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물치우는 일도 능숙하게
처음엔 등돌리던 환자도
진실된 사랑에 마음열어

▲ 환자들은 처음부터 마음 문을 열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로 변한다.

#1.
초겨울의 쌀쌀함이 옷깃을 더욱 여미게 하는 11월의 어느 날. 기자는 중풍 및 치매 환자들이 머물고 있는 ‘구립 영등포 노인 단기보호센터’를 찾아갔다. 마침 그 날은 NGO 단체 ‘선한사람들’의 호스피스 훈련생들이 실습을 나와 각 방마다 할머니들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내가 올해 91세요.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죽어도 좋겠소.”

“할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시는 거예요. 그저 할머니는 편한 마음 갖고 계세요.”

죽음의 문턱까지 간 뒤 호스피스 활동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이우순 권사(61,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이들을 가족처럼 여기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 분들을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돌봐드려야 할지 답이 나오죠. 저도 비위가 약해 처음 호스피스 시작할 때는 환자들 있으면 밥도 먹지 않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막상 부딪혀보니까 아무렇지도 않더라구요.”

언제나 사랑으로 이들을 대하지만 때론 마음의 문을 닫고 받아주지 않는 환자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포기란 없다. 주님의 사랑을 마음에 품고 조금씩 다가가면 처음엔 때리고 심지어 침을 뱉던 노인들도 차차 이들의 정성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녀는 지금껏 단 한번도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얘기했다. 오히려 대단하게 보는 시각이 이상할 뿐이다. “처음엔 이들에게 무언가 주러온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배우러 옵니다. 물론 예수님의 사랑이 있기에 가능했죠. 내 능력이 있는 한 호스피스 활동은 그만 두지 않을 겁니다.”

▲ 사랑의 실천은 가슴에서 시작되어 외양으로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2.
모두가 잠든 새벽 4시. 가래로 괴로워하는 환자의 몸부림에 송 집사는 다급히 눈을 떴다.
“우리 영감님께서 오늘은 왜 이리 잠을 못 주무시나. 많이 힘들어요? 조금만 참으세요.”

송 집사는 목에 난 구멍을 통해 능숙하게 가래를 뽑아냈다. 그제야 환자는 편한 듯 다시 잠을 청했다. 의식만 살아 있는 환자를 간호한 지 2개월. 하루도 두발 뻗고 편히 잔 날이 없었다. YWCA에서 호스피스 교육을 받은 송 집사는 올해로 10년째 호스피스 활동을 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몸을 전혀 가눌 수 없는 까닭에 환자에 관한 모든 것이 그녀의 임무다. 식사는 20여 가지의 영양소가 함유된 액체를 코에 연결된 호스를 통해 주며, 가래도 하루에 수십 번 뽑는다. 욕창이 나지 않도록 수시로 몸도 살펴야 하며 침대에서 목욕도 시켜야 한다. 때론 친구처럼 대화도 나눈다.

“제 손 잡아보세요. 이게 다에요? 힘 더 줘봐요. 이런, 밥값도 못하겠네.”

그래도 가장 신경이 많이 쓰이는 부분은 대변을 치울 때다. 기자가 찾아간 날도 갑작스레 대변이 나와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아이고 할아버지 잠깐만 참으세요.”

이때부터 호스피스의 능숙한 솜씨가 발휘됐다. 정신이 있기에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는 환자를 위해 적당히 농도 섞어가며 재빠르고 깔끔하게 치웠다. 어떻게 이런 일을 매일같이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송 집사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얘기했다.

“어쩌면 의사보다 우리가 환자들을 더 잘 안다고 할 수 있어요. 의사들이 우리처럼 환자를 돌볼 수 있겠어요? 그저 내 아버지라고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말이죠. 전 이 일이 보람되고 너무 재미있어요.”

하루종일 환자와 씨름하는 송 집사의 얼굴에서는 조금의 그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 기자의 말이 부끄럽게 느껴져 얼굴이 화끈거렸다.

“누군가는 이 환자들을 돌봐야 해요. 그런데 그 누군가가 나라면 훨씬 보람된 삶 아니겠어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이 사명이 더없이 소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