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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달석 목사에게 답한다
1994년 11월 01일 (화) 00:00:00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서달석 목사는 세상법정에 소를 제기하기보다 지상 공개토론에 나오기를 바란다

 ** 첫째, 세상 법정에서는 이단 시비를 가릴 수 없다

그 동안 서울 중앙 침례교회(전 강서중앙교회) 목사요 월간 바이블뉴스사 대표인 서달석 목사는 자신의 이단성 문제를 가지고 세상 법정에 소를 제기하는 적지 않은 전적을 남겼다. 다른 사람의 경우는 언급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본인과 관계된 부분만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본인이 소속한 대한예수장로회(통합) 제78회 총회시(1993) 서달석 목사의 이단성이 결의된 바가 있는데 서 목사는 그 것을 중심으로 해서 무려 4건이나 되는 법정시비를 한 것이다. 참고로 그 당시 결의한 결론이 중요함으로 그 원문 그대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연구 결론: 이상의 연구내용을 종합해 볼 때 서달석 씨의 주장은 구원관에 있어서 이단으로 규정된 구원파 권신찬 씨와 같은 주장을 하는 등 성경의 가르침과 본 장로교의 신경에 현저히 위배되므로 그의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엄금하고 그에 의한 간행물 구독을 철저히 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위와 같은 결의에 대해 서목사는 본인이 소속한 교단을 걸어 무려 4 건이나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위의  내용이 78회 총회 보고서와 통합측 총회 소속 '사이비이단문제 상담소' 자료집에 나타나자 두 책에 대하여 각각 민사 소송과 형사소송을 제기함으로 결국 4 건의 소송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미 이것이 교계에 널리 알려진 사건이 된 것은 서목사가 민사로 소송을 제기한 두건, 즉 도서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이 법원으로부터 인정되자, 서달석 목사는 그것으로 자신에 대한 통합측 결의가 잘못된 양 기독교 여러 언론에 공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서목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설혹 서 목사가 법정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서 목사에게 이단성이 없다는 증거가 못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법정에서는 이단성에대한 판결을 할 권리도 의무도 없기 때문이다. 법이 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의 한계는 오직 허위 사실 유포 여부와 명예훼손 여부에 국한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명예훼손 부분에 있어서 법적으로 어떠한 판결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이단성 여부가 가려지는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물론 허위성 문제는 좀 다르다. 허위사실에 의해서  참된 연구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것이다. 예컨대 지적된 내용이 전부가 다 허위라면 법적 승리는 이단논쟁의 승리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이단이라고 규정할 때 지적된 내용 열 가지 중에 어느 하나만 실수를 하여 허위 사실성이 법정으로부터 밝혀졌다고 할 경우, 그 하나 때문에 법정으로부터 불리한 판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기타 다른 문제들을 면밀히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의 허위성 때문에 더 결정적인 아홉 가지를 무시하고 이단성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에게 죄목이 열 가지가 있을 때 아홉  가지가 무죄가 되더라도 한 가지만 유죄라면 그는 유죄가 아닌가? 그런데 한가지가 무죄가 되었다고 아홉 가지도 죄가 없다고 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일 것이다.

 서달석 목사가 배포금지 가처분 판결로 이단문제와 관련해 법정에서 다이긴 양하는 것은 좀 조급한 처사요 지혜롭지 못한 처사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현재 배포금지 가처분 결정에 대해 항소 중인 상태이니 그 결과를 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 둘째, 그렇다면 서달석 목사는 그가 총회 보고서에 대해 고소라 형사소송에서 무혐의 처리됨으로 패한 것은 무엇이라고 설명하겠는가?

본인이 볼 때 통합측 보고서에는 전혀 허위사실도 없으며 명예훼손성도 없다. 나머지 문제도 소송이 진행중이니 지켜보면 알 것이다. 

그런데 똑같은 사건, 똑같은 내용에서 이 책에는 혐의가 없고 저 책에는 혐의가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서 목사가 허위사실과 명예훼손으로 제소한 네 건 중에 한 건인 형사 문제가 이미 무혐의 처리되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사건번호:94형제36051, 피고소인:김창인 외 5인, 검사:곽규홍, 서울지검 동부지청, 처분년월일:94년 9월 29일). 이 판결의 기준이 사람이 아니요 법이라면 나머지도 같은 판결이 날 것으로 믿는다. 서 목사는 배포금지 가처분 판결에 대하여 마치 이단논쟁에서 승리한 것처럼 하기에는 이제 그보다 더 큰 패배를 어떻게 해석하고 변명하겠는지 알 수 없다.

 그런 뜻에서, 본인은 서 목사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면서 본 글을 시작한다.
 기독교인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법정에 고소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법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는 기독교인이나 비 기독교인이나 똑같다고 믿는다. 그러나 목사로서 세상법정에 고소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 아니요, 또한 부분적이지만 그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 일이 있었던 것처럼 겸손하게 잘못을 시인하고 오히려 회개하는 것이 어느 면으로도 유익하리라 믿어지며, 진정 자신이 옳다고 여긴다면 그것을 글로서 밝히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본인의 글에 대해서도 또다시 법정에 고소하든 않든 그것은 서 목사의 자유이다. 그러나 본인은 서 목사의 이단성에 대하여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변명을 들을 필요조차 없다고 느껴지지만, 그가 고소하지 않는 다면 사람마다 이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과 특히 독자의 유익을 위해서 그에게 변명의 기회를 본지가 허락할 것을 약속한다.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은 그의 고소가 두려워한다면 이런 글 자체를 쓰지도 않을 것이다. 세상법정의 판결보다 더 준엄한 한국교회의 성도들의 판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판결이 있지 않는가? 서 목사는 본인의 제안에 심사숙고하여 세상법정으로 가지 말고 지상논쟁으로 나오기를 바란다.

 ** 셋째, 문제의 핵심은 과연 그에게 이단성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이단으로 지목되거나 규정된 사람이면 누구든지 마찬가지이듯이 역시 이 문제의 핵심은 서 목사에게 과연 이단성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물론 이단성의 여부도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자료가 얼마나 객관적이냐의 문제요, 다른 하나는 비판기준이 얼마나 객관적 이느냐의 문제이다. 만일 자료를 잘못 이해했다면 몰라도 자료를 조작했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부분적인 것을 확대하여 누구를 이단이라고 했다면 그가 받아야 할 비난은 아무리 커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때에는 법의 힘을 빌려서라도 거기에 준한 어떤 처벌을 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준의 문제는 다르다. 서로 확연히 다른 기준으로 보면 서로가 상대를 이단으로 보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예컨대 통일교에서 보는 정통교회는 이단일 수밖에 없을 것이요, 정통교회에서 보는 통일교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서 목사와 본인사이에는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거침돌이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형식적으로 서 목사도 정통신학을 가지고있다고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떤 차이 때문에 굳이 이단성이 없다고 스스로 항변하는 서 목사에게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여기서 본론을 말하기 전에 먼저 밝혀둘 일이 있다. 이 일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이지 통합측의 공식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통합측이 그 같은 결의를 하기까지 참여했던 한 사람으로서 그 결의에는 하나의 하자도 없음을 믿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것과 공식적인 것이 구별되어야 하겠기에 전제하는 말이다.

