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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하는 지방교회의 처절한 교리 전쟁사 (1)
[ 이단연구 / 김홍기 ] 지방교회(위트니스 리) 교리 비판 ②
2016년 01월 05일 (화) 11:16:06 김홍기 목사 yesusarang@shaw.ca

김홍기 목사 / 캐나다록키침례교회 담임, 교회부흥성장연구원장

   
▲ 김홍기 목사

지방교회는 약 100년 전 중국 본토에서 시작된 종파이다. 이 종파는 세 가지 시기를 거치며 발전해 왔다. 첫째 시기는 창시자 워치만 니(1903-1972)의 회심과 투옥에 이르는 기간이다. 둘째 시기는 워치만 니의 수제자인 위트니스 리(1905-1997)가 대만에서 시작하여 미국으로 건너가 그의 생애를 마칠 때까지 활동을 한 기간을 가리킨다. 셋째 시기는 위트니스 리의 사후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기간을 말한다.

제1기: 워치만 니의 회심에서 투옥에 이르는 시기(1920-1952)

지방교회의 자료에 의하면(www.watchmannee.org) 워치만 니는 1920년 회심하는데 바로 그 해부터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관한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영어 이름인 ‘Watchman’(파수꾼)이라는 이름과 중국어 이름인 ‘토쉥(To-sheng)’을 채택하여 쓰기 시작하는데, 이는 자신을 한밤중에 경고음을 울리는 파수꾼으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워치만 니는 신학교를 다닌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는 성경 및 여러 경건 서적들을 탐독하고 영적인 체험들을 추구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영적인 세계를 수립하고 교리적인 체계들을 세워나갔다.

지방교회는 “워치만 니는 말씀을 부지런히 공부하는 중에 계시(revelation)를 받았다. ... 그는 참으로 신적인 계시의 내용을 보았다(he truly saw the content of the divine revelation.)”(www.watchmannee.org)라고 기록한다. 여기 ‘계시’라는 표현은 정통교회에서는 성경의 ‘내용’과 관련해서 사용하는 것으로서, 성경의 기록자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벧후 2:21), 즉 성경 말씀을 지칭할 때 사용한다. 정통교회는 성경의 ‘내용의 이해’와 관련해서는 성령의 ‘조명’(illumination)이라는 표현을 쓴다(Paul Enns, The Moody Handbook of Theology, p.175). ‘계시’라는 표현은 기독교의 이단 종파들이 교주의 가르침을 신성화할 때 사용하는 표현인데 지방교회가 이런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독특한 표현 방법은 지방교회를 바르게 이해하는 일에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다.

지방교회가 ‘계시’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지방교회의 강력한 옹호자들에게도 해명을 해야 할 이유가 된다. 지방교회를 강력히 변호하는 미국의 CRI(Christian Research Institute)의 편집장 엘리옷 밀러는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는다. “이 모든 것들은 새 계시들(new revelations)로 제시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계시란 성경보다 나은 새 진리라는 뜻이 아닌 성령이 보여주셨고 교회가 되찾은, 잃어 버렸던 성경적 진리를 가리킨다.”(Elliot Miller, We were wrong, Christian Research Journal, Vol. 32, No. 6 (2009): 10). 여기서 밀러는 ‘계시’라는 단어를 ‘성경보다 나은 진리’로 사용하지 않으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정통교회가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용어를 왜 굳이 사용하는가를 물어보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지방교회는 정통교회를 ‘교파주의’로 정의하고 ‘영적 음행’을 하는 ‘악한 집단’으로 매도하며 ‘교파주의’, 즉 교파화한 정통교회를 붕괴시키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는 종파이다. 그런데 이런 집단이 정통교회와 치열한 교리 전쟁을 벌이며 자신들의 창시자의 가르침을 ‘계시’라 칭하는 이유를 왜 묻지 않는가! 왜 밀러 같은 지방교회의 옹호자들은 건전한 비판적 사고는 접어둔 채 옹호만을 일삼고 있는가! 밀러 같은 이들은 다음과 같은 지방교회의 오만과 편견을 정녕 무비판적으로 수용만 하고 있다는 말인가!

