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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연, ‘쉰나라의 굿한 녀들’ 영상 폭로
2013년 05월 10일 (금) 18:25:52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 ‘바로알자신천지’(www.antiscj.net)는 신천지대책전국연합(신대연, 대표 신현욱) 회원들이 활동하는 인테넷 카페입니다. 본 영상은 5월 10일 ‘쉰나라 굿한 녀들’이라는 제목으로 이 카페에 올려 진 게시물임을 알려드립니다. '쉰나라' 백성들이 반드시 보게되길 기대합니다.<편집자주>

‘쉰나라의 굿한 녀들’ 영상 녹취록 전문

최근 쉰나라 과천궁에서 몇 명에 대한 근신과 제명처리로 급히 덮어버린 소위 굿판 사건이 있었다. 작년 쉰나라 체전 이후 불거지기 시작한 말종임금과 희빈 김씨 사이의 갖가지 소문이,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었음을 확인해준 이 충격적인 굿판 사건의 전말을 쉰나라 백성들과 온 천하 만민에게 고하는 바이다.

쉰천기 27년인 2010년 여름경에 인간 말종이 세운 쉰나라의 개국공신 윤대감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 이같은 사실은 쉬쉬하는 분위기 속에 그 지방 백성들만 알았을 뿐 다른 지방 백성들은 대부분 알지 못했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쉰나라 전체로 퍼지긴 했지만 아직도 모르고 있는 백성들이 적지 않다.

윤대감 가문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윤대감 가문은 그의 부친 때부터 소사 신앙국에서 시작해서 과천 장막국까지 말종임금과 같은 신앙의 길을 걷게 된다. 이어 윤대감은 장막국을 떠나 통일국의 아류인 생령국에 몸담았다가 1985년 경 쉰나라로 이주했고, 부모님과 여러 형제 중 한 형님과 여동생까지 쉰나라로 인도하게 된다.

이후 윤대감 형제는 말종 임금의 신임을 얻어 좌우정승의 자리에 앉게 되었고, 세상을 떠날 당시 작은 윤대감은 한양서북부 관찰사로, 큰 윤대감은 한양 동북부 관찰사로 각각 재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작은 윤대감이 애석하게 별세하자 말종 임금이 있는 과천궁에 거주하고 있던 그의 여동생은 작은 오빠의 원혼을 달래주고자 무당 집을 찾게 되었고, 거기서 천도제를 3년간 지내기로 작정하게 된다.

2년여 간에 걸쳐 천도제를 지내오던 중에 또 다른 우환이 겹쳤는데, 큰 오빠인 윤대감이 관찰사 자리에서 파직 좌천되어 과천궁의 한직으로 내려앉은 것이다.

파직의 명분은 재정 문제였지만, 그것은 대외적인 명분이었을 뿐 사실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 속이 상한 큰 윤대감은 이같은 사실을 과천궁의 여동생에게 얘기했고, 그 과천댁 윤씨의 입을 통해 그 비밀은 세상에 알려지고 말았다.

그 비밀의 진상은 다음과 같다.

작년 체전이 있기 몇 달 전에 말종임금의 전적인 총애를 받으며 안하무인격 절대 권세를 휘두르고 있던 압구정 희빈이 당시 재정 문제로 감사를 받고 있던 윤대감을 찾아왔다.

압구정 희빈은 알이 큰 반지를 보여주면서 자신이 금번 체전을 기해서 말종임금과 혼인을 하려고 하니 윤대감이 좀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고, 눈치 없는 윤대감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였다. 압구정 희빈의 세번에 걸친 부탁을 거절한 대가는 즉시 감사 결과로 나타났다.

재정 문제에 대한 책임 추궁은 급기야 윤대감의 개인 통장을 제출하라는 요구까지 이어졌고, 이를 거절한 윤대감은 결국 재정비리의 오명을 쓰고 파직 후 과천 궁으로 소환된다.

2012년 9월 16일 드디어 쉰나라 체전은 거행되었고, 체전 마지막 순서는 압구정 희빈의 소원대로 말종임금과 압구정 희빈이 왕복과 왕관을 쓰고 혼인식을 치르는 것으로 장식됐다.

