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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신학적 입장에서 본 빈야드운동
1996년 03월 01일 (금)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이광희 박사:

 -이광희 박사는 총신대학교(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한 후 도미하여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웜(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석사(Th.M.)학위를 받았고 풀러신학대학원(F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Min.)학위를 받았다. 현재 평택대학교 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의 선교신학 교수로 한국교회에 매우 친숙한 간하배(Harvie M. Conn)는 그의 신학방법론을 “신학을 한다(doing Theology)”는 말로 표현한다. 그는 이 신학방법론을 통해 전통적인 신학방법론이 소위 이론신학은 신학의 학문화를 위한 것으로 보아 그 관심이 본문 그 자체(Text)의 연구에 머무는 것을 정당화하며, 실천신학은 이론신학에서 제기된 결과를 상황(Context)속에 적용시키는 전문적인 기술적노력으로 이해하여 상황속에서 본문이 말하는 원의(Original Meaning)를 찾아 현재화시키는(Praxis) 학문성보다는 단순한 본문의 실천문제(Practice)로 이분화 되어왔음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이론신학의 이론과 실천신학의 실제사이에 나타나는 뛰어넘을 수 없는 강을 신학은 본문을 공부하는 것과 상황속에서 살아가는 이원론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은 본문이 상황속에 주어진 것으로 본문과 상황은 신학을 한다(doing Theology)는 방법론 속에서 현재화되는 실천의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본문을 중요시하는 보수신학과 상황을 중요시하는 새로운 신학 사이의 갈등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은 본문과 상황사이의 이분법적인 갈등구조가 빚는 우선권의 문제가 아닌가싶다. 예를들면 본문을 극도로 존중하는 어떤사람은 상황에 관계없이 본문은 항상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런 경우의 문제점은 계시가 문화적 상황속에서 주어졌다는 특수성이 무시되어짐으로 계시가 이데올로기 역할을 할 수 있는 위험이 있음), 상황을 극도로 존중하는 어떤사람은 상황을 위한 도구로 본문을 이용함으로 (이런 경우에는 계시를 이데올로기화 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음) 양 입장이 공히 극단화되어 본문이 상황속에 현재화되지 못할 수 있다.

이런점을 고려할 때 간하배의 실천적 신학방법론인 “신학을 한다(doing Theology)”는 자세는 우리에게 신학에 있어서 본문과 상황의 상관관계가 얼마나 중요하며 이 둘의 현재화가 바로 오늘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실천적신학 과제임(Praxis)을 알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이와같은 신학방법론을 통해서 오늘의 상황속에 주시는 하나님말씀의 본문을 모든자에게 동일하게 무차별 강요하지 않고 또 교묘히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도구로 이용하지 않고 올바로 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점에서 먼저 본 발제자는 “빈야드운동”에 대한 우리들의 분석과 평가가 단순히 이론신학적인 관점에서 본문을 중시함으로 상황이 무시되는 결과나 실천신학적인 관점에서 상황을 중시함으로 본문이 무시되는 이분법적인 나누임이 되지않도록 주의하면서 오늘의 상황속에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살아계시고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본문)이 어떻게 현재화되어 나타날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문제제기: 빈야드운동이 왜 우리의 관심이 되는가?
성령의 제 3의 물결(The Third Wave)이라 불리우는 운동이 빈야드운동(Vineyard Movement)을 중심으로 1980년대로부터 근원지인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에 영향력있는 운동이 되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 운동은 특히 20세기 초부터  미국의 켄사스주 토페카에서 찰스파헴목사를 중심으로 시작된 성령세례의 경험과 방언은사의 표적으로 특징된 사건이 후에 켈리포니아주 로스엔젤리스근교의 아주사거리에서 놀라운 부흥운동으로 이어지게되고 후에 기성교회의 반발로 새로운 교단을 형성하여 분리되게 된 오순절적인 부흥운동(Pentecostal Movement), 그리고 1960년대에 이와 같은 오순절 운동의 영향을 받은 한 성공회신부의 공적인 방언체험에 대한 고백과 교회사임후에 다시 교단 안에 들어가 오순절운동을 진행한 은사운동(Charismatic Movement)과 한가지 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러가지 면에서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기성교회에 파고 들어와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운동은 1980년대말에 빈야드운동의 선구자요 지도자라 할 수 있는 존 윔버(John Wimber)의    책들이 한국교회에 번역 소개되면서 또는 미국 훌러신학교에서 교회성장학을 공부한 신학자나 목회자들의 강의나 저술을 통해 한국교회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특히 이 운동은 과거 한국의 주류교단이 오순절운동이나 은사운동의 극단성에 대해 이단시하던 것과는 달리 교리적인 면에서 복음주의나 개혁주의적인 입장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보다 더 적극적으로 기성교회안에 파고들게 되었다.

