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홍 목사 / 예장 통합 분당아름다운교회 담임

요즘 목회자들에게 하나님은 풍성하게 주신다고 말하면 어떤 대답을 하는가? 자기들의 입장을 몰라서 배부른 소리 한다고 말한다. 전혀 고생을 안 해 봐서 그렇게 쉽게 말한다고 빈정댄다. 자기들은 너무 돈에 쪼들린다는 것이다. 평생 편안하게 목회했기에 그렇게 쉽게 말한다고 불평한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이다. 내 평생 돈에 쪼들리고 시달린 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도 돌아보면 내 자신도 돈 없는 시기를 상당 기간 경험했다. 신학교 3년이 그러했고 미국 유학 생활 5년이 그러하였다. 사실 신학생 때나 개척 때는 거의 모든 목회자가 돈에 시달린다. 그런데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전혀 가난했다는 느낌이 없다. 단지 돈이 없었을 뿐이지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었다. 가난은 느낌이지 실제는 아닌데 느낌에 너무 빠지는 문제이다.

신학교에서의 첫 해 특히 첫 학기는 참으로 돈이 없었다. 집에서 나가라고 해서 몸만 나왔다. 그동안 저금한 것도 없었다. 당시는 아르바이트 같은 것도 없었다. 그저 지금의 방글라데시 사람들처럼 돈이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굶거나 차비가 없으면 더 신나는 기분이었다. 하나님을 위해서 공부하는 데 하나님을 위해서 배고프고 가난하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철이 없다는 것인가? 하나님을 위해서 힘든 것을 즐기다니. 그러나 사실 이러한 자세가 정말 중요하고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오래 목회하면서 더욱 절실하게 깨달았다. 감사하고 즐거워하면 가난도 아픔도 억울함도 다 축복으로 느껴졌다. 결과적인 이야기지만 분납이라도 학비를 낼 수 있었다. 다음 학기까지 안 되면 제적이 되는 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배고픔의 경험도 몇 달 가지 않았다.

일 년이 지난 뒤에는 전혀 굶은 날이 없었다. 물론 졸업할 때까지 계속 학비는 분납이었다. 섬기는 교회에서 아주 사례비를 적게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돈을 꾸거나 누구에게 돈 이야기를 해서 구걸 식으로 얻어낸 적은 없었다. 그러고 싶은 적도 많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사람을 의지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사람을 의지하려면 차라리 목사를 그만 두고 세상 일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는 훈련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면 믿지 않는 사람이 많다. 무슨 호랑이 담배 피는 시절 이야기냐는 것이다. 그때는 혹시 몰라도 요즘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길에서 줍는 것도 아니다. 우연히 주머니를 뒤져보았더니 거기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가 줘야 한다. 기도를 해도 대개가 사람을 통해 주신다. 그렇다면 줄만한 사람들을 찾아가 사정을 말하면 어떨까? 어차피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다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면 어떨까? 별 생각이 다 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간청해서 돈을 얻어낸다면 하나님이 주신 것인지 내가 설득력이 강해서인지 나를 불쌍하게 봐서인지 알 수 없지 않은가? 다 그게 그거라고?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그렇게 애매하면 안 되었다.

나는 확실한 것을 원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인 줄 알려면 어찌할까? 사람 그 누구에도 내 사정을 알리면 안 된다. 그래서 기도했다. “돈의 디귿자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감동시키세요. 그래야 하나님이 하신 걸로 인정하겠습니다.” 나는 절대로 사람들 앞에서 구차한 표정이나 힘들고 슬픈 모습을 보이지 않으리라. 나는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의 축복 받은 사람이다. 나는 굶어서 죽어도 당당하리라. 이 마음을 가졌더니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졸업하고 일 년 뒤에는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났다. 우리 동기 가운데는 최초였다. 누가 돈을 준 것도 아니고 장학금을 받은 것도 아니다. 텍사스에 있는 아주 수업료가 싼 학교를 찾아냈다. 학교 수준도 대단한 곳이다. 그러나 교단에서 지원하기에 학생들은 적은 수업료를 냈다. 당시에 한 학기에 200불 정도였고, 기숙사비도 매달 40불밖에 되지 않았다. 그 금액도 일을 하면서 만들어냈다. 어느 미국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해 100불을 받았다. 10불 십일조, 40불 기숙사비, 20불로 책을 사고 30불로 한 달 식비를 했다. 거의 매일 라면을 먹었다. 그런데도 힘들지 않았다.

신자는 지금 손에 돈이 없어도 있다고 믿고 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오버해서 무리하라는 건 아니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돈을 지원해 주신다. 큰 돈이라도 하나님은 어렵지 않으시다. 중요한 것은 인간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부탁하는 것이다. 필요한 돈을 하나님께만 말씀드려야지 사람들에게 말하고 나면 그게 하나님이 주신 것인지 내가 구걸해서 얻은 것인지 분명치가 않다.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만 받아내겠다는 분명한 의지로 나간다면 하나님은 확실하게 자신이 주신 것임을 알게 해 주신다. 그럴수록 더욱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