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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애 / 목사 아내 칼럼 ] 쓰레기봉투와 목사님
2016년 02월 04일 (목) 11:09:57 장경애 사모 webmaster@amennews.com

장경애 사모 /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사모

어느 50대 중반의 목사님과 대화하던 중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목사님은 집안일을 도와주시나요?” 이렇게 묻자 목사님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요” 라고 대답했다. 목사님의 즉각적인 ‘아니요’라는 반응에 내 마음은 몹시 불편했다. 순간 세 명의 자녀를 둔 그 목사님 아내는 얼마나 힘들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항의를 하려는데, 그 다음 말씀이 나를 머쓱하게 했다. 그 말씀인 즉 자신은 시간 되는대로 집안일을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집안일을 돕느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말한 것은 집안 일이 여자(아내)만의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부부 공동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집안일을 하는 것은 돕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었다. 목사님에게서 그런 말을 듣고 보니 굳어지려했던 순간의 내 마음이 다 풀어지는 것은 물론 그 목사님이 너무도 멋있게 보이고 존경심마저 들었다.

과연 그 목사님은 자신이 말씀하신 것처럼 얼마나 집안에서 많은 일을 하시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목사님들이 많을 것이라는 상상과 함께 또 그렇게 하시는 목사님들이 많아질 것을 마음 속으로 주문해 보았다.

그 목사님은 중대형 교회의 담임 목사로 목회에 충실하신 목사님이시다. 그렇기에 목회 일만으로도 무척 바쁘신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멋진(?)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나도 한 사람의 목사의 아내로, 교회 일로 인하여 아무리 바빠도 집안일을 자신의 일처럼 하시는 그 목사님의 아내는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날, 교회로 출근하는 남편 목사에게 꽉 채운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가지고 나가 버려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집이 아파트 맨 꼭대기 15층이기에 어차피 1층 밖으로 나가서 쓰레기봉투 집합 장소에 놓고만 가면 되니까 별 다른 생각 없이 부탁한 것이고 남편 목사 역시 아무런 생각 없이 들고 나갔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우리 교회 성도 몇 집이 우리와 같은 라인에 살고 있었는데 그 날, 쓰레기봉투를 든 남편 목사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중, 성도가 사는 층에 이르렀을 때 성도 한 분이 타고 함께 내려갔었나 보다. 그런 일이 있은 며칠 후에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중 한 성도를 만났다. 그 성도는 나에게 임자 만났다는 듯 뽀로통한 얼굴과 퉁명스러운 말투로 서서히 성토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남편이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가던 날 마주쳤던 그 성도라는 것을 알았다. 그 성도는 한 마디로 어떻게 우리 목사님에게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가게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갑작스런 도전에 큰 죄인이나 된 것처럼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핑 돌았다. 그렇지만 억지로 참고, 쓴 미소를 지으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림과 동시에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왜 목사님은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가면 안 되나? 그것도 다른 집 것이 아닌 자신이 버린 것들도 들어 있지 않은가? 그냥 한없이 서럽기만 했다. 그것도 냄새나는 음식물 쓰레기도 아니고, 가지고 나가 분리해야 하는 것도 아닌 입구가 깔끔하게 봉해진 봉투인데 말이다. 그리고 모아놓은 곳에 가져다 놓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그것을 들고 나가게 한 내가 그렇게 잘못한 것일까? 물론 성도들이 보기에 자신의 영적 아버지 같은 목사님이 쓰레기봉투를 들고 있는 모습이 싫을 수도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는 없었을까? 여느 집 남자가 그렇게 하는 것을 당연하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것처럼 목사님이 그렇게 하는 것도 같은 시각으로 봐 주면 안 되는 것일까? 목사님은 많은 성도들의 목회자지만 동시에 한 여자의 남편이요 한 집의 가장이지 않은가? 목사님이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갔다고 해서 거룩함에 손상을 입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렇다면 목사님으로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한 가정의 가장으로, 남편의 자격으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일까? 아니 집안일을 잘 돌봐주는 자상한 목사님이라고 자랑스러워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 일이 있은 후, 다시는 남편 목사에게 쓰레기봉투를 맡기지 않았다. 남편 목사 역시도 들고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물론 내 남편 목사님은 그 사람의 말 때문에 그 일을 멈춘 것은 아니다. 그런 말에 영향을 받을 사람이 결코 아니다. 내가 요청하지 않으니까 자연스럽게 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부탁을 하든 안 하든, 또 누가 뭐라고 하든 안 하든 자신이 자청해서 해 준다면 내 남편은 내게 점수 좀 땄을 터인데 도리어 야속한 생각만 들게 했다.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가는 일은 수많은 집안 일 중에 아주 작은 일일 뿐이다. 여인들이 하는 집안일은 아주 작은 일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작은 일이 너무도 많다는 점이다. 가끔 남자들은 아내들이 도와주기를 요구할 때 그까짓 것이 뭐가 힘들어서 그러냐는 등 적지 않은 핀잔을 준다. 그렇다면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별 것 아닌 작은 일을 자신들이 솔선해서 하면 안 되는지 반문하고 싶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가지 덧붙여 말하고 싶은 점이 있다. 남편들은 자기 아내에게 자신이 하는 일에 긍지를 가지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물론 아내들은 그래야 한다. 아내들이 하는 일도 하나님께서 주신 고귀한 일로 사명의식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남편들이 여자들이 하는 일을 하찮은 일, 별 것 아닌 작은 일이라고 여기는 한, 아내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긍지나 자부심을 갖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 일 이후로,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갈 때마다 내 모습을 스스로 드려다 보는 습관이 생겼다. 정장차림과 쓰레기봉투. 그것은 정말 안 어울리는 모습이다. 그런데 비록 어울리지는 않은 모습이지만 그 모습은 가장으로서의 든든하고 아름다운 모습임에 틀림없다. 무릎 나온 바지에 앞치마를 두른 손에 들려 있는 쓰레기봉투는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그런데 그 잘 어울리는 모습은 지극히 당연한 모습이며 아름답지도 든든해 보이지도 않는 일상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모습은 우열을 가릴 것 없는 똑 같이 아름답고 귀한 모습이다.

목사님에게 말하고 싶다. 말하지 않아도, 부탁하지 않아도 솔선해서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가는 넉넉한 배려의 마음을 가지시라고. 성도들에게 말하고 싶다.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가시는 목사님의 모습을 멋있게 보아달라고. 목사님과 성도들에게 말하고 싶다. 목사님과 쓰레기봉투!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조화는 없다고.

그런데 나와 대화하며 집안일을 자신의 일이라고 말씀하신 그 목사님은 쓰레기봉투 정도는 당연히 들고 나가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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