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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과 그것의 근원을 분리해선 안 된다
2012년 03월 05일 (월) 07:54:54 장경애 jka9075@empal.com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중에서
A.W.토저 지음/ 이용복 옮김/ 규장출판사

우리는 선물과 그것의 근원을 분리해서는 안 되며, 선물과 선물을 주신 분을 분리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나는 용서받았다”라고 말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셨다”라고 말해야 한다. “내게는 영생이 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서 내게 영생을 주셨고 그리스도께서 내 삶 속에 계시다”라고 말해야 한다. 요컨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선물을 분리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시든 간에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서 그분 자신을 주시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용서를 받았다면 그것은 용서의 하나님이 그 사람을 만져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용서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어떤 사람이 영생을 얻었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다는 것인데, 여기서 ‘알게 되었다’는 것은 ‘체험하게 되었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선물을 얻었지만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이다. 고상하고 강력하고 활기차고 만족스러운 영적 체험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물을 받고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영적 체험은 좋은 것이 아니다.

아주 좋지 않은 예가 복음서에 나오는데 그것은 주님을 만난 열 명의 나병환자가 치료를 받았지만 그들 중 한 명만이 주님께 감사한 사건이다. 그들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눅 17:14)는 주님 말씀을 듣고 길을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다. 건강이라는 선물을 받은 것이다. 그들 중 아홉 명은 건강이라는 선물에 만족하여 그들의 길을 계속 갔다. 그런데 한 사람은 그 선물을 주신 분을 기억했다. 그의 관심이 선물 자체에서 그 선물을 주신 분으로 옮겨진 것이다. 그는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돌아와 주님께 감사했다. 그때 주님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눅 17:17)라고 말씀하셨다. 다른 아홉 사람은 선물 자체에 만족하는 것으로 끝났다. 오직 한 사람만이 다시 돌아와 선물을 주신 분을 더 잘 알게 되었다.

캠벨 몰간은 언젠가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사람들에게 평안을 전해서는 안 된다.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양심의 평안을 전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오직 생명을 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람들에게 선물을 전할 때 우리는 그 선물을 주시는 분을 반드시 함께 전해야 한다.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이기적인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마치 쇼핑물품 목록처럼 기도제목들을 적어가지고 나아간다. 그리고 그분께 “하나님, 이것도 해주시고, 이것도 해주시고 또 이것도 해주시고 또 이것도 해주세요”라고 간구한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한 가지를 응답해주시면 우리는 응답받은 제목에 줄을 그어 지워버리고 그 다음 제목으로 넘어간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기도는 계속 된다.

이런 현상을 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용당하시는 것 같다고 느끼셔서 매우 섭섭해 하실 것 같다”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친다. 주님께 속량 받은 사람들이 그분보다는 속량에 더 관심을 쏟을 때, 주님께 용서받은 사람들이 그분보다는 용서에 더 마음이 끌릴 때, 주님께 생명을 받은 사람들이 그분보다는 생명에 더 관심을 가질 때 주님은 마음이 무거우실 것이다.

우리의 ‘설교’와 ‘가르침’과 ‘개인적 체험’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다른 것이 아닌 하나님께 관심을 돌려야 한다. 사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표현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표현의 시작이나 중간이나 끝에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넣을 수 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 “하나님께서 임재 해 계시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성령”, “하나님의 메시아”라고 표현할 수 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고, 하나님과 함께 계속되고, 하나님과 함께 끝난다.

사람들은 망원경으로 하늘의 별들을 보지만 그 별들을 만드신 분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다. 다시 말해, 별들을 만드신 하나님과 별들을 완전히 분리해버린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 하늘의 별들을 연구하는 학문을 가리켜 ‘천문학’이라고 말한다. 이 땅의 암석이나 화석, 지하자원 등을 연구하는 것을 ‘지질학’이라고 부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물질이나 극미세 물질 입자의 세계를 연구하는 것을 ‘물리학’이라고 부른다. 오늘날 세상은 자연과 하나님을 분리해버렸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전부였다. 그들이 산을 볼 때 그 산은 하나님의 산이었다. 그들이 나무를 볼 때 나무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손뼉을 쳤다. 비를 볼 때 그들의 눈에는 그 비를 내리신 하나님이 보였다. 그들의 입에서는 불평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비가 온다 할지라도 “참 궂은 날씨군요”라고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비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 안에 계셨다. 누군가 비유를 말한다면 그 비유는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었다. 바위와 돌에 대해 말한다면 그들은 성전 건물에 대해 말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성전은 죽은 돌들로 만들어진 죽은 성전이었다. ‘산 돌’이 이스라엘 민족을 찾아오셨지만 그들은 ‘산 돌’이신 그분으로 성전을 지을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그들에게 버린바 되셨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성전의 살아 있는 모퉁이 머릿돌이 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옛 성전의 돌들 위에 쌓아올려진 또 하나의 돌이 되신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새 성전의 모퉁이 머릿돌이 되셨다. 옛 성전에는 그분이 들어가실 틈이 전혀 없었다. 사실, 그리스도는 미래를 위한 새 성전에서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도록 이미 하나님께서 정하신 모퉁이 머릿돌이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셨다.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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