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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들이여! 현대 에큐메니칼운동 추진의 근원을 올바로 알고 주님의 일을 하자!⑴
[특별기획] 조남민 목사의 가톨릭 분석②
2013년 08월 05일 (월) 23:50:31 조남민 목사 namdesktop@gmail.com

   
조남민
목사 / 미국 밸리성경교회 담임, 한인성경선교회 대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의하면 에큐메니즘(교회일치운동)은 “범세계적인 그리스도교의 일치와 협력을 지향하는 운동이나 경향”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사전은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최근에 생겨난 이 용어는 그리스도교 교회들의 보편성을 강조한다. '에큐메니즘'이라는 용어는 '오이쿠메네'(oikoumenē: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와 '오이코스'(oikos: 집)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 기원은 예수의 명령·약속·기도에서 찾을 수 있다. 1910년 에든버러에서 국제선교대회가 열린 뒤 개신교도들은 선교·복음전도·봉사·연합세력 등의 모임을 표현하는 데 '에큐메니즘'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인터넷 위키 백과사전은 같은 맥락으로 말하면서 다음을 덧붙이고 있다.

“기독교 교회일치운동은 2차 대전 이후에 구체화되어,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가 결성돼 개신교회와 동방정교회가 참여하게 되었고 로마 가톨릭교회와의 협력과 일치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교회일치운동을 가톨릭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가톨릭뉴스>(http://news.catholic.or.kr)는 “보편교회 일치운동 어디에 서 있나?”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톨릭교회에서는 교황 비오 9세가 1869년 제1차 바티칸공의회를 개최하면서 힘을 얻기 시작했으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까지는 방어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어 큰 진전을 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제2 바티칸회의 이후 적극적으로 이에 참여했다는 말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일치운동 본격화, 갈라진 형제에 대한 ‘무관심·편견 극복해야’,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년)를 통해 가톨릭교회는 동방교회, 개신교, 성공회를 한 형제라고 고백하며 교회일치를 향한 그 어느 때보다 힘찬 여정을 걸어왔다.”

그러면서도 이 <가톨릭뉴스>는 이 운동의 근원을 교부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같은 일치운동은 교부시대부터 꾸준히 이어져왔다. 당시에도 이미 ‘갈라져 나간 형제들’(裂敎 schisma)이 존재했고 잃어버린 교회 일치와 친교를 회복하려는 교부들의 땀방울은 교부 문헌 곳곳에 배어있다.”

그리고, “동서방 교회를 통틀어 일치운동에 가장 열성적이었던 교부는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의 밑거름이 된 옵타투스(384년 이후)”라고 말한다.

이러한 말은 가톨릭이 교회일치운동을 본격화한 것이 제2바티칸회의 이후이지만 이는 전부터 이루어졌던 일이므로 반드시 이루어야함을 강력히 시사하는 모습이다.

요즈음에는 교회일치운동이 종교통합을 통한 단일세계정부 운운하며 정치적 단계까지 거론되고 있는 혼잡한 상황이다. 하지만 여기서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은 우리의 관점을 벗어나는 일이며, 교회일치운동은 근본적으로 종교적인 문제임으로 우리는 특히 가톨릭과 개신교와의 교회일치운동에만 국한하여 기본적인 것들만을 논하고자 한다.

사실 이런 시점에서 이 운동이 전개되는 모습을 간단이나마 살펴보는 것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요즈음 세계교회일치운동, 소위 에큐메니칼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일부 기독교계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 여파가 이에 참여하지 않는 목회자나 평신도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실 개 교회를 섬기기에 바쁜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이 여기까지 관심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주님의 대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러한 운동이 계속해서 추진되는 것들을 적어도 알고 있어야한다. 그렇게 함으로 어떤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질 때 사역자들이 올바른 사고로 대책을 세우고 성도들을 잘 준비시켜서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엡 4:12)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지난 2007년 7월 10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우리 믿는 자들이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하고,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교회일치운동에 참여하는 개신교 사람들에게 이 성명은 전혀 경우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주장이다. 하지만 교황으로서는 그동안 침묵하고 있던 것을 가톨릭 교리에 근거해 과감히 선포한 것이다. 성명은 모두 5가지의 질의 답변 형식으로 발표되었다.

다음은 이를 발췌 보도한 것을 요약한 것이다.

첫째, 제2 바티칸회의는 교회에 대한 가톨릭 교리를 절대 변경시킨 적이 없다는 내용이다. 둘째, 셋째는 그리스도 교회가 가톨릭교회에 존속한다는 내용이다. 즉 그리스도가 이 땅에 교회를 세우셨고 그 교회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 이 교회는 곧 가톨릭교회라고 답하고 있다. 넷째는 동방교회를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다섯째는 16세기 개혁 때 나온 개신교에게는 ‘교회’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개신교를 ‘교회’ 대신 ‘공동체’(Communities)로 명명하면서 개신교는 사도의 전승을 따르지 않고, 성사의 제사장이 없으며, 성체가 없으므로 ‘교회’라 부르기에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 내용을 더 샅샅이 말하고 싶지는 않다. 우선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교황이 가톨릭교회가 유일한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한 것에 대해 교회일치운동을 지향하는 일부 개신교 목회자들의 반응이다. 신문이나 인터넷에 보도된 것을 적어본다.

