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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지금 뭐하고 있을까?
그때그사건(14)
2011년 06월 20일 (월) 07:37:02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기자 초년병 시절엔 매우 바빴다. 정신없었다는 게 더 어울릴 듯하다. 처음 사회생활에 적응하랴, 생소했던 이단사이비 분야에 대해 취재 기사작성이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매 순간 긴장의 연속이었다. 3개월 수습기자 딱지가 떼어지고 어느 정도 이 분야에 익숙해질 만할 때 대형사건이 터졌다.

‘92년 10월 28일 예수 재림, 종말’

소위 시한부종말론 사건이다. 이는 기독교 내부만의 사건이 아니었다. 한국사회 전체의 톱 뉴스였다. 세계 곳곳에서도 들썩였다. 다미선교회(이장림)를 중심으로 몇몇 단체가 우후죽순 생겼다. 저마다 특별 계시를 받은 사람들(주로 아이들)이 있다며 난리였다. 종말 날짜도 조금씩은 달랐다. 다미선교회를 중심으로는 10월 28일, M선교회는 10월 10일 등이다.

이단 취재 분야 기자들은 모두 긴장 상태였다. 필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참이었기에 더했다. ‘어리버리’한 상태라 할 수 있다.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취재를 해야할 지 그저 시키는 대로 열심히 뛰어다닐 뿐이었다.

그때 A사모를 만났다. 그는 시한부종말론 피해자였다. 목회를 잘 하던 남편 목사가 그만, 시한부종말론에 빠지고 말았다. 교회를 사임하고 그 단체로 가 버렸다. 매일 철야집회와 전도를 한다며 집을 나가고 만 것이다. 그렇게 인자하고 조용하고 수줍음까지 많았던 남편이 말이다. 변했다. 아주 완전히 바뀌었다.

종종 집에 들릴 때면 남편은 ‘미안하다’고만 되풀이 했다. 그리곤 우리 가족 모두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 자신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아내의 충고가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A사모는 오직 시한부종말 날짜가 지나가기만 바랐다. 그래야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고 믿었다. 당시 유치원생 정도의 두 자녀를 양육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그냥 버티기로 한 모양이다. 태풍이 한 번 지나갈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10월 28일 시한부종말론 당일, 필자는 경남의 한 산속에 위치한 B기도원으로 취재를 떠났다. 다미선교회의 주요 기도원 중 하나였다. 당시 휴거불발 사건으로 자해 소동이 일어날 것을 염려해 서울 경기 지역 등 시한부종말론 단체 인근에는 경찰이 ‘쫙~’ 깔렸다. 모든 언론사가 취재를 위해 카메라 앵글을 그쪽으로 돌려놓은 상태다. 종말론 단체들도 대부분 자신들의 신도들만 티켓을 발부하여 입장시키고 있었다. 취재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B기도원에도 경찰이 배치됐다. 50여명의 신도 숫자만큼이나 됐다. 가족들까지 모두 찾아와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래도 취재는 수월한 편이었다. 서울에 비해서다.

생동감 있는 취재 현장을 그대로 기사화했다. 당시 어느 누구도 종말론 집회 현장을 직접 취재하지 못했었는데(일반 언론사조차도) 필자는 상세한 보도를 했다. 특종이라 쾌재를 불렀다. 물론 혼자 그렇게 생각했다.

   
▲ 시한부종말론 책자

‘따르릉..’

A사모의 전화다. 휴거 불발 사건 후 2-3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남편이 미국으로 간다고 하던데···.”

내용인즉, 휴거 불발 후 A사모는 남편 목사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든 그러했을 것이다.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연락을 끊은 지도 오래됐다. 그러다가 며칠 전 ‘미국간다’며 불쑥 찾아왔다는 것이다. 휴거 사건이 실패로 끝난 게 아니란다. 미국에서 좀더 준비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시험의 기간을 통과 시킨 후에 ‘정말, 진짜로, 거짓없이, 참말로’ 자신들을 데리러 오실 것이라고 했다. 그리곤 훌쩍 떠나버렸다. 머나먼 땅, 미국으로...