아나하임 빈야드교회의 한인담당목사인 민병길이 발행하는 “빈야드 사랑의 샘 편지”에 따르면, 빈야드교회가 한국교회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1994년 1월부터였다고 한다. 1994년 1월 집회에는 한국에서 24명이 참석하였고 8월의 세미나에는 더많은 인원이, 그리고 1995년 1월의 집회는 90명의 목회자와 70명의 평신도 그리고 미주지역 목회자 200여명이 참석하였다고 한다. 민병길에 의하면, 1995년 6월 현재 그곳에서 행해진 세미나를 수료한 한국교회의 목회자가 약 800명, 평신도가 약 200명에 이르며 이 세미나 후에 성령의 능력과 사역에 대한 모든 것이 더 확실해졌고, 찬양과 기도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있었으며, 목회자 자신의 목회소명과 목회사역자체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와 같은 목회자의 급속한 변화에 따른 교인들의 반응또한 극적인 것이어서 어느교회는 교인의 수가 급증하는가 하면 어느교회에서는 교회들의 상당수가 교회를 이탈한다는 보고가 있다. 본 발표자가 직접 방문하고 조사한 교회는 거의다가 초기에 상당수의 이탈교인이 있었으며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현상유지되는 단계로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한국교회 목회자안에 이와같은 빈야드신드롬이 열풍처럼 휘몰아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지난 1995년 12월을 기해 미국 켈리포니아 아나하임에 있는 존 윔버가 주축이 되어 있는 빈야드교회연합(the Association of Vineyard Churches)과 공식적인 관계를 청산했지만 1994년 1월부터 전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카나다 토론토의 에어포트빈야드교회에 참석한 한국인 목회자들을 취재한 “목회와 신학”지의 안환균에 따르면, 150여명의 한인 목회자 중에 예장 통합, 합동, 고신 등 장로교 목사가 대부분이었고 오순절이나 침례교 목사는 거의 없었다는 점이 그 교리적인 면에서 오순절운동이나 은사운동에 거리를 두던 보수적인 목회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요소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목회와신학”지의 기자 박삼열의 취재에 따르면 빈야드운동에 심취되는 한국목회자 속에 있는 어떤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가 있는데 그것은 아래와같은 고백으로 나타난다.

“영적으로 피곤하고 너무 공허해 계속 목회를 해야 하느냐 하는 지경까지 갔었습니다.--- 그러다가 와그너박사의 제3의바람을 읽고 빈야드교회를 다녀오면서 분명한 회복을 맛보았습니다.”

“목회를 충실히 해왔지만 그러나 내 자신에게서도 그렇고 성도들에게서도 인격적인 부분과 영적인 부분, 또 삶의 모습에서도 변화가 없는 것 때문에 괴로왔습니다. 신도시에 제2의 성전을 마련하면서 까지 뛰어보았지만 영적으로 기진맥진했습니다. 이즈음에 빈야드교회를 방문하게 되었고 거기서 성령의 새로운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합동측 목사의 고백)

“다른건 몰라도 그들의 찬양하는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감동이 있었던지 빈야드교회 세미나에 참석하는 한주간 내내 울면서 찬양했습니다.”