 서달석 목사가 질의해온 문제들을 하나씩 대답하는 형식으로 본론을 진행하겠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 그가 물어온 형식적인 부분과 또 내용에 속한 부분이 동시에 다 해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달석 목사의 질의를 따라 밝히는 그의 이단성은 무엇인가

 서달석 목사가 자신에 대한 통합측 결의에 대해 제기한 문제는 여러 가지가 된다. 하나씩 열거해 가면서 서 목사가 제시한 문제들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들이었는지 증명하고 또 비판하도록 하겠다.

 서 목사는 너무나 여러 번 공개 질의서를 여러 신문 광고란을 빌려 게재하였고, 또한 내용증명을 통합측에 보내왔고, 또한 법정에 호소하였기에 그것들을 다 살펴보기에는 지면이 부족할 것이다. 그는 1994년 3월 11일에 10개항의 질의서를 통합측 총회에 보내며 94년 3월 21일 까지 답이 없을 경우 법적 소송에 들어갈 것을 통고하였고, 이어서3월 27일자 주간 기독교연합신문에 7개항 질의서를 내었는데 3월 27일까지 답이 없으면 민·형사 책임을 묻겠다고 하여놓고(같은 내용의 광고가 26일자 크리스천신문에 그리고 동 일자 교회 연합신문에도 게재되었다), 그가 답해달라고 임의로 정한 3월 27일 보다 훨씬 전인 3월18일이 그는 이미 법원에 제소한 상태였다는 것은 웃지 못할 사실이다.

결국 서달석 목사는 이 점에 있어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이미 세상법정에 제소한 상태에서 그 같은 광고를 게재하였으니 목사로서 세상 법정에 제소하기를 즐기는 사람이란 비판을 피할 길이 없게 되었다. 서 목사는 위의 내용 외에도 도서반포 등 금지 가처분 신청에서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성이 있다고 제시한 문제가 열 가지가 되는데 이 모든 것 중 가치 있다고 느끼는 핵심적인 내용들만 정리하여 대답하겠다.
 
 ** 첫째, 장로교 헌법 정치원리 제1조에 신앙에는 '양심의 자유'가 있다고 했는데 왜 그것을 어기고 자신을 비판하느냐는 물음에 대하여

 서 목사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해 보자.
 "귀 교단 헌법 정치원리 제1조 양심의 자유 항에 '누구든지 신앙에 대하여 속박을 받지 않고  그 양심대로 할 권리가 있으나 아무도 남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한다'는 법을 스스로 깨뜨리고 본인이 주장한 사실이 없는 허위 사실로 본인을 모독한 야만적인 행위를 해명하라"

 서달석 목사는 1993년까지만 해도 대한예수교장로회 강서중앙교회 목사였다. 물론 지금은 어떤 사유인지 한국기독교 독립침례회 소속목사가 되었다. 그런데 그가 진정 장로교 목사로 장로교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소리를 하지는 안았을 것이다.

 두 가지로 나누어서 대답하겠다.
 첫째, 서달석 목사 스스로 모순된 소리를 하고 있다. 본인은 서 목사가 천주교를 비판하는  내용에 있어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천주교를 변호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인용하고 있는 장로교 헌법 정치원리 제 1조 '양심의 자유'는 서 목사가 말하는 의미는 결코 아니지만, 그가 천주교를 비판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야만적 행위'가 아니며 통합측의 서 목사에 대한 비판은 어떻게 '야만적 행위'가 되는지 알 길이 없다.

서달석 목사의 양심은 비판받을 수 없는 양심이요, 천주교인들의 양심은 비판받아도 되는 양심이란 말인가? 오히려 목사는 개인이요 천주교인들은 단체인 점을 고려할 때 천주교인들의 양심이 더 큰 양심이요 더 소중한 양심이 아니겠는가? 서 목사는 이장림 씨에 대해서도 맹렬하게 비판하는 것을 보았다. 이장림 씨도 서 목사의 말로 하자면 자기 양심대로 믿을 권리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서 목사는 이장림 씨를 이단이라고 비파 했는가? 이는 분명 자가당착 적 행위가 아니고 무엇인가?

 둘째, 장로교 헌법이 말하는 '양심의 자유'는 서 목사가 말하는 그런 의미가 결코 아니다. 사실 이점을 구체적으로 변호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어 보일 뿐이다. 어쩌면 서 목사 자신도 장로교의 '양심의 자유' 가 의미하는 참 뜻이 자신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되지 못함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헌법이 말하는 양심의 자유가 아무렇게 믿어도 된다는 말이 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장로교에는 이단 비판도 할 수 없고 누구를 치리 할 수도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누구든지 양심대로 믿을 권리가 있기 때문에  누구를 이단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이라면 장로교에는 이단 연구란 불가능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양심의 자유' 다음에 나오는 내용들을 신중하게 읽어보기만 해도 그런 무지한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것이 의미하는 참된 뜻은 성경에 위배되고 그릇된 가르침과 교훈에 대해 따르지 않고 비판할 양심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연히도 이단 시비가 있는 사람들 중에 소위 '양심의 자유'를 들어 자신들을 변호하고, 또 자신들을 사이비니 이단이니 하는 사람이나 교단을 공격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용기 목사 측에서 그랬고, 박윤식도 그랬고, 역시 서달석 목사도 그랬다.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을 변호해야 하는 저들의 입장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남의 말을 이용하려면 먼저 말한 자의 본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해야 하는 것은 식이 아니겠는가? 장로교에서 말하는 양심의 자유는 저들이 사용하는 그런 뜻은 결코 아닌 것이다. 장로교 헌법 자체가 이점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직접 하나만 살펴보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2. 하나님만이 양심의 주가 되신다(약4:12, 롬14:4). 이 하나님은 자기의 말씀에 배치되는 어떤 것에서나 혹은 신앙과 예배에 관한 인간적인 교리와 계명에서 벗어날 자유를 주셨다(행4:19, 5:29, 고전7:23, 마23:8~10, 고후1:24, 마15:9). 따라서 그와 같은 교리를 믿거나 그와 같은 명령에 대하여 순종하는 것은 진정한 양심의 자유를 위반하는 것이다(골2:20~23, 갈1:10, 5:1, 2:4,5 시5:1)." (장로교 헌법 제1편 교리, 제4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제20장 신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에 관하여, 2항에 나오는 내용임)

 같은 의미의 내용을 여러 곳에서 살펴보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지만 무가치한 일이라 여겨져 그만 두겠다.

