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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복 목사 요한계시록 연구보고서… 부실 투성이
예장통합 제100회 총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연구보고서④
2015년 09월 30일 (수) 15:39:07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 주요 교단들의 정기총회에서 이단 사이비 관련 보고서들이 보고되었다. 먼저 예장통합(총회장 채영남 목사) 제100회 총회에 보고된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의 연구 및 조사 보고서들을 소개한다. / 편집자 주 ]

<교회와신앙> 】 예장통합 제99회기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의 ‘이광복 목사의 요한계시록에 대한 연구보고서’는 한마디로 부실 투성이 연구보고서이다. 연구보고서라기 보다는 차라리 ‘연구’는 빼고 그냥 ‘경위조사보고서’라고 함이 타당하다 싶을 정도이다.

“이광복 목사에 대한 평가는 그가 속한 해 교단에서 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사료 된다.”는 연구결론을 이름이 아니다. 연구경위에서 “현재 이광복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 소속인 목양교회(www.mokyang.or.kr, 서울특별시 강동구 성내동 120-65번지)의 담임목사이다.”라고 굳이 밝힌 데서 그러한 연구결론을 이미 암시하는 듯한 인상이 풍겼기에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이광복 목사에 대해서만 유독 ‘평가는 그가 속한 해 교단’이라고 하여 ‘형평성’ 논란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그것을 문제 삼자는 것도 아니다.

   
▲ 이광복 목사 ⓒ목양교회 홈피캡처

‘부실’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질의와 제기되었던 문제점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와 분석을 한 것으로 볼만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결론에 도달하게 된 논거와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의 취사선택이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연구보고서가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순서노회장 이인호 목사는 ‘이광복 목사의 요한계시록은 과연 성경적인가?’(순서노 제38-29호)라는 질의에서 이광복 목사의 문제점으로 “1) 다른 구원 방법에 기초하여 3세대론 주장, 2) 세대주의 학설에 근거한 한 이례연기설 주장, 3) 양태론적 삼위일체론 주장, 4) 시한부종말론 주장 5) 문제 있는 성경해석방법 주장, 6) 요한계시록만을 영생의 복음이라 주장, 7) 일곱교회를 잘못해석, 8) 천년왕국을 잘못해석, 천년왕국에 가는 도중에 믿음뿐만 아니라, 공로도 필수적임을 주장, 9) 재림임박설 주장, 이스라엘 해방 강조, 종말의 “흰 떡”만이 유일한 복음으로 해석, 요한계시록이 구원의 복음임을 주장, 10) “계시록 종말론 핵심 열쇠”에 대한 주장이다. 순서노회가 마지막으로 종합하는 내용은 “성경해석적 문제(성경적상징주의), 신학적 문제(양태론, 삼세대론), 계시록만이 영생의 복음이라는 해석이다.” 등 10가지 주장과 해석을 지적하면서, “총회 차원에서 이광복 목사의 이단성에 대한 재연구의 필요성과 이광복 목사의 설교 세미나나 설교 아카데미 참가 금지조치를 청원” 했다.

순서노회가 제기했던 이런 문제점들과 이에 대응하는 강력한 청원은 적어도 순서지역 내에서 야기되는 혼란으로 겪고 있는 어려움을 총회에 호소한 것일 텐데, 이 연구보고서가 이를 뿌리치는 논거가 허술할 뿐만 아니라 마치 봐주기에 급급한 모양새마저 감추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쾌쾌 묵은 2001년 ‘성명서’로 눈 가리고 아웅

순서노회는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혼란에 따른 대처를 주문했는데, 이 연구보고서는 2001년의 쾌쾌 묵은 ‘성명서’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으로 예각 피하기에 몰두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즉, 이 연구보고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 총회장 장춘호 목사’와 동(同) ‘신학위원회 위원장 정규남 목사’가 2001년 2월 22일에 공동으로 발표한 ‘성명서’”를 무려 4회나 언급하고 있다. 2015년의 시점에서 십 수 년이 지난 ‘성명서’를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었다.

더구나 이 ‘성명서’는 현재 이광복 목사가 소속해 있는 예장합동이 발표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신학위원회’가 등장하고 있지만 깊이 있는 신학적 연구를 거쳐 발표된 ‘연구보고서’가 아니라 ‘자기편 거들기용 성명서’였다.

예장통합 이대위 연구보고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진용식 목사가 ‘흰돌선교센타 이광복 목사 그의 종말론과 삼세대론은 성경적인가?’라는 글을 <교회와신앙>(1994년 8. 9월호)에 발표한 이래 이광복 목사의 신앙과 신학에 대한 평가들이 일부 인사와 일부 교단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교회와신앙>의 2001년 2월호에 실린 ‘이광복 목사의 종말론은 비성경적이다.’라는 최삼경 목사의 비판이 있었다.”

연구보고서는 이어 “이에 대해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 총회장 장춘호 목사’와 동(同) ‘신학위원회 위원장 정규남 목사’가 2001년 2월 22일에 공동으로 발표한 ‘성명서’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면서 “최삼경 목사가 이광복 목사를 지적하여 비성경적이라고 지적한 첫째, 양태론자 둘째, 삼세대론자 셋째, 다른 구원관이 요청된다고 주장하는 자 넷째, 말세에는 선행과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자 다섯째, 시한부 종말론자 이상 다섯 가지 내용을 조목조목 검토한 결과 최삼경 목사의 비판은 사실과 다르며 임의적인 틀에 짜맞춘 자기 결론임을 확인하였다. 이광복 목사는 최삼경 목사가 지적하는 그런 잘못된 주장을 한 일이 없다. 이광복 목사는 지금까지 본 교단 산하 신학교 교수와 목회자로 보수 개혁 신학과 신앙에 바르게 서 있으며 그 전개 방법은 다양하지만 근본적으로 건전하며 우리는 그의 신앙과 신학에 신뢰를 갖고 있다.”는 ‘성명서’ 내용을 소개했다.

성명서의 핵심은 ‘최삼경 목사가 제기한 문제점 다섯 가지 내용을 조목조목 검토한 결과, 사실과 다르며, 임의적인 틀에 짜맞춘 자기 결론이며, 이광복 목사는 그런 잘못된 주장을 한 일이 없고, 개혁 신학과 신앙에 바르게 서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장개혁의 이런 성명서가 나가자 최삼경 목사는 <교회와신앙> 2001년 4월호에 ‘이광복 목사 소속 교단측의 양심과 양식과 신학을 의심한다’는 제목으로 이를 즉시 반박한 바 있다.

최삼경 목사는 “본인이 <교회와신앙> 2001년 2월호에서 '이광복 목사의 종말론은 비성경적이다'라는 제목의 글로 이광복 목사의 이단성을 지적한 일이 있다. 이에 대하여 정작 당사자인 이광복 목사가 본인에게 직접 보인 반응은 없고, 그가 속한 예장개혁(광주측) 교단에서 교단지 <개혁신문> 2001년 3월 3일자를 통해 반응을 보였다. 즉 '이광복 목사에게는 문제가 없다'는 성명서와 함께, 본인이 '예장개혁(노량진측)의 사주를 받아서 이 목사를 비판했다'는 보도를 한 것이다.”고 밝혔다. ( 관련 기사 보기 )

이광복 목사는 현재 예장합동에 소속해 있지만, 2001년에 이광복 목사는 예장개혁(광주측) 소속이었다. 당시 예장개혁은 한 때 9개 분파로 나뉠 정도로 세력다툼과 이합집산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그러니까, 최삼경 목사의 이광복 목사 비판 글은 <교회와신앙> 2001년 2월호에 실렸고, 예장개혁의 ‘성명서’ 발표 날짜는 2001년 2월 22일이며, <개혁신문>이 3월 3일자에 ‘사주설’을 주장했다. 불과 비판 글이 나간지 1개월도 되지 않아 ‘신학위원회’ 명의의 ‘성명서’를 내면서 ‘사주설’을 들고 나왔다는 것은 깊이 있는 신학적 연구 없이 벌인 ‘신속한 정치적 대응’이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그저 ‘성명전(聲明戰)’이었던 것이다.