“이 세미나를 통해 예배와 목회가 우리의 신학이나 전통, 교단에 묶여있는데서 해방되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체험하면서 저는 우리 교회와 나의 목회가 너무나 인간적인 것으로 가득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고, 이런데서 빨리 돌이켜야 한다고 생각됐습니다.”    

이상의 고백들은 빈야드운동에 참여하게된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단순히 더 큰 교회성장을 위한 도구로 제 3의물결이 말하는 기사와 이적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않고 보다 근본적으로 저들자신의 목회상황에 대한 새로운 좌표설정에 목말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응급한 외침의 발로라고 본다. 교회를 개척하거나 목회일선에 있는 목회자들이 체감하는 전도와 교회성장의 어려움과 압박감은 실로 엄청나다.

1992년도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한 한국교회의 사실상 감소추세는 대책없이 늘어나는 신학교 졸업생의 배출과 더불어서 교회성장을 위한 목회자들의 노력을 가히 필사적으로 만들었고 이와같은 몸부림속에서 짙은 좌절감과 패배의식 또는 상실감속에서 목회의 현상유지조차 힘들어 하는 목회자의 자기 정체의식에 대한 강한 위기를 가져왔다. 이와같은 때에 기존의 신학적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기존의 모든 형식과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엎는 엄청난 변화를 제시하는 빈야드운동은 분명히 오순절운동이나 은사운동에는 소극적이었던 한국교회의 보수적인 목회자들에게 새로운 탈출구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라 사료된다.

사실상 한국교회의 모든 목회자는 “교회성장‘이라는 압박감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장을 위해서라면 물, 불을 가리지 않으려 한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시행착오를 하고 또 좌절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런점에서 본 발표자는 빈야드운동이 한국교회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보다는(현실적으로 성장보다는 대부분의 교회가 오히려 이 운동에 참여함으로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목회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욱 심각한 이유를 주시해야 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미국교회들이 빈야드운동에 참여함으로 성장을 이루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국교회는 빈야드운동을 통해 교인의 숫자는 감소하고 목회자가 갱신되는 영성운동으로 토착화되는 감을 목도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와같은 목회자들의 목회상황적 방황은 존 윔버의 목회상황적 고뇌와 상당히 유사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윔버에 따르면, 그가 1977년에 요바 린다 갈보리채플을 개척한 후 10개월간을 누가복음에 나오는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을 설교하면서 병든사람을 앞으로 불러내어 그들의 치유를 위해서 기도했으나 단 한사람도 치유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치유에 관한 책을 읽고 교인들을 훈련시키고 무장시키는 방법을 배웠지만, 아무런 결실없이 한주간 한주간이 흘러가는 동안 점점 실망의 늪으로 빠져들었고 마침내 화가치밀어 올라 성경을 덮으며 “치유에 관한 설교라면 이제는 지극지긋하다”라고 말하였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의 말을 선포하든지 아니면 집어치우도록 하라--- 너의 체험이 아니라 나의 말을 설교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 후에 병이 심한 한 여자교인을 위해 기도했을 때 즉시 치유되었다고 한다. 윔버는 그동안의 실패가 그를 교만과 자만심으로부터 깨끗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었으며, 이 일을 통해 “우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분의 주권적인 자비에 의지하는 것 뿐이며 실제로 치유를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라는 목회상황적인 고백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어쨋든 교회를 성장시켜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목회하다 보니 설교도 변질되고 사역도 변질되더라”는 교회성장신드롬속에서 갈등하는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의 영적회복과 순수함의 재발견, 그리고 이로 말미암는 살아있는 믿음의 체험과 삶에서의 능력추구가 오늘날 한국목회자들이 빈야드운동을 통해서 얻고자하는 SOS신호임을 분별하고 저들에게 올바른 목회철학과 비젼을 제시하는 일이 저들을 비판하거나 정죄하는 일에 앞서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인 것이다.