 ** 둘째, 통합측 강원동노회에서 조사 재고 요청이 있었는데도 조사 연구한 사실이 잘못되었다고 항의하는 점에서 

 먼저 서 목사의 항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 보자. 신문에 질의한 내용보다 내용증명 형식으로  질의한 것을 인용하겠다.

"통고인 (서달석 목사를 말함)의 신앙 문제는 이미 강원동노회에서 서면질의로 완결된 사항이었으며 강원동노회에서 신앙교리상 이상 없기에 조사재고 요청을 하였으나 피통고인(통합측 총회를 말함)은 통고인의 명예를 의도적으로 훼손시킬 목적으로 근거 없이 조사 연구하여 제78회 총회보고서에 허위 사실을 유포하여 통고인의 명예를 훼손하였으므로 이에 해명과 사과 성명을 요구합니다."

 독자들을 위하여 대강의 설명이 필요한 것 같다. 통합측 총회에서 서달석 목사의 이단성을 연구하게 된 것은 총회 소속 노회인 강원동노회에서 1차 연구 요청이 있은 후 다음과 같은 재고 요청이 있었다. 독자들은 유의하여 그 내용을 살펴보기 바란다.

 "총회에 헌의한 후 서달석 목사가 본 노회 이단 사이비대책위원회에 면담을 요청하고 방문한 바 있사오며 자신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시인했고,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의 서면 질의에 대한 응답서도 받았으므로 이에 이단성 여부에 대한 조사 재고 및 선처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서달석 목사는 네 가지 점에서 잘못을 하고 있다.
 첫째, 강원동노회가 "교리상 이상이 없기에 조사 재고 요청을 하였다" 고 하는 서 목사의 말이 잘못되었다. 분명히 서 목사가 면담을 요청하고 자신의 잘못을 부분적으로 시인했다고 기록된 것이다. 그가 시인한 내용이 무엇인지 직접 살펴보자.

 "질의4. 666 해석 문제(계13:16~18). 이 부분에 있어서는 소인도(서 목사 자신을 가리킴: 필자 주)과거에 숫자해석에 있어서 오류가 있었음을 시인하오며92년부터는 666해석을 완전히 수정하고 루터, 칼빈, 쯔윙글리 등 종교개혁자들의 영적 해석법을 따르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또한 소인은 이미 '7년 대환란', '휴거설', '다니엘 한 이레' 사상을 버렸습니다. 결론적으로, 현재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666해설은 철저히 비판합니다"(제78회 총회 보고서 p678).

 강원동노회가 재고요청을 한 것은 서 목사에게 오류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류가 있음을 시인했기 때문이다. 진실은 끝까지 진실일 때만 참 진실일 수 있는 것이다. 서 목사가 강원동노회에 위와 같은 서신을 보낼 때 자신에 대한 이단성 연구를 일시적으로 회피하기 위한 정치적 행동이었다며 몰라도, 정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실한 의미에서 보낸 서신이었다면 그와 같이 모순된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자신이 인정한 것처럼 서 목사의 종말론에는 적지 않은 잘못이 있으며, 그가 그것을 시인하고 회개한다고 보였기에 동노회에서 재고 요청을 한 것인데, 이제 자신에게 잘못이 없어서라고 하니 분명히 보낸 서신자체가 거짓이었다는 말이든지, 아니면 이제 오류가 있다는 말이 취소되었다는 말이 취소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둘째, 강원동노회의 요구는 연구를 중단하라는 것이 아니요 재고하라는 요청이었다. 비록 연구를 중단하라는 요청이 있었더라도 연구할수 있느냐 없느냐는 통합측 내부에 속한 문제이지 서 목사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못되지만 분명히 재고요청이었다. 재고란 다시 고려해 달라는 말인데 재고해 보아도 연구의 필요를 느꼈기에 연구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셋째, 총회시 1700여 명의 총대들은 이 문제를 중단하라 하지 않았으며 '사이비 신앙운동 및 기독교이단대책위원회' 에 위임 처리하도록 결의한 것이다(77회 총회 회의록p109). 그가 통합측 총회의 내적 결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권리도 없지만 이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려면 1년이나 지난 78회 총회 후에 할 일이 아니라 77회 총회 후에 바로 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넷째, 통합측 총회가 그 같은 결의를 한 과정이나 내용에 있어서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러 나 혹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서 목사가 그 잘못을 물을 자격은 없는 것이다. 그것은 통합측 내부의 일이기 때문이다. 서 목사가 아예 강원 동노회가 헌의할 때부터 '양심의 자유'를 침해했다느니 어쩌니 했다면 그래도 주관적으로는 말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강원동노회 헌의는 정당한 것이었고, 그 후의 총회 결의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말은 논리적 평형이 안 맞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서 목사가 천주교를 비판하고 또 이장림씨를 비판할 수 있듯이 통합측 총회도 얼마든지 서 목사를 비판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서 목사에게 이단성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서 목사는 그 점에 대해서만은 항의도 하고 변증도 할 의무와 권리가 있는 것이다.

 ** 셋째, 강원동노회의 헌의는 종말론 문제였는데 조사 요청하지도 않은 구원론 문제를 거론하였다는 점에 대하여

이점 또한 근본적으로 통합측 총회가 서 목사에 대하여 연구할 수 있느냐 없느냐만 밝혀지면 되는 문제이다. 연구할 수 없다면 종말론 문제든 구원론 문제든 연구할 수 없을 것이요, 연구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한 환자가 위가 아프다고 호소하며 병원에 찾아 왔을 때, 의사가 진찰해 본 결과  간도 나쁜 것을 알았지만 그가 위장의 통증만 호소했으니 간에 대하여는 진찰할 수 없다는 말인가? 아니다. 오히려 환자로서는 간까지 진찰해 준 것을 더 고마워 해야할 것이다.

통합측 총회에서 연구해 보니 서 목사에게 종말론 외에도 구원론에 더 큰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고 그 같은 보고를 한 것으로 사료되는 것이다.

