 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계를 향해 열린 자세가 필요한 대통령이 이런 통합적인 리더십을 보이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지도자의 이런 모습 때문에 정치적인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혼란기에 충격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방관자 내지 적대자가 되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도 6개월이 지나 정치 실험은 끝났습니다. 이제는 열린 마음의 정치지도자, 통합적인 정치지도자로서 자신을 다시 정립을 해야 합니다. 대통령이 됐으니 국가 권력으로는 정상이지만 끊임없이 공부해야 합니다. 실패를 통해서 다시 배우고 또 열린 마음으로 자신을 고쳐나가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내년의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당이 여러가지 갈등을 부추기리라 봅니다. 신당 움직임 등 많은 변수들이 혼란스럽게 돌출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때 대통령은 정치안정을 위해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당장의 강한 통치력을 위해 정치적인 갈등이나 싸움에서 한쪽 편이 되어주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닙니다.

▶ 대통령에 대한 지적을 해주셨는데, 그렇다면 항시적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보수 세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보수가 우리 사회에 안정과 질서를 형성해온 주요한 축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그런 보수세력들이 과거의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세력을 집결하고 대립각을 세우고 시대에 맞지 않도록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라면 문제입니다. 성경으로 말하면 애굽을 그리워하는 백성들처럼 현 시대 우리의 삶의 방식이나 생각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과거를 그리워합니다. 우리는 출발했고 우리 민족이 바라는 어떤 가나안 복지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행진을 하면서 놓치기 쉬우나 가치 있는 것들, 보존해야 할 것들을 무시하거나 잃어버린 뒤에는 후회해도 그것을 회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시행착오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건강한 목소리를 내는 그런 보수는 우리가 환영해야 합니다. 나도 그런 보수는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당장에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변화를 거부한 채 기득권을 챙기기 위해 버티는 불건전한 의미의 보수는 자성하고 깨어져야 합니다. 통일, 남북 문제를 놓고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갈등들은 어떤 의미에서 구시대적인 잔재가 엿보여서 위험스럽고 또 걱정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 우리 나라의 현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 사회가 경제성장을 하는 배경에 자기 희생이 가장 컸던 계층이 노동자 계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노동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갖고 세계적인 노동자 계급으로서의 모범적인 규범을 몸에 맞추기 시작한 지가 10년이 채 안 된다고 봅니다. 아직은 노동자들을 흘긴 눈으로 보기보다는 동정어린 눈으로 보아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때일수록 노동조합의 지도자들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노동자들을 위한다면 항상 계급적인 이데올로기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국민적이고 시민적인 의식과 그들의 삶의 일정한 가치기준에 눈높이를 맞추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제 10년도 안 된 노동운동을 두고 귀족화 되었다고 아우성입니다. 100년의 깊은 역사를 가지고 노동자들이 정치의 축을 이루고 있는 영국이나 유럽의 여러 현실을 본다면 우리나라는 갓난 아이에 불과합니다. 갓난 아이의 행보를 가진 노조 활동들이 시민의 지지를 잃어버리고 다시 주저앉게 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노동운동 지도자들의 부주의 때문입니다.

아직도 이 운동은 더 나아가야 되고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해 아직도 개선해야 될 많은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 점을 생각한다면 시민들을 의식하고 자신들의 행보, 집단행동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노동자들이 사용자들과 마주 앉아서 전투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다 되는 것 같지만,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는 지는 우를 범하기 쉽습니다.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느냐, 국민들을 설득시키는 노동운동이냐 하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 대북송금 특검에 대한 찬반 양론이 아직도 분분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특별검사가 대북송금 문제를 수사한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평화정착과 대북협상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말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연약함과 아픔을 덮어주고 퍼주는 정지작업이 필요합니다. 미국이 말만 가지고 국제정치의 리더가 된 것은 아닙니다. 연약한 부분에 가서 자신들이 목숨도 바쳐주고 퍼주기를 수없이 합니다.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받은 구호물자가 이런 것입니다. 그렇듯 외교문제나 남북문제에 있어서 무엇을 이끌어가려면 그같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윤리적인 일정한 기준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큰 일을 하면서 떡고물을 챙기려 하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챙기려 하는 것들은 고질적인 병폐입니다. 남북관계 진전과 정상회담을 위해 돈 들어 간 것이 잘못이 아니라 그것을 빌미로 불건전한 자금을 챙기려 한 것이 잘못입니다. 그런 것을 규명해야 할 과제에 있어서 특별검사는 여러 번 해도 옳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언론, 건설적 비판 아쉽다”
기독인, NGO활동 통해 법의 평등성 회복해야
정상회담 잘했으나 대북송금 비공개는 잘못

김대중 정부의 평화정착 노력, 남북정상회담은 여러 가지 칭찬할 점이 있습니다. 그 점은 역사가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막후에 깨끗하지 못했던 것을 그냥 놔둔다면 그것은 오염된 정치입니다. 대북송금에서 일정한 과정마다 가능한 한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협조와 동의를 구하지 못한 것이 김대중 정부의 큰 성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과 같이 빛 바랜 결과에 이르게 한 것 같습니다. 국민에게 과정을 설명하고 또 의회를 통해 어느 부분은 비공개적으로 해 나갔다면 흑막 뒤에서 돈 챙기는 심부름꾼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 우리나라의 여러 법들이 약자보다는 강자를 위해 기능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법과 원칙을 어떻게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십니까?