본론: 빈야드운동의 목회상황적 특징

A. 거룩한 무질서

빈야드운동에 관한 연구로 한국목회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민병길목사에 따르면, 빈야드운동은 무엇보다도 모든성도들이 그들의 신앙과 사역의 초점을 하나님께만 맞추고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에 맡긴다는 점을 든다. 즉 기존해 있는 종교적 모든 형식과 전통을 벗어버리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르게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태도는 특별히 예배의식의 변화로 특징 되어진다. 빈야드교회의 예배에는 주보가 없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시작시간은 있으나 끝나는 시간이 없다. 왜냐하면 예배를 예배순서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와 역사에 맞추기 때문이다. 성가대 역시 기존교회와 같은 형태의 구성은 없고 7-8명의 전문 찬양인도자가 기타아, 키보드, 드럼 등의 악기를 가지고 회중앞에서 찬양을 이끈다.

예배드리는 모습도, 복장도 성령님의 인도와 역사가 체험 되는대로 자유스럽다. 모든 교인들과 예배순서자들의 복장은 한결같이 티셔츠에 블루진차림의 복장이다. 찬양은 약 30여분간 율동과 온갖종류의 제스쳐와 함께 드려지고 역시 케쥬얼복장의 목사가 나와서 광고한 후에 헌금순서가 있다. 헌금순서 후에는 15분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1시간이 넘는 설교가 있고, 설교 후에는 10여명씩 그룹을 지어서 그 중에 한사람이 앞에 있는 테이블에 있는 빵과 포도즙을 가져와 조금씩 떼어서 큰 컵 하나에 담긴 포도즙에 찍어 먹는다.

이와같은 기존의 종교적 형식으로 부터의 탈피는 예배중에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은사들이 나타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과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이 회복과 기쁨과 치유를 맛보게 해야 된다는 예배갱신적 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방선기의 지적과 같이 “전통적인 예배형식을 탈피한 자유스러움 자체가 또 하나의 틀이 될 수 있다는 점, 그래서 또 하나의 획일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될 것”이다. 특별히 민병길의 말과같이 “의무, 책임, 제도, 정통, 율법의 구속이 아니라 자유함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법을 지키므로 질서를 유지합니다. 법은 싫어도 지켜야 질서가 유지됩니다.

그러나 성령은 사랑이십니다. 성령이 거하시는 곳에는 사랑이 역사합니다. 사랑이 역사하는 곳에는 법이 필요없습니다. 주의 영이 거하는 곳에는 질서가 저절로 잘 지켜지고 자유함이 있습니다”라는 주장은  자연스럽게 초자연적인(Naturally Supernatural)이라는 빈야드의 신조(Motto)를 대변한 것인데, 이 말은 자유함이 질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령안에서의 법(질서)이 자유를 이룬다는 순서상의 혼돈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와같은 무질서한 자유함 속에서의 질서를 주장하는 이들의 출발점(Starting Point)은 저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성경에서 명백히 가르치고 있는 것들(Text)”이라기 보다는 저들의 목회상황속에서 자연스럽게 수립된 목회철학(Context)으로서 기존의 종교적 형식주의를 비판하는 또 하나의 무질서한 종교적 형식주의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본 발표자는 빈야드운동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탈 질서주의적 태도(탈 법주의)는 이 운동의 지도자인 존 윔버의 신학적 성장배경인 퀘이커교의 영향과 이 운동의 발생지인 남부 켈리포니아의 문화적, 기후적 영향에 의한 상황적산물임을 지적하고 싶다. 특별히 빈야드교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교인들은 제 2차세계대전 이후에 출생한 베이비부머들(Baby Boomers, 1946-1964년 사이에 출생)인데,  Robert Redman에 의하면 그들은 뿌리없음, 외로움, 자기성취, 초자연주의, 종교성, 세계주의, 그리고 전체적 통일성을 추구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한주간 동안 직장에서 정장을 하고 시달렸는데 교회가는날 좀더 편하게 갈 수 없겠는가 하면서 전통적으로 나들이 옷으로 인정되던 주일정장을 벗어버리고 진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교회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런점에서 빈야드의 종교적 형식으로 부터의 탈피는 그 자체가 상황의 산물이지 모든 상황을 초월한 절대적 대안이 결코 될 수 없다. 그런데 빈야드세미나에 다녀온 목회자들 중에는 성급하게 예배스타일을 빈야드화함으로 교회가 시험에 들게 되고 교인들이 떠나게 되는 부작용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예배형식은 비성경적이고 반성령적이며 빈야드의 예배형태를 도입해야만 성령의 역사하심을 체험하리라고 고수하는 것도 본문과 상황의 상관관계를 혼돈한 가운데 상황을 위해 본문을 이데올로기화시키는 위험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문화와 국민의 성향의 차이라는 문화충격등이 고려된 채 올바른 예배갱신을 위한 참조점(Reference)으로 빈야드와 한국교회가 서로의 예배양식을 연구한다면 피차에 유익이 있을 것이다.

