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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선교사도 반해버린 풍경
기독교문화와 함께하는 여행 7 - 화진포
2011년 08월 12일 (금) 07:23:44 전강민 기자 minslife@amennews.com

   

화진포는 호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화진포라 말하는 곳은 화진포해수욕장으로, 호수와 맞닿아 있다. 예전 학창시절 지리시간에 외웠던 ‘석호’, 화진포가 바로 그 석호다. 강원도 동해안에는 석호가 몇 개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화진포를 비롯해 경포호, 송지호 등이다. 경포대도 경포해수욕장에 이름을 빼앗긴 경우다. 실제 경포대는 누각이름이다. 어쨌든 해수욕장과 석호가 함께 있는 곳은 바다와 호수를 함께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대부분 명소로 자리 잡게 된다. 그 중 최고는 단연 화진포다.

화진포는 속초보다 훨씬 더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 명태 최고 산지로 유명해 매년 명태축제가 열리는 거진항 바로 위에 있다. 화진포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통일전망대다. 위도 상으로 보면 우리나라 최북단 지역이다. 하지만 서울을 기준으로 3시간 반이면 도착할 수 있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이용해 홍천까지 와서 44번 국도와 진부령 고개를 넘으면 바로 거진읍이다. 예전에 소양호를 끼고 구불구불 돌아야 했던 44번 국도는 이미 직선화 공사를 마쳤다. 최근에는 설악산 서쪽 한계리에서 용대리로 가는 도로도 확장공사를 마쳐서 고속도로나 진배없다.

몇 해 전부터 여름 휴가철에 화진포를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널리 알려진 탓도 있고, 드라마와 영화 등에 자주 등장했다는 점도 큰 원인일 수 있다. 화진포 해수욕장의 장점은 다른 해수욕장에 비해서 훨씬 여유롭게 파도를 즐길 수 있는 비교적 적은 인파와 깨끗한 수질이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백사장의 경사다. 요즘 동해안 해수욕장의 백사장은 너나할 것 없이 바다로 채 5미터를 나갈 수 없을 정도로 갑자기 수심이 깊어진다. 모래가 파도에 패인 탓이다. 그에 비해 화진포는 비교적 멀리 나갈 수 있다. 몇 걸음 걸으면 1미터 깊이로 깊어지지만 그 이후로 평지나 다름없이 30여 미터를 나갈 수 있다.

   

여름에는 화진포해수욕장이 각광 받지만 겨울철에는 화진포가 더 사랑받는다. 찾는 이 없는 겨울바다의 매력도 만만찮지만, 여러 철새가 겨울을 나는 겨울호수의 매력에는 비할 바 아니다. 특히 천연기념물 큰고니의 서식지로 유명한 곳이 바로 화진포이기에 그 고즈넉한 매력은 글로 표현하기 힘들다.

   

화진포 해수욕장에는 화진포 해양박물관이 있다. 소규모 박물관이라 할 수 있지만 내용이 알차다. 유람선 모양의 건물은 어패류 박물관과 어류 전시관으로 나뉘어 있다. 1500여종 4만여 점에 이르는 패류가 볼거리다. 어류 전시관에는 동해안에서 잡히는 어종인 명태, 쥐치 등이 헤엄치고 있어, 마치 횟집에 온 듯한 착각도 불러일으키지만 색다른 경험이다. 출구를 눈앞에 두고 관람객의 머리 위로 헤엄치는 가오리와 상어를 볼 수 있다. 입장료 5천원에 유영하는 상어를 볼 수 있으니 횡재나 다름없다.

