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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로 예배를 드릴 수 있나요?
문화선교연구원, ‘SNS 시대의 문화목회’ 심포지움
2011년 11월 01일 (화) 23:57:19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주승중 / 장로회신학대학교 예배설교학 교수

먼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한마디로 한다면 예배 중에 트위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예배에 더욱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는 있으나, 트위터 예배는 신학적으로 예배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트위터로 예배드린다는 것은 원칙적으로는 불가한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건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인간의 응답 행위”입니다. 즉 예배는 하나님께서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성육신) 우리를 구원하시는 엄청난 일을 이루셨기에,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은 함께 모여 그 분에게 최상의 가치를 돌리면서 1) 그 사랑과 은혜에 응답하는데, 이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예배학적으로 트위터 예배가 성립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이유는, 여기에는 성육신 신학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육신이란 무엇입니까? 성육신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살고, 호흡하고, 듣고, 보고, 만질 수 있는 육신이 되신 것입니다(요 1:1, 14). 그리고 예배는 그 성육신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응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PC나 스마트폰 화면에서 예배 실황이 중계되고, 그 예배를 보면서 트위터로 예배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트위터 예배는 넓게 보면 사이버예배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각자 집 안의 침실에서, 거실에서 선포된 말씀을 듣고, 찬양을 따라 부르고, 트위터를 통해서 온라인으로 헌금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이버 예배에서 존재하는 것은 오직 마음 혹은 정신뿐입니다. 그리고 육체는 예배 공동체와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이버 공간의 탈육체성, 이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여기에는 자칫 초대교회의 최대 이단이었던 영지주의자들의 포스트모던적 재등장과도 같은 위험성이 있습니다. 2)

그러므로 성육신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십자가의 사건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도들은 반드시 한 공동체로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응답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의미에서 사이버 예배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는 트위터 예배는 예배신학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두 번째, 트위터 예배가 성립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예배의 경축적' 성격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3) 예배는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 대한 경축이며, 또한 천국을 이 땅에서 미리 맛보는 종말론적인 잔치입니다. 신약성경의 초대교회 공동체가 매주 안식 후 첫날(주일)에 함께 모여서 떡을 떼었던 것이 이를 분명히 증거합니다(행 2:42, 46). 즉 기독교 예배의 시초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그것을 함께 기뻐하고 경축하기 위해 제자들이 안식 후 첫날에 함께 모여 말씀을 가르치고(설교), 떡을 떼었던 것(성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모여서 말씀을 듣고, 떡을 떼며, 기도(찬미)하며, 교제하였는데(행 2:42), 이것이 바로 기독교 예배의 본질적인 모습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모여 교제하고 즐거워하는 기쁨의 잔치, 이것이 바로 기독교 예배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트위터 예배를 비롯한 사이버 예배는 근본적으로 이런 점을 충족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모이지 않는데, 어떻게 잔치를 할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보이는 말씀"(Visible Word)인 성찬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요. 초대교회 예배는 말씀의 예전과 성찬의 예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데, 그렇다면 트위터 예배는 성찬을 어떻게 할 것인가요. 이러한 점들을 보면 예배 신학적으로 볼 때 트위터 예배는 진정한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모여 교제하며,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께 응답하고, 말씀과 성찬을 통하여 천국의 풍성함을 맛보는 예배, 즉 '공동의 예배'(Corporate Worship)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일종의 '유사예배'(quasi-worship)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4)

셋째로, 한국교회의 예배 현장과 관련하여 트위터를 통한 예배는 개인주의적인 신앙을 더욱 조장하고, 회중들을 또 다시 앉아서 듣기만 하는 수동적인 '청중'으로 전락시킬 위험성이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5) 한국 개신교회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신앙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사람들이 대형교회를 선호하는 모습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많은 신자들이 익명의 그리스도인이 되어 군중 속에서 조용히 예배만 드리고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더 이상의 희생과 헌신을 꺼려합니다. 이런 경향은 신세대일수록 더합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에게 트위터를 통한 사이버 예배, 내지는 '재택예배'는 매우 매력적일 것입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처리하는 편리함에 익숙한 그들은 예배마저도 그런 식으로 편리하게 드릴 수 있다는 것이 복음으로 들릴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한국의 개신교회는 그동안 설교중심의 예배를 드려왔습니다. 그래서 '예배는 곧 설교를 듣는 것'이라는 등식이 형성되어 왔습니다. 그렇다면 어차피 '설교를 듣는 것이 예배'라면 굳이 예배당까지 나가서 설교를 들을 필요가 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기 쉽습니다. 집의 소파나 침대 위에 앉아서 편안하게 PC나 혹은 스마트폰으로 전송되는 설교를 듣고, 찬송도 하고, 온라인으로 헌금도 한다면 얼마나 편하겠는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결국, 트위터를 사용한 사이버 예배는 앉아서 듣기만 하는 예배, 결과적으로 회중을 '청중'으로 전락시키는 예배, 개인적인 은혜만을 강조하는 개인주의적인 신앙 형태, 그리고 더 이상의 희생과 헌신을 꺼리며, 편리만을 추구하는 병든 모습의 신자들을 더욱 양성하게 될 위험성이 그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결코 권장할 수 있는 예배가 아닙니다.

