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홍 목사 / 예장통합 분당 아름다운교회 원로

▲ 김기홍 목사

공부하다보면 누구나 쉬운 선생 쉬운 과목을 찾는다. 거기다가 점수까지 잘 주는 선생이라면 많은 학생들이 몰려든다. 미국도 그런가? 그렇지는 않다. 쉽건 어렵건 자기가 필요한 선생을 찾아간다. 나 자신도 처음에는 성적 잘 주는 교수를 찾았다. 그러다 보니 실력이 늘지를 않는 것이다.

박사과정에 들어가서 정말 실력 좋은 교수를 만났다. 탁월했다. 그러나 한국 학생들은 모두 그분을 피해간다. 그분 과목은 절대로 듣지 않으려고 했다. 내 자신도 그분 밑에 들어가면 성적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박사과정은 힘들어서 세미나 3과목 밖에 할 수 없다. 요즘에 외국 Ph.D를 통신으로 한다는 말이 있는데 천만에 말씀, 전혀 가능하지가 않다. 최소한 2년 이상 학교에 붙어있는 게 요구사항이다. 실제로 안 그러면 해낼 수가 없다.

강의 시간에 들어가면 사실 강의는 거의 없다. 교수는 주제만 말하고 학생들이 읽을 것 가지고 소논문을 만들어서 낸다. 그러면 교수는 한 눈에 읽어보고서는 그중 몇 개를 읽게 만든다. 읽으라고 하는 건 어느 정도 수준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소논문을 듣고 서로 토론한다. 밤새워 적어도 십여 권을 어떤 방법으로건 읽고 쓴 소논문을 근거로 싸움하듯 토론하고 돌아오면 침대에 쓰러져 몇 시간 자야 한다.

그러니까 학기 중에는 전혀 다른 걸 생각할 수도 없다. 체력과 지력의 싸움이다. 학기 중에 노는 날이 있으면 미국 학생들은 정말 죽도록 논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다. 그러나 한국학생들은 그 시간을 이용해서 밀린 숙제들을 해야 한다. 미국학생들과는 처음부터 같은 입장이 될 수가 없다. 우선 영어부터 딸리니까.

아까 말한 그 탁월한 교수는 요구사항도 많았다. 내가 과연 그 과목을 통과할 수 있을까? 만약 세 과목 중에 하나라도 C 이하가 나오면 그날로 끝이다. 위원회에서 그만하라고 공식 통고가 온다. 그만 둘 때 그만 두더라도 그 교수 밑에서 좀 배워보고 싶었다. 다른 두 과목은 별로 어렵지 않은 선생들이었다. 그 한 과목이 다른 두 과목을 합친 것보다도 갑절 어려웠다. 숙제도 읽을 것도 요구사항도 그랬다. 그 과목을 선택하면서 긴장감은 말로 다할 수가 없었다. 과연 힘들었다. 그 과목을 어떻게 통과했는지는 앞서서 이미 말씀드렸다. 나 자신 항상 기도했다. “내가 이 만큼 뒤쳐졌으니 빨리 가게 해주세요. 하나님을 의지하오니 남들보다 열 배 빨리 가게 해 주세요. 십 년 걸릴 건 일 년에 일 년 걸린 건 한 달에 하게 하소서.”

이 과목 수강할 때 앞부분은 정말로 절망스러운 상황이었으나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주셨다. 그래서 겨우 통과하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좋은 성적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학문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만약 이 교수님에게 배우지 않고 요리저리 피하면서 쉬운 선생만 찾아다녔더라면 학문의 신비로운 세계에 문턱도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나를 낳아준 부모이상으로 학문으로 낳아준 부모 같은 분이시다.

학교를 떠나오면서 말했다. “저는 교수님과 똑 같은 선생이 되기 원합니다.” 다른 건 다 못해도 공부하나만은 잘 할 수 있다고 고백한다. 누가 월급 주면서 공부만 하라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을 없을 것이다. 그것은 순전히 이 교수님 덕분이다.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스승이시다.

그러고 보니까 주위에서 쉽게 졸업하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박사학위를 받았는데도 여전히 이 책 저 책 베끼는 교수들을 만난다. 한국의 학교에서 일하다 보면 학생들 거의 모두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학위만 받으려고 한다. 그 아까운 돈을 내면서 왜 그러는지? 가르쳐 주겠다고 해도 원하지 않는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공부하는 법을 배우면 그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없다. 참으로 신나는 게 공부다. 누구든지 배우려는 사람이 있으면 지금도 얼마든지 가르쳐주겠다.

이 이야기는 그대로 목회에도 적용이 된다. 절대로 쉽게 넘어가려하지 말라. 어린이는 필요한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성숙해진다. 쉬운 길을 택하면 평생 그렇다가 마친다. 어려운 길이 나를 성장하게 만든다. 어려울수록 하나님의 도움도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