“주님은 그들에게 오늘날 시행되고 있는 기독교는 하나님이 그분의 거룩하신 말씀 안에서 지정하신 길로부터 거의 모든 면에서 일탈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 이와 동시에 그는 교회에 관한 계시를 받았다. 워치만 니는 또한 교파주의의 악을 보았다. 교파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많은 조직들로 나누었다. 이것은 성경 안에서 정죄된 것이다.(고전 1:11-13)” (Watchman Nee-A Seerof the Divine Revelation in the Present Age, Chapter 20, Section 3)

지방교회에 의하면 교파주의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을 포함하지 않는 ‘특정한 명칭’과 ‘특정한 진리들’과 ‘특정한 교제권’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 집단을 뜻한다(Collected Works of Watchman Nee, The (Set 2) Vol. 25: Collection of Newsletters (1), Chapter 5, Section 5). 워치만 니는 교파주의, 즉 현재의 정통교회의 실행(practice)을 ‘죄악(sin)’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니의 정의와는 달리, 인간이 관여하는 모든 일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 교파나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교파가 사람들의 행실에 따라 선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악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파를 악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균형을 잃은, 몰상식한, 불건전한, 비논리적인,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 비진리인 것이다.

성경적인 신조와 행실 가운데 행하는 건전한 정통교파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시작되었고 또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 가운데 지속되고 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말씀 위에 세워진 정통교파들을 ‘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신성모독 죄’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동성애와 동성결혼에 대한 성경적인 입장을 견지하기 위해 막대한 물질적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정든 교파를 떠나 다른 정통교파에 속하거나 혹은 새로운 교파를 형성하는 행위를 그리스도의 몸을 분열시키는 ‘죄’로 간주하는 것은 말씀에 대한 순종을 ‘악’으로 규정하는 어불성설이요 지극히 ‘악한 행위’이다. 또한 고린도교회의 육신적인 분열상(고전 1:11-13)과 거룩한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분리하는 경건한 행위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양심과 판단력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지방교회가 창시자의 교리를 ‘계시’로 떠받드는 것은 건강한 존경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러한 행위는 지방교회가 창시자의 가르침에 노예적으로 굴종하는 자세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정통교회와의 치열한 교리 전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선전 효과를 위한 것이다. 이단 종파들은 ‘계시’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그들의 교주들의 교리를 신성화하고 차별화하여 정통교회를 압박한다. 이러한 행위는 자발적인 것이며 의도적인 것이다. 지방교회 역시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워치만 니는 교회사에 등장하는 여러 영적 지도자들의 책을 탐독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들은 대부분 경건주의 저술가들이나 지도자들이다. 예를 들어 존 번연, 존 폭스, 허드슨 테일러, 조지 뮬러, 에이 비 심슨, 앤드류 머레이 등이 여기에 속한다(www.watchmanee.org). 또한 존 달비(John Darby)로부터 성경 강해와 교회론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존 달비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세대주의자이다. 그런데 지방교회의 자료를 보면 워치만 니가 정통 신학자들, 예를 들어 저명한 개혁주의 신학자들이나 세대주의 신학자들의 책들을 보고 영향을 받았다는 기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워치만 니의 글들은 신학 서적보다는 경건 서적으로 분류하여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

워치만 니는 미 남침례교(Southern Baptist) 교인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 남침례교회와 관련을 맺는다. 니는 그 시절의 경험을 이렇게 적는다.

“나는 남침례교 중국인 초등학교(Southern Baptist Chinese elementary school)에서 공부했고 체후에 있는 미국인 장로교인들이 운영하는 영어를 사용하는 기독교 학교(English mission school)에서 공부했다. 나는 청소년 시절에 남침례교회의 예배들과 주일학교를 참석했지만 구원을 받지 않았고 그들에 의해 침례를 받은 적이 결코 없다.” (Watchman Nee-A Seer of the Divine Revelation in the Present Age, Chapter 31, Section 1)