   
   

화진포는 예부터 경치 좋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과거 초고위층 인사들의 별장이 이곳에 모여 있는 것이 그 증거다. 한국전쟁 전 김일성이 이곳에서 휴양했고, 전쟁 후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이기붕 부통령의 별장도 이곳에 있다. 이 세 건물 모두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선교사들이 휴가를 보내기 위해 지은 건물들이다. 당시 먹고살기 바빴던 우리 국민들보다 자연을 즐길 줄 알았던 선교사들이 이 경치 좋은 곳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김일성 별장으로 유명한 '화진포의 성'은 화진포해수욕장과 화진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1937년 원산에 있던 선교사 휴양촌이 일제에 의해 이주명령을 받게 되자 옮겨 자리 잡은 곳이 이곳 화진포였다. 이듬해인 1938년 당시 이주실행위원이었던 셔우드 홀 선교사가 이곳에 화진포의 성을 짓고 예배당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건축은 독일건축가 베버가 맡았다. 1948년 이후에는 북한이 휴양소로 이용하면서 김일성 가족이 사용한 적도 있어서 ‘김일성 별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전쟁 때 훼손 된 건물을 몇 차례 보수해서 현재는 안보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화진포의 성에서 내려다보이는 화진포의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건물 옥상에 오르면 예전에 일찍이 근대문화를 이룬 선교사들이, 이후에는 나라의 운명을 결정지을 만한 지도층들이나 경험했을 눈의 호사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화진포의 성 내부는 다소 실망스럽다. 어디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한국전쟁에 관련된 안보전시장으로 꾸며져 있다. 화진포의 유래나 매력, 혹은 건물의 역사에 대한 공간으로 꾸몄으면 더 좋을 뻔했다. 아니면 누구나 그 호사에 동참할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만들어 놓는 것도 좋을 듯하다.

   
   

조금 떨어진 곳, 소나무 숲 사이에 이기붕 별장이 있다. 이 건물 역시 1920년대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건축됐다. 이후 북한 간부휴양소로 사용하다 이승만 정권 시절 부통령 이기붕 씨의 부인이 개인별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화진포의 성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소나무 숲에 둘러 싸여 있고 앞 창문으로는 호수, 뒷 창문으로는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어 굉장히 매력적인 공간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별장은 화진포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이승만 별장은 1911년 YMCA 학감이었던 이승만이 전국 순회 전도를 하던 중 이곳에서 지내던 선교사를 방문하게 되고, 훗날 그 일을 기억해 1954년부터 이곳을 별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현재는 별장 위쪽에 '화진포 이승만 기념관'이 건립되어 있어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연혁을 소개하고 있다.

   
   

거진항의 유명 명태식당 외에도 화진포에는 또 다른 별미가 있다. 춘천과 더불어 막국수의 고장으로 알려진 곳이 바로 강원도 고성인데, 그중 화진포 막국수가 그 맛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거진에서 화진포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화진포 메밀 막국수 집의 막국수에는 빨간 색이 없다. 대부분의 막국수는 고추양념장으로 비비거나, 혹은 붉은 색의 동치미 막국수인데, 이곳 국수는 투명한 동치미 국물에 면만 말아 나온다. 면은 100% 메밀을 사용해서 뽑는데, 툭툭 끊어지는 맛이 일품이다. 면과 동치미국물, 무 한조각, 김가루가 전부인 이 고성 막국수의 맛은 어느 지역 막국수보다 시원하고 깔끔하다. 얼음동동 동치미국물은 뼈 속까지 시원함을 전한다. 비빔막국수에는 명태식혜가 고명으로 나오는데, 예상외로 달달하면서 대중적인 맛이어서 젓가락질을 바쁘게 만든다. 물막국수를 시키면 반찬으로 명태식혜가 나오고 비빔을 시키면 동치미국물이 한 사발 딸려 나오니 무엇을 시키든 두 가지를 모두 맛볼 수 있다.

   


이 땅에 복음이 뿌려지기 시작한 그 시절, 벽안의 선교사들은 우선 말씀을 전하기 위해, 그리고 한국 사람이 좋아서 이 땅에 뿌리를 내렸다고 한다. 더불어 한국의 자연도 그만큼 매력적이어서 이곳에 뼈를 묻기를 원했을 수도 있겠다는 재밌는 상상도 가끔 해 본다. 만약 그들이 이 땅을 떠날 수 없었던 이유에 자연도 포함된다면, 차마 두고 갈 수 없었던 풍경은 분명 이곳 화진포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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