최삼경 목사는 이번 예장통합 이대위의 연구보고서에 이런 ‘성명서’를 넣어 그들의 주장이 사실인양 활용한 것에 대해 “당시 예장개혁의 ‘성명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고 일축하고, “이광복 목사의 양태론 삼세대론 구원론 시한부종말론 관련 확실한 자료들을 가지고 있다.”면서 “연구보고서의 말미에 있는 참고자료에 보면 ‘성명서’에 대해 반박한 내 글의 목록도 첨부되어 있는데 자료 대조는커녕 읽어나 봤는지 의심이 간다.”고 개탄했다.

당시 오광만 교수는 곧 바로 <교회와신앙> 2001년 3월호에 실린 ‘다시 신비적, 영적 해석으로의 복귀인가’라는 제목의 ‘이광복 목사의 <해석학의 실제>에 대한 비평’ 글에서 “저자가 학계에서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한 독창적인 해석학을 내놓은 것은 성경 해석에 대한 근본적인 결함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저자의 성경관이 잘못되었거나 저자가 해석학 방법을 제대로 훈련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석학은 방법론일 뿐만 아니라 일종의 관점,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본서에서 저자는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동일한 노선에 서서 개혁주의적인 성경 해석을 한다는 것을 독자들이 알아주기를 원했으나, 시종일관 그의 해석학적 방법론과 그의 성경관을 나타낸 것은 '성경적 상징주의' 이름으로 표출된 '신비적 해석' 또는 '영해' 그리고 '풍유적 해석'을 표출하였다.”고 지적한 바 있다.

따끈한 2013년 ‘고신 교수회 평가보고서’는 배제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2013년에 나온 예장고신의 ‘이광복 목사의 종말론에 대한 고신 교수회 평가보고서’이다. 예장통합 이대위 연구보고서는 이 평가보고서에서도 놓치고 있거나 아니면 빠뜨리고 있는 중대한 사실이 있다.

예장통합 이대위 연구보고서는 “‘이광복 목사의 종말론에 대한 고신 교수회 평가보고서’ (2013)를 살펴보면, 이 보고서는 이광복 목사의 종말론과 관계된 네 가지 성경해석 문제들(이스라엘독립 문제, EU/유럽연합 문제, 열 발가락에서 적그리스도 출현 문제, ‘666’에 대한 해석 문제)과 그의 ‘사도신경’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견해에 대한 비판적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보고서는 ‘따라서 이광복 목사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많은 혼란과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종말론에 대한 불건전한 세대주의적 해석과 사도신경에 대한 기본적인 주장을 교정하고 철회하지 않는 한, 고신교회는 그를 초청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로 마치고 있다.”는 정도로 그치고 있다.

사실 예장고신의 고신 교수회의 보고서는 2개이다. 2013년(63회 총회)에 나온 ‘이광복 목사의 종말론에 대한 고신 교수회 평가보고서’와, 2014년 4월에 이광복 목사가 제출한 ‘해명서’에 대한 고신 교수회의 2014년(64회 총회) ‘해명서 보고서’가 있다. 그러나 예장통합 이대위 연구보고서는 제64회 총회 결의만 소개할 뿐 ‘이광복 목사의 해명서에 대한 고신 교수회의 보고서’의 내용에 대한 언급은 없다.

순서노회의 질의는 2013년과 2014년에 예장고신에서 연구되었던 것과 대동소이함에도 불구하고, 예장통합 이대위 연구보고서는 “본 교단 순서노회장 이인호 목사가 제출한 ‘이광복 목사의 요한계시록은 정말 성경적인가?’라는 질의 건은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 총회장 장춘호 목사’와 동(同) ‘신학위원회 위원장 정규남 목사’가 답변한 질의 내용과 대동소이하다.”고 하여 2001년 ‘성명서’를 끌어다가 가로 막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 총회장 장춘호 목사’와 동(同) ‘신학위원회 위원장 정규남 목사’가 답변한 질의 내용과 대동소이하다.”고 하여 예장개혁의 ‘정치적 성명서’를 ‘질의에 대한 답변’으로 바꾸기까지 하면서 예장고신의 보고서들은 “이광복 목사의 신앙과 신학에 대한 일부 교단들의 평가는 다양하다.”는 말로 결론으로 이르는 길에서 배제하고 ‘성명서’ 쪽으로 우회해버린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 예장통합 이대위의 ‘이광복 목사 요한계시록 연구보고서’는 이광복 목사의 요한계시록을 ‘연구’하여 ‘10가지’ 혹은 ‘4가지’에 대한 사실 확인이나 비교 검토하여 결론을 도출한 흔적은 없고, 그냥 ‘선택’한 것으로 여겨진다.

예장고신의 보고서들에 의하면 일방적으로 최삼경 목사를 매도한 예장개혁의 ‘성명서’는 ‘허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최삼경 목사를 매도한 그 ‘성명서’의 내용을 연구보고서에 넣으면서까지 그래야만 했던 저의가 없었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그렇다.

즉, 이왕 그런 결론을 내릴라치면 허위 ‘성명서’를 언급할 필요도 없이 순서노회가 제기한 질의에 대해 철저히 확인해 ‘연구’한 후에 ‘문제점 여부’를 밝혀 지적하고, ‘현재 예장합동에 소속해 있으므로 평가는 그가 속한 해 교단에서 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사료된다.’는 요지로 보고했었어야 한다는 말이다. 차제라도 재연구하여 ‘허위 성명서’를 기반으로 한 이번 연구보고서는 폐기함이 마땅하다.

예장고신 교수회의 2개의 보고서 결론 부분만 읽어 보아도 그 같은 평가를 내리기 충분하다.

먼저 2013년에 나온 ‘이광복 목사의 종말론에 대한 고신 교수회 평가보고서’의 결론 부분은 다음과 같다.

“이상에서 우리는 이광복 목사의 종말론에 대한 견해를 살펴보았다. 그는 종말론에 대해 역사적 전천년설을 믿는다고 주장하지만, 그 자신이 인정하듯이 종말의 징조에 대해서는 통속적 세대주의자들의 여러 견해를 수용하였다.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을 종말의 중요한 징조로 본 것과 EU(유럽 통합)를 종말 직전에 나타날 적그리스도 국가로 본 것, 그리고 EU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온다는 주장 등이 그러한 것이다. 그 외에도 ‘유브라데 전쟁’과 ‘666’에 대한 해석 등도 통속적 세대주의 견해와 맥을 같이 한다.
따라서 이광복 목사는 자신은 세대주의자가 아니라 역사적 전천년설을 신봉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세대주의자와 매우 가까운 주장을 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의 징조들 해석과 성경 해석은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우면 불건전한 것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이광복 목사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많은 혼란과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종말론에 대한 불건전한 세대주의 해석을 교정하고 철회하지 않는 한, 고신교회는 그를 초청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2014년에 나온 ‘이광복 목사의 해명서에 대한 고신 교수회의 보고서’의 결론 부분이다.

“결론적으로 이광복 목사의 견해는 사소한 한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그의 기존 견해에 변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자기의 견해를 더욱 강경하게 주장하는 것들이 많다. 사도신경에 대해서는 그의 ‘해명서’에서 ‘본인은 사도신경 자체에 대한 비판을 가하거나 사도신경을 불신한 적이 없습니다.’ 라고 하였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님을 그의 저술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솔직하게 ‘전에는 그렇게 주장하였으나 이제는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견해를 바꾸었다’고 말했어야 할 터인데, 오히려 ‘본인은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은 정직하지 못하고 옳지 못한 태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이라도 성경적으로 지적될 만한 내용이 본인의 책에 있다면 그에 대해서는 기꺼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는 말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으며, 이광복 목사는 사실상 자기 견해를 수정하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광복 목사의 종말론에 대한 견해는 세대주의는 아니지만 세대주의 견해와 유사한 것들이 많으며 개혁주의와는 다른 것들이 많다.
그의 성경 해석은 원어와 문맥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은 것들이 많으며, 성도들로 하여금 그릇된 성경 해석과 종말론으로 오도하는 불건전한 것들이 많다. 따라서 그의 종말론은, 특히 징조 해석에 있어서는, 세대주의적 견해에 가까운 불건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객관적 비교를 위해, 예장통합 제100회 총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의 ‘이광복 목사의 요한계시록에 대한 연구보고서’ 전문과 예장고신의 보고서 2건의 전문을 이어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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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장통합 제100회 총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연구보고서④ ]

이광복 목사의 요한계시록에 대한 연구보고서

I. 연구 경위

본 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의 순서노회장 이인호 목사가 ‘이광복 목사의 요한계시록은 과연 성경적 인가?’라는 질의건(순서노 제38-29호)이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에 이첩되어 연구하게 되었다. 현재 이광복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 소속인 목양교회(www.mokyang.or.kr, 서울특별시 강동구 성내동 120-65번지)의 담임목사이다.