다음은 체전 당시 말종임금의 곁을 지키고 있던 한 궁녀의 증언이다.

“저는 쉰나라 소속 무용단원으로 체전에서 말종임금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체전이 마무리될 즈음에 계획에 없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둠이 드리우고 운동장에서 벌어진 춤판으로 인해 어수선해진 틈을 타고 십여 명의 대감들이 뛰어나와서 말종임금과 압구정 희빈을 둘러쌌고, 저는 말종임금 곁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그 틈으로 들어가려고 하던 중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습니다. 압구정 희빈이 말종임금의 볼에 입을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의 충격으로 쉰나라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말종임금과 압구정 희빈을 둘러쌌던 대감들은 열두 지방 두령들이었습니다. 지금에서야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쉰나라 대부분의 맹신 백성들은 말종임금과 압구정 희빈이 왕복과 왕관을 쓰고 벌인 행차가 단순한 축제 의식이었다고 생각할지라도, 양심 없는 열두 두령과 이것을 기획한 희빈의 측근들만은 이것이 말종임금과 압구정 희빈의 혼인예식이었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확신입니다.”

이 체전을 가장한 혼인식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이 혼인식을 통해서 압구정 희빈은 이제 명실상부한 중전의 자리에 앉게 되었고, 이것은 향후 말종임금 사후 권력승계를 위한 헤게모니 다툼에서 정통성과 교리 변개시 중요한 근거로 이용될 것이 분명하다.

이 혼인식은 선명왕의 통일국과 길자태후의 하나님국을 벤치마킹하고 있음을 엿보는 대목이다.

다시 과천댁 윤씨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큰 오빠인 윤대감을 통해 반지와 혼인얘기를 들었지만 설마설마 했던 과천댁 윤씨는 체전을 지켜보면서 이것이 사실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제야 쉰나라의 돌아가는 판을 읽게 된 과천댁 윤씨는 이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을 절친했던 실로댁에게 털어놓게 된다.

과천댁 윤씨는 작은 오빠인 윤대감의 원혼을 달래려고 천도제를 지내고 있는 무당으로부터 믿기 어려운 얘기를 듣게 된다.

무당 세계에서는 한 판에 1억 하는 굿이 꽤 큰 굿인데, 이런 굿에는 새끼 무당들이 많이 따라 간단다. 그런데 1억짜리 굿이 벌어졌는데 그 굿을 청한 사람이 바로 성남에 거주하는 희빈 김씨의 동생이었고, 뭔가를 빌어달라고 요구하는 내용이 있었을 터, 두 사람의 이름과 사주를 적어놓고 굿을 했단다.

그 이름은 바로 말종임금과 압구정 희빈 김씨였다.

전해주는 무당의 말에 의하면 말종임금은 나이가 많고,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많았다고 했고, 비는 내용은 희빈 김씨가 말종임금을 모시고 있는데, 말종임금이 승하하시면 쉰나라 백성들이 다 희빈 김씨에게 순종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소원이었다.

이러한 1억짜리 굿판을 한두 판이 아니라 여러 판을 했다니 대단한 재력이 아닐 수 없다.

놀라운 것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굿판녀가 희빈 김씨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쉰천기 23년인 2006년 말 쉰나라 개국공신 중의 하나였던 신대감이 개혁을 꾀하다가 말종 임금의 실체를 깨닫고 탈퇴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당시 놀란 말종임금의 중전 유씨가 무당을 찾아가 신대감 사태로 불안해진 쉰나라의 안정을 기원하는 굿을 한판 벌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충격적이고 믿기지 않는 일들이 어떻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을까?

윤대감의 여동생 과천댁 윤씨가 절친했던 실로댁에게 말을 했고, 실로댁은 체전을 겪으면서 말종임금과 희빈 김씨의 왕관을 쓰고 보인 추태를 보며 과천댁 윤씨를 통해 들었던 얘기들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하고는 들은 바 모든 얘기를 주위 쉰나라 백성 수십 명에게 문자로 알리기 시작했다.

