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와신앙> : 김정언 기자 】 남자친구와 짜고 남편을 살해해 사형선고를 받은 여죄수가 회개했다. 신학을 공부하고 옥중에서 전도하며 모범수가 됐다. 세 자녀를 비롯해 10만 여명이 사면을 청원했으나 사형이 집행됐다.

지난 9월 29일은 조지아 주의 가장 슬픈 날의 하나였다. 수많은 크리스천들, 조지아 주민들과 기타 사람들의 안타까운 호소에도 불구하고 애틀랜타 근교의 그위넷 카운티에 살던 켈리 르네 기슨데이너 여인(47)의 사형집행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지아주 역사상 여죄수가 70여년 만에 사형을 당한 케이스이며, 1976년 연방대법원이 사형제를 재개한 뒤 16명 째. 기슨데이너의 변호인단은 조지아주 사면보석위원회와 제11연방순회항소법원, 연방대법원 등에 선처를 호소했으나 모두 무위에 그쳤다.

▲ 신학사과정 수료증서를 받고 기뻐하는 사형수 기슨데이너

켈리 기슨데이너의 스토리는 한 마디로 용서와 화해, 구속의 대 드라마였다. 목격자에 따르면, 켈리는 이날 조지아 잭슨의 진단분류(GDC)교도소에서 처형을 앞두고 하염없는 눈물을 흐느끼며 잠시 울다가 다코타, 케일라, 브랜든 등 세 자녀들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자신이 과거 남자친구와 공모하여 죽인 남편 더글러스 모건 기슨데이너의 유족에게 다시 한번 사죄와 용서, 그리고 평화와 행복을 빌었다.

그리고는 증인 중 한 명이었던 수전 케이시 변호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여러분 모두를 복 주시길 빌며, 특히 수전 님을 사랑합니다. 내 자식들에게 내가 '놀라운 은혜'를 부르며 갔다고 전해주세요."라고 말했다. 켈리는 이어서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를 부른 뒤 독극물의 일종인 펜토바르비탈을 체내에 주입 받고 숨졌다.

그는 교소도 당국이 제공한 처형 직전 진정제 처방 옵션을 사양했으나 이에 앞서 치즈를 곁들인 칩스, 텍사스 파히타 나초, 다이어트용 냉동 레모니이드 등을 마지막 식사로 요청했다.

기슨데이너의 세 자녀들은 본래 아버지의 피살 사건 이래 미워했던 어머니를 교도소를 방문해 직접 만나본 뒤 용서하고 다시 사랑하게 됐고, 셋이 함께 사면을 비는 비디오에서 "아버지를 잃은 데다 이제 어머니까지 잃게 되다니 우리는 더 큰 아픔과 괴롬을 겪게 됐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특히 케일라는 "어머니는 지난 18년간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며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 사람이며 우리 사이는 놀랍게 친근한 사이가 됐다."고 증언했다.

▲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의 사면을 호소했던 세 자녀들

반면, 당초 피살된 남편 덕 기슨데이너의 유족들은 "피해자는 오로지 우리 더글러스일 뿐"이며 "받을 벌을 제대로 받았다."고 말해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피살자 유족의 한 명은 "고인(더글러스)은 다정다감하고 믿음직스럽고 착한, 결코 잊지 못할 미소의 사람이었다."면서 "딸과 두 의붓아들을 사랑할 뿐더러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된 훌륭한 아빠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켈리 여인에 대해서는 "지난 18년간 피해자보다 훨씬 더한 권리와 기회를 얻어 지내왔다. 그러나 사건 당시 남편에게 매정했고 그토록 살고 싶어한 남편에게 아무 권리나 선택,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그동안 쌓여온 원한을 토로했다.

켈리의 특사를 요청한 10여만 서명자들을 비롯, 자녀들 중 3명의 비디오, 프란시스코 로마 교황의 사면 호소 친서 등에도 아랑곳없이 조지아 주 검찰과 법관은 냉엄하게 처형을 단행했다. 최근엔 노먼 플레처 전 주법원장, 버네사 오다널 주교도국 전 부국장까지도 켈리의 모범적인 옥중 선행을 들면서 자비의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오다널에 따르면 켈리를 매우 미워했던 피살자의 아들 더글러스 기슨데이너 2세도 이미 그녀를 용서했다. 심지어 동료 죄수들과 경목들까지도 그녀를 돕는 증언을 했다.

기슨데이너에게는 또 죄수로서는 드문 특별한 희망의 서광을 받기도 했다. '희망의 신학'으로 유명한 독일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 박사(튀빙겐대학교, 조직신학 명예교수)의 친서를 받은 것이었다. 몰트만은 2012년 10월, 킹제임스성경(KJV) 출판 400주년 기념 및 에머리대학교 캔들러 신대원의 종교개혁일 기념행사 참석차 85세의 노구를 끌고 입국했다.

그는 수감자를 위한 신학과정을 이수한 여성들을 위한 수료증서 수여차 조지아 앨토의 리 어렌데일 주교도소를 방문, 이미 상당기간동안 편지를 주고받아온 켈리를 직접 만났다. 애틀랜타 신학협력회(ATA)가 1998년이래 제공하는 이 신학과정은 캔들러 말고도 콜럼비아 신대원, 국제신학센터(ITC) 머서대학교 매카피 신대원 등이 공동으로 참여해온 '수감여성을 위한 옥중 신학' 프로그램이다.

▲ 희망의 신학자 몰트만과 함께 한 켈리. 오른쪽은 여수감자 신학프로그램 담당 제니 맥브라이드 교수

기슨데이너는 2010년 12월 이 과정을 끝내고 이듬해 10월의 졸업식에서 졸업생 대표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녀가 몰트만에게 보낸 논문은 나치 항거운동에 참여했다가 1945년 히틀러 암살 음모로 처형된 루터교 목회자․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에 관한 것이었다. 몰트만은 그녀의 논문에 감동했고 둘 사이에 4년간 20-30회 서신이 오갔다.

