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홍 목사 / 예장 통합 분당아름다운교회 담임

대학 마지막 학기 중반이 되었다. 4학년에는 화공과외에도 다른 길도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법정대학에 가서 행정학 정치학을 선택으로 들었다.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할까? 당시 삼성에서 성균관대학을 지원하기로 결정했기에 삼성으로의 취직이 쉬웠다. 특히 이공계통은 더욱 그러하였다. 졸업하면 어떠한 길을 가야할까? 행정고시나 외무고시를 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특히 외교관이 되어 세계 여러 나라로 다니며 문물을 익히는 것도 멋진 삶처럼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외국어도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하지만 마음을 그렇게 먹으니 외국어 공부가 즐거워졌다.

어느 날 전도한 후배가 진로를 물었다. 그 당시 기독학생회를 거의 새로 일으키다시피 했었다. 내가 전도해서 데려온 학생들도 상당수였다. 그 후배가 앞으로 어떻게 하겠느냐 물었다. 두 가지로 대답했다. 하나는 정치가가 되어서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목사가 되어 사람들의 영혼에 유익을 주는 것이라고. 그렇지만 목사는 너무 약해 보였다. 당시 70년대 초반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게 목사였다. 그리고 목사는 또 가난해야만 목사 같이 보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정치가 쪽으로 힘을 주어 말했다. 그 후배도 그렇게 받아들여주기를 바라면서.

그러자 그 후배는 단호히 말한다. “정치가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형님이 그 길을 걸어서 정말로 대통령이 될 수 있겠어요? 됐다고 칩시다. 그러면 선진국처럼 잘 살게 만들 수 있나요? 그렇게 만들었다고 칩시다. 그 목표가 미국이라면 미국 사람들은 다 구원을 받은 건가요? 미국에도 얼마나 죄악이 넘치는데요. 세상에 잘 먹고 잘 살수록 더 죄가 많아집니다. 세상에서 잘 사는 게 목적이라면 예수님이 왜 죽으셨어요? 왕이 되어서 지상낙원을 만들지요. 그러니 쓸데없는 생각 말고 목사가 되십시오. 다문 몇 사람의 영혼이라도 구원한다면 그 상은 영원합니다.”

믿은지 얼마 되지 않은 학생이었다. 그가 이렇게 훌륭한 말을 할 수 있다니! 그의 이 말은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다. 이 분명한 길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는가! 그 날부터 목사의 길을 결정했다. 먼저 부모님께 결심을 말했다. 두 분 모두 당시는 불신자였다. 아버지는 천도교의 간부였고 어머니 무당에게 늘 점치러가는 분이었다. 당연히 반대였다. 지금 삼성에 취직 안 하고 무슨 목사냐는 것이다. 만약 계속 그러면 집에서 나가고 아예 관계를 끊자는 엄포였다. 친척들도 찾아와서는 마음을 돌리려고 애썼다. 그들 모두 내가 정신이 나갔다는 것이다. 당시 목회자들의 삶은 어려웠다. 사회가 모두 가난했는데 목회자들은 더욱 그러하였다. 그러나 목사가 되겠다는 결심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세상의 부귀영화가 하찮게 보일뿐이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노회추천서부터 얻어야했다. 그리고는 신학교입시준비를 해야 했다. 별 방법이 없어서 성경을 한 번 집중해서 정독했다. 그리고는 시험 보러 갔다. 당시에는 대학 마치고 가는 과정이 40명 정원이었다. 비율도 세지 않아 2:1이었다. 합격 통지서를 받고는 집에서 나가야 했다. 다니던 교회에서는 아무런 지원도 없었다. 오히려 담임목사님은 교회에 자리가 없으니 다른 교회로 가라는 것이다. 책들을 모두 팔았다. 그리고 모아둔 돈을 가지고 가서 일단 입학금과 기숙사비만 냈다. 학비와 식비는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누구에게 말할 대상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나온 상황에서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았다.

40명 중 불신 가정에 온 사람은 나 외에 단 한 명이었다. 후에 주안 장로교회를 일으킨 나겸일이었다. 모두가 몇 대째 목사 아들 장로 아들들이었다. 이들 모두가 온 가족 친척의 축복과 찬사 속에 당당하게 목사되려 온 이들이었다. 여학생은 40이 넘은 분이 하나였다. 그래도 선지동산에 받아들여졌다는 감격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너무도 설레는 마음으로 신학생 생활을 시작하였다. 드릴 말씀은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가르침을 기다리면 필요한 때 말씀해 주신다는 사실이다. 내 평생을 통해 결정적인 순간에 또는 너무나 어려울 때 반드시 말씀을 주셔서 극복하게 해 주셨다. 말씀은 받아서 품고만 있어도 효력을 발한다. 우리가 무슨 믿음이 좋아서 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인간 수준의 믿음뿐이다. 그걸로 산을 옮기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암송하고 입으로 읊조리면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믿음이 부어진다. 한번 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