II. 연구 보고

진용식 목사가 ‘흰돌선교센타 이광복 목사 그의 종말론과 삼세대론은 성경적인가?’라는 글을 <교회와신앙>(1994년 8. 9월호)에 발표한 이래 이광복 목사의 신앙과 신학에 대한 평가들이 일부 인사와 일부 교단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교회와신앙>의 2001년 2월호에 실린 ‘이광복 목사의 종말론은 비성경적이다.’라는 최삼경 목사의 비판이 있었다. 이에 대해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 총회장 장춘호 목사’와 동(同) ‘신학위원회 위원장 정규남 목사’가 2001년 2월 22일에 공동으로 발표한 ‘성명서’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최삼경 목사가 이광복 목사를 지적하여 비성경적이라고 지적한 첫째, 양태론자 둘째, 삼세대론자 셋째, 다른 구원관이 요청된다고 주장하는 자 넷째, 말세에는 선행과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자 다섯째, 시한부 종말론자 이상 다섯 가지 내용을 조목조목 검토한 결과 최삼경 목사의 비판은 사실과 다르며 임의적인 틀에 짜맞춘 자기 결론임을 확인하였다. 이광복 목사는 최삼경 목사가 지적하는 그런 잘못된 주장을 한 일이 없다. 이광복 목사는 지금까지 본 교단 산하 신학교 교수와 목회자로 보수 개혁 신학과 신앙에 바르게 서 있으며 그 전개 방법은 다양하지만 근본적으로 건전하며 우리는 그의 신앙과 신학에 신뢰를 갖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고신)은 이광복 목사의 건에 대하여 신학위원회에서는 “1) 이광복 목사의 해명서에 대한 교수회의 보고서를 그대로 받기로 하다. 2) 교수회가 보고서를 통해 ‘이광복 목사의 종말론 해석에 관련한 부분은 한국교회가 주의해야할 종말론의 내용과 유사한 것임을 지적한 것’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며, 본 교단 교회에 경각심을 일깨운 것으로 사료된다. 3) 따라서 본 교단 교회는 위의 내용들을 유념해야할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렸고, 본회에서는 “2번 내용은 이미 보고서 안에 있으므로 1, 3번을 받기로 하고”라고 가결했다. ‘이광복 목사의 종말론에 대한 고신 교수회 평가보고서’ (2013)를 살펴보면, 이 보고서는 이광복 목사의 종말론과 관계된 네 가지 성경해석 문제들(이스라엘독립 문제, EU/유럽연합 문제, 열 발가락에서 적그리스도 출현 문제, ‘666’에 대한 해석 문제)과 그의 ‘사도신경’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견해에 대한 비판적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보고서는 “따라서 이광복 목사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많은 혼란과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종말론에 대한 불건전한 세대주의적 해석과 사도신경에 대한 기본적인 주장을 교정하고 철회하지 않는 한, 고신교회는 그를 초청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로 마치고 있다.

본 교단 순서노회장 이인호 목사가 제출한 “‘이광복 목사의 요한계시록은 과연 성경적인가’에 대한 질의건”은 이광복 목사의 성경해석 오류 및 이단성에 대한 10가지 내용과 종합 및 노회의 견해로 구성되어 있고, 이광복 목사에 대한 비판적인 7개의 글들이 첨부되었는데, 6개는 <교회와신앙>에 이미 발표된 글이고, 다른 하나는 ‘이광복 목사의 종말론에 대한 고신 교수회 평가보고서’(2013)이다.

순서노회의 질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이광복 목사는 다음과 같이 10가지를 주장하거나 해석한다고 한다. 곧, 1) 다른 구원 방법에 기초하여 3세대론 주장, 2) 세대주의 학설에 근거한 한 이례연기설 주장, 3) 양태론적 삼위일체론 주장, 4) 시한부종말론 주장 5) 문제 있는 성경해석방법 주 장, 6) 요한계시록만을 영생의 복음이라 주장, 7) 일곱교회를 잘못해석, 8) 천년왕국을 잘못해석, 천년왕국에 가는 도중에 믿음뿐만 아니라, 공로도 필수적임을 주장, 9) 재림임박설 주장, 이스라엘 해방 강조, 종말의 “흰 떡”만이 유일한 복음으로 해석, 요한계시록이 구원의 복음임을 주장, 10) “계시록 종말론 핵심 열쇠”에 대한 주장이다. 순서노회가 마지막으로 종합하는 내용은 “성경해석적 문제(성경적상징주의), 신학적 문제(양태론, 삼세대론), 계시록만이 영생의 복음이라는 해석이다. 그리고 순서노회는 총회 차원에서 이광복 목사의 이단성에 대한 재연구의 필요성과 이광복 목사의 설교 세미나나 설교 아카데미 참가 금지조치를 청원하고 있다.

본 교단 순서노회장 이인호 목사가 제출한 ‘이광복 목사의 요한계시록은 정말 성경적인가?’라는 질 의 건은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 총회장 장춘호 목사’와 동(同) ‘신학위원회 위원장 정규남 목사’가 답변한 질의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 총회장 장춘호 목사’와 동(同) ‘신학위원회 위원장 정규남 목사’는 ‘이광복 목사는 지금까지 본 교단 산하 신학교 교수와 목회자로 보수 개혁 신학과 신앙에 바르게 서 있으며 그 전개 방법은 다양하지만 근본적으로 건전하며 우리는 그의 신앙과 신학에 신뢰를 갖고 있다.”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본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는 상기 질의 건은 이광복 목사가 속한 해당 교단에서 알아서 처리할 일로 사료되는 것으로 보고한다.

III. 연구 결론

이광복 목사는 <성경종말론> 외 850여권의 방대한 저서를 집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이광복 목사의 신앙과 신학에 대한 일부 교단들의 평가는 다양하다. 본 교단 순서노회장 이인호 목사가 제출한 ‘이광복 목사의 요한계시록은 정말 성경적인가’라는 질의 건은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 총회장 장춘호 목사’와 동(同) ‘신학위원회 위원장 정규남 목사’가 답변한 질의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 총회장 장춘호 목사’와 동(同) ‘신학위원회 위원장 정규남 목사’는 “이광복 목사는 지금까지 본 교단 산하 신학교 교수와 목회자로 보수 개혁 신학과 신앙에 바르게 서 있으며 그 전개 방법은 다양하지만 근본적으로 건전하며 우리는 그의 신앙과 신학에 신뢰를 갖고 있다.”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순서노회의 질의서는 이광복 목사에 대한 다양한 견해 가운데 부정적인 평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반면 이와 유사한 질의에 대해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 총회장 장춘호 목사’와 동(同) ‘신학위원회 위원장 정규남 목사’가 한 답변처럼 이광복 목사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따라서 이광복 목사에 대한 평가는 그가 속한 해 교단에서 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사료 된다.

