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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포교전략과 교리에 대한 신학적 비평(4)
2011년 08월 19일 (금) 07:19:50 이덕술 목사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이덕술 목사 / 예수님사랑교회, 에제르상담센터 소장

이 글은 이덕술 목사(예수님사랑교회, 에제르상담센터 소장)가 Grace Theological Seminary 선교학 박사 과정을 밟으며 제출한 ‘선교학적 시각으로 조망한 한국교회 이단운동(異端運動)에 대한 분석적 비판과 개혁주의 신학적 준거(準據)에 의한 전략적 접근 - 신천지 교주 이만희를 중심으로-’라는 2010년 논문을 축약한 글입니다. 신천지의 전도전략은 물론 조직·선교 신학적 문제점과 한국교회 이단 문제에 대한 대처방안을 연구한 자료로서 독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사려됩니다. <편집자주>

Ⅲ. 신천지의 요한계시록 2-3장의 실상교리 비판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 다룰 주제는 한국 토종 이단의 자칭 교주들이 자신들을 신격화(神格化)하기 위하여 고안하여 낸 공통분모로서 ‘이긴자 교리’와 ‘새 이름 교리’이다. 그리고 ‘이만희의 삼위일체 교리’이다. 요한계시록2장, 3장의 실상 화보는 이만희가 자신이 이긴자이기 때문에, 이긴자에게 약속한 모든 것들을 가지고 역사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림02】에 나타나는 주인공 인물이 교주, 이만희이다. 특히 이만희는 자신이 이긴자로서 예수의 새 이름으로 온 자일 뿐만 아니라 참람하게도 삼위일체 중 하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패설(悖說)들에 대하여 하나씩 살펴보고 반론해 보자.

   
▲ 【그림02】 신천지 요한계시록 2-3장 실상 화보

A. ‘이긴자(이만희)’해석 문제
교주, 이만희는 자신을 이긴자라고 한다. 이만희는 누구와 언제 싸워 이겼다는 말인가? ···성경에서 말하는 이긴자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와 그와 함께한 성도들이다(계17:14). 성경에 나타난 이긴자는 무엇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인가? 그것은 사단(계17:14, 계12:11)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이며, 세상(요16:33, 골2:15, 요일5:4-5)을 이긴 것이며, 사망(고전15:54,, 57)을 이기고 부활 생명을 얻는 것이다.

교주, 이만희는 사탄과 싸워 이겼는가? 세상이 그의 말 한 마디에 순종하는가? 이만희는 죽었다가 부활했는가? 성경에서 말하는 이긴자는 예수님이시며 그와 함께한 성도들뿐이다. 이만희가 이긴자의 반열에 들어 올 수 있는 길은 회개하고 참성도가 되는 방법 밖에 없다. 그리고 고소당하여 법정에서 유죄가 인정되어 2년 6개월의 실제 형량이 주어졌던 바가 있으니 이는 ‘이긴자’가 아니라 ‘진자’이다.

B. ‘새 이름(이만희)’해석 문제

교주, 이만희는 재림하시는 예수님이 이긴자(교주, 이만희)에게 임하여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이긴자인 자신의 이름이 곧 예수님의 새 이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새 이름 교리는 한국 토종 이단들의 공통 분모이다. 교주 자신을 신격화(神格化) 시키는 교리이다.

“여기서 다른 보혜사라 함은 예수 자신이 보혜사인고로, 장차 재림 때에 나타날 보혜사를 다른 보혜사라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다른 보혜사(註: 교주, 이만희)는 과거처럼 예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오지 아니하고, 다만 주의 이름(명분)으로 다른 새 이름(자기의 실명)을 가지고 오셔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나의 새 이름이라 한 것이다”(이만희, <계시록의 진상>, 63).

교주, 이만희는 예수님의 새 이름을 예수님의 초림(初臨) 때를 빙자하여 자신과 연결시킨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출3:15)였으나, 신약에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은 없고 예수의 이름만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기와 아버지는 하나(요10:30)라고 하시고, 요한복음 14장 9절에는 자기를 본 자는 곧 아버지를 본 자라고 하였으니,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의 새 이름이 예수였다”(이만희, <계시상>, 75).