이뿐 아니라 얼마 전까지도 부산관찰사였다가 “중전자리를 노리는 자가 있다”는 말로 인해 관찰사에서 파직당해 현재 진주 사또로 좌천된 김대감을 찾아가 만나기까지 했다.

평소 김대감과 친분이 있던 실로댁은 김대감에게 이같은 사실을 모두 얘기 했고, 경기도 가평에 마련했다는 말종임금과 희빈 김씨의 신혼살림집에 열두 두령들과 서당 물주들이 두번이나 초청되어 갔었다는 사실까지 확인했다.

다음은 당시 가평 신혼집에 초청되어 그곳을 방문했던 한 서당물주의 증언을 들어보자.

“열두 두령들과 함께 가평에 위치한 말종임금의 작은 궁에 초대받아 갔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궁은 3층짜리였는데, 끝날 무렵 화장실을 갔다 나와 보니 아무도 없었고, 일하는 궁녀 한분이 다들 올라가셨다고 해서 윗층으로 올라갔다는 말로 알아듣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아무도 없었고 온통 말종임금과 희빈 김씨의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다시 3층으로 올라가려는데 3층에서 희빈 김씨가 내려오면서 여기는 나와 말종임금만의 공간인데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올라오느냐며 노발대발 호통을 쳐서 혼비백산하고 뛰쳐나왔던 기억이 있다.”

이런 소문은 빨리 퍼지는 법, 과천궁에서 시작된 소문은 급기야 말종임금과 중전 유씨와 희빈에게까지 들어갔고, 다급해진 그들은 실로댁이 보유한 증언이 녹음된 녹음기를 빼앗으려고 갖은 수작을 다 부렸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실로댁은 쉰나라에서 제명처리 되었고, 윤대감의 여동생 과천댁 윤씨는 근신처리 되었다.

실로댁은 이렇게 말한다.

 "굿하고 다닌 중전이나 희빈 녀들은 그냥 두고, 나를 제명한다니 웃기는 나라죠?"

이러한 사실을 듣게 된 신대감은 확인차 쉰나라 위장 신문인 ‘쉰천지일보’를 뒤지던 중, 굿하는 무당에 관한 기사를 여러 차례 기사화한 것을 발견했다. 우연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부분이다.

이미 신대감 탈퇴할 당시 말종임금과 궁녀 심씨와의 스캔들의 진상과 영생불사의 허구성을 깨닫고 쉰나라가 희대의 종교 사기판임을 눈치 챈 압구정 희빈 김씨는 잠시 신대감과 함께했다가 인천관찰사 이대감과 함께 다시 들어갔다.

이후 압구정파당을 결성하고 말종임금 사후 쉰나라 대권을 거머쥘 엄청난 음모가 압구정 희빈 김씨의 심복들에 의해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 시작이 위장봉사단체 ‘이김빛빛만남’을 통한 희빈 김씨의 부상이었고, 말종임금 우상화와 희빈 김씨 띄우기를 위한 ‘빛 군사 훈련’이었다.

이것으로 압구정 희빈 김씨의 계략은 다 드러난 셈이고, 이제 말종임금이 중전 유씨와 희빈 김씨 사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런지가 매우 궁금할 뿐이다. 그리고 희빈 김씨에게 영육간 중전의 자리를 빼앗긴 중전 윤씨의 반격도 만만치 않을 터, 어떻게 반전을 꾀할는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리고 향후 쉰나라 과천궁의 진흙탕 싸움이 볼만할 것이고, 쉰나라의 벼슬아치들은 점차 신대감의 예언이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닌지 초조 불안 갈등 실망으로 이어질 것이다.

쉰나라 벼슬아치들에게 한마디 고합니다.

백성들은 어리석어 맹신과 맹종이라지만 당신들은 이미 알 만한 사람들,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믿는다면 허황된 왕같은 제사장의 명예와 육체 영생의 탐욕에서 벗어나 신앙의 양심을 속이지 말고 지금이라도 쉰나라 우물 안에서 벗어나 알아보고 바른 길로 돌아오시오. 말종임금의 사후 때 늦은 후회 말고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길 바라오.

쉰나라에서 하늘나라로 먼저 온 신대감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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