몰트만은 2011년 에머리 강의 차 애틀랜타로 오면서 곧장 기슨데이너를 면회할 수 있냐고 물었다. 기념연설에서 자기 자신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군 병사로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어 영국 포로수용소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했었다고 회고했다. 몰트만은 스코틀런드 킬마노크의 강제노동수용소에 갇혀 지내면서 처음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만났다고 간증했다. 그는 "아직 예수님께 헌신하지는 않은 상태였으나 내가 슬픔과 절망 속에서 잃어진 상태였을 때 그분이 저 있는 곳에 오셔서 잃었던 저를 되찾으셨다."고 회상했다. 당시 거기서는 ‘갇힌 교수들이 갇힌 학생들에게’ 성경과 교회사, 신학 등을 가르쳤다. 특히 리하르트 니버의 신학에 깊이 감화받은 몰트만은 목회자와 신학교수가 되었다.

맥카피 신대원은 중도노선인 협력침례교연맹(CBF) 산하 학교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켈리와 여러 유명 신학자들의 만남과 교류가 이뤄지기도 했다. 지난번 처형예정일이었던 2월 25일을 앞두고도 500명의 교계 지도자들도 조지아 주정부에 진정서를 올렸고 연기된 3월초에도 맥카피 교수진과 CBF 산하 목회자들, 조지아 주 디케이터의 CBF 교단본부 임원 등이 켈리의 사형을 보석 없는 종신형으로 감형해 달라고 마지막 호소를 올렸다.

켈리 기슨데이너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왜 내가 그런 악에 스스로 빠졌댔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알게 된 사실은 그 누구 그리고 나조차도 하나님의 은총과 온정을 통한 구속을 넘어설 순 없다는 것이지요. 나는 이제야 알게 된 하나님께 나의 소망을 두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삶과 죽음, 부활의 스토리 전체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을 알게 됐어요. 나는 늘 변함없고 끊임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조지아 주당국은 이 모든 호소와 증언과 참고 사항을 검토하고도 정작 사면요청은 끝내 물리쳤다. 죄와 벌의 극적인 엄정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켈리의 처형은 두 차례 연기되는 등 해프닝이 잇달았다. 당초 처형 예정일인 2월 25일은 혹한으로 연기되고, 그 다음 3월 2일은 사형에 쓰일 독극약물이 '(이물질이 있는 것처럼) 부옇게 보인다'는 일설로 담당 전문팀이 약물 분석에 들어가 재차 보류되었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프랜시스 교황은 연방의회 연설중 사형제의 폐지를 요청한 바 있으나 이후 9일 동안 전국에서 6명의 처형이 잇따라 이뤄져왔다.

사면운동팀은 지난 23일 보석위원회 사무소 앞에서 기슨데이너의 처형을 종신형으로 바꿔달라며 시위를 벌였다. 변호팀도 사형선고를 받은 이래 지난 17년간 독방에 수감돼 온 것으로도 충분하다며 처형을 바꿔달라고 계속 요청했으나 피살자 유족들은 피고가 왜 거기 갇혔는지를 잊지 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주검찰에 따르면, 켈리 기슨데이너는 1997년 2월 애인인 그리거리 브루스 오웬과 함께 동거할 목적아래 남편 더글러스의 보험금을 타내려고 매복했다가 더글러스를 외딴 데로 강제로 운전하게 한 뒤 공범인 오웬이 피해자를 칼로 반복해 찔러 살해한 이후, 둘이서 함께 남편의 차를 불태운 혐의를 받은 데 이어 이듬해 기소됐다. 시신은 사건 2주후에야 현장에서 발견됐다. 공범인 그녀의 남친 오웬은 현재 종신형을 살면서 오는 2022년 보석금 신청이 허용된다.

켈리는 수감 초기에 거칠고 건방지기 짝이 없는 죄수였다. 그러나 경목팀과 목회상담가들의 도움으로 자신이 저지른 범행의 심각성을 깨닫자 곧 말과 행동으로 자신의 뉘우침과 후회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경목의 한 명인 수전 비셥 목사는 자신이 1998년 켈리를 처음 만났을 당시 이미 "심오하고 진지한 영적 변화가 이뤄졌다."며 "그것은 겉모습만의 허울 좋은 변화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후 기슨데이너는 즉각 모범적인 언행과 격려를 통해 동료죄수들을 감화시켜 교화에 앞장섰다. 특히 청소년들을 위한 범죄수감예방 프로그램을 전개했다.

한편 처형 당일까지도 수많은 진정서와 이메일, 탄원 서명 등을 접수해온 네이턴 딜 조지아 주지사 자신도 CBF 산하 교회인 게인즈빌 제일침례교회 교인으로, 교단 산하 사학인 머서대학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땄다. 전국의 15개주 주지사들에게는 독자적인 완전 사면권이 있으나 7개 주 지사들은 주 특사위원회의 추천을 받아야만 한다. 조지아 주는 특사위원회에 전권을 위임한 4개주의 하나이다.

1976년 사형제가 부활된 이래 수백 명의 사형수들이 인도주의 차원의 특사를 받았으나 기슨데이너는 아쉽게도 끝내 이 혜택을 받지 못했다. 동료죄수, 교도국 사람들은 한결같이 기슨데이너 여인의 선행과 모범적인 행동, 그녀가 옥중에서 전한 복음 등을 회고하며 슬픔과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오다널 전 교도부국장은 처형을 당한 고인에 관하여 이렇게 썼다.

"가장 절박한 처지에 있는 또 다른 여 사형수에게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희망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