‘예수님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라는 것이 ‘아버지의 새 이름이 예수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다윗도 불레셋 사람들에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라고 했는데, 그렇다고 ‘다윗’이라는 이름이 여호와의 새 이름이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구약에 나타난 ‘새 이름’의 배경은 이사야 62:2절이다. 그리고 신약에 나타난 ‘새 이름’의 배경은 계 2:17과 3:12, 그리고 19:12, 13, 16절이다. 이사야 62:2은 예루살렘을 새롭게 변화시켜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뿔라, 헵시바)으로 불리게 해주신다는 의미이다.

계2:17의 ‘흰 돌’에 새겨진 새 이름이란 당시에 고대 재판 시 사용되었던 흰돌(무죄 판결)과 축제 입장용 티켓인 흰돌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의인의 자격으로 영광스런 자리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고대 사회나 구약에서 어떤 사람, 특별히 하나님의 이름을 얻는 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이나 능력에 함께 동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이필찬, <내가 속히 오리라>, 150-152.; Colin Brown, The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New Testament Theology, Vol. I, 이하 NIDNTT로 함(Grand Rapids, MI: Zondervan(1979), 248-249).

본문에 언급된 예수님의 새 이름은 사도 요한이 본문을 기록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그 후에 주어질 것이다. 요한계시록 19장을 보면 예수님의 이름들이 여러 개가 등장한다. 그 중에 계시록9:16에 “만왕의 왕 만유의 주”라는 이름이 나온다. 빌립보서 2:9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C. 이만희의 삼위일체 해석 문제

교주, 이만희는 일반 교단의 목자들이 삼위일체에 대하여 “성부, 성자, 성령을 삼위일체라고 하나, 이 또한 삼위(三位)는 되나 일체(一體)는 안된다”라고 비판하면서 자신의 삼위일체론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예수님은 이기는 자(註: 이만희)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는 것과 같이 하리라고 약속하신다.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이다.” 본문 3:21절의 말씀은 위(位)가 셋(註: 성부, 성자, 이긴자)이요 육체(註: 이만희)는 하나이니 삼위일체라 할 수 있다”(이만희, <계시>, 82).

이와 같이 교주, 이만희는 삼위일체란 예수님께서 이긴자(육체)에게 임하사 하나되어 성전의 보좌에 앉는 것이며, 이것이 곧 예수님의 보좌에 앉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교주, 이만희는 하나님의 보좌에 자신 스스로 앉고 있으며, 경배의 대상으로 자리를 이동한 것이다. 본문에서 이긴자는 예수님과 성도들이다. 교주, 이만희에게만 주어진 특혜가 아니다. 성경에서의 삼위일체는 하나님은 하나이시며 삼위가 계시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는 뜻이다. 즉 하나님의 존재가 삼위일체라는 것이지 하나님과 인간 예수(필자 註: 이만희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아니함), 그리고 인간 이만희와의 합일(合一)을 의미하지 않는다.

Ⅵ. 신천지의 요한계시록 7장의 실상교리 비판

한국 토종(土種) 이단들의 공통 분모는 요한계시록 7장의 ‘해 돋는 곳’ 즉 동방을 한국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인치는 천사를 교주로 둔갑시킨다. 뿐만 아니라 인침을 받은 144,000인은 자신들의 집단이며 그 수가 차면 종말이 온다는 조건부(條件附) 종말론을 부각시킨다. 【그림03】은 신천지의 이러한 교리를 담은 화보이다.

   
▲ 【그림03】신천지의 요한계시록 7장 실상 화보

A. ‘동방(한국)의 천사(이만희)’ 해석 문제

신천지에는 동방(한국)의 의인 교리가 있다. 요한계시록 7:2절에 보면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라고 되어 있다. 이만희는 ‘해 돋는 곳’ 즉 동방이 한반도 중에 신천지 장막성전(帳幕聖殿)이 있는 곳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7장의 인치는 사건은 오늘날 과천 소재 신천지에서 이루고 있다”는 주장이다(이만희, <천지창조>, (과천: 신천지, 2007), 205p). 확인해 보자.

