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2월이 되면 우리 곁에 찾아오는 연극이 하나 있다. <빈방 있습니까>(이하 빈방)이다. 32년째 무대에 올리고 있는 <극단 증언>의 작품이다. 그런데 이 이 작품의 32년째 주인공을 맡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박재련 장로(극단 증언의 대표)다. 그를 만나 2012년의 <빈방>과 32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 환갑이 되는 내년까지는 주인공 덕구를 할 생각이라는 박재련 장로.

“반갑습니다. <빈방>이 벌써 32년을 맞았네요. 올해 <빈방>은 기존 작품과 다른가요?”
-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년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보다는 다르겠지만 예년에 비해 크게 변화하지는 않았습니다.

“한 가지 스토리를 가지고 해마다 12월이면 정기공연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빈방>이 뭔지 모르는 독자가 있을 것 같아서 먼저 <빈방>을 소개 좀 해주시죠.”
- <빈방>은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극화한 작품입니다. 1980년 성탄절 무렵 신문 한 구석에 실린 ‘월리의 성탄절’이라는 짤막한 칼럼을 토대로 연출가 최종률 교수가 극본과 연술을 한 작품입니다. 원전은 그 이전인 1977년 가이드포스트, 다이제스트 등의 월간지를 통해 소개되었습니다.

“어떤 내용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내용도 짤막하게 소개해 주세요.”
- 성탄절을 앞두고 성탄연극을 준비하는 어느 교회 고등부 연극반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연극에 참여하는 학생 중에 지진아 ‘덕구’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사가 소외되었던 덕구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참여를 시키죠,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12월 24일 드디어 공연을 시작했지만 덕구는 연극과 현실을 혼동해서 연극을 망치게 됩니다. 여관 주인 역을 맡은 덕구가 예수님을 낳을 곳이 없다는 마리아를 두고 너무 마음이 아파 자기 집에 방이 있다며 가자고 하는 바람에 생기는 사건이죠.

“32년 동안 덕구를 맡으셨는데, 너무 욕심 부리신 것 아닌가요?(웃음). 처음 시작할 때와 지금과 주인공의 차이가 있나요?”
- 32년간 덕구 역할을 하면서 내가 바낀 것은 사실입니다. 내 성격이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편입니다. 그런데 덕구를 맡으면서 점점 그를 닮아간 것 같습니다. 극중이 덕구는 지진아지만 심성이 착합니다. 덕구처럼 마음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덕구 모드’로 전환되고 특히 겨울이 되면 다른 생각 없고 성품 자체가 변합니다. 내용 보면 알지만, 내 것을 손아귀에 쥐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겠다는 것입니다. 내 방을 내놓아야 예수님이 들어오십니다.

<빈방>이 주는 영적 의미도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자기 방을 내놓지 않고 주님이 삶에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빈방>은 단순히 덕구의 실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셔놓겠다는 것이 주제이고 주를 영접하겠다는 마음이라고 봅니다.

▲ <빈방 있습니까>의 덕구

“처음에는 작품이 그렇게 길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거의 80분 공연을 하던데…”
- 처음에는 45분짜리였습니다. 너무 짧아 <빈방>외에 다른 연극을 함께 공연했습니다. 두 편을 동시 공연했습니다. 두 해 지나니까 그 작품으로도 감동인데 하나만 올리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에피소드의 살을 붙여 한 시간 반 정도 늘렸습니다. 처음에는 미네소극장에서 70석 채 안되는 곳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계단에 카펫트 깔아놓고 120명까지 꾸겨 놓고 공연한 적도 있습니다. 그 때는 세트도 없었지요. 지금은 세트도 있다. 해마다 바꾸어보려고 하고, 뮤지컬로 바꾸어 보자는 말도 합니다. 내년에는 <빈방 > 33주년이니까 실험적으로 변화 생각해보고 있다.

“덕구 외에 다른 배우 분들도 함께 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 이번에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연출 겸 극중 교사 역을 한 최종률 장로님입니다. 그 외는 한 해 두 해하다가 그만 둡니다. 초창기에 몇 년씩 했는데 요즈음 배우들이 하고 나면 자기 일을 합니다. 돈이 되는 일이 아니니까 그럴 겁니다. 배우들 자주 바뀌는 편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덕구를 역할을 할 생각인가요?”
- 내년이면 환갑이고 나로서는 의미가 있는 33년 될 것 같습니다. 일단 내년까지 할 것 같고 내일 일은 모릅니다. 극중에 등장하는 덕구가 청소년이잖아요, 머리가 희끗한 덕구가 출연하면 안 되니까 재작년부터 가발을 쓰고 나옵니다. 오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다른 덕구가 나와야 할 것입니다. 다음 세대들이 어른들이 하고 있는 작업을 이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후진 양성 소홀하게 되면 이대로 가다가는 기독교 연극 소외당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습니다.