A사모의 목소리는 절망적이었다. 남편을 말리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럴 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쳤다. 그러면서도 궁금했다. 남편이 불쌍하기도 했다. 그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기자에게 전화를 한 것이라 했다. 남편에 대한 무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한 것이다.

그 단체를 재차 취재해 보니, 정말 핵심 관계자들은 미국으로 떠난 상태다. 계시를 받았다는 어린 아이와 그 가족들 그리고 맹신자들이 모두 포함되었다. 미국에 간 이유는 A사모가 전해준 그대로였다. 도피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이후 또 몇 년이 흘렀다. ‘92년 종말론 이후’라는 주제로 취재 건이 잡혔다. 시한부종말론 주창자인 다미선교회 이장림 씨를 비롯해서 각 단체들을 추적하는 기획이었다. 당시 필자는 마포구 동교동 지역에 은둔해 있는 이장림 씨의 저택을 찾아내 인터뷰를 시도해 보기도 했다. 물론 이장림 씨는 만나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집에서 추종자들과의 긴밀한 모임을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는 있었다.

‘피해자들’의 모습도 취재 건으로 올라왔다. A사모가 생각났다. 연락을 취했다. 전화번호가 그대로 살아있었다. 취재 의도를 설명하니 취재 협조를 하겠다고 했다.

종로 한 커피전문점에서 약속을 잡았다. 직접 만나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미국으로 떠난 남편은 딱 한 번 전화를 준 이후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분노, 원망, 한탄, 증오 등 많은 감정 변화들이 일었지만, 신앙 안에서 극복하며 차분히 지내고 있다고 했다. 경제적인 사정도 다행히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목회자 유고시 사모들이 겪는 고통은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다.

휴거 불발 사건이 어언 20년이 흘렀다. 최근 미국에서 한 종교단체가 5월 시한부종말설을 들고 나왔다. 지금 5월이 지났으니 역시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번 미국 종말설 사건을 접하면서, 당시 미국으로 갔다는 그 목회자와 A사모가 생각났다. 이후 그 목회자는 제 자리를 찾아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그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 월간<교회와신앙>에 게재된 A사모의 편지글
휴거불발이 지난 1년 후, A사모가 본지(교회와신앙)에 글을 하나 보내왔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참신앙을 갈구하는 그런 내용이다. ‘너도 바보가 되지 않을래?’라는 제목의 편지 형식의 글이다. 읽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다시 한 번 게재해 본다.

<편지왔어요>
너도 바보가 되지 않을래?

“누나! 그래도 이혼을 해서는 안돼”
“어머니 그래도 사위를 미워해서는 안돼요.”

지금은 장관이 되신 어느 장로님께서 결혼 주례 때마다 우리 크리스천의 사랑은 ‘때문에’의 사랑이 아니라 ‘불구하고’의 사랑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시던 그 말씀과 함께, 먼 유학의 길을 떠나며 내 가정에 다짐을 주고 간 너의 두 마디가 새삼 고맙게 되살아나는구나.

항상 자랑스런 나의 동생아!
오늘도 이 누나의 하루는 내 좋아하는 계절의 풍취도 느껴 볼 겨를 없이 저물고, 천진하게 잠든 두 아이들 옆에서 너를 향해 몇 자 쓰기도 전에 아직도 흘려야 할 눈물이 이렇게 남아 있구나.

동생아.
너의 매부가 그 사이비 단체에 들어간 후 난 참으로 많은 신앙의 스승들을 만났단다. 어찌나 저마다 똑똑한 이론과 훌륭한 신앙의 권면을 하던지....
“‘죽으면 죽으리라’하고 사모가 말렸어야지”하던 권사님.
“이혼하세요. 그러면 다 돕는 손길이 있을 거예요”라며 자식이 무슨 소용이냐고 다 두고 나오라던 어느 전도사.
“보통 기도 갖고는 안돼요”라며 죽기 살기로 기도하라던 어느 성도 등등, 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고 지금도 배워가고 있는 중이란다. 나름대로 다 나를 생각해 주는 고마운 충고임에도 내겐 위로와 힘이 될 수 없었던 그 언어들···.