VI. 참고자료목록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내규>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헌법개정위원회 편.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헌법>.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11.
이광복. <통합계시록 신학>. 서울: 도서출판 흰돌, 2013(개정판).
이광복. <마태복음으로 본 계시록통합강해>. 서울: 도서출판 흰돌, 2014.
오광만. “다시 신비적, 영적 해석으로의 복귀인가?” <교회와신앙>(2001년 3월).
이순배. “계시록만이 영생의 복음인가” <교회와신앙>(2001년 4월).
진용식. “흰돌선교센타 이광복 목사 그의 종말론과 삼세대론은 성경적인가?” <교회와신앙>(1994년 8, 9월호).
최삼경. “이광복 목사의 종말론은 비 성경적이다” <교회와신앙>(2001년 2월).
최삼경. “이광복 목사 소속 교단 측의 양심과 양식을 의심한다” <교회와신앙>(2001년 4월).
<이광복 목사의 종말론에 대한 고신 교수회 평가보고서>(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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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장고신 제63회 총회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보고서(2013년) ]

이광복 목사의 종말론에 대한 평가 보고서

이광복 목사는 역사적 전천년설을 신봉한다고 하면서, 많은 저서들과 강연들을 통해 그의 종말론 견해를 전파하는 데 힘쓰고 있다. 기본적으로 그는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충실하게 따르려고 하며 세대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강변한다.1) 그는 자신이 세대주의를 조목조목 비판해 왔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종말 징조에 대해서는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내용 중 성경적으로 맞는 부분은 비평적으로 수용한다고 말한다.2) 이광복 목사가 비평적으로 수용한다고 한 징조 해석 가운데 중요한 것 세 가지는 ‘이스라엘 독립 문제’와 ‘EU(유럽통합)문제’, 그리고 ‘EU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온다’고 하는 주장이다. 이 세 가지문제에 있어서 이광복 목사는 세대주의적 견해를 취하고 있는데 성경해석상 문제가 아주 많다. 그리고 그의 ‘666’에 대한 견해도 독특하며 문제가 많다.

따라서 위 네 가지 주제에 대한 이광복 목사의 견해를 살펴보고 평가하고자 한다.

Ⅰ. 이스라엘 독립 문제

이광복 목사는 마태복음 24:32의 ‘무화과나무 비유’를 21:18-19의 ‘무화과나무가 마른 사건’과 연결시켜 이해한다. 곧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라는 말씀에 대해, 이스라엘이 주후 70년에 멸망하였다가 1948년에 다시 회복된 사건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1948년의 이스라엘 독립을 예수님의 임박한 재림에 대한 중요한 징조로 본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우선 마태복음 21:19의 사건(예수님의 저주로 무화과나무가 마르게 된 사건)에 대해 이광복 목사는 “모든 주석가들은 예외없이 이스라엘의 멸망, 심판을 뜻한다고 해설합니다.”고 말한다.3)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 사건을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으로 보는 학자들도 많지만(Hogner, Von Leeuwen, 박윤선 등), 그렇게 보지 아니하는 학자들도 많다. 예를 들어 흐호쉐이드는 이 본문은 ‘심판’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능력’에 대해 말한다고 한다.4) 또한 판 브루헌 박사도 이 저주 이적에 대해 심판을 선포한 것이라기보다 믿는 자들에 대한 교훈적이고 격려하는 이적으로 본다.5)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도 이스라엘 심판에 대한 것이 아니라 기도의 능력에 대한 것임을 볼 때(마21:20-22), 제자들에게 기도의 능력에 대한 교훈을 주시려고 이런 이적을 행하셨다는 설명이 더욱 설득력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마태복음 24:32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종말에 대해 여러 말씀을 한 후에, 제자들이 이 모든 일들을 보게 되면 그의 재림이 가깝다는 의미에서 하신 말씀이다(33절). 그런 의미에서 무화과나무를 예로 들어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무화과나무를 한 예로 드신 것이지 꼭 무화과나무를 이스라엘로 보고서 그 회복을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이 해석이 옳은 것은 누가복음이 직접 증거하고 있다.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21:29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여기에 보면 단지 ‘무화과나무’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나무’를 말씀하신다. ‘무화과나무’자체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나무’의 성장 과정, 생장 원리를 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는 것이다(30-31절).

그리고, 이광복 목사는 마태복음 24:32의 ‘무화과나무’ 앞에 관사 ‘테스’가 사용되어 있음을 주목하면서 앞에 나온(마21:19) ‘한 무화과나무’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앞의 ‘한 무화과나무’가 이스라엘을 지칭했다면, 여기의 ‘그 무화과나무’는 더 더욱 이스라엘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6)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헬라어 관사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헬라어 관사는 반드시 앞에 나온 사물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헬라어 관사에 대한 것은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데 헬라어 문법학자 체르윅(M. Zerwick)은 28개 항목에 걸쳐 설명하고 있다.7) 대원칙은, 관사의 사용은 그 말해진 사물이 저자의 마음속에 정해져 있고 친숙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8)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여러 용법이 있는데, 여기 마태복음 24:32에서 ‘무화과나무’앞에 관사가 사용된 것은 무화과나무라는 ‘종’(種,genus)을 가리키기 때문이다.9) 다시 말하자면, 복음서 기자는 앞에서 나온 무화과나무를 가리키기 위해 관사를 사용한 것이다.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21:29절에서 ‘무화과나무’(텐 쉬켄)다음에 ‘모든 나무’(판타 타 덴드라)를 말할 때에 관사를 사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곧 ‘모든 종류의 나무’10)라는 의미에서 관사를 사용한 것이지, 앞에서 나온 나무를 가리키기 때문이 아니다.

Ⅱ. EU(유럽 통합)문제

이광복 목사는 다니엘서 2장 33-34절과 41-43절에 소개된 ‘열 발가락 국가’에 대해 종말에 나타날 적그리스도 국가로 보고 이를 ‘유럽 연합’(EU)으로 연결한다.11) 그러나 다니엘서 2장의 ‘열 발가락’12)을 EU로 연결시키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따르는 해석이다. 느부갓네살이 본 신상(神像)에서 정금으로 된 머리는 ‘바벨론’이며, 은으로 된 가슴과 팔은 ‘메대-바사’이며, 놋으로 된 배와 넓적다리는 ‘헬라-마게도냐’이며 철로 된 종아리는 ‘로마 제국’인데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진흙이요 얼마는 철인 것은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을 말한다. 여기까지는 별 이의가 없다. 그런데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린 것에 대해 정통기독교회는 대개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말미암은 복음운동으로 본다(Augustine, Luther, Calvin, Hengstenberg, Keil, Pusey, Kliefoth, Boutflower, Leupold, Young, 박윤선,이상근 등).13) 물론 개혁주의 주석가 중에서도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보는 학자들도 많다(레온 우드, A. MacRae등).14)

이광복 목사는 ‘사람의 손으로 아니한 돌’의 출현을 재림으로 보고, 하나님이 세우시는 한 나라를 재림 이후에 이루어질 천년왕국으로 본다.15) 그러면서 이광복 목사는 ‘열 발가락’을 종말의 이 시대에 나타난 EU로 본다. 이 주장에 대해 일곱 가지 이유를 들고 있지만,16)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은 거의 없다.

예를 들면 그 첫째 이유로 드는 것이 “발과 발가락이 하나”인 것은 인류 역사 마지막 적그리스도 국가가 하나이지만 여러 개의 나라로 나누인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하면서, 이는 지금의 EU의 성격과 같다고 한다.17) 그러나 “발과 발가락이 하나”라는 문장은 성경에 나타나지 않는 표현이다. 다니엘서가 말하는 것은 “왕께서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철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라는 것이다(단 2:41).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진흙이요 얼마는 철이라는 의미이지, 이광복 목사가 말하듯이 “발과 발가락이 하나”라는 사상을 말함이 아니다. 그래서 이광복 목사는 자기 생각을 집어넣어서 본문을 이해해 놓고서는 “EU는 하나의 연합체이면서 여전히 EU 구성국가들은 독립적인 국가 형태를 띠고” 있다는 사실에 끼워 맞춘다.18) 그러나 이 세상에 독립국가이면서 연합체를 이루고 있는 나라들은 EU외에도 많다. 잘 알려진 대로 영국연방도 있고, 구소련에서 떨어져 나온 나라들이 뭉친 독립국가연합도 있으며, 작지만 네덜란드와 아랍에미레이트연합도 연방국가이다. 그런데 왜 EU만 그런 연방체로 보아야 하는가?