 ** 넷째, 통합측 연구 보고서에 서 목사를 '이단 사이비'로 규정한 사실이 없음에도'사이비이단연구' 등의 타이틀에 자신을 포함시켰다는 내용에 대하여

 먼저 그 질의를 그대로 인용해보자.
 "귀 총회보고서 연구결론 항에 본인을 이단사이비로 규정한 사실이 없음에도 간행물에는 사이비이단연구등의 타이틀에 본인을 포함시켜 명예를 훼손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위의 기독교 신문들에서 인용한 것임)

 사실 대답할 가치가 없는 질문이라 느껴지지만 대답해 보겠다.
 첫째, 서 목사는 연구결론의 내용을 자신 있게 유리하게 적용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본래 뜻을 왜곡시키는 것 같다. 왜냐하면 연구결론에 서 목사를 이단이고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구원관에 있어서 이단을 규정된 구원파 권신찬 씨와 같은 주장을 " 함으로 "그의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엄금하고 그에 의한 간행물 구독을 철저히 금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위의 말은 해석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느껴 질 수는 있다고 본다. 어떤 자는 "서 목사는 구원파와 같은 이단이구나."라고 생각할 것이요, 또는 "이단자 권신찬 씨와 같다고는 하였어도 그 자신을 이단이라고 직접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니 너그럽고도 신중하게 결론을 내렸다"고 하는 등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온전한 지각을 가진 자라면 누가 위의 결론을 보고 "아, 서달석 목사는 이단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겠는가? 오히려 누구든지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서달석 목사를 이단자 권신찬 씨와 동일시했다는 점이요, 그러기에  그의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엄금했고 또 그가 쓴 책들을 구독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란 점이다.

 서 목사를 분명한 이단이라고 보는 필자로서는. 혹 다른 제 삼자가 그렇게 해석하여 말했다면 몰라도, 서 목사 자신은 결코 그런 말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 본인이 상담소 소장으로 되어있는 '사이비이단문제상담소'는 통합측 총회 산하 공식기관으로서 '사이비대책위원회'에서 총회로부터 위임된 것들을 연구하여 총회에 보고한 후에 총회가 그것을 결의하면 그 내용을 자료집으로 만들어 왔다. 그러니 책 제목에는 자연히 '사이비'란 말이나 '이단'이란 말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록 꼭 이단 사이비가 아니더라도 '사이비이단대책위원회'에서 연구하고 또 '사이비이단문제상담소'에서 그것을 책자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들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단연구 자체가 명예훼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지만 더욱이 이 문제는 명예훼손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서달석 목사는 엄연히 이단성이 명백히 드러남으로 이단자 권신찬 씨와 동일한 사상을 가진 사람으로 밝히고 있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그 같은 항의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 다섯째, 서 목사 자신은 시한부 종말론의 사상적 토대가 되는 수많은 책을 번역 또는 집필하여 보급하지 않았다는 내용에 대하여

 먼저 그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렇다.
"통고인(서 목사를 가리킴)은 성경에 있는 종말론만 믿고 가르쳤으며 통고인의 간행물은 모두 국내의 학자들의 성경 보수 정통서적이며 1990~1993년까지 시한부 종말론을 TV,신문, 잡지서적, 세미나를 통해 왕성하게 비판하였던 바 피통고인은 연구보고서687쪽에 '시한부종말론의 사상적 토대가 되는 수많은 책을 번역 또는 집필하려 출판 보급해 왔다' 는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명예를 훼손하였습니다."

위의 말은 그가 종말론에 대한 책들을 쓰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요, 자신이 종말론에 대해 쓴 많은 책들을 통해 말하고 있는 종말론은 성경적이요, 보수적으로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말일 것이다.

 여기서도 그의 모순된, 아니 부정직한 모습을 본다. 그는 분명히 강원동노회에 보낸 서신 속에서 자신의 종말론이 잘못되었다고 했다. 강원동노회에서도 재고요청을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자신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시인했기 때문" 이라고 되어있다. 그 자신의 말은 이 점을 더 명백하게 한다. 666과 관련해서 "숫자해석에 있어서 오류가 있었음을 시인한다"고 했고, "7년 대환난, 휴거설, 다니엘 한 이레, 사상을 버렸다" 고 했으며, 그 자신도 "현재 시한부 종말론 자들의 666 해설을 철저히 비판한다"고했다. 이제와서 그가 시인한 666 숫자해석에 대한 자신의 오류가 시한부종말론성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면 목사로서가 아니가 인간으로서도 양심이 의심스럽다. 필자는 그가 '7년 대환난', '휴거설' ,'다니엘 한 이레' 의 무엇을 구체적으로 버렸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혹 서 목사가 본인의 글에 답을 보내 온다면 이점을 좀 확실히 밝혀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본인이 이해하기는 '666' 이나,'7년 대 환난" 이나, '휴거' 나, '한 이레'문제는 시한부종말론 자들이 주장하는 것들로써 92년 휴거문제로 온 세상이 소란하던 그 때에 그것들이 잘못되었음을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자 서 목사도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시한부 종말론 자들의 666 해설을 철저히 비판한다"고 한 것도 역시 같은 뜻으로 이해되며, 그의 종말론에 대해 강원동노회가 헌의한 이유도 그의 시한부종말론성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통합 측에서는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작성하게 된 것이다.
"종말론 문제: 서달석 씨는 이장림 등의 1992년 10월 28일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사상적 토대다 되는 수많은 책을 번역 또는 집필하여 출판 보급해 왔다.('세계정부음모', '현실로 나타난666', '현실로 나타난 101 재림예언', 성경숫자의 영적 비밀', '종말론 특별세미나 바인더 교제', '지금이 왜 마지막 때인가?', 적그리스도의 정체'. '최후의 중동 사태'. ' 월간 바이블 뉴스' 등) 서씨는 그이 666 해석 문제로 인하여 '한국기독교장로회' 로부터 '유사 이단'으로 지목되고(한국기독장로회 회보, 1990년 10,11월 합본호, pp.36~38.) 서 씨와 유사한 사상을 가지고 있던 이장림이 이단으로 규정되면서 '시한부종말론' 이 언론의 질타를 받자 자신의 주장에 대해서 '과거의 오류가 있었으며 완전히 수정했다' 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서씨는 그 후에도 여전히 그가 발행인으로 있는 '바이블 뉴스'1992년 9월호에 '세계정부음모', '종말론 특별세미나 바인더교재', '지금이 왜 마지막 때인가? ', '최후의 중동사태', 월간'바이블뉴스' 합본(1988년 9월호부터) 등의 출판물들을 계속 보급하고 있음을 광고하여 '사과' 따로 '행동' 따로의 이중적 모습을 보이고있어 그의 진실성이 의문시된다."