“해 돋는 곳에서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올라와서 12지파 144,000을 인치신다. 해 돋는 곳은 지구의 동쪽을 말함이요. …이 역사는 지구 중 아시아, 아시아 중에서도 동방, 동방 중에서도 땅끝, 땅 모퉁이 한반도이며, 한반도 중에서도 일곱 금 촛대가 있는 장막(교회)에서 선천(先天) 세계(처음 하늘나라)를 마치고, 후천(後天) 세계(새 하늘과 새 예루살렘)의 역사가 펼쳐지는 것을 말했으니, 새 역사 새 시대가 열리는 인치는 역사가 있게 된다”(이만희, <계시록완전해설>, (안양: 신천지, 1986), 114; Norman Geisler는 요한계시록 7장 2절의 East는 지리적 영역(geographical area)도 아니고, 설혹 그 말이 지리적으로 동쪽이라 할지라도 한국은 아니라고 했다. Norman L. Geisler, Correcting the Cults, 306-307).

동방을 한국이라 해석하는 동방의 의인 교리는 통일교의 문선명, 엘리야 선교원의 박명호, 하나님의 교회의 안상홍 등 한국 이단의 계보에 등장하는 모든 교주들의 공통된 주장이다(진용식, <무료성경신학원 이만희의 정체는?>, (서울: 도서출판 성산, 1999), 15). 신천지에서 출판한 <신탄>에 보면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는 천사가 등장하는 해 돋는 곳(계7: 2-5)과 하나님의 모략(謀略)을 성취할 사자(사41:1-4사람, 또는 사46:10-11독수리)가 부름 받는 동방, 땅끝, 땅 모퉁이가 한국이라고 한다(김건남, 김병희, <신탄>, (안양: 도서출판 신천지, 1985), 363).

성경에서 말하는 동방은 동해와 서해가 있고 4계절이 뚜렷한 나라(슥14:7-8)로 소개되어 있고, 동방예의지국 즉 인도의 시성(詩聖) 타골 같은 사람이 ‘동방의 빛’이라 예찬한 나라이기 때문에 한국이 성경에 기록된 동방이라고 한다(김건남, 김병희, <신탄>, 364-5). 뿐만 아니라 그 “해 돋는 동방의 사람”이라는 주인공이 이만희 자신이라고 주장한다(이만희, <계시록 진상Ⅱ>, 49). 【그림03】의 한 중앙을 보면 육계(肉界)의 12제자들의 한 가운데 위치한 자가 동방 곧 한국의 과천에 소재한 신천지에서 인(印)치고 있다는 동방의 천사 이만희의 모습이다.

반론하자면 성경에서의 동방은 한국이 아니다. 성경에서의 동, 서, 남, 북의 방향을 가리키는 지명은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의 지역을 가리키고 있다.
1) <기독교 대백과사전> 4권에 의하면 “이 명칭은 팔레스타인 등 동남쪽에 펼쳐져 있는 아라비아의 일부 지역에 해당된다”(<기독교대백과사전>, (서울: 기독교문사, 1982), 594).

2) 성경의 통일성과 일관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성경 66권이 서로 다른 시대에, 다른 저자에 의해 쓰였지만 통일성과 일관성이 있다. 성경에 나오는 ‘동방’도 마찬가지다. ‘동방’에 대한 다음 성경 구절을 직접 확인해 보면, 성경의 동방은 “에덴”(창2:8), “앗수르”(창2:11-14), “시날 평지”(창11:2), “아라바”(수12:1; 겔47:18), “동방의 경계는 요단”(수18:20; 삿6:33), “동방사람 욥”(욥1:1-3), “동방박사≠한국인” (마2:1), “유브라데 강 건너편”(계16:12;신11:24;수1:4)임을 알 수 있다.

3) 이사야서의 ‘동방에서 일으킨 의인, 독수리’는 이만희(재림주, 보혜사, 이긴자)가 아니고,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페르시아 왕 ‘고레스’이다(진용식, <무료성경신학원 이만희의 정체는?>, (서울: 성산, 1999), 19). 이사야41:2절과 이사야44:28-45:3절을 대조하여 보고, 에스라1:1절과 역대하36:22절에서 그 성취를 확인하면 이사야서의 동방의 의인은 고레스왕이다.

4) 이스라엘에도 동해, 서해가 있고, 여름, 겨울이 있다. 동해, 서해 관련 성구는 신11:24; 신34:2; 겔47:18; 욜2:20 등이고, 사계절에 대한 관련 성구는 출32:22; 삼하16:1; 잠6:8; 아2:11; 요10:22; 딤후4:21 등이다.

5) 요한계시록의 7:1-4절의 하나님의 인치는 사건은 에스겔9:1-6절의 구약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이필찬, <내가 속히 오리라>, 361.; G. Kittel,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One Volumed Dictionary Tr. by G.W.Bromiley.(Grand Rapids, MI: Eerdmans, 1985), 864-872, 이하 TDNT로 함).

