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홍 목사 / 예장통합 분당아름다운교회 원로

미국 대학 소개하는 두꺼운 책을 구입했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었기에 직접 자신이 뒤져보아야 했다. 두 가지가 기준이다. 하나는 학교 수준이 있어야 한다. ATS라는 기관이 인정한 신학교이며 동시에 학비가 싸거나 장학금이 많아야했다. 텍사스크리스천 대학교에 브라이트 디비니티스쿨이라는 신학교가 있었다. 교단은 그리스도교회였다. 한 학기 학비가 240불이었다. 놀랄 만큼 저렴했다. 왜 그런가? 본래 텍사스는 석유가 많이 나기에 학비가 다른 주보다 쌌다. 그래서 텍사스크리스천 대학교가 한 시간당 100불 정도였는데 신학교는 교단에서 학비를 대주기에 20불만 내면 되었다. 그래서 12시간을 선택하면 240불이었던 것이다.

당시에 나는 누가 이끌어주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교수님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내가 보아도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이 아니었었다. 교단의 유명한 목사님 아들도 아니었고 서울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었다. 공부를 탁월하게 잘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교수님들을 열심히 찾아가서 친분을 잘 맺는 것도 못했다. 누구와 상담하거나 도움 받을 대상도 전혀 없었다. 혼자 기도하고 덤벼드는 수밖에는.

당시 나라가 하도 가난하다보니 독지가 이야기가 많이 돌았다. 어떤 부자나 유력한 사람에게 잘 보여서 도움 받고 인도 받았다는 것이다. 독지가가 잘 보아 길도 열어주고 학비도 대주고 심지어 결혼도 시켜준다. 주위에서 들은 이야기다. 가난한 신학생에게는 얼마나 부러운 소리인가? 아마 지금 교회 하는 목회자들도 똑같을 것이다. 돈 많은 사람들이 교인되고 도와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내게는 지금까지도 전혀 그런 사람이 없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수밖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참 잘 된 일이다. 만약 내게 독지가가 있었다면 그가 바로 내 하나님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 하나님보다 더 확실하고도 불변하는 독지가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도 믿음이 부족하니까 독지가가 혹시 없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목회 하면서도 그렇다. 특별한 부자나 권력자가 교인 중에는 없었다. 어쩌다가 십일조를 다른 사람의 열 배 스무 배를 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면 얼마나 그런 사람들을 의지하는지 모른다. 그들을 하나님보다 열배는 더 두려워하고 잘 섬기려고 한다. 이것이 연약한 인간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돈 많은 사람이 교인 아닌 것을 감사하라. 그러면 하나님만 의지할 테니. 그 훈련이 정말 필요하다.

여하 간에 나는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만 매달렸다. 비자를 받아 텍사스로 향했다. 차 살 돈이 없었기에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갔다. 텍사스가 얼마나 넓은지 학교 캠퍼스가 도저히 자전거로는 다 돌 수가 없어서 그냥 기숙사 도서관 강의실 삼각형을 그리며 왔다 갔다 했다. 학비는 그럭저럭 냈는데 기숙사비와 생활비가 문제였다. 책 사 볼 돈도 없었다. 교육전도사 할 만큼 영어가 안 되니 할 수도 없었다. 학교 게시판에 성가대 지휘자를 구한다는 광고가 났다. 그 교회 교육전도사가 나를 데리고 갔다. 안 그러면 차편이 없으니까 돼도 갈 수가 없다.

오르간도 치면서 지휘하는 사람을 구한단다. 오르간을 못한다니까 사례비를 반반 주고 나머지로 오르간 반주자를 구했다. 그래서 그 교회에 성가대 지휘자로 사역이 시작되었다. 주일 아침 일찍 학교 동료의 차를 타고 가서 예배를 마친다. 점심은 담임 목사님 댁에 가서 얻어먹고 함께 양로원 사역을 나간다. 기타로 찬송을 해주며 엉터리 영어로 설교도 해주었다. 할머니들이 좋아한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지만 그들의 이야기도 들어주었다. 목사님 댁에 가서 저녁을 함께 먹고 저녁 예배 하러 갔다. 저녁 예배는 찬송 몇 장 부른 뒤에 바로 목사님이 설교 하신다. 미리 기타로 찬송을 인도한 뒤에 목사님께 인계했더니 좋아하신다.

미국에서도 한국식으로 일을 했던 것이다. 그분들이 너무 좋아한다. 하루는 교인 두 사람이 누런 봉투를 가지고 학교로 찾아왔다. 나를 위한 ‘사랑의 헌금’을 했단다. 들여다보니 거의 일 불짜리로 150불 가량 되었다. 모욕감이 일어났다. 내가 거지인가? 일 불 씩 모아오다니. ‘필요 없다’ 선언하니까 정색을 하고 말한다. 자기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단다. 모두가 나를 사랑해서 그러고, 또한 낸 돈을 그대로 가져오는 게 정성이란다. 얼마 안 되더라도 사랑을 받아달란다. 그게 미국식이었다.

오늘 말씀의 요점은 이것이다. 목회에서 사람 의지하려고 하지 말라. 독지가를 찾지 말라. 하나님이 독지가다. 하나님만 믿고 도전하라. 그러면서 배우고 성장한다. 하나님은 반드시 길 열어주고 자라나게 하신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최선을 다하라. 그러면 돕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래도 여전히 그 사람들을 의지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들을 사랑하지만 항상 하나님만 의지하라. 그러면 당당하게 일어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