B. 하나님나라의 말씀 (능력사역)

존 윔버는 자신의 빈야드식 목회에 결정적인 신학적 동기를 부여한 사람으로 죠지 래드를 드는데, 그의 하나님나라의 현재성(Already)과 미래성 개념(Not Yet)은 빈야드운동의 중요한 원리중 하나인 능력사역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윔버에 따르면, 예수님의 공생애 모든 기간은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시고 하나님의 허락 하에 사탄에게 내어준바 되었던 이세상을 다시 회복하시어 아버지께 바치는 사탄과의 영적싸움의 기간이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탄의 권세를 멸하신 갈보리와 부활의 사건 이후에 땅끝까지 이르러 하나님나라를 회복하는 구원의 소식을 교회에 위임하셨으니, 빈야드교회는 예수의 이름과 권세로 사탄을 멸하고 모든 문화와 족속에게 하나님나라를 회복하도록 사역할 비젼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빈야드가 추구하는 모든 것들은, 예를들면, 성결, 기도, 찬송, 봉사, 전도, 형제우애, 가정생활, 사회생활등의 모든 것이 하나님 나라와 의에 해당되는 본질적인 것으로 이것을 신학적으로 정리한 것이 바로 능력사역이다.

민병길은 이 능력사역이 인간구원과 사회구원과 교회부흥에 멈출 수 없고 천국을 이루는데 맞추어져야 한다고 한다. 그는 능력사역을 천국복음을 가르치는(성경공부) 말씀사역과 구별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병자를 고치는 복음사역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빈야드운동은 기성교회가 천국복음을 가르치기만 하고 실제로 능력사역을 통해 천국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소극적이거나 실패한 것으로 보아 언제 어디서나 말씀사역이 있은 후에는 반드시 그 말씀사역과 관계된 능력사역이 뒤따라야 된다고 주장한다.

이 능력사역은 전적으로 변화시키시고, 치료하시고, 구원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으로, 사람이 병자를 위해 기도할 때에 큰소리를 지르거나 자신의 손에서 무슨 능력이 나가는 것처럼 행동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기도가 능력사역의 방법이 아니요 기도의 통로를 통해서 성령께서 친히 일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능력사역의 결과로 때로는 병을 고치거나, 방언을 하거나, 넘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빈야드에서는 이것을 목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이런 역사가 그 사람의 구원과 인격변화를 이루고 심령속에 천국을 이루는 주님의 제자로 세움을 받는 것이라고 한다. 윔버에 따르면,

