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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종류의 이단 연구가들과 자기반성
이단연구 이렇게 하자(이런 이단연구 하지 말자) ①
2015년 03월 03일 (화) 15:24:27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다음은 본인이 지난 2월 23일에 호주에서 모인 4차 세계한인기독교이단대책연합회(세이연) 총회 시 이단연구가들 앞에서 한 강의다. 한국교계에는 이단 연구가들을 공격하여 먹고 사는 소위 ‘하이에나’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이 글을 이용하여 그렇지 않아도 힘든 이단연구가들을 공격할 빌미를 찾아낼 것이라는 염려가 적지 않다. 그래도 공개적으로 글을 밝히는 것은 이 강의는 나를 반성하는 의미의 강의이며, 이단 연구가들을 사랑하는 의미에서 한 강의이며, 한국교회를 염려하는 의미에서 한 강의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 대하여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를 보면 교계의 하이에나와 한국교회와 이단연구가들 몸에 붙은 기생충이 누구인지 밝혀질 것으로 보이며, 3회로 나누어서 게재하는 바이다.


이단연구 이렇게 하자(이런 이단연구 하지 말자) (1)

최삼경 목사

네 종류의 이단 연구가들

이단연구가들의 자기반성

   
▲ 최삼경 목사
본인은 요즘 ‘내가 이단연구가로 자격이 있는가?’ ‘나는 몇 점짜리 이단연구가일까?’ ‘내가 그동안 했던 적지 않은 이단 연구 중에 잘못된 연구나 부족한 연구는 혹 없을까?’를 자주 생각한다.
굽고 부패한 법관의 반성이 아니라, 바르고 정직한 한 법관의 반성이다. 자신이 30-40대에 한 판결과 50-60대에 하는 판결이 다르다는 것이며, 나이가 들수록 판결이 어렵고 두렵다는 것이다. 특히 젊어서 한 판결 중에 후회스런 판결이 많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직한 법관의 고민이라면 이단 연구가는 그보다 더 깊은 반성과 더 깊은 고민을 해야 할 사람들이다. 그것은 이단 판정은 영혼을 죽이고 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선무당 사람 잡듯, 도끼 들고 소 잡는 백정 같은 이단 연구를 하면 안 될 것이다. 중세의 마녀식 사냥을 하듯 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런 이단 연구가는 이단 못지않게 위험하다.

교계에는 이단연구가들의 몸에 붙은 기생충처럼 살아가는 악한 자들이 적지 않다. 특히 언론인 중에 그런 자들이 많다. 이들이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본인의 본 강의를 이용하여 또 다시 이단 연구가들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 그 기생충이 누구인지 지켜보기 바란다. 그리고 이단연구가들 중에 본인의 강의가 심히 아픈 분이 있을 것을 알지만, 이것은 나 자신을 비판하는 의미의 강의라는 점에서 이해하고 인내로 들어주시기 바란다.

네 종류의 이단연구가

이단연구를 4가지로 구별해 볼 수 있다. 신학적 이단연구, 기자적 이단연구, 이단 전문가들의 연구, 목회자적 이단연구이다. 각각 그 장단점이 다르다고 본다. 하나씩 분석해보자.

(1) 신학자적 이단연구
신학자들이 이단 연구를 하면 교리적 기준 설정을 가장 잘 하고, 권위가 있다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신학자들은 죽은 이단 잡는 데는 용기가 있어도 산 이단에 대하여는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동안 신학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이단 연구가 그리 많지 못하다는 점이 이것을 증명한다. 첫째는 몰라서 그렇다고 보고, 둘째는 용기가 없어서 그렇다고 본다. 죽은 이단들은 아무리 비판을 해도 협박이나 고소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살아 있는 이단들은 협박하고 고소하고 온갖 짓을 다 하기 때문이다.

S 대학의 김 모 교수는 자신은 이단 연구를 하나도 하지 않았으면서도, 자기와 관계를 맺고 있는 어떤 특정 이단을 옹호하기 위하여, 이단 연구가들의 연구를 폄하하고 ‘이단 연구는 신학자가 해야 한다’고 주장한 일이 있다. 그렇게 말한 그 분은 정작 이단연구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자들 중에 정직한 연구가들이 많다. 그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교제하면서 이단연구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2) 기자적 이단 연구
기자도 교리 중심으로 연구하는 경우와 주로 윤리 중심으로 하는 연구는 구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두 가지를 동시에 다 한다고 보지만, 언론의 속성상 윤리적 비리를 밝히는데 관심을 가진 연구를 기자적 연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이비 이단 문제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언론들의 공로는 적지 않다. 이들이 결정적 동기 부여와 초등 자료를 제공한다. 어떤 범죄에도 초등 수사가 가장 중요한 것처럼, 이들에 의하여 이단 연구의 동기가 부여됐고, 또 결정적 자료들이 제시되었음을 한국교회는 인정하고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이 기자적 연구는 사이비 이단들의 사건과 비리들을 밝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호응이 좋고 영향도 크다.

그러나 대신 법정 소송도 많고 생명의 위험이 크다. 이미 한 이단연구가의 죽음이 이를 잘 증명해준다. 이 기자적 연구는 대신 초기라는 점에서 실수할 가능성이 크다. 시간적으로 충분한 근거와 자료를 수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억할 것은 이 기자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해도 윤리적 연구는 이단연구의 본질이 아님도 알아야 한다.

