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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야드 운동에 대한 예장통합 교단 연구 보고서
1996년 11월 01일 (금)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예장 통합측은 이번 81회 총회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니 이를 도입하거나 참여하는 것을 삼가야 할 것'이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 `빈야드 운동에 대한 보고서'를 원안대로 채택, 결의했다. 예장 합동측도 이번 총회에서 빈야드 운동에 대한 신학적 연구를 1년간 진행하여 발표할 것을 결의하는 등 이 운동에 대한 교단적 입장이 정리되고 있는 상황이다. 목회현장에서의 혼란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어 통합측 보고서를 그대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1. 빈야드 운동이란?

최근에 `제3의 물결' `빈야드 운동' 혹은 `토론토 축복'이라 불리워지는 운동 등이 있는데, 그것들이 `빈야드'라고 불리우는 이유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애나하임(Anaheim, California)에 있는 `빈야드교회(Vineyard Christian Fellowship)'를 이끄는 죤 윔버(John Wimber)를 비롯해서 그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형성한  단체가 `빈야드 교회 연합(Association of Vineyard Churches)'으로서 이제는 일종의  교단처럼 되었기 때문이고, `토론토 축복'이라 함은 죤 아노트(John Arnott)가 개척한 `토론토 공항 교회(Toronto Airport Vineyard)'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하여 언론이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빈야드 운동에서는 성령의 능력을 특히 강조하는 권능주의와 성령체험의 감정적 요소를 강조하는 감정주의의 두 관점이 강조되는데, 능력전도를 주장하는 죤 윔버의 경우는 권능주의적인 측면이 강하고, 감정적 경험을 중시하는 죤 아노트는 감정주의적인 면이 강하다고 하겠다.

죤 윔버는 권능(혹은 능력)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그 능력이란 초자연적인 능력이요, 초자연적인 성령의 은사로서 병자를 치유한다든지, 귀신을 내어쫓는다든지, 예언을 한다든지, 혹은 지식의 말씀이라고 하는 은사를 사용해서 전도를 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토론토의 죤 아노트는 신앙 체험에 있어서 감정을 대단히 중요시 한다. 그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다분히 감정적으로 해석한다. 그가 로멘스(romance), 감정(emotion), 느낌(feeling)이란 단어들을 많이 사용하는 것과(John Amott, `The Father's Blessing' Orlando, Florida:Creation House, 1995, pp.16, 21, 23, 25, 59, 89.), “하나님은 너와 더불어 깊고 감정적이며 의미 있는 관계를 가지고 싶어하시며, 그는 또한 네가 그런 관계를 다른 사람들과 갖게 되기를 원하신다??(The Father's Blessing p.14)라고 말하는 것과, “우리는 감정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감정적으로 사랑을 받을 필요가 있다. 감정은 우리의 창조주로부터 온다. 하나님은 감정을 가지고 계신다. 그는 감정적이시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 그는 우리를 감정적으로 사랑하기 원하신다. 그는 우리가 그를 온 마음과 생명과 뜻을 다해 감정적으로 사랑하기를 원하신다.”(The Father's Blessing p.26)라는 말이 이를 입증한다.

현재는 죤 윔버(John Wimber)가 이끄는 `빈야드 교회(Vineyard Christian Fellowship)'를 중심한 빈야드 운동(Vineyard Movement)과 죤 아노트(John Arnott)가 이끄는 `토론토 공항 교회(Toronto Airport Vineyard)'를 중심한 토론토 축복(Toronto Blessing)은 분리되었다.