“이번 발표는 참 슬픈 일이다.”
“배타적인 주장이다.”
“종교 화합 힘써왔는데….”
“개신교와의 관계 개선을 도모할 기회 역시 놓치고 있다.” 등의 말로 섭섭해 했다.

성공회 김모 신부는 “가톨릭교회만 유일하고 합법적인 교회”이며, “다른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은 ‘교회들’이라고 불릴 수 없다”는 주장으로 한국 그리스도교의 일치 노력에 어려움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또한 감신대 신학 교수인 박모 목사는 이번 교황청 문서를 통해 “현 교황이 보수적이라는 것과 교회일치 대화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당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권모 총무는 “한마디로 우리가 지금까지 나눴던 교제를 상실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동아일보)라고 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이 성명에 대한 일부 개신교 지도자들의 우려는 바로 에큐메니칼 운동, 즉 세계교회일치운동이었다. 교회일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던 사람들이 힘이 빠진 모습, 빵빵한 풍선이 하늘을 오르다 바람이 빠지는 모습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심각하게 질문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이것이 과연 그렇게 걱정하거나 섭섭해 하거나 노심초사해야 할 문제인가? 이렇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주님의 대 사명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인가?

만일 이것이 가톨릭이 예전부터 변함없이 주장했던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렇게 주장할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실제로 그렇다면 교회일치 노력에 어려움이 생길 것을 걱정하거나 안타까워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고, 세계교회일치 운동에 참여하기보다 우리는 종교개혁정신에 입각하여 실제 개혁을 부르짖으며 복음전파에 몰입해야 할 것이다.

일전에도 언급했지만 가톨릭의 교리는 바뀌지 않았다. 이 말은 가톨릭의 교리는 예전부터 변함없이 주장되어 오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주장할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 교황청에서 낸 성명서의 전문 중에 첫 번째의 답변이 여기에 관한 것이다. 2007월 6월 29일자로 된 “[교황청 신앙교리성] 교회에 대한 교리의 일부 측면에 관한 몇 가지 물음에 대한 답변과 해설”이라는 제목으로 된 글이 이를 명백히 말하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BCK) 웹사이트(http://www.cbck.or.kr)의 “교황청문헌” 부문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여기 게재해본다.

   
▲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BCK) 웹사이트(www.cbck.or.kr)의 “교황청문헌” 중

이 글에서 보는 것처럼 가톨릭은 지난 수세기 동안 가르쳐 온 것을 계속해서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이 글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에 관한 가톨릭 교리를 바꾸지 않았고 그러한 의도도 없었으며, 오히려 이를 발전, 심화시키고 더욱 완전하게 설명하였다”고 못 박아 말하고 있다. 이를 설명하는 항목에서 가톨릭은 “…전통 교리에서 실제로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적합한 설명”이라고 말하면서 “과거의 것이 지금도 여전”하고, “교회가 수 세기 동안 가르쳐 온 것을 우리도 가르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교회에 관한 교리만이 아니다. 구원을 포함한 다른 교리도 마찬가지다. 더해지고 강화되면 강화되었지 일단 세워진 교리의 근본 뼈대가 변한 적이 없다.

이 글에서처럼 교황 바오로 6세나 요한 23세가 가톨릭의 교리를 바꿀 수 없다. 대신 그들은 더 잘 설명해 “오히려 이를 발전, 심화시키고 더욱 완전하게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불확실하던 것이 이제 더 명쾌해졌으며”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나 베네딕토 16세도 그러한 교리를 바꿀 수가 없다. 오히려 그것을 더 잘 정리해 1992년에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냈다. 다만 그렇게 정해진 교리를 이행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가? 에 대해서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일전의 요한 바오로 2세의 경우는 교리는 나타내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교계의 수장들을 만나며 교회일치운동의 물밑작업을 했고, 라칭거 교황, 즉 베네딕토 16세는 그런 교리를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한 것일 뿐이다.

이렇게 변화 없이 계속되고 있는 가톨릭 교리를 올바로 안다면 일치운동에 참여하는 개신교의 목회자들은 섭섭해 하거나 노심초사해서는 안 되고, 현실을 올바로 직시해야만 한다.

