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34명의 초상화가 '잊혀진 아내들'이라는 주제로 공개돼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한 남자의 아내였다는 것. 그 남자는 ‘일부다처’를 몸소 실천 했던 몰몬교의 조셉 스미스였다.

왜 몰몬교(후기성도예수그리스도교회, LDS)는 창교자 조셉 스미스만 강조하고 그의 34명의 '아내'들의 삶은 묵살해 왔는가? 한 화가가 34명의 억울한 여성들을 조명하기로 결심하고 초상화를 그리게 된 이유가 그것이다.

레슬리 오 피터슨(60) 씨.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몰몬교의 본거지인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의 교외에 있는 커튼우드에 사는 미용사이자 수채화가인 그는 최근 '잊혀진 아내들'이라는 주제로 유타주 프로보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 몰몬교주 조셉 스미스의 34 아내들 초상을 그린 피터슨 화가 ⓒpatheos.com

5대째 몰몬교 집안에서 자라난 피터슨은 바로 지난해 가을까지 교주 스미스에게 34명의 아내가 있었다는 비밀(?)을 전혀 모르고 지내왔다. 스미스가 오로지 한 아내의 남편인 줄로만 알고 있었던 것.

아마도 스미스의 과거사를 모르는 이런 몰몬교도들이 아직도 상당히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그랬다가 스미스의 황당한 일부다처혼 교리에 따라 34명이나 되는 여성들이 그의 '아내'로서 지냈으면서도 지금껏 그 삶이 역사의 뒤안길에 매장돼 있다시피 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이 사실이 그녀에게 <몰몬경> 이상의 새 계시로 다가왔다.

그랬다가 스미스의 다처혼에 관한 책을 읽고 페미니스트 몰몬주부들의 블로그를 통해 '다처혼시대' 팟캐스트를 보고서 초상화 제작 결의가 굳어졌다.

몰몬교는 지난해 처음으로 스미스가 첫 아내인 에머(Emma) 말고도 수많은 아내들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학자들의 고증을 거쳐 에세이로 발표한 바 있다. 스미스의 다처혼에 관한 첫 에세이는 지난해 11월 교단 웹사이트(lds.org)에 보도됐다. ( 관련 기사 보기 )

스미스의 30여 아내들 중 일부는 이미 다른 교인들과 결혼한 기혼녀들이었고, 한 명은 스미스와 혼인 당시 불과 14살의 소녀였다. 에세이를 읽고 처음엔 분노했었다는 피터슨은 "젠장 왜 난 여태 이걸 몰랐을까?"라며 "이 여성들은 우리 몰몬교 역사의 유령이나 다름없다. 아무도 알려주지도 가르치지도 않았으니까 말이다."라고 통탄했다.

이 상황을 바꿔보겠다고 냉큼 붓을 들고 나서서 지난해 겨울 석 달 동안 수채화 초상 시리즈로 만든 것이 '잊혀진 아내들'이다. "난 그저 옷장 속에 깊이 처박혀 있다시피 한 이 여인들을 끌어내어 그 사연을 알리고 기리고 싶었다."고 피터슨은 취지를 밝혔다. 이 그림들은 여름 내내 프로보의 화랑과 몰몬교 학자․이론가․문화전문가들의 연례대회인 선스톤 심포지엄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또 오는 10월엔 유타주 세인트 조지의 딕시주립대학교에서 전시된다.

이 초상화 시리즈를 골고루 살펴본 몰몬교도, 제시카 킴볼(20) 양은 "마누라가 많기도 했네요."라고 놀란다. 다처혼에 대해 킴볼은 "워낙 많다 보니 확실히 숫자 대 얼굴 개념으로 보게 되네요."라면서 "이건 뭐 무려 한 톤이나 되잖아요!" 한다.

킴볼은 특히 자기 선조로 스미스의 한 아내였던 헬렌 마 킴볼의 얼굴이 자신과 닮았다는 사실을 느낀다. 그 킴볼은 1843년 자기 가족의 '영원한 구원'을 보장받는다는 확신 속에 스미스에게 시집갈 때 겨우 14살이었다. 피터슨의 그림 속 킴볼의 모습은 머리를 땋은 채 앞치마형 드레스를 입고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이다. 10대 청춘을 채 꽃피어 보지도 못한 채 시집가야 했던 운명 탓이었을까.

▲ 14세 나이로 스미스의 아내가 된 킴볼 양의 초상화 ⓒ유튜브 캡처

프로보에 사는 폴 바커(40) 씨는 "눈물이 두드러져 뵈네요."라고 소감을 말한다. 네 자녀의 아버지인 그는 두 형제와 함께 블로그 '이성적 신앙'을 운영하고 있다. '괴상한 몰몬교 냅두기'라는 슬로건을 갖고 있는 이 블로그는 종교의 특이성을 갖고 논하는 포럼이다. 바커는 이 초상 시리즈를 "기막힌 작품이다."며 "이젠 더 숨겨지지 않게 된 게 정말 잘 됐다."고 평가한다. 숨겼던 것을 알려야 하고 보여줘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피터슨은 그림을 배운지 불과 3년 남짓하지만 이 초상 시리즈는 몰몬교계에 상당한 열광을 몰고 왔다. 피터슨은 자기 블로그도 갖고 있고 페이스북에도 그림 시리즈 사진을 올렸다. 또 '엣지'에서는 이 초상화 포스터 한 카피당 20달러씩에 팔고 있다. 또 몇몇 고객들로부터 제작 주문을 받기도 했다.