▲ <빈방 있습니까>의 한 장면

“32년 동안 공연을 하면서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습니다. 소개 좀 해주시지요.”
- 12월 24일에는 심야공연을 10시에 합니다. 어떤 아주머니가 아이들 둘 데리고 와서 아이들과 함께 보아도 되느냐고 묻었습니다. 공연을 보고 가셨는데 다음 날 전화가 왔더라구요. 울먹거리면서 전화를 하셨는데 목소리가 전날 전화했던 그분이었습니다. 사실 마지막 성탄절 보내려고 대학로 나왔는데 연극을 보면서 열심히 살아가야 되겠다고 결심했노라고 말을 하더라구요. 그리고 전화 끊었습니다. 어떤 마음인지, 아이들과 이혼, 혹은 떠나든지, 죽음을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고맙다는 이야기 하면서 아이들과 잘 살아야겠다고 말했습니다.

아, 술 취한 중년 남녀가 왔던 일도 있었습니다. <빈방 있습니까>라는 제목을 보고 왔다면서 “야하냐?”고 물었답니다. 카운터에서 “여관이 나오니까 뭐 야하기도 하지요”라고 대답하자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더랍니다. 이 분들이 맨 앞자리에 삐딱하게 앉아서 연극을 보더라구요, 연극이 시작되면서 아이들이 무대에 쏟아져 나오니까 “뭐 연극이 이래?”라는 표정이었습니다. 연극이 진행되면서 이분들의 표정이 점점 바뀌더군요, 나중에는 눈물이 나오는지 울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연극이 끝나고 나가면서 카운터에 가서 “미안합니다”라면서 장애인이 그린 크리스마스카드를 무더기로 사갔습니다(웃음). 이 연극으로 한 사람이라도 삶이 변화가 된다면 좋은 일입니다.

“<빈방>은 12월만 합니까? 아니면 다른 곳에서 공연을 하나요?”
- 12월에는 대학로에서 정기공연을 하지만 끝나면 교회나 군부대, 미국 등지에 공연을 하러 갑니다. 처음에는 조명이나 세트를 들고 다녀서 유랑극단이라 우리 스스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상계동 음성나환자촌에서 공연한 적도 있습니다. 허름한 집에서 40여명의 음성나환자들과 함께 여름에 공연을 하는데 견디기 어려운 악취 났습니다. 땀과 냄새가 심했습니다. 배우들이 공연할 수 있는 동선은 없고, 처음엔 인간적으로는 냄새로 대사하기 힘들었는데 몰입되니 땀인지 뭔지 모르면서 (울컥)… 그 때 생각하면 지금도 뭉클합니다. 찾아다니는 공연을 합니다.

“32년 동안 공연을 해 오셨는데 관객이 줄어들지 않나요?”
- 공연에 관객이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넉넉한 재정이 없으니까 홍보가 약하지요. 대학로에도 몇 년 동안 불황이라 연극을 하는 중에 문 닫는 일이 있습니다. 그만큼 이 분야가 어렸습니다. 가늘게 먹고 가늘게 가자는 것이 우리 생각입니다. 아름아름 해서 오는 사람이 있고, 고정 관객들이 있습니다. 다른 극장에 비해 관객들이 오지만 연일 매진은 과장이고 10년 넘게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올 때마다 표를 사가지고 네 다섯 명을 데리고 여섯 번 오는 분도 있었습니다.

“빈방은 극단 증언에서만 하지 않고 여러 교회에서도 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좋지요. 성탄절 때마다 빈방이 여러 교회에서 올라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아쉬운 것은 빈방이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교회들이 제작한 빈방 동영상을 보면 너무 가볍고 희화하거나 개그화한 것들입니다.

빈방을 통해 교회들의 축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내년에는 크리스마스 때를 대비해서 교회들이 신청하게 만들어 이들을 지도했으면 합니다. 아마추어 교회 연극팀들이 참여해서 제대로 된 빈방이 올라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세상에 쾌락적인 연극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높이는 연극축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내년에 빈방 33주년인데 예수님 나이도 되었으면 해서 기독교 축제로 만들어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