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홍 목사 / 예장 통합 분당아름다운교회 원로

신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되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 볼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보았다. 그리고 이 경험은 평생을 두고 잊혀 지지 않았다. 원리는 언제나 같다. 세상을 살아가지만 보이는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안 보이는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이다. 한 달 반 정도 서울을 떠나 남쪽 경상도와 전라도를 다니면서 전도하는 것이다. 돈은 거기 내려갈 정도의 차비만 준비하여 빈손으로 밥을 얻어먹으면서 전도한다. 그래서 거지 전도란 말이 붙었다. CCC 김준곤 목사님께서 설교 시간에 말씀하신 내용이었다. 굳게 결심하고 목사님과 의논했다. 그랬더니 2천 원을 주셨다. 그것으로 차표와 전도지를 샀다. 막상 떠나려고 하니까 따라가겠다는 후배가 5명이나 붙었다. 한 사람은 어머니가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6명이나 거지들을 누가 먹여주겠는가? 걱정이 되었지만 하나님만 의지하고 데리고 나섰다.

전혀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다. 그냥 서울역에 나가 보았다. 남원 가는 기차가 있어서 표를 샀다. 남원에서 내려 춘향 사당을 구경하고 다시 버스 타는 데로 갔다. 경상도 함양으로 가는 차가 있어서 그냥 탔다. 함양에 갔는데도 아직 돈이 조금 남았다. 이번에는 산청 어느 곳에 가는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니 돈이 다 떨어졌다. 무조건 교회를 하나 찾아갔다. 40쯤 되 보이는 전도사님이 있었다. 자초지종을 말하니 자기와 함께 전도 좀 하고 가란다. 꿀물을 타주기에 마시고 바로 동네에 전도하러 나갔다. 후배들도 따라나섰다.

그 전도사님은 초등학교 중퇴였는데 성령의 사람이었다. 나중에 총회에서 구제하는 방법이 있어서 그 과정에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지만 당시로는 길이 없었다. 만 년 전도사였다. 산청 지방에서 안 되는 교회에 보내지면 부흥시켰다. 그러면 다시 노회에서 거기 목사를 파송하고 다른 지역을 보냈다. 그렇게 몇 번 째 다 무너진 교회를 손수 수리하고 전도를 시작하는데 내가 간 것이다. 그 지역은 완전 산골짜기였다. 지금 기억에는 여기 저기 백 호 가량 흩어져 집들이 있었다. 모든 집들을 방문하며 인사했다. 당시 나로서는 신학교 1학년 성경지식도 부족하고 설교는 더욱 미숙했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탕자의 비유만 계속했다. 하다가 막히면 전도사님께 사인을 보낸다. 그러면 그분 이어서 재미있게 설교를 진행했다. 둘이서 노래도 하고 율동도 하고 춤도 추었다. 동네가 완전 잔치 분위기로 일어난다. 그 완고하던 동네 사람들이 교회에 모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 주일을 보내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제 편해지기 시작했는데. 그 전도사님과는 그 후에도 좋은 교제를 계속하였다.

그 전도사님이 돈을 5백 원을 주었다. 당시가 1973년이었으니까 지금으로 치면 한 5만 원 정도 될 것이다. 그 돈으로 6명이 어떻게 한 달 또는 그 이상을 버틸까? 여섯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서 밥 달라면 시골 사람들은 다 먹고 치웠다고 손사례를 쳤다. 거지의 대장으로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20원짜리 건빵을 한 봉지씩 사주었다. 그리고는 그걸로 이틀을 보내기로 했다. 즉시 비참한 상황이 되었다. 건빵도 배불리 먹으려면 물에 불려서 먹어야했다. 이틀을 함께 그러다보니 정말로 거지가 되었다. 이제 걸어갈 힘도 없었다. 당시에는 포장된 도로가 거의 없었다. 버스가 가끔 먼지를 날리며 지나간다. 너무 힘들어 길가에 주저앉고 누웠다.

기도했다. “오, 아버지 보시나요? 이건 너무 합니다. 그만 두라는 말인가요?” 그때 마음에 솟아나는 음성이 있었다. “넌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주기도도 모르냐? 내가 일용할 양식을 주었더니 그걸로 한 달을 살려고 하냐? 네 방법은 항상 그 모양이구나. 그게 나를 믿는거냐?” 정말로 그랬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의지하는 것이다. 나뿐 아니라 5명 모두에게 그러했다. 그래서 모두 일어나라고 한 뒤에 버스를 타고 읍내로 갔다. 거기서 우선 수박을 사 먹었다. 그리고 모두 설렁탕 한 그릇씩 밥도 더 주문해 먹였다. 다시 거지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나 그 이후로 한 번도 이틀씩 굶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평상시보다 여러 배 더 많은 십일조를 낼 수 있었다. 정말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상황보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 없이 그냥 상황만 보면 세상 사람처럼 산다. 상황도 하나님의 은혜 속에 지배해야 한다. 그러면 모든 상황이 신자를 위해서 선으로 바뀐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한다. 목회도 이렇게 해야 함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