이광복 목사는 그 두 번째 이유로, 지금 EU회원국 중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국가들은 강하지만 에이레, 룩셈부르크, 사이프러스, 몰타, 슬로바키아 등의 국가들은 그 힘의 미미함과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것도 끼워 맞추기식 해석이다. 영국연방 안에도 영국 본국과 캐나다, 호주, 인도 등은 강하지만 그 외에 작고 미약한 나라들이 많이 있다. 뿐만 아니라 EU회원국 중에는 강한 나라들과 약한 나라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네덜란드와 벨기에,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포르투갈,오스트리아 등 중간쯤 되는 나라들도 많다. 지금은 EU가 동구라파로 확대되어서 중간쯤 되는 나라들이 더 많아졌다. 그러면 이런 중간쯤 되는 나라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광복 목사의 이런 주장들에 대해 일일이 논박하는 것은 불필요하며 시간 낭비로 생각된다. 그의 이런 주장들은 소위 통속적인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세대주의자가 아님을 강변하지만, 그들의 주장들에 동조함으로써 그 자신도 세대주의적인 종말론을 가지지 않았나 의심하게 만든다.

Ⅲ. 열 발가락에서 적그리스도의 출현 문제

이광복 목사는 다니엘서 2장을 계시록 17장과 연결시키면서 열 발가락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온다고 주장한다.19) 곧 EU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온다고 주장한다.20) 요한계시록에서 17:10-11의 말씀은 매우 어려운 본문에 속한다. 그런데도 이광복 목사는 이런 어려운 본문에 대해 자신의 문제성 있는 주장을 옳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먼저 계시록 17장의내용을 살펴보자. 사도 요한은 환상 중에 한 짐승을 보았는데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었다(3절). 천사가 요한에게 그 짐승의 비밀을 설명해 주는데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라고 말한다(8절). 그러고 나서 ‘일곱 머리’에 대해 설명해 준다.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깐 동안 계속하리라.”(9절-11절) 여기서 ‘망한 다섯 왕(나라)’은 박윤선 박사에 의하면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대, 바사, 헬라”인 듯 하다고 한다.21) 헨드릭슨은 “고대 바벨론, 앗수르, 신 바벨론, 메데-바사, 헬라-마게도니아”로 본다.22) 헨드릭슨의 이 해석은 그 이전에 나온 흐레이다너스의 해석과 일치한다.23) 그리고 ‘지금 있는 나라’(여섯 번째)에 대해서는 다 로마 제국으로 본다.24) 헨드릭슨은 좀 더 자세하게 “로마의 멸망과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 사이에 교회를 압박하는 적그리스도의 마지막 제국인 모든 적그리스도적 정권의 집합”으로 본다.25) 한편 박윤선 박사는 “로마 이후 어느 나라인지 확실히 알기 어렵다”고 하였다.26)

그런데 이광복 목사는 박윤선 박사의 해석을 다 수용한다고 하면서 이 일곱째 왕은 다니엘서 2장의 ‘열 발가락 국가’라고 한다.27) 그러나 박윤선 박사는 다니엘서 2장의 ‘넷째 나라’에 대해 전통적인 견해를 따라 ‘로마’로 보았다. 이광복 목사는 박윤선 박사를 수용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박윤선 박사의 해석과는 다른 해석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광복 목사는 다니엘서 2장의 ‘두 쇠 종아리 로마’와 철과 흙으로 된 ‘열 발가락’은 전혀 다른 시기의 것으로 보면서, ‘열 발가락 국가’는 미래적, 역사적, 종말론적 국가로서 ‘적그리스도’를 따르는데 이 적그리스도는 바로 ‘교황’이라고 단언한다.28) 이광복 목사는 계시록 17:11의 ‘여덟째 왕’은 적그리스도이며 이 적그리스도는 EU에서 나온다고 본다.29)

그러나 우리는 ‘철 종아리’와 ‘열 발가락’을 이렇게 날카롭게 나누어 보는 것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다니엘서 2:40-43에 보면 ‘넷째 나라’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넷째 나라’와 ‘다섯째 나라’로 나누어서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넷째 나라’는 ‘철로 된 종아리’와 ‘진흙과 철로 된 발과 발가락’을 다 포함하고 있다.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진흙이요 얼마는 철인 것은 ‘그 나라’ 곧 그 ‘넷째 나라’가 나누일 것을 말한 것이지(41절), ‘넷째 나라’와 구별되는 ‘다섯째 나라’ 곧 이광복 목사가 말하는 ‘열 발가락 국가’가 나뉠 것으로 예언한 게 아니다.

뿐만 아니라 ‘적그리스도’가 EU에서 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 계시록 13장과 17장은 대단히 어려운 본문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짐승’은 ‘교회를 핍박하는 악한 세상 나라’를 가리키는 상징으로 사용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30) 이 ‘짐승’은 당시에는 로마 제국이었지만 또한 역사상 존재하는 모든 악한 나라들(제국들)을 총칭한다. ‘짐승’은 세상 정부가 주님의 교회에 대해 보여주는 바 찢는 속성과 멸망시키는 역사(役事) 때문에 상징으로 사용되었다.31) 그렇다면 계시록 17장의 일곱째 왕(나라)도 로마 제국 이후에 나타날 모든 적그리스도적인 나라들(정부들, 세력들)의 집합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살펴본 바 ‘이미 망한 다섯 왕(나라)’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왕(황제)이나 나라(제국)로 보지 아니하고 상징적으로 보는 주석가들도 많이 있다(Mounce, Beale, Van de Kamp 등). 곧, 일곱 왕은 ‘짐승이 그들을 통해 역사하는, 역사상 일어나는 왕들에 대한 비유’로 보는 것이다.32) 일곱(7)은 완전수인데, 일곱 중의 다섯 곧 대부분은 망했다는 의미이다.33)

어쨌든 계시록 17장에서 교황이 적그리스도이며 EU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온다는 주장은 정당화될 수 없는 잘못된 해석이다. 이광복 목사는 박윤선 박사를 수용하고 거기에 연결되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아니하며 박윤선 박사가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세대주의적인 주장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Ⅳ. 666의 해석 문제

계시록 13장 끝에 나오는 ‘육백 육십 육’(666)이 누구 또는 무엇을 가리키는가에 대해서는 예로부터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그런데 이 숫자에 대해 이광복 목사는 문자적인 의미로 본다.34) 물론 오늘날 상품 판매에 흔히 사용되는 바코드(Barcode) 등으로 보는 이론들은 반대하지만, 적그리스도가 통치수단으로 사용할 화폐의 일종으로 본다.35) 현재 화폐의 역할을 하고 있는 ‘IC카드’의 발달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36)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통속적인 세대주의자들이 많이 취하는 견해이다.

어떤 학자들은 ‘666’을 로마 제국의 네로 황제(54-68년 통치)로 보려고 한다. 라틴어 ‘네로 카이사르’(Nero Caesar)를 히브리어로 옮기면 ‘네론 케사르’(nron qsr)가 되는 데, 각각의 알파벳 숫자를 합치면 666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견해도 문제가 많으며 받아들이기 어렵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은 헬라어로 기록되었으며, 그 편지의 수신자들도 헬라어를 읽고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네로 카이사르’의 이름을 왜 히브리어로 바꾸어서 계산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개혁주의 주석가들은 계시록 13장의 ‘666’에 대해 대개 상징적으로 해석한다. 곧 6은 7에 하나 모자라는 수이며, 인간으로서는 최대한에 도달한 수이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의 안식에 미치지 못하는 인간의 교만을 나타내는 수이며, 6이 세 개 겹친 것은 인간의 교만이 극에 달한 것을 의미하며 곧 적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본다. ‘적그리스도’라고 할 때 우리는 꼭 특정의 한 인물만 생각할 필요는 없고, 이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탄의 세력, 마귀의 세력을 가리키는데, 특히 정부 권력을 통해 역사하며 성도들을 핍박하며 마귀를 경배하게 하는 세력 전체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계시록이 기록될 당시에 그것은 로마 제국이었으며, 특히 그 정점에 있는 로마 황제는 성도들에게 황제 숭배를 강요하고 핍박하였다.