요한계시록7장과 에스겔9장의 정황과 대조하면 다음과 같다. 에스겔 9장의 ① 죽이는 기계 ② 표 ③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 ④ 이마에 표 ⑤ 이마에 표 있는 자들에 대한 보호 ⑥ 이마에 표 없는 자 심판은, 요한계시록의 ① 바람 ② 인 ③ 하나님의 인을 가진 천사 ④ 이마에 인 ⑤ 이마에 인 있는 자들에 대한 보호 ⑥ 이마에 인 없는 자의 심판으로 표현되고 있다. 또한 요한계시록 7장에서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출발하는 장소와 상황을 ‘해 돋는 곳’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에스겔 7장에서는 먹 그릇을 가지고 출발하는 장소와 상황을 ‘놋 제단 곁’,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 이르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성막성전의 구조를 보면 ‘놋 제단’(출27:1-18)은 동쪽 즉 해 돋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도 성전의 동문을 통하여(겔43:1-5) 나타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나님은 해(시84:11)이시며, 그리스도의 오심 예언도 ‘의로운 해’(말4:2)가 떠오르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요한계시록7장의 ‘해 돋는 곳’은 이만희가 말하는 한국이라는 특정한 나라가 아니라 해(太陽)되신 하나님이 임재 및 현현(顯現)이 있는 성전이며, 의로운 해(太陽)이신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이 증거되는 곳을 의미하는 것이다.

B. ‘십사만 사천인과 큰 흰 무리’ 해석 문제

요한계시록 7장에는 144,000명이 하나님의 인침을 받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단들은 항상 요한계시록 7장을 가지고 자기 집단에 속한 자들만이 144,000명에 해당된다고 주장하며, 이 사람들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즉 이 144,000명이 실제수(實際數)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최초로 이 구절을 자신들의 교리로 활용한 집단은 여호와의 증인과 안식교이다. 그런데 계시록 7장의 144,000명이 실제 수라고 주장하는 교리는 그 내부 모순 때문에 항상 변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실제 이단들도 144,000에 대한 교리를 계속 변경하여 가르쳐 왔다.

1. 이단들의 144,000인에 대한 세가지 해석
첫째, 세상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의 총수가 144,000명이라는 해석
처음에는 여호와의 증인이나 안식교에서 이렇게 주장하였으나, 지금까지 지구에 살았던 수 많은 성도들 중에 144,000명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말이 안 되는 교리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둘째, 예수님의 재림 시점에서 살아서 구원 받는 사람의 수가 144,000명이라는 해석
안식교와 안상홍 등이 이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안식교의 경우는 실제 전세계적으로 교인들이 1,000만이 넘게 되자 이러한 교리에 모순이 생기기 시작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교리가 변경되었다.

셋째 구원받은 사람들 중에 제사장의 수가 144,000명이라는 해석
이들은 일반 성도들은 요한계시록 7장의 후반부에 나오는 흰 옷을 입은 큰 무리이고 144,000명은 제사장의 수라고 가르친다. 신천지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단이 144,000명을 주장하는 이유는 그 수가 금방 채워질 수 있는 숫자이므로, 교인들로 하여금 조바심을 내게 하고 교주에게 충성을 바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항상 144,000명이 거의 다 찼다고 가르침으로써 교인들의 충성을 유도 한다(신천지의 경우, 실제로는 약 5만 여명 정도지만 때가 긴급하다, 144,000이 거의 다 찼다고 가르쳐 교인들로 하여금 자기 삶을 다 바치도록 한다).

반면, 정통 교회는 144,000을 상징수(象徵數)로서,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로 해석한다. 즉, 요한계시록 7장 후반부에 나오는 흰옷을 입은 큰 무리와 동일한 존재라고 가르친다. 이단들의 주장과 정통 교회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단

실제 수 → 144,000 ≠ 흰 큰 무리

정통교회

상징 수 → 144,000 = 흰 큰 무리



그러면 신천지의 144,000명에 대한 주장들과 그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제시해 보자.

첫째, 이만희는 인침 받은 144,000명이 문자적 실수(文字的 實數)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영계(靈界)의 144,000의 수, 곧 요한계시록 20:4절의 목 베임을 받은 ‘순교자의 영들’이 144,000이기 때문에, 지상에서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수도 문자적 144,000이라는 것이다. 이만희의 주장은 그의 저서 <계시록의 진상Ⅰ>과 <계시록진상Ⅱ>에 잘 나타나 있다.