 위의 말 그대로이다. 여기서 한국기독교 장로회(기장)에서 서 목사를 유사 이단으로 했던 내용을 소개할 필요를 느낀다. 왜냐하면 서 목사의 종말론의 이단성을 연구하고 말하는 것은 통합측 교단만 아님을 증명하는 대표적 케이스가 되기 때문이다.

 "본보는 총회가 본 교단의 강원 노회로부터 질의 받은 말세론(소위666) 에 관한 신학적 확인과 입장을 싣습니... 최근'666' 말세론은 마치 담(痰)이 제멋대로 온 몸을 돌며 사람을 괴롭히듯 한국교회를 이곳 저곳에서 불쑥 불쑥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 말세론을 주장하는 장본인 은 서울 강서중앙교회의 서달석 목사인데, 그는 자기가 쓴 책과 번역한 책, 방송과 전화상담, 부흥회와 각종 집회 등을 통하여 자기의 주장을 펴 나가고 있습니다...'666' 말세론은 유사이단입니다. 성경을 부인하거나 예수그리스도 외에 다른 재림의 주를 내세우거나 재림의 날짜를 못박는 일은 '아직'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전적으로 이단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류의 철학을 세워 교회를 혼란케 만들고 있기 때문에 유사이단으로 규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회보, 1990년 10·11월 합본호,p.36~37)

 일단 서 목사의 글을 기다려 보고 자신의 사과는 시한부종말론성 때문이 아니였다고 한다면 그때 구체적으로 그의 시한부종말론성을 증명하고 비판하도록 하겠다.

 ** 여섯째, 서 목사가 기성교회를 비판하지 않았다는 말에 대하여

 우선 서 목사가 기성 교회를 비판했느냐 비판하지 않았느냐를 따지는 것은 무가치한 것으로 사료된다. 왜냐하면, 비판받을 것을 비판했느냐, 비판받을 수 없는 것을 비판했느냐가 중요하며 그 다음을 어떤 자세로 비판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즉 정당한 비판이냐 정당하지 못한 비판이냐가 문제인 것이다. 정당한 내용 정당한 방법의 비판이라면 오히려 개혁자로 칭송을 들어야 할 것이 아닌가?

 통합측에서 취급한 문제는 교회의 의식과 절기문제였다.'즉 서 목사는 유아세례와 부활절과 성탄절 등은 성격에 없는 것으로 바알숭배에서 나왔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유아세례를 바벨론에서 행한 "인신희생 제물의식" 이라고 했고, 부활절에 계란 먹는 것도 바벨론의 음란한 풍습이라고 비판했다.

  직접 그의 말을 인용 해보자.
 "통고인은 신구약 성경을 중심으로 정통 신앙을 가르쳐 왔던 바 피 통고인은 연구보고서 제 685쪽에 '기성개신교회를 ...비판하는 것이다' 라는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명예를 훼손하였는바 해명하고 사과 성명을 발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서 목사가 기성교회를 어떻게 비판했는지 그 내용을 하나씩 인용해보자. 먼저 유아세례 문제이다.
 "그러면 '유아세례' 의 뿌리는 어느 곳에 있는가? 유아세례는 니므롯의 아내 세미라미스가 만들어놓은 바벨론 유산인 것이다. 바벨론의 음녀 니므롯의 아내 세미라미스는 짐승희생대신 '인신제물' 희생 제사를 창출하여 어린아이를 희생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만들었는데 그 어린아이를 먹는 제사장들이 바알 제사장들이었다고 한다...결론으로 유아세례는 그 세례의식에 있어서 비성경적이며 그 뿌리가  바벨론 어린이 인신 희생 제물 의식이며 가나안의 몰렉(렘19:5, 렘 32:35) 의식에서 나왔기 때문에 버려야 한다."(바이블뉴스 1992년 11월호,p.15)

이제 부할절에 계란 먹는 것에 대한 비판을 보자.
"부활절의 용어가 영어로 이스터(Easter) 인데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The Resurrection)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용어이며 그 용어의 뿌리는 역시 바벨론 여신(女神)숭배에서 출발한 것이다...로마에서는 인구 다산정책을 쓰면서 다산의 여신 이스터(Easter)를 섬겼는데 그날은 특별히 음란한 날이었다. 그날이 봄철인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모방한 여신환생을 뜻하는 날로써 '이스터의 날( Easter Day)'이 '오늘날 부활절(The Glory of  Easter)'로 바뀌어져 여신 상징이요 다산의 상징인 바벨론 풍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 부활을 축제한 기록이 없다. 다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셨을 뿐이다(행2:30~ 33). 결론으로 부활절 행사, 명칭 계란 먹는  풍습은 바벨론의 음란한 풍습이므로 버려야 한다" (같은 책 p.16~17)

성탄절에 대한 그의 비판을 더 살펴보자.
"로마에서는 태양신 '주피터'와 '솔(Sol)'을 믿었는데 12월 25일에 태양신축제인 '사투날리아(Saturnalia)'의 축제를 하면서 12월 25일을 'Natilis Solis Inviti' 라고 불렀었다.

그리고 4세기 때에는 12월 25일을 '정복할 수 없는 태양신의 날' 로 정하여 매년 성대한 축제를 거행해 오던 중 교황 줄리어스(Julius AD 337~357)가 이교도들이 태양신을 믿고 있어서 그들을 기독교화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태양신의 아들 ' 이라고 하여 태양신 '솔(Sol)'과 예수님은 같이 태양신이라 속여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믿게 하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12월 21일은 동짓날로 1년중 해가 가장 짧은 날이기 때문에 25일을 태양의 생일로 정하여 축제를 해 왔던 드르이드 풍습과도 일치되어 12월 25일은 바로 성경에 있는 바알신의 축제의 날인 것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교회는 예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섬기고 있는데 예수님은 그런 생일잔치를 말씀하진 적도 없고 더군다나 태양신 축제일을 성탄축제로 섬기는 그 행위 자체가 가증스러운 행습 이란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같은 책 p.17)"

 서 목사는 정통교회에 대해 마치 이단자들이 공격하듯이 공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부활절의 계란 먹는 것에 대한 비판이 혹 잘못된 일이라 하더라도 개혁의 뜻으로 말하는 것 과 그렇지 않은 것은 다를 것이다. 성경에 부활절을 지키란 말이 없다는 말도 안식일 교회의 주장과 같은 것인데, 특히 유아세례에 대한 그의 입장은 유아세례를 인정하고 있고 또 유아세례를 시행하고 있는 교회에 대한  서 목사의 정직한 시각은 이단을 보는 것보다 더한 것이지 그보다 낮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서 목사가 보는 정통교회는 (유아세례를 행하는) 이단일 것이다.

