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 , 신천지
전체기사 | 상담제보 | 후원신청 | 배너달기
> 뉴스 > 문화 | 감동이 있는 한대목
       
죄는 인간이 겪는 현실이다
2011년 10월 13일 (목) 08:02:36 장경애 jka9075@empal.com

<기독교의 기본 진리> 중에서
존 스토트 지음/ 황을호 옮김/ 생명의말씀사 펴냄


사실 죄는 사람들이 달가워하지 않는 주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지나치게 죄를 되뇌인다고 종종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현실을 중시하게 때문에 그렇게 한다. 죄는 성직자들이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인간이 겪는 현실이다.

지난 수백 년의 역사를 통해 사람들은 악의 문제가 사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19세기에는 자유적 낙관주의가 번창했다. 그때는 대부분 인간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선하며 악은 무지와 나쁜 환경 때문에 생기므로, 교육과 사회 개혁을 통해 행복하고 복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환상은 역사라는 엄연한 사실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 서구 세계에서는 교육 기회가 급속히 증가되었고 복지국가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것을 악하게 만드는 인간의 능력은 그칠 줄 모르는 것 같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세계적 갈등, 만연한 인권 무시, 폭력과 범죄 증가 등은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 각 사람의 깊은 곳에는 이기심이 들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소위 ‘문명화된’ 사회에서 당연시되는 것들 중 대부분이 인간의 죄를 전제하고 있다. 법이 생긴 것은 대부분 인간 사이의 분쟁을 이기심 없이 공평하게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약속만으로는 부족하다. 계약서가 필요하다. 문만으로는 부족하다. 자물쇠로 잠그고 빗장을 채워야 한다. 찻삯 지불로는 부족하다. 표를 발행해 개표를 하고 검표를 하며 마지막에는 회수한다. 법과 질서로는 부족하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죄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신뢰할 수 없다. 서로를 대하여 방어해야 한다. 참으로 유감스럽지만 인간의 본성이 진정 어떤가를 보여 주는 것들이다.

성경 기자들은 죄가 보편적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솔로몬은 성전 봉헌식 기도에서 “범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왕상8:46)라고 했다. 또 전도자는 전도서에서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전7:20)라고 덧붙였다. 몇몇 시편은 인간 모두에게 죄가 퍼져 있음(보편적임)을 한탄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를 ”어리석은 자“로 묘사하는 시편 14편은 인간의 사악함을 매우 비판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시편 기자는 양심을 통해 만일 하나님이 일어나셔서 인간을 심판하신다면 한 사람도 그분의 정죄를 면하지 못할 것을 깨달았다.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시130:3). 그래서 그는 이렇게 기도했다.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 주의 눈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시143:2).

선지자들도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시편 기자만큼이나 집요했다. 이것에 대해서는 이사야서 후반부의 두 구절만큼 분명한 것은 없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사53:6.64:6).

이런 입장을 말하는 것은 구약성경 기자들만이 아니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의 처음 3장을 할애해 누구든지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임을 논증했다. 그는 이방 세계의 타락한 도덕을 생생하게 기술했다. 그러면서 유대인도 나은 면이 없음을 덧붙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맡았고 가르치기까지 했지만 그들 역시 여느 사람들처럼 그것을 범했다. 그러고 나서 시편과 이사야서를 인용하며,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름이 없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롬3:23)고 결론지었다. 요한은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요일1:8,10)라고 말할 정도로 분명했다.

그러나 죄란 무엇인가? 죄는 분명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정확하게 죄란 무엇인가? 성경에서는 죄를 설명하는데 몇 가지 단어들을 사용한다. 이 단어들은 그릇된 행위가 적극적 의미에서 다루어지느냐 아니면 소극적 의미에서 다루어지느냐에 따라 두 가지로 분류된다.

소극적 의미의 그릇된 행위는 결함이다. 한 마디로 표현해 그것은 과실, 실수 또는 실책이다. 달리 설명하면 표적을 향해 활을 쏘았는데, 표적을 맞히지 못한 것이다. 또 다시 말하면 죄는 선함에 미치지 못하는 내적 약함이다.

적극적 의미의 죄는 잘못 행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경계를 넘어간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불법이다. 또 다른 말로 하면 공의를 어긴 행위이다.

이 두 부류의 말들은 어떤 행위의 기준이 존재함을 암시한다. 그 기준은 우리가 도달하지 못하는 어떤 이상이거나 아니면 우리가 깨뜨리는 법이다.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약4:17). 이것은 소극적 측면의 죄이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일3:4). 이것은 적극적 측면이다.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받아들인다.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기준으로 삼았다. 반면 이방인들은 양심의 법이 기준이었다. 그러나 기준과는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였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법을 어긴 것이다. 우리의 윤리법은 어떤 것인가? 모세의 법일 수도 있고 예수님의 법일 수도 있다. 고상한 것일 수도, 적당한 것일 수도, 사회 관습일 수도 있다. 불교의 8정도일 수도, 회교의 5대 행동 조항일 수도 있다. 그 기준이 어떤 것이든 우리는 지키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그래서 모두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다.

많은 사람에게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들은 나름대로 이상을 가지고 있고 어느 정도 달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깊은 성찰을 하지 않는다. 자기 비판을 엄격하게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때때로 실수한다는 것과 성격적 결함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특별히 걱정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모든 것은 다음 두 가지를 기억하기 전까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첫째, 성공 혹은 실패의 의식은 기준이 얼마나 높은가에 달려있다. 높이뛰기에서 막대를 1미터 이상 높이지 않는 한 자기를 훌륭한 선수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둘째, 하나님의 관심은 행위 뒤에 있는 생각, 즉 행동 뒤의 동기에 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7장에 나오는 산상 설교에서 이것을 가르치셨다. 이 두 가지 원리를 명심하고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십계명을 기준으로 삼아 모든 인간이 여기에서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를 살펴본다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장경애의 다른기사 보기  
ⓒ 교회와신앙(http://www.amen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최근 많이 본 기사
국가기관에 제소하면 면직 출교,
통합, 에스라하우스(노우호) ‘이
신천지(이만희) 온라인 세미나,
이명범, 사과문 발표 이단 해지
통합, 인터콥(최바울) ‘참여자제
전광훈 이단 규정 없어, 교단의
이만희 교주, 감염병예방법 위반
   <교회와신앙>소개걸어온길만드는 사람들광고안내후원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호 : 교회와신앙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아01814  /  등록일자 2011년 10월 28일 / 발행일 2011년 10월 28일
이용약관 / 발행인 : 장경덕 /  편집인 : 최삼경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봉식
서울 종로구 대학로 19, 303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  Tel 02-747-1117 Fax 02-747-7590
E-mail : webmaster@amennews.com
Copyright 2005 교회와신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ame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