2. 빈야드 운동의 문제점들

(가) 성령과 그 사역에 대한 이해가 치우쳐 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시는 것은 다양하다. 성령의 은사는 기적적인 것도 있으나, 기적적인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것도 있다. 또한 그런 은사들은 각 사람이 모두 다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사명과 필요에 따라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빈야드 운동에서는 초자연적인 은사들과 능력, 그리고 신비 현상들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 특정한 은사들이나, 격렬한 감정의 분출 현상이나 이적들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성령의 역사의 다른 중요한 측면들(즉 말씀, 사랑의 삶, 공동체  안에서의 교제, 사회에 대한 책임적 행위에 관련된 성령의 역사)이 간과되거나 약화될 수 있다. 웬일인지 최근에 윔버는 이 점에 있어서 나름대로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지만 사람들에게 그가 미친 영향은 결국 초자연적 능력을 매우 강조하여 열광주의에 빠지게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나) 거룩한 웃음, 떨림, 쓰러짐, 짐승 소리 등의 현상은 비성경적인 현상들이다.
빈야드 운동이 사람들의 혐오감을 유발하는 가장 두드러진 점은 그들 가운데서 많이 일어나는 떨림, 쓰러짐, 거룩한 웃음 등의 현상 때문이다. 또한 이런 현상들이 실질적으로 이 운동의 특성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그들의 집회의 분위기는 그런 현상들을 암시적으로 격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짐승 소리는 토론토 교회의 현상으로서 죤 아노트가 그런 현상들과 특히 짐승 소리를 정당화하는 성경적인 증거로 예수님을 `유다 지파의 사자'라고 묘사한 계시록 5:5 이라든지 `하나님이 사자같이 부르짖으신다'는 아모스 3:8 등을 인용하여 정당화하고 있는데(The Father's Blessing pp.172~173), 이는 억지스런 해석으로 위의 본문들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과 은유로 묘사한 것이지 실제적인 짐승 소리나 괴성을 정당화하는 말씀은 아니다.

또한 은혜를 체험하고 쓰러지는 현상은 가장 두드러진 현상으로 이들은 쓰러짐을 정당화하기 위해, 에스겔 1:28과 다니엘 8:17을 근거로 에스겔과 다니엘의 쓰러짐을 말한다. 그러나 에스겔이나 다니엘은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 스스로 앞으로 부복한 것이지 빈야드의 경우와 같이 은혜의 체험으로 뒤로 넘어진 것이 아닌 것을 볼 때, 전혀 성경적으로 합리화할 수 없는 현상에 속한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러 온 군사들이 넘어진 것(요 18:6), 무덤을 지키던 파수꾼이 넘어진 것(마 28:4) 등을 열거하지만(John Wimber, Kevin Springer, 능력치유 이재범 역, 서울:도서출판 나단, 1991, p.359), 성경의 그러한 예들은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에 넘어진 것이 아니므로 성경적 근거가 결코 되지 못한다.

그리고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쓰러진 것이라든지(행 9:4), 요한이 밧모 섬에서 쓰러진 일(계 1:17) 등은 주님 자신의 직접적인 출현에 직면한 것이었다. 거룩한 웃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브라함이나 사라의 웃음(창 17:17, 21:6)과 같은 것을 예로 들지만(능력치유 p.362), 아브라함이나 사라의 웃음은 어떤 주체할 수 없는 감정 때문에 광적으로 웃는 웃음이 아니다.

또한, 떠는 현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사야 66:5이나 예레미야 5:22, 마가복음 5:33, 누가복음 8:47, 사도행전 16:29, 고린도전서2:3, 고린도후서 7:15, 빌립보서 2:12, 히브리서 12:21 등을 인용하지만(능력치유 p.356), 거기에 나타난 것들은 구체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혹은 어떤 두려운 사건이 일어난 상황에서, 두려워서 떠는 의식적이며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빈야드 운동에서 처럼 주체할 수 없는 주관적이며 잘못된 신비적인 감정이 아니다.

(다) 위와 같은 현상들은 격렬한 종교적 감정의 표현으로 그런 현상들 자체가 강조되고 격려되는 분위기는 바람직하지 않다.

성령의 은혜를 경험하고 감동된 사람들이 격렬한 감정 속에서 그러한 현상이 수반되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현상들이 격려되고 장려되어 은혜 받은 표적으로 정형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위험스럽다. 성령의 은사들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며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데 소용되는 성령의 선물이며 능력이다. 은사들은 구체적인 유익, 특히 타자를 위한 유익을 가져온다(고린도전서 14장, 에베소서 4:11).