 여기서 구체적인 변증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가 기성교회를 비판하지 않았다고 할뿐 내용자체의 변증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성교회를 두고 바알신을 섬긴다고 하는것보다 더한 비판, 더한 저주가 있는가? 통합측의  연구를 소개하는 것으로 결론을 삼으려 한다.

"그러나 유아세례는 칼빈을 위시한 종교개혁자들도 성경적이라고 인정했으며(창17:7,9, 갈3:9,14, 골2:11,12, 행2:38, 롬4:11,12, 고전7;14, 마28:19, 막10:13~16, 눅18:15) 이는 개혁교회의 전통과 일치하는 것으로(웨스트민스트신앙고백, 제28장 세례에 관하여4항 예배와 의식, 제11장 세례3항) 본 교단이 지켜 행하는 교회의 성례의식이다. 또 우리가 부활절과 성탄절에 행사를 갖는 것은 다름아니라 죽음을 이기신 우리 주님의권능과 부할의 승리가 우리에게 함께있을 것을 바라는 소망을 심고, 평화의 왕으로 찾아오신 우리 주님 앞에 감사와 찬송으로 경배하며 새로운 기쁨과 희망을 갖도록 하는 의미를 되새기자는 것이다.(예배와 예식, 제 4장 예배의 내용 5항)"

 **일곱째, 서 목사 자신은 구원파와 같이 구원을 위한 회개만 주장하지 않고 반복적 회개도 주장했다는 말에 대하여

그 동안 서 목사의 항의를 유심히 지켜본 삶들은 이 문제가 가장 중요한 논쟁의 핵심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의 내용들을 보면 이것을 더 쉽게 알 수 있다. 그가 문제 제기한 열 가지 내용 중 다섯 가지가 바로 이 문제에 속한 것이다. 하나씩 전문을 소개하겠다.

"5. 피통고인의 총회 제77회 총회 촬요 17쪽에 발표된 내용인 '또한 구원을 위한 단회적 회개와 성화를 위한 반복적 회개를 구별하지 못한 것이다.' 라는 주장처럼 통고인 역시 구원을 위한 단회적 회개와 성화를 위한 반복적 회개를 주장하고 있는바(바이블뉴스 92년 7월호 제43~44쪽) 피통고인은 보고서 제688쪽에 '서 씨는 회개를 계속하는 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다시 못박는 것이라고 한다'는 허위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하였으며 통고인의 저서 '영혼 구원' 제54~55쪽은 구원을 위한 단회적 회개를 주장한 것인바 피 통고인은 '죄사함을 깨닫고 거듭나는 순간 구원을 받으며' 라고 유포하여 명예를 훼손 시켰습니다.

6. 통고인의 극동방송설교집 '종교에서 복음으로' 제 137쪽에는 구원문제로 교리가 아니고 하나님의 징계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통고인의 보고서  제 688쪽에 '심지어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구원받았다고 하는 등' 이라는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통고인이 마치 반복적 회개를 부정한 것처럼 적시하여 의도적으로 명예를 훼손하였습니다.

7. 통고인의 기독교방송설교집 '성막에서 얻은 죄사함' 제239쪽,241쪽은 구원을 위한 단회적 회개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통고인은 총회 보고서 제688쪽에'계속 회계하는 것은 죄를 사함받는 것을 믿지 않는 것임으로' 라고 적시하여 반복적 회개를 부정한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명예를 훼손시켰습니다.

8. 통고인의 극동방송 설교집 '종교에서 복음으로 ' 제 83쪽 84쪽 87쪽에도 구원을 위한 단회적 회개문제를 주장하고 있음에도 피통고인은 보고서 제 680쪽에 '이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항하는 것이며 죄를 범하는 것임으로' 라고 적시하여 반복적 회개를 부정하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명예를 크게 훼손시켰습니다.

9. 통고인은 지금까지 국내의 정통 보수 신학과 기독교신문, 방송설교, 쎄미나, 등 왕성한 전도 활동을 하였으며 한국교회가 공인하고 있는 목회자인바 신구약 성경말씀대로만 믿었고 가르쳐 왔으나 피통고인은 총회보고서 제 689쪽에서 '서달석 씨 주장은 구원관에 있어서 이단으로 규정된 권신찬 씨와 같은 주장을 하는 등 성경의 가르침과... 현저히 위배됨으로' 라는 허위사실을 적시 유포하여 통고인의 명예를 의도적으로 훼손시켰습니다."

 문제의 초점은 과연 서 목사가 구원과 회개문제에 있어서 구원파와 다르냐 같으냐는 것이다. 그 자신은 구원파와 다르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정통 교회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그가 가진 회개관이 정통교회와 어떻게 다른가를 증명해 보이겠다.

먼저 그가 허위 사실이라고 한 내용 중에 6편 아나니아와 삽비라 문제를 대답하겠다. 그의 주장을 살펴보자.

"선도들이 계속 육신대로 살면 성령이 고통을 당하면서 열매가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막는 일은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생명을 거두어 갈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육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성령을 속였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 첫 번째 징계였습니다. 사도행전5장 3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 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라고 징계하여 그 영혼을 하나님께서 불러 가셨는데 그들이 처음에는 교회 안에서 주님을 잘 섬겼고 분명히 재산을 바치고 싶은 성령의 충동으로 팔기까지 하였는데 막상 팔고 보니 견물생심이라고 육신의 욕심이 생겼고 그 틈을 타서 사탄의 생각에 들어갔고 결국 성령을 속였고 속였기에 교회가 시작된 초창기 일벌백계로 그들의 영혼을 거두어 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전서 5장 5절에도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하려함이라' 고 하셨는데 구원받은 고린도교회 성도가 계속적인 육신의 죄에 빠졌을 때 징계로 그 영을 거두셨고 주 예수님 오실 때 부활해서 영은 구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주님의 뜻은 성령은 일단 임하시면 절대 떠날 수 없음을 알려주시며 두번째는 육신이 있기 때문에 성령을 소멸할 수  있으니 성령 충만한 순종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며 세 번째는 육신대로 살면 징계를 받을 수 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 징계는 생명을 거두어 갈 수 도 있는데, 생명을 거두어 가는 징계는 지옥가는 징계가 아니라 이 땅에서 천국으로 빨리 데려갈 수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서달석, 종교에서 복음으로, 생명의 서신사,pp.136~137)