“시대마다 하늘의 12영이(마26:53-54) 왔다 가셨고, 오늘날도 참조하는 바 말씀이 응하는 회복의 역사임을 알았을 것이다. 또 12지파 144,000은 영계의 144,000의 수가 있으므로 육체의 수도 있게 되는, 새 이스라엘 영계의 본 자손이 되는 것이다”(이만희, <계시록의 진상Ⅱ>, 126).

“인치는 주의 제단에 동참한 144,000의 신부들이다. 거룩한 성령이요 신랑인 144,000의 영들과 이 땅의 거룩한 자 144,000의 육신을 가진 신부들이 각기 한 쌍을 이루어 혼인 일체가 된다. 마침내 이들은 …첫 열매로서 첫째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이만희, <계시록 진상>, 301).

반론하자면 144,000은 문자적 실수(實數)가 아니고 상징수(象徵數)인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해석학적 측면에서 144,000은 다른 단어들과 일관성 있는 해석을 적용해야 한다.
요한계시록 7장의 144,000명은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을 뜻하는 것으로서, 1-8절에서는 이 사람들이 인(印) 맞는 장면을, 9-17절에서는 이 사람들이 어떤 특징의 사람들이냐라는 것을 소개하고 있다. 즉, 동일한 대상에 대해 반복하여 다른 각도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7:4절에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144,000’이라고 했다. 먼저 여기서 이스라엘 12지파가 문자적으로 혈통적인 이스라엘 12지파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세대주의자(dispensationalist)로 분류된다. 그러나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더 이상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을 구분하여 기록하지 않는다(참조 갈3:29; 롬2:29; 빌3:3; 벧전2:9)”(이필찬, <내가 속히 오리라>, 362).

지금은 이단들도 영적인 이스라엘로 생각한다. 이단들은 이스라엘, 각 지파, 인, 천사 등은 모두 영적인 의미로, 즉 상징적으로 해석을 하면서 숫자만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는 요한계시록에 대한 해석을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조작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각 지파, 인, 천사 등을 상징적으로 해석한다면 144,000 또한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일관성 있는 해석일 것이다(요한계시록 어디에서도 이스라엘의 12지파라는 지파(tribes)의 의미가 문자적 인종집단(literal ethnic group)의 의미로 사용된 적이 없다. Norman L. Geisler, Ron Rhodes, Correcting the Cults, 307-308.; Kenneth Wuest, Studies in the Vocabulary of the Greek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Eerdmens, 1976), 212-213, 이하 SVGNT로 함).

둘째, 이만희는 ‘144,000인’과 ‘큰 흰 무리’는 신분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요한계시록 7: 9절의 ‘이 일 후에’를 근거로 144,000인과 큰 흰 무리를 구분하고 있다. 이만희는 인침 받은 144,000 명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여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할 자들이며, 큰 흰 무리(나라와 백성과 방언과 족속인 온 세계)는 그들의 백성으로서 이 144,000을 섬기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144,000명과 흰 옷 입은 큰 무리, 이 둘 사이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9절의 ‘이 일 후에’라는 말은 하나님의 인 맞은 144,000명과 큰 환란에서 나온 흰 옷 입은 사람들의 신분을 구분해 주는 경계가 된다. 144,000명은 처음 익은 열매로서(계14:1-5) 영적 새 이스라엘의 목자(제사장, 왕)가 되고, 흰 옷 입은 큰 무리는 성도(백성)가 된다”(이만희, <천지창조>, 205).

“본문의 이 일 후는 6장에서 남은 적은 씨로 144,000명을 인친(본장1절-8절) 후에 있을 일임을 알리는 말씀이다”(이만희, <계시록의 실상>, 123). “또 이 일 후라는 말은 12지파 144,000명을 인친 후의 일을 말한다. 이 일 후에 흰 옷 입은 큰 무리는 144,000명의 수가 차고 난 그 다음의 일임을 알아야 한다”(이만희, <계시록 진상>, 127).