아직도 개신교의 일부 목회자들이 가톨릭과 잘 융합하면 가톨릭이 고수하는 교리를 변경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교회일치운동으로 그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은 가톨릭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혹자는 가톨릭교회의 수장이 바뀌면 교리가 바뀔 것으로 생각하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 마치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 목회자가 바뀌면 그 정책이 바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앞으로 보겠지만 교황이 바뀐다고 그 교리가 바뀐다면 로마 가톨릭은 존재할 수가 없다.

가톨릭 교리가 변하지 않았다는 단 하나의 사실만이라도 올바로 이해한다면 우리 믿는 자들의 갈 길은 명확하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이 운동을 보면 우리의 갈 길은 더 확실해진다. 교회일치운동은 개신교나 가톨릭이나 성공회가 일치하자, 즉 “하나 되자”는 운동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사실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 믿는 자들이 이를 추진해야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하나 되라”는 명령과 “하나 되지 말라”는 명령이 모두 주어져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르므로 성경의 전후문맥을 잘 보면 어떤 때 “하나 되고”, 어떤 때 “하나 되지 말라”는 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먼저 “하나 되라”는 말씀은 특히 에베소서 4장에 잘 나타나 있다. 에베소서 4장 2~3절은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런데 그 다음 구절들을 읽어보면 이는 같은 믿음을 갖고, 같은 주를 믿는 경우에 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같은 믿음과 같은 주를 섬기는 자 안에서는 “하나 되라”는 명령을 따라야한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말은 아니다. 믿음이나 믿는 주가 다르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한 믿음이 되어 하나 되게 하는 것이다. 즉 믿음이 다른 자에게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복음전도를 통해 주님의 대 사명을 이루는 일이지 하나 되고자 노력하는 일이 아님을 알아야겠다.

다음은 “하나 되지 말라”는 말씀에 관한 것이다. 고린도후서 6장은 믿지 않는 자나 잘못된 믿음을 가진 자와 어울리는 것에 관해 아주 심각하게 명령하고 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14~16절).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일치 되겠는가를 이보다 더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겠는가? 특히 믿음의 대상이 다른 경우 -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 - 그리스도와 베리알 - 결코 일치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믿어야 한다고 하니 믿음의 내용이 달라도 믿기만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성경은 성경에서 벗어난 “복음”은 “다른 복음”이라고 말하고, 성경의 복음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다른 복음”을 믿는 자는 믿지 않는 자와 같다고 명명백백히 명시하고 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7~9)

다른 복음을 믿으면 저주받을 것이다. 갈라디아 교회에서 다른 복음을 말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믿는 방식이나 믿는 모임의 모습이 겉보기에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과 같다. 하지만 여기에 들어오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구약의 전통이었던 “할례”였다. 즉 “행위”가 들어온 것이다. 성령님은 바울 사도를 통해 이를 엄히 꾸짖고 계시다. 절대로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변개된 것은 저주받는 복음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믿는 사람들은 성경이 말하는 이런 상황에서 교회일치운동을 평가해야만 한다. 이것이 옳은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분명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셨고,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다른 복음을 믿는 자는 저주받을 것임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선 예수님을 믿는다는 가톨릭의 교리가 과연 변개된 “다른 복음”인가를 분별해야만 한다. 교리에 관해서는 후에 더 자세히 볼 기회가 있겠지만, 역시 역사적인 사실이 이를 잘 뒷받침하고 있다. 일전에도 보았지만 1517년으로 시작해서 개혁자들이 피를 흘린 것은 바로 이 변개된 “다른 복음”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다. 개혁 전의 가톨릭의 믿음은 성경에서 벗어난 “다른 복음”이었다. 그 이후 그 “다른 복음”이 올바로 잡혀졌는가?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이다. 아니 내막을 살펴보면 볼수록 성경의 복음에서 더 멀어져 가고 있다.

지난 2013년 5월 23일 가톨릭 온라인 http://www.catholic.org/hf/faith/story.php?id=51077은 <Pope Francis says atheists can do good and go to heaven too>의 제목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음을 올려놓았다.

“주님은 우리 모두를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하셨습니다. 여기서 모두란 가톨릭 신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신부님, 무신론자들도요?’ 네 무신론자들도 포함한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는 선행을 통해 만나야합니다. ‘하지만 신부님, 나는 믿지 않는 무신론자에요!’ 그러나 선을 행하세요. 그러면 우리가 그곳에서 함께 만나게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만] 가는 나라 하늘나라”라고 찬송을 부르는데 가톨릭 교황은 위와 같이 “ 선을 행함으로”를 말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다른 복음이다. 이것이 다른 복음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런 사람은 성경을 다시보아야 할 것이다.

가톨릭의 교리가 개혁 전이나 개혁 후나 변함이 없는 것을 보면서, 성경에 근거한 주님의 대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교회일치운동이 아니라 복음전파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칼빈 같은 개혁자들이 “개혁은 계속되어야한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개혁을 부르짖어야 마땅하지, 가톨릭과 하나 되자고 하는 것이나 그런 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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