조세법도 그렇고 사립학교법도 다 돈 있는 사람들이 로비하고 활용하고 해서 국가 제도가 강자편으로 간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일반 국민들은 대처할 힘도 없이 그런 제도 속에 길들여졌습니다. 이제 오늘날 가진 자들의 막강한 로비력이나, 법과 제도의 추진력에 맞설 수 있는 NGO 그룹의 괄목할 만한 활동, 시민차원의 일정한 로비들이 필요합니다. 한 표 한 표 의식해서 활동한다면 충분히 국회의원들을 감동시키거나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로비의 힘으로 적극적인 데몬스트레이션을 한다면 큰 목소리를 안 내고도 국회의원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또 시민들이 깨어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시민윤리적 차원에서 교육해 나간다면 우리 사회의 제도적 불평등을 시정하고 나쁜 제도들을 고쳐나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 도박을 법으로 금지하는 정부가 카지노나 로또 사업을 하는 것은 정책의 이중성을 보이는 것일 뿐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가가 일을 하면서 목적사업을 위해 골몰하다 보면 그런 파편화된 이중성, 삼중성으로 갈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항상 통제할 수 있는 것이 권력 분립의 원칙에 있는 일정한 견제균형이고 시민들의 깨어 있는 감시입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침묵하는 다수를 대신해서 깨어 있는 소수들이 항상 목소리를 내어주는 것입니다.

경마나 복권을 해오다 무의식적으로 도박이 일반화되어 금지하는 것이 예외처럼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자성을 하고 로또 열풍을 반대하고 원칙적으로 도박을 금지하라고 하니까 여당에서 손질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깨어 있는 시민의 자세를 외쳐주어야 합니다. 복음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민적인 삶의 위태로운 부분을 크리스천들이 그들의 삶의 영역에서 깨어서 소리를 내주어야 합니다.

교회만 잘 출석하는 것으로 성숙한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복음적인 삶을 위하여 건전한 시민단체 NGO 활동에도 참여해야 합니다. 너무 교회 중심적인 틀로만 양육하고 사회에 관해서 눈을 감도록 교육하는 것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사회 활동을 통해 정부의 이중성이나 삼중성을 감시하고 고쳐나갈 수 있습니다. 사회 질서는 양심에 따른 아우성들에 의해서 개선될 수 있습니다. 구미의 학자들도 ‘법적인 소리지름을 통해서 사회적 개혁이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한국사회에 종교지도자들이, 목회자들과 교회가 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 작금의 언론에 대한 말들이 많습니다. 자유와 책임이라는 기본적인 관점에서 일반 언론과 교계 언론의 현주소를 어떻게 보십니까?

일반 언론도 반성해야 할 점이 많이 있지만 교계 언론도 반성해야 할 점이 많습니다. 교계 언론의 기자들이 소명감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것을 보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교회는 치부에 대해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감시를 받으면 건강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건설적인 비판이 있고 파괴적인 비판이 있습니다. 언론이 가지고 있는 비판기능이라는 것은 함께 세우기 위한 사랑과 연민에 의한 것이지 무너뜨리거나 증오를 자아내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 비판은 파괴적인 비판입니다. 항상 언론은 건설적인 비판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기독교 언론이 교회를 비판할 때는 증오와 갈등을 조장하는 자세가 아니라 아픈 상처를 나누고, 함께 세워가기 위한 건설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오늘의 아픔이 내일에는 치유되는 지평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 한국교회는 사회 복지의 많은 부분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체계적이지 못하는 등 미흡한 점들이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교회는 노인복지를 비롯해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자폐아 문제까지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교회주의로 복지 문제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사회 단체나 타종교보다도 많은 비용을 들여 큰 역할을 하면서도 국민 곁으로 다가가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고 있는 것을 느끼게 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지만, 그러나 한국 기독교의 이미지 제고라는 것은 다음 세대들을 복음으로 인도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모르게 선행을 하지만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그런 것들을 기구화해서 체계적으로, 조직적으로 해 나가면서 사회적 이미지 제고를 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끄럽게도 낙태문제나 이혼가정 아이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고아수출을 통해 해결해 나가고 있습니다. 국민소득 1만불 정도의 수입을 가진 이 땅에서 6·25 전쟁 직후에나 했던 행태를 지금도 해야 합니까? 교회들이 버려진 아이들과 그들 가정 문제 등에 관해서 감당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사회의 음지는 항상 있습니다. 교회는 음지를 찾아 자기 희생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 끝으로 전국 교회 앞에 하고 싶은 말씀은?

30년간 교회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참 많이 변했다는 것입니다. 경건성이 오히려 어디에 있는지 염려할 만큼 변했습니다. 교회가 사회에 무관심하다 보니 세속의 물결에 전혀 대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교회는 사회를 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에 대해서 능동적이며 창조적인 변화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 교회가 앞으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