그러나 트위터 예배는 이러한 문제점과 한계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예배와 목회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가능성과 긍정적인 면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다 피부로 느끼고 경험하고 있는 대로 사이버 공간은 이미 포스트모던 사회의 문화이며, 포스트모던인들의 주거환경 그 자체가 되어 버렸습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시작된 이러한 문화의 변혁은 빛의 속도로 진화하고 있고,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이런 소셜 네트워크 시대에 교회는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트위터를 통한 예배와 목회는 어떠한 가능성과 활용방안이 있을 수 있을까요.

첫째, 트위터를 이용한 사이버 예배는 환자나 혹은 어떤 피하지 못할 상황(해외 출장 등) 때문에 예배당에 나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예배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들이 비록 교회 공동체에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사이버 공간에서나마 공동체의 예배에 참여함으로써 개인적인 영성을 유지하고 은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면에서 트위터를 사용한 예배는 그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보여집니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목양적인 차원에서의 가능성이며, 원칙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둘째, 목회자들은 트위터를 사용하여 신도들이 예배에 더욱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목회적 장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배 인도자 혹은 목회자들은 팔로워들(성도들)에게 예배 순서를 미리 나누어 줄 수 있고, 설교의 본문과 핵심 메시지를 예고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하면 팔로워들은 예배에 대한 이런 정보를 미리 알게 되어, 본문을 미리 묵상할 수 있고, 또한 설교자를 위한 기도도 구체적으로 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팔로워들은 예배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예배에 더욱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설교 도중에 트위터를 통해서 자신들의 의견을 다른 성도들에게 보낸다든지, 또 예배 실시간 중에 회중들의 트위터를 통한 반응을 커다란 스크린에 띄워 회중들이 보게 하는 것은 성도들이 예배에 집중하는데 심각한 방해가 되므로 그런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트위터를 통한 예배는 선교를 위한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교회에서 예배의 실황을 실시간으로 전송할 때, 각 개인이 스마트폰으로 SNS에서 실시간으로 방송을 송출할 수 있는데, 이는 은혜 받은 내용을 SNS를 통해서 수많은 네트워크상의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이런 경우에는 트위터를 사용한 예배가 많은 영혼들의 구원의 통로가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넷째, 트위터를 통한 목회는 교회 공동체의 "공동의 예배"라는 차원에서 보다는 "개인적 경건의 차원"에서 매우 유익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배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내용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 조병호 목사는 140자의 성경 이야기를 통해서 그의 팔로워들에게 성경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데, 이는 바쁜 일상에 농축된 성경의 메시지를 전하므로, 그들의 경건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또 한 목회자는 매일 새벽기도회 때마다 트위터를 통해 교인들의 기도제목을 신청받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도한 후에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 있을 경우 트위터를 통해 상대방에게 피드백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이런 사역은 목회자와 성도들 간의 관계와 의사소통에도 매우 긍정적으로 영향을 줍니다.

마지막으로 이 역시 예배에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지만, 트위터를 통한 목회는 기독교 교육과 목회상담을 위하여 매우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목회자들이 교회에서 새신자 교육이나 구역장 교육, 제작 교육 등을 할 때, 트위터가 매우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고, 교인들은 트위터를 통해서 언제든지 목회자와 자신들의 고민과 문제들을 상담하고 대화하는 가운데 도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회자는 자살하려던 친구와 트위터로 연결되어 함께 메시지를 주고받는 동안 상대가 마음을 돌이킨 일도 있음을 증언합니다.

어떤 이는 이 시대를 가리켜 "문명의 전환"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문명 전환의 핵심에 소셜 네트워크가 지배하는 문화적 상황이 있습니다. 이런 소셜 네트워크 시대의 목회 패러다임은 당연히 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변해서는 안 되는 영역들도 있습니다. 그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예배의 영역입니다. 트위터 예배는 앞서 지적한대로 많은 신학적인 문제가 있으므로, 결코 정상적인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트위터 예배라는 말 자체를 사용하는 것에도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목양적인 차원에서 바라볼 때 거기에는 여러 가지 가능성과 활용할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앞으로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같은 SNS를 통하여 예배, 교육, 선교, 상당 등의 영역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들을 계속해서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미주
1) 예배를 뜻하는 Worship이라는 말은 ‘가치’(worth)와 ‘신분’(ship)이라는 말의 합성어로, 상대방에게 가치와 존중을 돌린다는 뜻이다. 즉 예배란 하나님께만 최상의 가치를 돌리는 것을 말한다.
2) 영지주의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하는 초대교회 최대의 이단사상이었다. 이는 헬라의 이분법적 철학에 의하여 인간의 육체는 천하고 더러운 것이며, 오직 영혼만이 선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결국 그들 가운데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거부하는 가현설(Docetism)을 주장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선하시고 영적인 존재인 하나님께서 어떻게 더러운 육신을 입을 수 있는가라고 주장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로 나타나신 것이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3) 조기연, <한국교회와 예배갱신>, 서울: 대한기독서회, 2004, 111.
4) 위의 책, 115~116
5) 위의 책, 118~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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