반론하자면 본 장의144,000인과 큰 흰 무리는 다음과 같은 근거로 동일한 교회 공동체임을 확인 할 수 있다.
1) 요한계시록7:9절의 ‘이 일 후에’ ‘이 후에’로 번역해야 하며, 그러므로 시간적 순서가 아니라 논리적 순서(論理的 順序)이다
(이필찬, <내가 속히 오리라>, 367; 그래서 Eugene Peterson도 “하나님의 종들” (servants of God)의 묘사에 이후 “즉시” (immediately)라고 번역했다. Message, Rev. 7:1-9 참조).

2) 성경에는 환상, 꿈을 통한 계시 및 예언이 반복적으로 주어졌다.
창세기에는 바로 왕이 반복되는 꿈을 통해 7년의 풍년과 흉년을 계시를 받았고, 요셉을 통해 해몽했다. 바로의 첫 번째 꿈은 “살찌고 아름다운 일곱 암소와 흉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의 꿈이었고, 두 번째 꿈은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과 가늘고 마른 일곱 이삭”의 꿈이었다. 요셉이 꿈을 해몽하니 “바로의 꿈은 하나니라”고 했고, “칠년 풍년 후 칠년 흉년”에 대한 것이라 했다. 동일한 예언의 반복 계시이다.

다니엘 2장의 “큰 신상 환상’과 다니엘 7장의 ‘네 짐승 환상’과 다니엘서8장의 ‘숫양과 숫염소의 환상’도 동일한 예언의 3중 반복 계시이다. 이는 앞으로 있을 바벨론 → 메데/파사 → 헬라 → 로마 등의 나라의 흥망성쇠에 대한 예언을 꿈을 통하여 3번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또한 7교회, 7인, 7나팔 등으로 동일한 종말론적 역사를 반복적으로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3) 144,000과 큰 흰 무리는 특성이 같다.
【도표11】144,000과 큰 흰무리의 공유(共有)적 특성 대비표

공유(共有)적 특성

144,000인

큰 흰 무리

둘 다 하나님의 성전에 있다

계14: 1 ‘시온산=성전’

계7: 15 밤낮 성전에서

둘 다 어린양과 함께 있다.

계 14:1 어린양이 함께

계 7:17 흰 무리의 목자

둘 다 구속 받은 사람들이다.

계 14:3 구속함을 얻어

계 7:14 피에 그 옷을

둘 다 보좌 앞에서 새 노래한다

‘새 노래=구원의 노래’

계 14:3

보좌 앞, 새 노래

계 7:9-10

보좌 앞, 구원의 노래

둘 다 어린양의 인도대로 따른다

계 14:4 어린양이 인도

계 7:17 어린양이 인도

둘 다 영적 이스라엘 자손들이다

계 7:4 이스라엘 자손

롬 2:28-29 이면적 유대인



1) 성경은 모든 사람이 동일한 죄인(롬3: 10)임과 동시에 구원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롬10:12)라고 선언하고 있다. 즉 144,000과 큰 흰 무리로 차별하여 구원하지 않는다.

2) 베드로는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거룩한 제사장’(벧전2:5),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이라고 했다. 사도 요한도 ‘나라와 제사장’(계1:6)에 대하여 동일하게 언급했다.
위 성경 구절은 안식교나 신천지에서 인(印)을 쳐서 144,000명을 제사장으로 삼기 훨씬 전에, 예수를 믿고 구원 얻은 초대교회 성도들을 이미 제사장으로 불렀음을 나타내 준다.

3) 요한계시록14:3절에 보면 ‘144,000인 밖에는 새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고 하였다.
이단들의 주장이 정확하다면 안상홍이나 이만희가 태어난 21세기에 와서야 새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다. 신천지와 하나님의 교회에는 지금 자기들만이 부르는 새 노래가 있다. ···
새 노래란 무엇인가? 구약성경 시편에도 새 노래가 여러번 나타난다. 이미 다윗 시대에 새 노래를 부르는 자들이 있다. 새 노래가 나타나는 성경구절(시98:1; 시96:1-2; 시144:9-10; 시149;11-4)들을 보면 ‘새 노래’란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는 구원의 노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144,000명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자기 집단에 속한 사람들만이 해당된다라고 가르치는 이단들의 주장은 비성경적이다. 한편 ‘144,000 ≠ 큰 흰무리’라는 이단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큰 흰 무리는 새 노래를 절대로 못 불러야 한다. 그러나 요한계시록7:9-10절에 큰 흰 무리는 큰 소리로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라고 하며 구원의 새 노래로 찬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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