지방교회에 매우 우호적인 인사로 알려져 있는 제이 고든 멜튼(J. Gordon Melton)에 의하면, 워치만 니는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성장하며 회중교회와 감리교회를 체험했다(J. Gordon Melton, An Open Letter Concerning the Local Church, Witness Lee and the God-Man Controversy, 26). 니는 후에 배타적인 플리머스 형제회의 한 지류에 합류하게 되고 이들과 교류하면서 “종종 교파나 교파주의 그리고 다른 교회들에 대한 가혹한 생각들(harsh ideas)을 나누었다”(Ibid., p.26). 그리고 이러한 생각들은 후에 개신교의 교파들에 대한 니의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며 극단적이고 과격한 견해를 형성하는 원인이 된다. 니는 후에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점에 느슨해져서는 안 된다. 교파주의(denominationalism)는 죄이고 교회는 지역적(local)이다.”(Collected Works of Watchman Nee, The (Set 3) Vol. 56: The Open Door & The Present Testimony, Chapter 2, Section 20).

워치만 니는 교파의 생성의 원인을 특정 교리에서 찾는다.

“교파들은 사람들이 특정한 진리들을 그리스도보다 더 위에 있는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세워졌다.” (Collected Works of Watchman Nee, The (Set 2) Vol. 25: Collection of Newsletters (1), Chapter 5, Section 5)

“침례교회는 어떤 사람이 침례를 보았기 때문에 설립되었다. 장로교회는 어떤 사람이 교회 안의 장로 제도를 보았기 때문에 세워졌다.” (Collected Works of Watchman Nee, The (Set 3) Vol. 47: The Orthodoxy of the Church & Authority and Submission, Chapter 9, Section 2)

그러나 교파의 생성 원인을 특정한 한 진리에 국한시키는 것은 지나치게 근시안적이다. 예를 들어 어떤 침례교회들은 장로 제도를 채택하고 있고, 어떤 장로교회들은 침례를 베풀기도 한다. 한 교파의 신조는 훨씬 더 광범위한 진리들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니의 다음과 같은 견해는 수용이 아예 불가능하다. “교회의 근거 위에 서기 위해서 ... 한 회중은 어떤 특별한 진리들(any special truths)을 소유해서는 안 된다.”(Collected Works of Watchman Nee, The (Set 2) Vol. 22: The Assembly Life & The Prayer Ministry of the Church, Chapter 5, Section 8).

이처럼 교파의 특정한 진리들(교리들)을 거부하는 것은 곧 진리를 거부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특정한 진리들(교리들)이 종종 진리를 바르게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칼빈주의를 신봉하는 교회들은, 그들이 장로교회이든 침례교회이든, 개인의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전적으로 믿고 따른다. 이들에게 있어서 예정론은 진리의 체계일 뿐 아니라 진리의 관점이요 요약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예정론을 포기하는 것은 진리 자체를 포기하는 셈이 되고, 참된 교회가 이런 일을 수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워치만 니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린 것이다. 진리를 파수하는 일은 교회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지상과제인데, 교회의 이러한 거룩한 특성을 한 교파(denomination) 혹은 한 종파(sect)의 자기중심적인 특징으로 매도하고, 이것을 “죄악”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니의 이러한 무모하고 난폭한 도전은 당연히 정통교회의 치열한 반발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위트니스 리는 니가 중국에서 겪은 일을 다음과 같이 적는다.

“반대는 지역의 그리스도인들뿐 아니라 지역의 선교사들로부터도 왔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워치만 니의 항의 성명(anti-testimony)을 거절했다. 그 선교사들은 한 이교도 국가에 와서 사람들이 구원받도록 돕고 자신이 속한 교파의 교회들(mission churches)을 세우기 위해서 자신들의 나라들과 집들과 직장들을 버리고 왔다. 그래서 그 선교사들은 니의 사역을 깊이 증오했다.” (Witness Lee, Watchman Nee—A Seer of the Divine Revelation in the Present Age, Chapter 21, Section 6)

워치만 니는 그러나 증오하고 반발하는 선교사들의 노고와 사역을 전부 ‘죄’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이에 관해 위트니스 리는 이렇게 적는다. “그는 중국에 복음을 가져온 것에 대해 선교사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그는 선교사들이 자기들의 교파들을 가지고 와서 분열 속에(in division) 그들의 교파 교회들을 세운 것에 대해서 선교사들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Ibid., Chapter 21, Section 6). 그러나 선교사들이 교파들의 후원으로 와서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을 니는 애써 무시하고 있다. 교파주의가 ‘죄’라면 교파의 후원으로 와서 복음을 전하는 행위도 죄로 간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니가 선교사들의 복음 전파 행위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행위에 속하는 것이다.