피터슨은 헤드폰을 끼고 그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그림을 그려왔다. 첫 초상화는 '알저'의 것. 각 그림은 6x8인치 크기로 한 그림당 3-4시간씩 계속 의자에 앉아 그렸다. 봇물처럼 쏟아져나온 이 초상화들을 그리는 동안 호텔에서 사흘간 두문불출하기도 했다. 처음엔 자신의 지하 미용실에 전시해 대부분 몰몬교도들인 고객들에게 보이다가 더 큰 장소로 옮기게 됐다고.

스미스의 숨은 내력을 몰랐던 고객들은 깜짝 놀라기도 했다. "우리 역사의 이 부분을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놀랍다."는 피터슨은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반몰몬적인 줄 알기도 한다."고 전한다. 그래서 흑백 사진으로만 알려진 이 여성들의 19세기 초상에 실감나는 개성을 불어넣기로 한 것이다.

스미스의 아내가 된 34명의 여성들 가운데는 조산사, 교사, 의상디자이너, 음악가, 여성참정론가, 작가 등 엘리트들도 많았다. 심지어 호텔 경영주, 빈민학교 창설자, 병원 창설자도 있었다. 가장 어린 여성은 14세, 가장 고령자는 56세였다. 스미스를 5번째 남편으로 맞아들인 여성도 있었다.

서로 친자매간인 여성도 두 쌍이나 됐고, 1842년 한 달 동안 모녀가 다 스미스의 아내가 된 예도 있다. 이 여성들 중 과연 몇 명이 스미스의 자녀를 낳아주었는지는 지금도 불문에 붙여져 있다. 그러나 7번째 아내였던 실비어 세션스는 자기 딸 '조세핀'의 친부가 스미스였음을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여성들 모두가 자기 딴엔 주님의 뜻을 이행하는 줄 느꼈기에 결혼했겠지요."라고 피터슨은 거든다.

몰몬교 예술을 예수 그리스도와 몰몬 지도자들, 교회 신전 등 세 가지에 초점을 맞췄다고 보는 여권주의자 낸시 로스 교수(딕시주립대․미술사)는 "모든 그림과 삽화 속에 있는 모든 몰몬교 여성 개척자들은 이름도 얼굴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단언한다. "한 가족은 남편과 식구들로만 보게 되지 여성 개인은 무시됐던 거죠. 여자가 누군지 도무지 상관하지 않은 사회였죠".

자신도 스미스의 과거를 최근에야 비로소 알았다는 로스 교수는 피터슨이 스미스의 초상은 뺀 것을 의미 깊게 생각한다. "이것은 창교자와의 관계의 스토리가 아니라 스스로 자기 대표로서의 의미성을 밝힌 겁니다. 자신의 삶을 기리고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스스로 밝히게 된 겁니다. 자기축소화가 아니라."

몰몬교의 '에세이'는 당시 스미스의 다처혼 교리가 '하나님의 명령'이었고 스미스가 "부득불" 받아들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이 진리였다면 왜 지금은 다처혼이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며 왜 몰몬교 지도자들이 지금은 그것을 "부득불" 받아들이지 않느냐는 의문이 인다.

실제로 스미스의 이 교리를 굳게 믿고 지키려드는 근본주의 몰몬교의 일파도 있다. 근본몰몬교(FLDS)는 현재의 주류계인 몰몬교와 스미스의 아들을 교주로 삼고도 다처혼 교리를 내버린 또 다른 줄기인 개혁몰몬교(RLDS)를 이단으로 여긴다. 그러나 FLDS의 현 교주는 수많은 여성들과 다처혼을 한 혐의가 미국 국법에 위배된 관계로 현재도 장기간 철창신세를 지고 있다.

과연 이 세 계파 중 어느 파가 오리지널인가? 답은 애매하다. 각 교주가 스미스의 직계혈통 중심인가, 후계구도 중심인가, 핵심교리 중심인가에 따라 입장과 위치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규모로는 LDS가 최대급이다.

미국의 정통교회들 대다수 특히 복음주의 교회는 이런 몰몬교가 스미스의 교리와 <몰몬경> 중심의 자기 껍질을 벗고 정통으로 돌아서지 않는 이상 정상적인 교회로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다. 그러나 근본주의 계열인 앨 몰러 남침례교 신대원장이나 조지 우드 미 하나님의성회 총회장이 연전에 몰몬사학인 브리검 영 대학교를 몰래 직접 방문하는 등 모종의 정치적인 근접 제스처를 취해왔다. 몰몬교는 또 근래 미국 정치 주류계에 진입할 목적으로 공화당 대선 후보인 미트 람니, 보수계를 겨냥한 정치 칼럼니스트 글렌 벡 등을 적극 전면에 내세워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