 서 목사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했는데 무엇을 허위사실이라고 하는 지 알 수가 없다, 서 목사는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구원받았다고 하지 않았다는 말인지, 아니면 서 목사는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는 징계문제를 취급하고 있는데 구원문제와 연결시킨 것이 허위 사실이란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도 다 말이 안된다. 분명히 생명을 거두어가도 지옥에 가는 징계가 아니라 오히려 천국에 빨리 갈 수 있다는 것으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그가 징계문제를 다르고 있다고 하더라도 영혼의 구원 문제와 연결시키지 않았다면 그의 말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영혼의 구원 문제를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우연히 실수가 결코 아니다. 그의 책과 강의 전반에 걸쳐 흐르는 구원파적 회개관을 살펴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결론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가 구원파와 똑같은 회개관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할 근거와 자료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그도 반복적 회개를 주장했다고 제시한 바이블뉴스 92년 7월호 제43~44쪽의 "회개와 자복에 대한 고찰" 이란 글은 필자가 서달석 목사란 증거가 없다. 월간지 바이블 뉴스에 나온 모든 글은 다 서 목사의 글일 수는 없지 않은가? 필자의 이름도 없이 기록된 글을 자신의 글이라고 나서니 산 속의 야생 호랑이를 자기 것이라도 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둘째, 그 글이 서 목사의 글이란 증거가 없지만 혹 서 목사의 글이라고 해도 그 글이 말하는 회개 개념은 성경이 말하는 회개도 아니요 또한 통합측에서 말하는 회개도 분명히 아닌 것이다. 서 목사가 자신의 글이라 주장하는 내용을 살펴보자.

 "2. 반복적 (反復的) 회개(悔改)인 자백(自白):... 그리스도 인들의 구원에 해당되는 ' 회개' 는 예수님께 돌아오는 '구원', '거듭남' 으로써의 '회개' 인 '단 한번의 회개' 이며 '죄에서 돌이키는 회개' 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시고 비로소 천국의 복음을 전파하시기 시작할 때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 고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을 비롯하여 성경에는 참으로 많은 곳에 사람들에게 '회개하라' 고  하신 말씀을 찾아볼 수가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회개의 의미(意味)는 오늘날 자신의 잘못을 기억했다가 특정한 장소와 시간에 뉘우치고 울면서 용서를 비는 행위와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 이제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은 구원을 이루는 하나님께 돌아오는 회개(Repent)는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 꼭 한 번뿐이지만 구원 이후에 죄들로부터 돌아서거나 불순종에서 또는 진리 밖에서부터 진리로의 원상 회복적인 회개(repent)는 반복적이란 사실이다. 여기서도 회개(repent)로 기록되었으나(계2:5, 3:3, 3:19, 9;20, 16:9) 그 회개라는 의미가 죄를 빌거나 용서를 비는 행위가 아니라 단순히 '진리 밖에서부터 진리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할 뿐이란 사실이다. ... 이제 오늘날 일반적 종교인들이 구원 이후에도 날마다 범한 죄를 교회당이나 새벽기도, 부흥회 때, 철야기도회 기도원에서 죄를 애통하고 빌고 고백하면  죄를 용서받는다고 하는 행위는 성경의 단번 속죄를 부정하고 예수님의 피를 부정하는 행위인 짐짓죄(히10:26)에 해당됨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성경에는 분명히 예수님의 피를 부정한 것(영원한 속죄를 단번에 이루신 공고를 부인하는 것)으로 여기는 자들 받을 형벌이 기록되어있다(10:26~29). 그러면서도 우리는 생활 속에서 호리만한 죄라도 인식되면 즉시 그 죄에서 돌이키는 회개(repent)를 할 것이며 비진리에 있다가 말씀으로 풀어지면 즉시 진리 편으로 돌아서는 회개(repent)를 해야 한다. 성도들이여! 죄들과 비진리에서 돌이키라(회개-悔改- repent)... 결론으로 예수님께 돌아오는 단회적 회개는 한번뿐이다 생활 속의 죄에서 떠나는 자백회개(repent)는  오시는 그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돌아서는 것' 뿐이지 용서를 비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영원히 심판을 통과해 버린 의인들  이기 때문이다. 아멘"(서달석, 영혼구원, 생명이서신, pp.44~46)

 이는 구원파의 주장과 똑 같은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회개는 구원을 위한 단회적인 회개나 성화를 위한 반복적인 회개가 사상적으로는 구별이 되어도 영어 상으로는 구별되지 않는 것이다. 분명히 히브리서 6장 1절에서 말하는 회개는 구원을 위한 단회적 회개이지만 마태복음 6장 9절 이하의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 속에 나오는 "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의 회개는 성화를 위한 회개인 것이다. 그리고 '자백' 은 회개의 한가지 기능을 말하는 것이지 그것이 회개와 대등한 개념의 사상이 아닌 것이다.

 서달석 목사는 주기도문의 회개를 구원을 위한 회개라 하여 주기도문을 하는 것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라고 하니 이 문제 때문에 주기도문을 암송하지 않는 구원파와 조금도 다른 점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소위 "자백, 회개(repent)는 오시는 그 날까지" 계속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돌아서는 것 '일 뿐이지 용서를 비는 것은 아니다" 라고 한 점이 완전히 정통교회 회개관과 동과 서처럼 먼 것이다. 정통교회 주장을 직접 살펴보자.

 "제4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5장 생명에 이르는 회개에 관하여 : 제15장 생명에 이르는 회개에 관하여:...이 회개로 말미암아 죄인은 자기의  죄가 무서운 것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더럽고 추악한 것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과 공의로운 율법에  반대되는 것이라는 데 대한 시각과 감각을  가지게 되며, 또한 그 죄를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것을 이해함으로써 자기의 죄를 슬퍼하고 미워하며, 그 결과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향하게 된다(겔18:30,31, 36:31, 사30:22, 시51:4, 렘31:18,19, 욜2:12,13, 암5;15, 시119:128, 고후7:11).

그래서 하나님의 계명이 가르치는 모든 면에 있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목적하고 또한 노력하게된다(시119:6,59,106, 눅1:6, 왕하23:25). ...5.누구든지 죄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회개했다고 해서 스스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지 하나하나에 대해서 일일이 회개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의무이다(시19:13, 눅19:8, 딤전1:13,15)." (대한예수교 장로회 헌법,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pp99~100)

 분명히 죄를 슬퍼하고 미워하라고 했고, 죄 하나하나에 대하여 일일이 회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서 목사의 사상과는 다른 것이다.

 필요하다고 느낌으로 서 목사가 구원파와 같은 입장의 '구원과 회개' 에 대한 그의 글들을 좀더 소개하려고 한다.