복음은 교회가 소유한 진리인 반면, 특정 교파의 특정한 진리들(물론 어떤 특정한 진리들은 종파적인 것일 수 있음)은 교회가 소유한 진리가 아니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어떻게 임신한 어머니와 태중의 아이를 가를 수 있는가? 니는 복합적인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고, 심지어 단일화시켜 해석함으로 말미암아 평지풍파를 일으켰고, 따라서 그가 심은 것을 거두게 된다. 위트니스 리는 그 때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는 이 메시지를 인쇄해서 중국 전역으로 보냈다. ... 그리고 그는 이것을 주장함으로 큰 대가를 지불했다.”(Ibid., Chapter 21, Section 6).

워치만 니는 사실상 진리를 무시하고, 제쳐놓고, 심지어 희생하면서까지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에게는 ‘진리 안에서 하나’보다 ‘몸 안에서 하나’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리가 없는 그리스도의 몸이 참된 몸이 될 수 있는가? 그리스도는 진리이신데(요 14:6), 진리가 없는 그리스도의 몸이 성립될 수 있는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어떤 교파의 특정한 교리들’이라고 한정하면 진리가 더 이상 ‘참된 진리’가 아니라 ‘종파적 진리’로 전락하는가? 니의 주장은 ‘교회의 단일성’에 관한 그의 신학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 3:15)로서의 교회는 진리가 없는 단일성을 용납할 수 없다.

니의 주장은 또한 ‘진리’보다 ‘생명’을 더 중시하는 그의 개인적인 성향을 반영한다. 위트니스 리의 다음과 같은 증언은 니의 이러한 성향을 잘 보여준다.

“나의 집에 머무는 동안 그는 내 고향에 있는 뉴튼 형제회 모임의 창시자인 버넷을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버넷은 연로한 분이었고 형제회의 교사인 벤자민 뉴튼으로부터 배운 훌륭한 성경교사였다. 우리 세 명이 함께 모였을 때 나는 버넷이 워치만 니의 주님을 위한 간증을 달가워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버넷은 성경 지식의 정확성을 강조했던 반면 워치만은 생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Ibid., Chapter 31, Section 3)

진리가 중요한가 아니면 생명이 중요한가? 이것은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스도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이다(요 14:6). 생명 없는 진리 혹은 진리 없는 생명, 둘 다 비성경적이다. 생명으로 가득한 진리, 진리로 충만한 생명이 성경적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진리와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진리를 소홀히 한 채 생명만을 강조하는 니의 주장은 비성경적인 것이다. 게다가 ‘특정한 진리들’을 고수하려는 자세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도모하지 않는 것을 교파주의로 규정하고, 이러한 입장을 ‘죄악’으로 규정한 것은 중대한 오류인 것이다.

워치만 니가 심은 논쟁의 씨앗은 이것만이 아니다. 니의 후예들인 지방교회는 삼위일체론에 관한 논쟁으로 지금까지 갑론을박을 계속하고 있다. 지방교회는 ‘아들은 아버지이시고, 아들은 성령이시다’라고 가르친다. 또한 이러한 교리는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치는 삼위의 구별을 혼동시키고, 심지어 부정하고 있다는 정통 삼위일체론자들의 정당한 비판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방교회는 ‘위격’에 대한 정의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답하지 않는다. 또한 ‘아들은 아버지이시고, 아들은 성령이시다’라는 주장은 ‘삼위가 본질상 동일하시다’는 뜻을 말하는 것이라고 해명을 하려 하지도 않는다. 위트니스 리의 글을 자세히 읽어 보면 삼위의 위격과 본질의 차이를 겉으로는 인정하나 실제로는 무시하는 양상을 보인다. 다수의 정통 삼위일체론자들이 지방교회를 양태론 이단자들로 규정하는 것은 결코 무리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논쟁의 씨앗 역시 니의 가르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위트니스 리는 자신의 가르침이 워치만 니의 가르침에 기초했음을 분명히 한다. 이에 관한 리의 증언을 들어 보자.