그러나 다르게 볼 수도 있다. 13장 본문은 666 숫자 자체가 쓰이는 것으로 말하지 않는다. 헬라인들에게는 원래 숫자가 없었고 대신 알파벳에 숫자의 개념을 부가하여 사용하였다. 따라서 이 표에 사용된 헬라어는 이름이거나 숫자로 사용된 알파벳이다. 본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이니라.”(18절) 여기에 보면, ‘세어보라’고 말한다. 즉, 계산해 보면 666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666이란 숫자 자체가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통속적 세대주의자들은 신용카드를 사용하게 되거나 베리칩과 같이 몸에 이식하는 칩을 가지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적그리스도의 표를 받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문은 결코 자신도 모르게 받게 되는 것으로 말하지 않는다. 적그리스도의 우상에게 절하는 사람에게만 이러한 표를 주어 이것으로 매매하게 한다. 이 표를 받는 것은 완전히 자의(自意)에 의해서이다.

본문의 의도는 적그리스도의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는 데 있다. 따라서 본문은 지혜있는 자는 똑똑히 눈을 떠서 그것이 하나님인지 우상인지를 분별하라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숫자이면 7이다. 그리고 7이 셋이면 완전한 하나님이다. 6은 7에 못 미치는 숫자로서 적그리스도가 아무리 이적을 행하고 신(神)인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하나님까지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에 불과하다. 본문의 의도는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는 데에 있지 ‘666’숫자나 ‘IC카드’같은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결론

이상에서 우리는 이광복 목사의 종말론에 대한 견해를 살펴보았다. 그는 종말론에 대해 역사적 전천년설을 믿는다고 주장하지만, 그 자신이 인정하듯이 종말의 징조에 대해서는 통속적 세대주의자들의 여러 견해를 수용하였다.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을 종말의 중요한 징조로 본 것과 EU(유럽 통합)를 종말 직전에 나타날 적그리스도 국가로 본 것, 그리고 EU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온다는 주장 등이 그러한 것이다. 그 외에도 ‘유브라데 전재’과 ‘666’에 대한 해석 등도 통속적 세대주의 견해와 맥을 같이 한다.

따라서 이광복 목사는 자신은 세대주의자가 아니라 역사적 전천년설을 신봉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세대주의자와 매우 가까운 주장을 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의 징조들 해석과 성경 해석은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우면 불건전한 것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이광복 목사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많은 혼란과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종말론에 대한 불건전한 세대주의 해석을 교정하고 철회하지 않는 한, 고신교회는 그를 초청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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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광복, ‘세대주의 오해에 대한 변증’,(출판지, 출판사, 출판연도 없음).
2) 이광복, ‘세대주의 오해에 대한 변증’, 12.
3) 이광복, ‘세대주의 오해에 대한 변증’, 19.
4) F. W. Grosheide, Het heilig evangelie volgens Matteus(Kampen: J. H. Kok,1954), 319f.
5) J. van Bruggen, Matteus(Kampen: J. H.Kok, 1990),381f.
6) 이광복, ‘세대주의 오해에 대한 변증’, 19f
7) M. Zerwick, Biblical Greek, tr. by J. Smith(Rome:Editrice Pontificio Istituto Biblico, 1963), §165-§ 192
8) Zerwick, Biblical Greek, § 165
9) S. Greijdanus, Het heilig evangelie naar de beschrijving van Lucas, Ⅱ(Amsterdam:H. A. van Bottenburg, 1941), 1002(눅 21:29에 대한 주석 중). 또한 H. W. Smyth, Greek Grammar, rev. by G. M. Messing(Cambridge:Harvard University Press,1956), § 1120 f.
10) Greijdanus, Lucas, Ⅱ, 1002.
11) 이광복, ‘세대주의 오해에 대한 변증’,24.
12) 다니엘서 자체에는 ‘열 발가락’이란 표현이 나타나지 아니한다. 그냥 ‘발’ 또는 ‘발가락’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광복 목사는 계속해서 ‘열 발가락’이란 표현을 사용하면서 EU로 연결시킨다.
13) 박윤선, ‘성경주석 에스겔서 다니엘서’(서울:영음사, 1973), 369-372.
14) 레온 우드, ‘다니엘 주석’ 정일오 역(서울:기독교문서선교회, 1995), 65,101; Allan A. MacRae, The Prophecies of Danial(Singapore:Christian Life Pub., 1991), 71-82.
15) 이광복, ‘세대주의 오해에 대한 변증’, 27-39.
16) 이광복, ‘세대주의 오해에 대한 변증’, 31-33.
17) 이광복, ‘세대주의 오해에 대한 변증’, 31.
18) 이광복, ‘세대주의 오해에 대한 변증’, 31.
19) 이광복, ‘세대주의 오해에 대한 변증’, 35-46.
20) 이광복, ‘세대주의 오해에 대한 변증’, 40. 이광복 목사는 ‘계시록 난해 해설’(서울:흰돌, 1996), 506에서 계17장에 나오는 ‘음녀가 타고 있는 짐승의 열 뿔’을 “장차 미래의 대환난기에 적그리스도를 배출할 국가”로 본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나라는 ‘유럽연합(EU)’이라고 한다.
21) 박윤선, ‘성경주석 요한계시록’(서울:영음사, 1984), 307.
22) 윌렴 헨드릭슨, ‘요한계시록’ 김영익 문영탁 역(서울:아가페출판사, 1981), 210.
23) S. Greijdanus, Openbaring(Amsterdam:H. A, van Bottenburg, 1925), 349.
24) Greijdanus, Openbaring, 349.
25) 헨드릭슨, ‘요한계시록’, 210.
26) 박윤선, ‘요한계시록’, 307.
27) 이광복, ‘세대주의 오해에 대한 변증’, 35.
28) 이광복, ‘세대주의 오해에 대한 변증’, 37, 39, 40-46.
29) 이광복, ‘세대주의 오해에 대한 변증’, 40.
30) Cf. G. K, Beale, The Book of Revelation(Grand Rapids:Eerdmans, 1999), 683: “evil kingdoms who persecute God’s people.”
31) Greijdanus, Openbaring, 267.
32) Beale, Revelation, 871.
33) H. R. van de Kamp, Openbaring(Kampen:J. H. Kok, 2002), 389.
34) 이광복, ‘계시록 난해 해설’, 411-418.
35) 이광복, ‘계시록 난해 해설’, 411.
36) 이광복, ‘계시록 난해 해설’,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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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장고신 제64회 총회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보고서(2014년) ]

이광복 목사의 ‘해명서’에 대한 고신 교수회의 보고서

이광복 목사는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가 2013년 제63회 총회에 제출한 ‘이광복 목사의 종말론에 대한 평가 보고서’(이하 ‘평가보고서’라 함)에 대해 2014년 4월 말경에 해명서(‘고신교단 총회회의록 종말론 평가보고서에 대한 해명서’ : 이하 ‘해명서’라 함)를 보내왔다. 이 ‘해명서’에서 이광복 목사는 “교수회의 ‘평가보고서’ 가운데는 본인의 주장이나 의도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거나 오해된 부분이 없지 않다”고 한다. 그러면서 “물론 부분적으로 본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지적해 주신 것도 있다”고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차후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수정하겠다”고 한다. 이런 말들은 상당히 부드럽고 겸손하게 들린다. 마치 신학대학원 교수회가 그의 견해를 오해한 것처럼 들리게 만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실제’이다. 과연 사실(事實)이 그러한가 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의 그러한 말들이 과연 사실에 의해 뒷받침 되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본 평가서에서는 그의 주장들에 대해 일일이 답을 하고 평가를 하기보다도 그의 핵심 주장들에 대해, 과연 그가 자기의 주장을 수정하거나 철회했는지, 그의 말이나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를 살펴보고 평가 하고자 한다.