“하나님의 은사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이땅에서 일하신다는 증거이다. 하나님의 은사들은 성령님의 권능을 입히운 증거이며, 이 성령님의 능력주심이 우리를 하나님의 종으로 준비시킴이시다. 이 은사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위해(고전12:7) 하나님으로부터 부음받은 것이니 신자가 은사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때 특별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이와같은 윔버의 은사에 관한 견해는 흔히 은사를 소유(Possession)개념으로 이해해서 마치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 주는듯한 착각을 통해 교만에 빠지기 쉬운 함정을 벗어나게 하며, 겸손히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과정을 통해 그 자신이 주님의 제자로 세움을 받게 된다는 유익이 있다. 그러나 빈야드교회가 출판한 책자에서 그들이 주장하는 바와같이 “병고치는 은사가 행하여졌던 862건 중에서 32%(279건)는 많은 고침을 받았고, 26%(222건)는 어느정도 고침을 받았고 나머지 44%(366건)은 전혀 고침을 받지 못하였다”는 기록은 은사가 소유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때 특별한 목적을 위해 주어짐으로 어쩔 수 없다는 겸손의 표는 될지 모르지만, 성경은 진정한 의미의 병고치는 은사가 행하여 질 때 완전히 병에서 놓임받았음을 증거하고 있음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조대준교수의 지적과같이 빈야드교회는 자신들이 내세운 치료율을 돌아보면서 현대시대가 예수님과 사도시대와 같은 기사와 이적의 시대라는 주장을 점검해야 할 것이다. 


C. 확장된 목회개념(만인 제사장설)

빈야드교회가 일반교회와 표면적으로 다른점은 교역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뚜렷이 없다는 점과 교회와 교단의 조직에 강조점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목회자의 설교기능을 넓은 의미에서의 예언으로 보아서 목회자의 말씀사역을 가장 중요한 목회사역으로 이해해 왔다. 그런데 빈야드교회에서는 예언의 은사를 좁은의미에서 “구체적인 상황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아 일상언어로 전달하는 능력”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전통적인 목회사역의 목회자의 설교  중심적인 관점에서 탈피해 평신도들도 목회사역에 참여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이들이 말하는 예언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하여 보조적인 역할밖에 할 수 없으며, 교회의 지도자들의 권위 아래에 있다.

빈야드에서 예언대신 사용하는 용어인 지식의 말은 일반교회에서 예언의 은사로 이해하는 것인데 이 예언의 은사는 기록된 성경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미 정경이 완결된 후에는 성경의 말씀에 버금가는 계시의 은사가 있을 수 없으므로  예언이라는 표현보다는 지식의 말씀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지식의 말은 신자들이 서로 모여서 기도하거나 교제할 때 혹은 개별적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예언의 내용은 지금까지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었던 환경과 사실에 대한 지식을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웨인 구르뎀이나 잭 데어교수도 “하나님은 성경에서 발견되지 않는 말을 크리스챤에게 인도하기 위해 그에게 줄 수 있다”고 이 견해를 동조한다.

물론 구원으로 인도하는 일을 위하여 성경의 말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는 예언의 말이 있을 수 있음을 우리는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언의 속성이 단순히 성령과 더불어가 아니라 “성경을 통하여, 성령과 더불어 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은 결코 성경과 상관없음이 아니라 성경의 지시를 따라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빈야드의 느슨한 예언관은 본문과 상황의 관계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상황을 위해 본문을 이데올로기화할 수 있는 위험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지식의 은사는 말씀사역 이후에 계속되는 능력사역을 통해서 구체화된다. 빈야드 사랑의 샘 편지의 기록에 따르면, 빈야드교회에서는 매시간 그날 설교의 주제로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 예를 들자면, “중독”의 주제로 설교를 하였으면 중독의 실예를 구체적으로 들면서 그에 대한 대상자를 초청한다. 그리고 확장된 사역팀원들(Large Ministry Team)이 그들을 위해 중독에서 치유받기를 간구하며 선포한다. 이 시간 평신도 지도자들을 통하여 갖가지 신유의 역사가 이루어 진다.