“삼십여 년 전 상해에서 워치만 니 형제는 이 구절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는 17절에 있는 ‘그’(성령)는 18절에 있는 ‘나’(주)인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언급했다. ... 워치만 니 형제는 찬송가 490장 5절에서 ‘주님, 당신은 전에 아버지로 칭함을 받으셨지만, 지금은 성령으로 칭함을 받으신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워치만 니는 그의 찬송에서 주님을 성령으로 뿐 아니라 아버지로도 칭했다.” (Concerning the Triune God—the Father, the Son, and the Spirit, Chapter 1, Section 10)

우리는 이 짧은 찬송가 가사에 관한 워치만 니의 설명에서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가 신봉하는 ‘경륜적 양태론’(후에 자세히 논할 것임)의 ‘원형’(原形)을 본다고 분명히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위트니스 리가 워치만 니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계승했다고 가정할 때, 또한 위트니스 리의 ‘경륜적 양태론’이 워치만 니의 찬송가 가사를 기초로 해서 수립되었다고 가정할 때, 워치만 니는 지방교회가 신봉하는 ‘경륜적 양태론’의 시조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

워치만 니는 그에 대한 찬사와 호평에도 불구하고 그의 논쟁적이고 독선적이며 배타적이고 극단적인 교리들및 난폭한 표현들(예: ‘교파주의는 죄악이다’)로 말미암아 가는 곳마다 큰 저항과 비판을 불러 일으켰다. 따라서 그의 삶이 평탄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추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방교회는 워치만 니의 격렬했던 삶을 이렇게 요약한다. “그는 충성됨으로 말미암아 거부와 반대와 정죄를 많이 당했다. ... 그는 평생의 고난뿐 아니라 잦은 학대를 받았다. ... 워치만 니는 슬픔과 고통의 사람이었다. 어린 양을 따르는 그의 생애의 역사를 통해서 그는 많은 고난을 겪었다.”(www.watchmannee.org). 지방교회는 워치만 니의 삶을 진리를 위한 순교자의 삶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정통교회가 워치만 니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와는 정반대이다. 니는 정통교회를 소위 ‘교파주의’로 정의하고, ‘교파 교회’는 죄악 중에 있다고 정죄한 후, ‘교파 교회들’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치열한 교리 전쟁을 벌였다. 그리고 이러한 와중에 그는 전쟁의 깊은 상흔을 입었다.

워치만 니가 한창 활동할 때 중국 본토에서 정통교회와 지방교회 사이에 맹렬하게 전개되던 교리 전쟁의 실상을 들여다 보면 니뿐 아니라 그의 제자들도 동일한 전쟁의 쓰라린 상흔을 입은 것을 볼 수 있다. 중국의 한 ‘교파 교회’를 담임했던 한 중국인 목사의 경험은 이러한 사실을 잘 대변해 준다.

“만약 내가 떠났더라면 그들은 나를 비난했을 것이다. 나는 또한 이미 이 길을 가고 있었던 형제들이 대개 홀로 서 있고 압박과 반대와 오해를 받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앞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가게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내가 교파들의 죄를 더 분명히 보고, 진리에 대한 교파들의 반대를 더 맹렬하게 볼 때까지 점진적으로 나를 인도하셨다. ... 교파들은 결코 변할 수 없다. 육신에 속한 자들은 언제나 신령한 자들을 박해했다. 여종의 아들은 결국 약속의 아들과 함께 살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일은 교파들을 떠나고 한 교회의 목사직을 사임하는 것이었다. 나는 주님이 일하시도록 주님의 인도에 의지했으며 주님을 순종하는 것과 그분의 길 안에서 걷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위에 기술한 경험은 약 4,5년간 지속되었다. 나는 가장 더디게 순종하는 사람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Collected Works of Watchman Nee, The (Set 2) Vol. 25: Collection of Newsletters (1), Chapter 10, Section 13)