그의 핵심 주장은 그의 책 <세대주의 오해에 대한 변증>에 스스로 잘 요약해 주고 있으며 신학대학원 교수회의 ‘평가보고서’에서 항목별로 평가 하였다. 이광복 목사의 핵심 주장은 다음 다섯 가지로 정리 할 수 있다. 1)무화과나무 비유 해석 문제; 2) EU를 적그리스도 국가로 보는 문제; 3) EU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온다고 주장하는 문제; 4) 666 해석 문제 5) 사도신경에 대한 문제. 여기서는 이 항목들에 대해서는 지난번의 ‘평가보고서’에서 이미 다루었으므로 또 다시 상론(詳論)하지 아니하고, 이광복 목사의 해명이 과연 타당한지 여부에 초점을 맞추어 간단히 논하고자 한다.

I. 무화과나무 비유 해석 문제

이광복 목사는 마태복음 24장 32절의 무화과나무 비유를 1948년의 이스라엘 독립으로 본다. 즉.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는 것” 이스라엘의 독립(회복)을 예언한 것이라고 보면서 이때를 출발점으로 하여 종말의 징조들을 본격적으로 나타나며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 근거로 이광복 목사는 마태복음 21장 19절에서 예수님이 저주하신 ‘한 무화과나무’를 여기서 다시 가리키기 때문에 24장 32절의 ‘그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교수회 ‘평가보고서’에서 이러한 해석은 많은 무리가 따른다고 평가하였다. 왜냐하면 이광복 목사의 주장은24장 32절에는 원문에 의하면 관사(article)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 무화과나무는 앞에 나온 21장 19절의 ‘무화과나무’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21장 19절의 ‘무화과나무’가 꼭 ‘이스라엘’을 가리키느냐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24장 32절의 ‘무화과나무’가 이스라엘의 독립을 가리킨다는 주장은 문법상, 그리고 문맥상 맞지 않다.

우선 문법적으로 보면, 이광복 목사는 헬라어 관사 ‘호’의 용법에는 “전에 언급했던 것을 재차 가리킬 때 그 사물을 한정하여 다루는 용법도 있다”고 하면서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더욱 강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핀트가 어긋난 것이다. 헬라어 관사의 용법중에 앞에 나온 사물을 가리키는 용법이 있다는 것은 관사의 ‘일반적 용법’을 말한 것이며 웬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 논란되고 있는 것은 마태복음 24장 32절의 ‘무화과나무’에 사용된 관사가 과연 그런 용법인지 아니면 다른 용법인지 하는 것이다.

교수회의 ‘평가보고서’에서는 마태복음 24장 32절에 사용된 관사는 앞에 온 것을 다시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무화과나무’라는 종(種,genus)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였다. 즉, 포도나무나 사과나무 또는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무화과나무’라는 종 전체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된 관사라는 의미다.

헬라어 문법에 관한 것은 전문적인 내용이므로 좀 더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보통명사에 사용되는 헬라어 관사는 용법이 아주 많지만 크게 보아 다음 두 가지 용법으로 사용된다.

1) 앞에 나온 것을 다시 가리키는 용법: 예를 들면 ‘호 안트로포스’= ‘알려진, 정해진, 이전에 말해진 사람’

2) 종적 용법: 예를들면 ‘호 안트로포스’ = ‘종(種)으로서의 사람’(즉, 짐승이나 그런 것들과 대비되는 존재로서의 사람), 이런 두 용법 중 마태복음 24장 32절에 ‘무화과나무’ 앞에 사용된 관사는 앞에서 나온 것을 가리키는 첫 번째 용법(die anaphorische)이 아니라 ‘무화과나무’라는 종(種)을 가리키는 용법이다. 그런데도 이광복 목사는 관사의 일반적 용법을 들어서 마태복음24장 32절에 사용된 관사도 첫번째 용법이라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핀트가 어긋난 동문서답식 답변이다.

우리가 이런 전문적인 문법에 관한 것을 모른다 할지라도 문맥을 잘 살펴보면 우리의 해석이 옳다는 것을 일반 독자들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4장 32-33절은 이렇게 말한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여기에 보면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이라고 하셨다. 만일 32절의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이 이광복 목사가 주장하듯이 이스라엘의 독립(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33절에서 예수님은 “이와 같이 이 일을 보거든···”이라고 하셨을 것이다. ‘이 일’ 곧 ‘이스라엘 회복’을 보거든···이라고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는 ‘이 모든 일’이라고 되어있다. ‘이 모든 일’은 바로 앞(4-31절)에서 말한 모든 징조들을 말한다.

곧,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 전쟁, 기근, 지진 등을 가리킨다. 이런 징조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줄을 알라는 뜻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에 대해 자연의 이치를 들어 설명하신 것이다. 곧,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 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시 말하자면 이런 자연의 섭리를 통해 때를 분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앞에서 말한 이 모든 징조들을 통해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줄을 알라는 말씀이다. 따라서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는 것”은 특별히 1948년에 이스라엘이 다시금 나라를 회복한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앞에서 말씀하신 여러 징조들을 염두에 두시고서 자연의 이치를 빌어 설명하신 것이다.

이러한 해석이 옳은 것은, 이미 제출한 교수회의 ‘평가보고서’에서도 지적했듯이, 누가복음 21장 29-32절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에 비유로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여기 29절에 보면 그냥 ‘무화과나무’라고 하지 않고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라고 되어 있다. 만일 이스라엘의 독립사건을 가리키려고 했다면 그냥 ‘무화과나무’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나무들’에게서 일어나는 변화를 통해 알 수 있는 ‘자연의 이치’를 가리킴을 알 수 있다. 그리고 31절에서도 ‘이런 일’은 원어로는 복수로 되어 있어서 ‘이런 일들’이다. 따라서 마태복음 24장 33절의 ‘이 모든 일’과 다르지 않다.

II. EU를 적그리스도 국가로 보는 문제

이광복 목사는 그의 ‘해명서’에서 EU를 적그리스도 국가로 보는 견해를 철회하지 않고서 자기의 견해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본인은 다니엘서 금신상 기사인 2장 33-34절과 41-43절에 소개된 ‘열 발가락 국가’에 대해 종말에 나타날 적그리스도 국가로 보고 이들 ‘유럽 연합(EU)’'로 연결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상당한 무리가 따르는 해석’이라고 교수회의 “평가보고서”에서 지적하였다. 따라서 여기서 또 다시 논의하지는 않겠으며, 이광복 목사의 견해에 변경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바이다.

III. EU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온다고 보는 문제

이광복 목사는 EU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온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본인은 다니엘서 2장을 계시록 17장과 연결시키면서 열 발가락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온다고 주장합니다. 곧 EU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온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그의 견해에 변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IV. 666 문제

이광복 목사는 계시록 13장의 666에 대한 견해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면서 오히려 교수회의 ‘평가보고서’를 비판하고 있다. 그는 ‘해명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귀 교단 신학위원회 분들의 평가는 본인의 666해석을 오해하신 듯합니다. 본인은 결코 IC 카드 자체를 666과 동일시한 적이 없습니다. 본인은 666에 대해 대환난을 배경으로 하여 적그리스도가 통치 수단으로 사용할 화폐수단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교수회의 ‘평가보고서’는 이광복 목사의 견해를 오해하지 않았다. 교수회의 ‘평가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이광복 목사는) “물론 오늘날 상품 판매에 흔히 사용되는 바코드(Bae code) 등으로 보는 이론들은 반대하지만, 적그리스도가 통치수단으로 사용할 화폐의 일종으로 본다. 현재 화폐의 역할을 하고 있는 ‘IC 카드’의 발달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현재 화폐 구실을 하고 있는 IC 카드의 발달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말은 이광복 목사가 그의 책 <계시록 난해 해설>(서울: 흰돌, 1996), 414쪽에서 한 말 그대로이다. 그런데 이광복 목사는 ‘해명서’에서 “본인은 결코 IC 카드 자체를 666과 동일시한 적이 없습니다.”고 말한다.