"...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계속 죄를 용서받기 위해 빌고 있는 것은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는데 지를 용서받기 위해 빌고있는 것과 죄가 있기 때문에 용서를 받았다는 죄의 자복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 비는 것은 정면으로 예수님 말씀에 대항하는 것인데 히브리서 10장 18절에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즉 이제 죄를 사해 놓았으니 또 죄를 사함 받으려고 비는 행위는 신약의 약속을 믿지 않는 불신자이거나 짐짓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며 그런자 들은 성전을 불태워 버리듯 지옥불에서 태워질 것입니다. ...

죄사함 받는 것은 죄의식 느끼면서 죄를 아파하고 괴로워하며 울면서 뉘우치는 데 있지 않고 질 깨닫기도 전에 예수님께서 먼저 사랑 때문에 죄값을 갚아 놓으심에 있으며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피흘림에  있는 것이지 그 피흘림에 무엇을 더하거나 덜할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회개하라고 책망하며 그 책망을 받고 자신을 학대하고 울면 그 값으로 죄값을 치루어 버린 줄 알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피에 의해 죄사함이 아니라 자신의 뉘우침, 반성하는 행위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성경의 진리와는 모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일생동안 법한 죄가 영화 필름처럼 기억되며, 지나가면서 그 죄를 인정하며 괴로워 울면 소위 '회개했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우리는 일생동안 지은 죄를 모두 기억할 수도 회상할 수도 없으며 죄라는 것도 모르고 지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성령께서 사람들이 죄를 인식도 하기 전에  즉 죄를 범하면서 그것이 형벌 받을 죄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계속 죄를 즐기고 있을 때 벌써 예수님께서 죽으셔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수 십억번 고난을 당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서달석, 종교에서 복음으로, 생명의 서신,pp84~87)

 "또한 용서를 빈다고 그 비는 행위나 뉘우치고 반성하는 그 마음 때문에 하나님이 용서하신 것을 생각하는 것도 잘못인데 죄는 반드시 심판을 받기 때문에 호리라도 갚지 않고는 지옥에서 나올 수 없다는  말씀대로 입니다. 시도하며 회개하여 그 회개라는 행위 때문에 그 순간 죄가 용서해진다고 생각하면 예수님의 피는 큰 의미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흔히들 원죄, 현행죄를 구분해서 예수님의 피는 원죄만 담당하셨고 현행 행위 죄는 내가 잘못했다고 빌고 후회하고 뉘우침으로 용서 받는다고 생각하시는 방식은 결코 성경이 말씀하시는 진리가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범한 죄를 아파하고 뉘우치며 반성하고 괴로워하며 다시는 죄를 범치 않아야겠다는 그 마음과 각오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지만 결코 죄는 머리털 만한 죄도 값을 지불해야 하는데 그 값은 바로 죽음이란 사실입니다. ...

그래서  그 피를 보신 하나님 즉 예수님의 생명으로 대신 죄값을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완전 무결하게 만족을 얻으셨기 때문에 이제 이 세상 그 누구도 하나님의 보시기에는 의롭고 깨끗하게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인류의 죄를 보시지 낳으시고 기억지도 않으시는데 사형 틀에서 저주를 끝내시는 날이었습니다."(서달석, 성막에서 얻은 죄사함, 생명의 서신, pp.239~241)

 위의  말 중에는 발전하면 '만인 구원설'을 낳을 것 같은 내용도 있다.
 "우리는 아직도 죄를 짓지만 그 죄가 이제는 하나님 앞으로 올라갈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실 수 없습니다. 조를 사해 놓으셨으므로 다시 죄를 위해 제사 드릴 것이 없습니다. 이제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용서해 주십시오'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43장에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사43:25)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지극한 사랑 때문에 우리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나는 나를 위하여 네 죄를 기억지 않는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 사실이 비밀로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자기를 들여다 볼 때 스스로 마음이 짓눌려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줄 모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 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 안에 우리를 깨끗하게 용서해 주신 그 사실에 대해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 자기의 마음의 죄 때문에 밤낮 울부짖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자기 마음을, 이 죄스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의 은혜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불안에서 평안으로 p.189).

"...아직도 죄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갈 수 없습니다. 죄가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 앞으로 갑니까? 새벽마다 기도하면서 죄 때문에 우는 사람도 하나님 앞으로 갈 수 없습니다. 이미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오셔서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는데도 아직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 죄 때문에 열심히 회개했으니 죽은 다음에 천국에 가겠지' 락 믿고 있는 것은 엉터리입니다. ...

여러분이 지금 '하나님이여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한다면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사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죄를 완전히 심판해 버렸는데도 이 사실을 외면한 채 또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고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입장을 바꾸어서 여러분이 예수님의 입장에 있다면 이미 해놓은 사실을 사람들이 믿지 못하고 있을 때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이미 완전히 죄를 용서해 놓았는데도 믿지 않고  또 용서 해 달락 한다면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

여러분들 중에는 죄를 지을 때마다 회개하고 뉘우치면 천국을 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만약 일주일 내내 지은 죄를 다음주일에 예배당에 갓 회개하면 죄사함을 받는다고 합시다. 그런데 이 사람이 금요일쯤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었다r 합시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월요일부터 금요일 죽기 전까지의 죄는 회개를 하지 못했으니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러한 믿음도 잘못된 것입니다. 지난 죄는 사함 받았지만 앞으로 짓는 죄는 회개해야 한다고 믿고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은 밤낮 불안하기 그지없을 것입니다.

또 죄를 짓지 않으려고 몸부림치지만 죄가 짜라 붙는데 더 큰 고민이 있을 것입니다. ... 예수님의 육신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피흘리시고 무덤에 묻혔습니다. 그때 우리의 죄도 같이 묻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새 생명의 상징입니다. 그러니까 죄와 상관없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새 생명을 다시 사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 때문에 묻히신 것은 삼일동안이고, 부활하셔서 1천9백여 년간이나 하나님 앞에 우리 죄를 위한 대제사장 노릇을 하고 계시는데 아직도 죄를 사해 달라고 울고불고 한다면 얼마나 모순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지은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 그리고 앞으로 지을 죄까지도 이미 사해 놓으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믿는 예수는 죽기 전의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잠시 잠깐 후면,pp.159~225).

 서달석 목사는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기를 바란다

필자는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람이요 회개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필자는 한국교회에 있는 많은 이단자들 중에 회개하는 이단자를 진심으로 보고 싶다.
서 목사의 천주교비판에 있어서도 많은 약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서 비판하지 않겠다. 단지 서 목사는 종말론에 대한 문제와 구원파적 회개관에 대하여 정치적이 아닌 참된  회개가 있기를 개대하고 또 기도하며 글을 맺는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4년 1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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