엘리옷 밀러는 대만에서의 지방교회 발전사를 기술하면서 아무런 비판 의식이 없이 지방교회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그대로 옮겨 놓았다.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지방교회는 심한 박해를 받았다. 니는 1952년에 투옥되었고 20년 후 감옥에서 죽었다. 니는 리를 타이완으로 보내 그 운동과 그들이 회복했던 신약의 진리들이 생존하는 일을 돕도록 했다. 대만에서 그 운동은 1955년에 이르러 65교회에 20,000명의 참여하는 ‘성도들’(지방교회가 신자들을 호칭할 때 선호하는 용어)로 성장했다.”(Eliott Miller, 10).

위트니스 리가 1949년 대만에 도착했을 때 천 명 이하의 지방교회 신도들이 있었던 것을 감안할 때 이는 괄목할 만한 성장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눈부신 성장의 배경 뒤에는 정통교회의 선교사들(또한 사모들)과 목회자들(또한 사모들)의 고통과 피눈물과 마음의 깊은 상처가 있다는 것을 밀러는 간과하고 있다. 오랜 인내와 사랑의 수고를 통해 양육한 성도들이 지방교회로 훌쩍 떠나고 난 후의 비참한 심정을 밀러 같은 연구실 중심의 작가들이 헤아릴 수 있겠는가? 지방교회의 화려한 수적 성장 뒤에 가려져 있는 정통교회의 선교사들과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허탈감과 좌절감을 밀러 같은 이들은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지방교회는 불신자들의 회심을 통해 성장한 무리가 아니라, 주로 정통교회의 성도들의 흡수를 통해 성장해 온 집단이다. 즉 회심성장(conversion growth)이 아닌 전입성장(transfer growth)을 통해 교세를 불려왔다. 중국의 산동 지방에 거주하는 추엔솅(Chu En Sheng)이 지방교회에 보내온 글의 한 대목은 이러한 주장의 객관적 타당성을 입증해 준다. “우리 모임 안에 있는 사람들의 수는 본래 100명 이상이었다. 이 중 80명 이상이 성령으로 거듭났다. 현재 교파를 떠난 사람들이 70명 가량 있다(There are now about seventy people who have left the denomination). 그들은 오직 주님의 이름으로 만나고 있다.”(Collected Works of Watchman Nee, The (Set 2) Vol. 25: Collection of Newsletters (1), Chapter 6, Section 6).

지방교회는 정통교회 성도들을 개인적으로 포섭해서 지방교회 신도들로 바꾸는 작업뿐 아니라 정통교회들과 그들의 선교 기관들을 통째로 접수하는 방법을 통해 몸집을 불려왔다. 교리 사기 전문 집단인 신천지에서는 이런 방식의 포교 방법을 일컬어 ‘산 옮기기’라 한다. 중국 저장성(浙江省)에 위치한 타이숸 현(縣)에서 지방교회가 수집한 뉴스 자료를 보면 ‘지방교회 판 산 옮기기’를 볼 수 있다.

“북쪽으로는 이위 군구(郡區)가 있다. 오래 전에 교파들(denominations)이 거기에 세워졌다. 남쪽으로는 쿠에이 젠 군구(Township)가 있다. 여기에는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24개의 집회소가 있다. 그러나 이 24개 중 10개는 중국내륙선교회(China Inland Mission)와 함께 하곤 했었다. 나머지 14개는 교파들을 떠나서 분리되었거나, 형제들이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믿음으로 인도한 후에 세워졌다. 나는 이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교파들을 떠났는지를 설명함으로 우리와 함께 하는 지체들인 형제자매들이 알 수 있도록 할 것이다. ... 그들은 온갖 종류의 오해와 비판과 어려움을 겪었으며 ‘작은 양무리,’ ‘워치만 니의 무리,’ 혹은 ‘영적 무리’와 다른 이름들로 불려졌다. ... 그러므로 그들은 공개적으로 그들이 교파들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그 나머지 장소들은 여전히 중국내륙선교회의 통제 아래에 놓여있다. ... 그들 중에는 훼방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 무리 안에서 교파들을 지키려는 자들이 일어나 대적했다.” (Collected Works of Watchman Nee, The (Set 2) Vol. 26: Collection of Newsletters (2) & Watchman Nee's Testimony, Chapter 2, Section 16)