종합적 평가
A. 부정적인 면

1. 느슨한 교리: 조대준의 지적과 같이 빈야드는 법보다도 자유를 강조한 나머지 신앙을 표현하는 매우 중요한 교리조차도 단순하고 간단하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같은 결과로 이들의 교리가 표면상으로는 보수신학과 다를바 없이 보이나 사실은 중대한 오류와 오해를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이것은 아마도 존 윔버의 신앙성장 배경이 경건주의나 신비주의신학의 주관주의적 영향하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1994년 9/10월의 보고서의 따르면, 윔버의 빈야드교회연합은 카나다의 토론토 에어포트빈야드교회가 성령의 역사로 여겨져 온 “동물의 행동들”을 성경에 나오는 사자나 비둘기같은 비유들로 정당화 할 수 없음을 경고하는 이사회의 결의를 하였고, 요나단 에드워즈의 경우를 예로들어서 “이런문제를 해결함에 성경을 최후의 권위로 순종하는 것”이 옳음을 재천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어포트교회가 성경외적이고 색다른 현상들이 일어날 때 그것을 신학화함으로 결국은 결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이 결별의 단계에까지 이르렀지만은 성경이 명확히 금하기 전에는 특정한 현상을 거부하거나 금지하는 총괄적 선언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결의하고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현상은 개별적으로 분별되어야 한다고 발표함으로 빈야드운동의 교리적인 느슨함이 또다른 갈등의 불씨를 계속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병철에 의하면, 빈야드와 제3의 물결에 종사하는 교회지도자들은 “우리는 이렇게 한다”하고 끝나지 “우리가 이렇게 하니 당신네들도 이렇게 하시오”하는 것이 절대 아니라고 한다. 언뜻 들으면 상당히 신사적인 것 같으나, “예면 예, 아니면 아니오”해야될 기독교인의 책임에 비추어 볼 때 빈야드운동의 하나님 말씀(때로는 교리적인)에 대한 느슨함은 경계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2. 은사주의적인 영적 교만의 위험: 1994년 빈야드교회연합 이사회는 부정적으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에 대한 평가와 지침서에서 빈야드운동의 흐름중에 지나치게 능력, 기사와 이적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추구하는 것을 경고하였다. 빈야드운동이 올바른 방향성을 잃지 않으려면, 단지 능력이 아닌 “능력전도”에, 단지 기사와 이적이 아닌 “기사와 이적 그리고 교회성장”에 관심을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서창원에 따르면, 능력목회는 목회자 자신의 경건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교회부흥의 측면에서 볼 때 언제나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한국교회가 침체되어 있는 국면을 돌파해 보려는 시도로 목회자들이 앞다투어 아나하임이나 토론토의 빈야드교회에 다녀오고 어떤 목회자는 토론토에 가서 비로소 복음이 무엇인지 알았다고 고백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상, 서창원의 지적과 같이,  오늘날까지 저가 참 복음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목회를 해왔기 때문에 능력목회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복음은 모든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복음에 충실할 때만이 능력있는 목회가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내가 하니까 목회가 힘든 것이다. 오직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하는 곳에 복음의 능력이 나타난다.

3. 세상과 분리된 초월적인 삶의 자세: 이재범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영적운동은 사회봉사를 결여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옴에도 빈야드교회는 비교적 진지하게 사회적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마약, 폭음, 약물중독, 구타사건들, 가정파탄 등으로 삶의 방향을 잃은 불우이웃들에게 빈야드교회는 돈으로 또는 삶으로 하나님의 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야드모임에서 제기된 여러 가지 현상에 관한 질문들에 답하는 존 윔버의 글에서 빈야드운동이 세상과 분리된 초월적인 삶의 자세로 떨어져나갈 수 있는 위험을 직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윔버에 의하면,