빈야드 지도자들은 간혹 그런 현상들이 일어나느냐 아니냐는 관건이 아니라고 스스로 말하기도 한다. 그들에 의하면 문제는 성령의 은혜로 삶이 갱신되고, 새롭고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며, 새로운 사역의 능력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The Father's  Blessing, p.166; 능력치유 p.358).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각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때는 무언가 그런 일이 일어날 때까지 오랫 동안 집중적으로 기도(그들은 이런 것을 soaking prayer라고 부른다)를 하는 경향을 보인다(The Father's Blessing p.96).

그럴 경우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를 통제하지 말고 온전히 수동적이 되도록 하기 위해 심지어 방언도 하지 말도록 권한다고 한다(The Father's Blessing). 그런 경향은 암암리에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현상 자체를 중요시하고 사모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 그렇게 되면 그런 체험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에 어떤 차별이 생기게 되고, 특정 체험이 표준화되며, 오히려 성령의 포괄적인 역사를 제한하게 된다. 이 점에 관하여는 토론토 측이 더욱 문제가 된다.

특히, 절제하지 못하여 덕을 세우지 못하게 된다. 그러한 극단적인 감정의 분출 현상이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경우에라도, 그런 것은 드러내고 공개하고 격려할 문제가 아니다. 그런 현상들은 사람들에게 의구심과 혐오감을 일으키기 쉽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방언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공개석상에서 방언하는 것에 대하여는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배려를 하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한 것에 주의해야 한다.

그런 현상들을 체험한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어떤 유익을 경험했을지라도, 그것은 다른 이들에게 특히 불신자들에게, 덕이 되지 않고, 오히려 혐오감을 주게 될 우려가 있다. 그런데 빈야드 운동에서는, 특히 토론토 측에서는 그런  현상을 드러내고, 심지어 집회시 강단에서 간증할 때에도 나타나도록 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비디오 테이프 `Catch the Fire: God's Love, Bottom Line' by John Arnott, Toronto Airport Vineyard).

(라) 예배를 무질서하게 드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찬양과 예배의 갱신은 그들이 강조하는 또 하나의 요점이기도 하다. 그들은 형식에 얽매어 역동성을 상실한 예배를 자유롭고 무형식적인 예배를 통해 갱신하고자 한다. 무형식적인 예배는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를 따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어떤 면에서 항상 똑 같고 형식적인 예배에 식상한 사람들에게 그것은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형식 속에서도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또한, 빈야드가 아무리 무형식이라고 해도 거기에 이미 나름대로의 어떤 형식이 자리잡게 된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긴 찬송 시간, 설교, 각 사람을 위한 기도 시간 등은 이미 하나의 형식이다. 사실상, 윔버 자신도 어느 정도 질서와 조직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기도 하다(Wimber & Springer, 능력전도 pp.57~58).

전통적인 형식들도 많은 경우 그 근원에 있어서 고대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에 근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각 사람이 무질서하게 각각 자기 원하는 식으로 찬송하고, 기도하고 하는 것은 여럿이 모였으되, 각각 자기 문제를 위해 기도할 때에는 문제가 없지만, 예배는 개인만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교류하며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질서가 유지되어야 한다. 예배는 엄숙하고 질서 있게 드리고,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은 따로 기도하는 시간을 마련하면 좋을 것이다.

(마) 수용하는 이들의 신학적 목회적 비성숙성이 더 문제를 확대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많은 목회자들이 빈야드 세미나에 참석하고 돌아와서는 자기 교회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시도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그런 경우 기존 신앙생활의 모습을 고수하려는 이들과의 사이에 마찰과 분열이 야기되고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의 무비판적인 수용은 오히려 교회를 어지럽히게 된다. 본 교단 소속 목회자들과 교인들은 성령님의 여러 가지 놀라운 은사들과 역사를 받아들이고 추구하되, 성경이 가르치시는 바에 따라 건전하고 덕스러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3. 연구결론
빈야드 운동은 성령과 그 사역에 대한 이해가 치우쳐 있고, 거룩한 웃음, 떨림, 쓰러짐, 짐승소리 등을 정당화하기 위한 그들의 성경 해석은 올바르지 않으며 또한 무질서한 예배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므로 본 교단 소속 목회자들과 교인들은 빈야드 형식의 예배를 무분별하게 도입하여 들이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며, 이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삼가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월간<교회와신앙> 199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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