그러나 교수회의 ‘평가보고서’는 이광복 목사가 “IC카드 자체를 666과 동일시했다”고 말하지 않고 “현재 화폐의 역할을 하고 있는 ‘IC카드’의 발달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고 이광복 목사의 말을 그대로 말하였다. 그런데도 이광복 목사는 마치 교수회가 이광복 목사를 오해하여 잘못 말한 것처럼 오도하고 있다. 이광복 목사의 다음 말은 이러한 것을 잘 보여준다.

“본인이 666을 IC 카드와 같은 것으로 주장하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귀 교단 신학위원회 분들께서 본인의 666해석을 오해하신 듯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광복 목사가 오해했거나 왜곡하고 있을 뿐, 교수회의 ‘평가보고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며 이광복 목사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하여 실은 것뿐이다. 어쨌든 계시록의 666을 ‘적그리스도가 통치수단으로 사용할 화폐의 일종’으로 보는 그의 견해는 건전하지 못하며 통속적인 세대주의자들이 많이 취하는 견해이다.

V. 사도신경 문제

이광복 목사는 “사도신경 자체에 대한 비판을 가하거나 사도신경을 불신한 적이 없습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러한가? 교수회가 공연히 오해해서 문제를 만들었단 말인가? 신학대학원 교수회의 ‘평가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 그의 사도 신경에 대한 견해에 대한 평가를 시작한다. “이광복 목사는 사도신경에 대해 한편으로는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부정적으로 보는 양면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러고 나서 여러 가지 각도에서 그의 견해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에, 이광복 목사가 “결코 교회에서의 사도신경 사용 자체에 대해 반대하거나 그릇된 일이라고 지적한 바가 없다.”고 자기를 변호하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사도신경을 가톨릭교회의 산물로 보고 가톨릭적 해석을 마치 유일하거나 절대적인 해석인 양 제시하면서 사도신경을 비판하는 한, 이런 자기 변증은 설득력이 없다. 이미 고신교회 안에서 이광복 목사의 강의로 인하여 사도신경 무용론을 주장한 경우가 있지 않은가?”

이광복 목사는 후의 ‘해명서’에서도 자기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으면서 자기는 “사도신경 자체에 대한 비판을 가하거나 사도신경을 불신한 적이 없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본인의 의도는 사도신경 자체를 비판하거나 불신한 것이 아니요, 사도신경을 오용하여 배교와 교세 확장 도구로 삼는 가톨릭의 의도를 경계하기 위함입니다.”고 한다. 그는 “본인의 저서에 혹시라도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내용이 있자면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또는 “본인의 사도신경에 대한 의도와 달리 지금이라도 성경적으로 지적될 만한 내용이 본인의 책에 있다면 그에 대해서는 기꺼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말뿐이며 실제로 그렇게 수정하거나 철회한 것은 아니다.

이광복 목사는 과연 사도신경 자체에 대해 비판을 가하거나 불신한 적이 없는가? 그는 2013년 2월 1일에 발행된 그의 책 <사도신경으로 본 카톨릭의 정체> 18쪽에서 “하지만 그렇다 해도 사도신경 안에 그릇된 요소들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여기에 보면 ‘사도신경에 대한 해석’에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고 ‘사도 신경 안에’ 문제가 있다고 하였다. 사도신경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이광복 목사 자신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처럼 ‘사도신경’ 자체에 장단점이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그러나 2013년 8월 1일에 발생한 위 책 2쇄에서는 윗부분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수정하였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카톨릭이 하는 것처럼 이를 성경과 같은 신적 권위를 지닌 모호한 내용으로 여기는 것, 사도신경을 가지고 진리를 왜곡하는 모습은 주의해야 한다.” 이 2쇄가 나온 시점은 2013년 8월 1일이다. 신학대학원 교수회의 보고서가 신학위원회에 이미 제출 되고 난 후이다. 그렇다면 이광복 목사는 정직하게 자기가 신학대학원 교수회의 ‘평가보고서’를 보고 나서 자기의 잘못된 견해를 수정했다고 밝혔어야 했다. 그러나 이광복 목사는 2014년 4월말경에 신학대학원에 배달된 그의 ‘해명서’에서 “본인은 사도신경 자체에 대한 비판을 가하거나 사도신경을 불신한 적이 없습니다.”고 말하고 있다. 분명히 비판한 적이 있으면서도(2013년 2월 1일 발행한 <사도신경으로 본 카톨릭의 정체> 1쇄), 2013년 8월 1일에 발생한 2쇄에서 그 부분을 삭제 또는 수정해 놓고서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해명서’에서는 “본인의 저서에 혹시라도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내용이 있다면 즉시 수정하겠습니다.”고 말하지만 만일 그가 정직하게 말하려고 했다면 “(2쇄에서) 이렇게 수정했습니다.”라고 밝혔어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해명서’에서 “하지만 본인은 직접적으로 카톨릭교회가 사도신경을 만들었다고 본인의 저술에서 다룬 바가 없습니다. 다만 카톨릭교회가 이를 사도들이 만들었다고 주장한 것을 비판하기는 하였습니다.”라고 말한다. 과연 그러한가? 이광복 목사는 1쇄에서 분명히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사도신경은 카톨릭교회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사도신경이 카톨릭교회에서 기원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듯이 사도신경은 카톨릭교회가 존재하기 전에 이미 있었다. 그런데도 이광복 목사는 사도신경이 “카톨릭 교회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카톨릭 교회는 성경을 왜곡하며 온갖 이단적 가르침을 펼쳐왔다.”고 말함으로써 사도신경에 대해 매우 부정적 인상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같은 책 결론에서 “... 사도신경을 만들어 낸 유사 기독교 집단, 배교집단인 카톨릭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여기서 이광복 목사는 분명히 카톨릭이 사도신경을 만들어 내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같은 책 2쇄(2013년 8월 1일 발행)에서 이광복 목사는 서문과 결론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삭제하였다. 구체적으로 보면, 서문에서는 “하지만 이 시대 카톨릭 교회는 사도신경을 악용하고 왜곡하여 그릇된 신앙을 유포하고 있다.”고 함으로써 1쇄의 “엄밀히 말해 사도신경은 가톨릭 교회에서 비롯되었다.”부분을 삭제하였다. 그리고 결론 부분에서는 “... 유사 기독교 집단, 배교집단인 가톨릭이...”라고 말함으로써 1쇄의 “사도신경을 만들어 낸”이란 글자 아홉 글자를 삭제하였다. 이렇게 문제되는 부분을 후에 삭제해 놓고서 이광복 목사는 “본인은 직접적으로 카톨릭 교회가 사도신경을 만들었다고 본인의 저술에서 다룬 바가 없습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정직하지 않은 것이다.

만일 그가 정직하다면 “본인은 신학대학원의 평가보고서를 읽고 나서 본인의 견해를 수정하였습니다.”라고 말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내용이 있다면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또는 “···기꺼이 수정하겠습니다.”고 하는 말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광복 목사의 견해는 사소한 한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그의 기존 견해에 변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자기의 견해를 더욱 강경하게 주장하는 것들이 많다. 사도신경에 대해서는 그의 ‘해명서’에서 “본인은 사도신경 자체에 대한 비판을 가하거나 사도신경을 불신한 적이 없습니다.” 라고 하였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님을 그의 저술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솔직하게 “전에는 그렇게 주장하였으나 이제는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견해를 바꾸었다”고 말했어야 할 터인데, 오히려 “본인은 그런 적이 없다” 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은 정직하지 못하고 옳지 못한 태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이라도 성경적으로 지적될 만한 내용이 본인의 책에 있다면 그에 대해서는 기꺼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는 말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으며, 이광복 목사는 사실상 자기 견해를 수정하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광복 목사의 종말론에 대한 견해는 세대주의는 아니지만 세대주의 견해와 유사한 것들이 많으며 개혁주의와는 다른 것들이 많다.

그의 성경 해석은 원어와 문맥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은 것들이 많으며, 성도들로 하여금 그릇된 성경 해석과 종말론으로 오도하는 불건전한 것들이 많다. 따라서 그의 종말론은, 특히 징조 해석에 있어서는, 세대주의적 견해에 가까운 불건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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