“나는 이 성령의 ‘새롭게 하고’ ‘능력있게 역사하는 역사’를 교회의 신약적인 일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다시말하면, 새롭게 된 후에 그들이 그들의 새롭게 됨을 건전하고 성서적인 상황에서 나타내며 일할 수 있도록 길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즉 복음 전파하는 가운데에 중보하고 그들의 믿음을 나누는 일을 하기를 권면해야 한다. 그들은 주린자들을 먹이고, 가난한 자들 과부, 이혼한 자 등을 돕는 일을 하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가 이 에너지를 ”나를축복“이라는 초점에서 ”이웃을 축복“이라는 초점으로 변화시킬 때, 우리가 진정 새롭게 하는 기름부음을 성서적이고 적절한 방법으로 활용하는 것이라 믿는다.”  

 윔버의 지적과 같이 빈야드운동의 놀라운 영적에너지가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으로 방향되어지지 않으면 세상주관자와의 영적싸움이 아닌 원수 앞에서의 자중지난이 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B. 긍정적인 면

1.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유기체적 지체의식: 빈야드운동은 모든성도들이 성직자이건 평신도이건 간에 모두가 하나이상의 은사를 가지고 교회를 섬기며 삶 속에서 하나님나라의 일을 이룬다고 한다. 그러므로 목회를 이해하되 협의의 개념인 목사가 평신도를 돌보는 형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머리로한 모든 성도들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사역(God's Ministry)에 동참한다는 폭넓은 의미의 전투적인 최전방의 신앙생활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신앙생활의 생동성을 가져온다. 빈야드운동은 과연 얼마나 많은 일반 기성교회의 교인들이 자신들이 받은 은사를 알고 세상을 위한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에 동참하는지 반성케 한다.

2. 풍성한 삶에의 초대: 빈야드운동은 신앙의 정서적인 면과 에배에의 동참을 좀더 풍성히 누리도록 초청한다. 전통적인 교회의 목사 한사람이 선포하는 설교보다 드라마, 춤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의 예술성은 처음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을 거부감없이 쉽게 교회에 적응토록 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메시지도 위안과 축복, 교훈 및 좋은 말로의 권유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와같은 예배갱신의 모습이 하나님 말씀 중심의 에배에서 회중의 심령에 어떤 감흥을 일으키는 인본주의적인 경향으로 바뀐다면 우리 인생들이 창조주 하나님께 맞추려고 하지 않고 지존하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에게 맞추어야되는 기독교가 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3. 기도를 통한 능력과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 말씀을 이론적으로 아는것에 머물지 않고 그 말씀의 능력을 기도생활을 통해 구체적으로 체험하므로 신앙생활에 힘이 있고 간증이 있게 된다. 

결론

빈야드 토론토 축복의 현장을 취재한 안환균에 의하면,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 그것도 특별히 보수적인 장로교 목사들이, 빈야드운동의 신드롬에 깊이 빠지는 원인을 한국장로교가 윤리적이고 점진적인 삶의 부분만을 지나치게 이성적으로 강조하여 성령의 역사와 은사로 말미암는 능력을 제한했고 자연히 설교도 지식적이고 논리적인 교훈의 수준에 머물고 찬양을 포함한 예배의 형식도 고루하고 형식적이었음을 지적한다.

문제는 우리의 분석과 평가가 단순히 빈야드운동의 열풍에 사로잡힌 자들의 현장적인 문제만을 지적하고 평가하는 것에 머문다면, 제 2, 제 3의 빈야드열풍은 아나하임, 토론토뿐 아니라 그곳이 어느곳이든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새로운 신드롬을 만들어 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신드롬이 왜 우리 가운데 나타나게 되었는가하는 우리의 목회상황적 진단과 평가와 계획이다. 한국교회의 열심있고 헌신적인 목회자들이 그 쫓기는 목회일정을 쪼개어서 미국행, 또는 카나다행 비행기를 타야만 하는 그 처절한 상황을 단순히 신학적인 몇페이지의 이론적인 글로 평가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오늘날 우리의 상황 속에서(Context)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Text)을 듣는 귀와 열린 눈이 필요하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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