(3) 이단 전문 연구가들의 연구
이는 최근의 현상이다. 주로 목회를 하지 않고, 해도 목회보다 이단 연구에 전념하시는 분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본다. 최근 이단 연구와 피해자 상담만 전적으로 하는 분들이 많이 생겨났고 이는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분들에게는 정보가 많은 장점이 있고 전념하기 때문에 그 성과도 크다. 특히 그동안 이단에 빠진 자들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되어 있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단에 빠진 자들을 적지 않게 개종시키고 구출한 성과는 아무리 훌륭하다고 찬사를 보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단점 또한 적지 않다. 우선 경제적으로 어려워 유혹이 많을 가능성이 크다. 정통교회는 이단의 피해를 많이 보고 있으면서도 이단 연구의 선교적 의의를 크게 깨닫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후원하지 않고 있다.

원래 정상적인 사람보다는 구린 사람이 돈을 더 주려고 하는 것처럼, 이단이나 사이비들은 청렴한 이단연구가들이라도 금품으로 미혹하려고 하는데, 돈을 받으려는 이단 연구가들이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교도소 담장 위를 걸어간다는 정치인보다 이단 연구가가 더 그렇게 보인다. 3일 굶고 담 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돈 자체를 이기는 사람도 별로 많지 않다. 그래서 유혹이 많고 유혹에 넘어갈 가능성이 커서 늘 염려가 된다.

그리고 이분들은 자신의 연구의 업적을 드러내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강도를 계속해서 높여가는 극단적 이단 연구가가 될 가능성도 크다. 특히 교회 밖에 존재하는 이단보다 이단과 정통의 경계에 있거나 교회 안에 있는 개인이나 단체에 대하여 그렇다. 잘못하면 이단을 죽이려다 영혼까지 죽게 하여 교회 자체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크다.

(4) 목회자적 연구
목회자로서 이단을 연구하는 자와 목회적 자세로 이단을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목회자로서 목회와 이단연구를 동시에 한다는 것은 깊은 연구를 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자료를 충분히 수집할 시간도 없고, 충분히 연구할 시간도 없다. 목회란 크든 적든 전인적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목회란 텍스트(Text)보다 콘텍스트(Context)에 치우칠 위험이 크기 때문에 목회자 자신도 이단적 사상을 가지기 쉽고, 따라서 목회자 이단연구가는 이단에 대하여 지나치게 관대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교계에 소위 거물 목회자들 중에 이단 교회에 가서 ‘복음 전하러 갔다’ ‘그 교인들의 영혼들을 생각해야 한다’는 등의 구실로 설교나 강연을 하여 결국 이단을 옹호하는 결과를 가져온 일이 많았던 점은 동일한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목회자적 연구에 장점이 가장 많다고 본다. 본인은 가장 바람직한 이단 연구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단 규정은 신학적으로 이단이 되는 경우보다 목회적으로 교회를 어지럽힐 때 더 된다.

한국교회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한경직 목사님은 ‘교인을 미혹하는 것이 이단이다’라고 순진한 정의를 하신 경우를 보았다. 교리적으로만 한다면 길선주 목사도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얼마든지 이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던 점은 당시의 신학적 상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교인의 미혹과는 관계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감리교는 거의 이단 연구를 하지 않았지만 전도총회(다락방)의 류광수를 이단으로 규정한 것은 교인들이 미혹을 받았기 때문이었음이 분명하다. 이처럼 이단 연구나 규정은 목회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목회자의 이단 연구가 가장 바림직한 이유는 목회자는 교회와 교인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마음 위에서 이단을 연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단 전문가들도 비록 목회는 하지 않아도 목회자적 심정은 가져야 한다고 본다.
신학자도 목회자적 심정을 가져야 하는 것은 같다고 본다. 훌륭한 신학자도 길러내야 하지만 훌륭한 목회자를 많이 길러내는 신학교가 좋은 신학교라고 본다. 물론 신학이 목회의 시녀노릇을 해야 한다고 보지는 않지만, 사실 교회를 망하게 하는 신학은 그 자체도 멀지 않아 죽고 만다. 하물며 이단 연구가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최대의 변증가요, 신학자인 어거스틴은 목회자였다. 목회자로서 일어나는 이단사설들에 대하여 교회를 보호하기 위하여 변증하였고, 그래서 위대한 변증가가 되었다. 이는 칼빈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이단 연구가도 가능하면 목회를 하면서 이단을 연구하면 가장 최상이겠지만, 그렇지 못하여도 목회자적 심정으로 이단을 연구하기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바이다.

요즘 목사들이 쏟아져 목회할 기회가 적고, 또 목회를 해도 잘 안 되니까, 이단 연구를 하시는 분들이 많아졌다고 본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를 바라고 이루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소위 도피성 이단 연구는 도피성 유학생과 도피성 선교사처럼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이분들은 늘 비판 일변도의 자신의 행위에 제동장치를 걸어줄 길이 없다. 마치 남을 정죄하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처럼 정죄 일변도의 이단 연구를 할 위험이 크다.

목회자적 이단 연구는 죽이는데 목적을 두지 않고 살리는데 목적을 두는 것은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간첩이 분명해도 양민 속에 숨은 간첩을 향하여 총질을 할 수 없는 것은 주변 양민 때문이다. 아무리 말기의 암이라도 암 자체를 죽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무조건 방사능의 강도를 높이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죽이려는 그 암보다 먼저 몸이 죽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단연구란 이름으로 교회를 죽이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극단적인 이단 연구가들이 교회 자체를 죽인다’는 염려가 적지 않다. 이단연구가들은 이 말을 새겨서 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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