지방교회의 자료가 증언하는 바와 같이 지방교회는 정통교회들뿐 아니라 허드슨 테일러가 시작한 중국내륙선교회와도 많은 갈등을 겪고 치열한 대립을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지방교회에 의하면 워치만 니는 ‘그리스도안에 거함(abiding in Christ)’이라는 진리에 관해서 허드슨 테일러로부터 도움과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www.watchmannee.org),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니는 허드슨 테일러의 영적 도움을 받고 허드슨 테일러의 사역에 해를 끼친 셈이다. 지방교회가 중국내륙선교회를 어떻게 집중 공략했는지에 관해 아래의 내용은 잘 보여주고 있다.

“그 후 첸 형제는 그의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떠나는 일에 있어서 홀로였고 담대했다! 그는 홀로 교파의 지위를 사임했다. 그는 핑양에 있는 중국내륙선교회를 공식적으로 떠난 첫 번째 사람이었다. 그는 또한 교파들을 떠남으로 주님을 순종하는 일에 개척자가 되기도 했다. ... 그들이 집으로 갔을 때 그들은 후시우, 후시, 토티, 그리고 다른 곳에 있는 형제들이 교파들을 떠나도록 격려했다. 이것이 그 지역에 집회소들을 세운 두 번째 주요한 이유였다. ... 핑양과 타이숸에 있는 중국내륙선교회의 법규들에 따르면 매년 교사들을 위한 4회의 모임이 있다. ... 난 흐시의 파오 제 칭 형제는 그 모임에서 담대히 일어나 교파들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며 주님을 위해 증거했다. 그는 또한 잘못이 시정되지 않으면 우리는 이런 성격의 모임에 다시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모임의 지도자들이 그 골치 아픈 상황을 보았을 때 그들은 변화를 촉구함이 없이 융통성 없는 마음으로 행동한다면 분열하게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들은 형제들을 회유하고 돌이키기 위해서 비열한 책략을 썼고 내적인 본질은 바꾸지 않으면서 외양만 바꾸었다. ... 그러므로 1930년에는 쿠에이 젠 군구에 있는 교회 안의 모든 집회소들이, 교파들을 보존하기 원했던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그들은 더 이상 모이지 않음), 완전히 교파들을 떠났고, 그들과의 관계를 단절했다.” (Collected Works of Watchman Nee, The (Set 2) Vol. 26: Collection of Newsletters (2) & Watchman Nee's Testimony, Chapter 2, Section 16).

지방교회의 자료가 선명하게 보여주는 바와 같이 지방교회는 정통교회의 무덤 위에서 번성하는 집단이다. 그들은 정통교회의 피를 먹고 성장했고, 정통교회의 등골을 빼먹으며 몸집을 불려왔다. 지방교회의 성장의 역사는 곧 정통교회의 퇴보의 역사이다. 지방교회와 정통교회는 함께 잘 되는 윈윈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지방교회는 정통교회의 교파를 ‘악’으로 간주하고 교파를 이룬 정통교회를 공격해서 붕괴시키는 것을 ‘선’이요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으로 확신하기 때문이다. 지방교회는 자신들의 교리와 사명과 가치관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결코 정통교회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다. 워치만 니는 바로 이런 위험천만한 운동을 100년 전에 시작한 장본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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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김홍기 목사 소개

미국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철학박사(Ph.D.)
미국 탈봇신학대학원(Talbot School of Theology) 목회학 석사 및 목회학 박사(M.Div., D.Min.)
교회부흥성장연구원 원장
캐나다록키침례교회 담임목사
WWW.21CHURCH.COM (신천지 관련 동영상 설교 63편, 지방교회 관련 동영상 설교 4편, 여러 이단 관련 동영상 설교가 유투브에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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