그래서 선생이 되려 하지 말고 다만 섬기는 자가 되라 하시던 주님의 말씀으로, 나는 사랑의 교훈을 더 깊이 배우고 그의 아내로서 이제는 그이에 대해 많은 부분을 이해하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시한부종말론’의 신앙은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인류 역사에 계속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그들이 왜 그러한 신앙에 미혹될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은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단다. 그들은 대부분이 인생의 가시를 지닌 자들로, 사회의 지탄을 받을 대상이 아니라 따스한 사랑이 필요한 자들인 것이다. 그리고 정통교회에서 종말론에 대해서 아예 덮어두거나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반작용이 아닐까 생각한다. 손가락질 하고 나무라기 이전에 이 사회와 특히 교회가 ‘내 탓이요’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선포했던 시한이 지남으로 해서 그 혼돈과 아픔과 많은 문제점들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들은 후유증으로 인해 현실에 적응 못하고, 그의 가족들에게는 또 다른 아픔이 뒤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동생아.
우리나라도 이제는 10쌍 중 1쌍이 이혼한다고 하는구나. 정말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는 세상이 되어 가는 것 같지 않니? 상대방을 위해 기다리고 참을 줄 몰랐던 나 역시 너의 매부인 그 시한부의 바보와 무척이나 다투었지만, 그 아픔의 과정에서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많은 가르침에 감사하고 있단다. 칼과 같은 나의 뾰족한 성품이 깎이고 또 깍이우는 고통의 연단을 내가 더 잘 견뎌낼 수 있도록 기도해 주렴.

“오랜 세월 빚어져야 하는 아픔만큼 당신의 기쁨되게 하옵소서.”
나와 그이의 영혼을 위해 오늘도 이렇게 간구하며, 이 누나는 너무 똑똑한 사람들이 많아진 세상이라 이제부터는 좀 바보가 되는 연습을 하려한다. 자기의 전 재산을 바친 과부, 자기의 가장 소중한 옥합을 깨뜨린 여인 같은 그런 바보, 누구나 천년만년이라도 살 것 같이 살아가기에 오늘만 일하고 내일은 죽을 것 같이 사는 바보, 모두 다 자기의 걱정에만 바쁘기에 이 세상 모든 걱정거리를 끌어다 고민할 수 있는 그런 바보, 너무도 자연스럽고 자연스럽게 손에 들고 있는 성경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하는 신자 아닌 교인들 투성이기에,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애쓰며 고민하는 바보···.

동생아.
너도 최고의 지성을 지닌 자로서 그런 바보의 대열에 끼어보지 않을래?
고 통 속에서도 순간순간 지니는 편안함과 기쁨은 내 인생이 이젠 더 피할 수 없이 주님의 손 안에 붙들려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란다. 뒤쫓아 오는 애굽 군대를 뒤로 하고 가로막힌 홍해 앞에서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는 가만히 내가 하는 일을 보라”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뿐이로구나.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운 대로 가만히 주님 손에 붙들린 채, 주님의 마음에 들도록 다듬어지기까지.

사랑하는 동생아.
언젠가 네가 나에게 한 말, 나는 잊지 않고 있단다. 뭐든 만들기 좋아하고 손재주가 많던 네가, 내가 버리려 하던 화장품 그릇을 달라고 하면서 “물건도 주인을 잘 만나야 돼”하던. 네 말대로, 하잘것없는 물건도 주인을 잘 만나면 귀하게 쓰이듯이, 너의 명석한 두뇌와 재능이 온전히 주님 손에 들려질 때 네 인생은 그 누구보다 더욱 빛나리라 믿는다.

부디 어려운 유학의 과정, 네 인생의 핸들을 주님께 맡김으로 승리하기를 이 누나는 늘 기도할게. 우리, 지금의 모든 어려운 문제들은 위에 계신 해결사께 맡기고 훗날 주님께서 주실 보화를 담을 만한 그릇들이 되자꾸나. 샬롬.
월간<교회와신앙> 199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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