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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저주론’이윤호 목사의 재반론에 대한 정훈택 교수의 주장
이윤호 박사의 반론에 대한 요약적 정리
2003년 08월 20일 (수)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정훈택 교수(총신대 신학대학원)

이윤호 박사는 1999년 베다니 출판사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로 발표하였다. 이 책에서 표명한 그의 주 관심사는 가계에 흐르는 축복이 아니라 가계를 타고 흘러 내려온다는 조상들의 저주에 있었다. 그 저주들이 무엇인지, 왜 그 저주들이 피를 타고, 유전자를 타고 후손들에게 내려오는지, 삶에 나타나는 어떤 현상들이 조상들에게서 자자손손에게로 계속 흘러내려오는 저주들인지, 그리고 이 가계를 타고 후손들의 피와 삶에 나타나는 저주들을 어떻게 끊을 것인지를 244쪽에 걸쳐 설명했다. 그가 학습, 인용, 소개한 책들도 모두 가계의 저주와 가계의 치유에 관련된 것이다.

이 책이 발표된 이후 그의 주장은 한국 교회에 “가계 저주론” 및 “가계 저주의 치유론”으로 알려졌다. 이 이름은 따라서 저자인 이윤호 박사 자신이 선택한 것이요 그의 주된 관심사였다.

그의 “가계 저주론” 및 “가계 치유론”에 대한 다양한 반발과 비판이 일자 이윤호 박사는 2001년 그 후속편인 <가계의 복과 저주 전쟁에서 승리하라>를 발표했다. “가계 저주론”과 “가계 치유론”의 신학적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가계의 복” 개념을 도입했을 뿐, 피를 매개체로 가계를 타고 내려온다는 저주와 그 저주의 절단에 관한 기본 주장은 조금도 고치지 않았다. “가계를 타고 흐르는 저주”라는 표현은 - 그의 진짜 사상은 “가계의 복과 저주”인데도 불구하고 - 그를 비판하려는 사람들이 임의로 만들어 내거나 일방적으로 발췌한 그런 말이 아니라 그의 주 관심사요, 주요 사상이다. 그가 첫번째 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렇다.

이윤호 박사의 주된 관심은 여전히 가계를 타고 흘러 내려오는 조상들의 저주, 온갖 종류의 저주들에 있다. 이것은 “가계의 복과 저주 전쟁”이라고 표현한 그의 두번째 책에서도 사실이다. 복이 무엇인지, 어떻게 복을 받는지, 그 복이 어떻게 사람들의 피를 타고 후손들에게 전해지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 피를 타고 후손들에게 흘러 내려오는 가계의 복 개념은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상식처럼 되어 있다고 생각했기에 - 이 개념을 이용하여 그의 “가계 저주론”과 “가계 치유론”을 성경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접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의 사상은 “가계 저주론”이 아니라 “가계의 복과 저주”이고 이것은 정말 성경적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그의 첫번째 책을 통해 가계 저주론을 배우고, 가계 치유론을 익힌 한국의 첫 독자들 및 추종자들을 외면 내지 기만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기 위해서는 이윤호 박사는 가계의 복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또 하나의 책을 써야 할 것이다. 이런 책이 나오기까지는 그의 주 관심사/사상은 조상들의 저주가 피를 타고 후손들에게 흘러 내려온다는 “가계 저주론”과 이 저주들의 절단을 말하는 “가계 저주 치유론”일 수밖에 없다.

필자와 같은 비판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첫 책에서 그의 주장을 배우고 좋아하고 열광하였음을 이윤호 박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물론 그들을 배반해서도 안 될 것이다.

잘못된 주장이든지, 옳은 주장이든지 이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즐거움이며 다른 한 편으로는 막중한 괴로움이다. 비판의 예봉을 피하기 위하여 처음의 학설을 발전시키거나 수정하려고 할 때 처음의 얘기를 좋아하던 독자 및 추종자들이 이 변화에 함께 발맞추지 않는다면 저자는 자신의 변호를 위해 그들을 배반하고 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이런 관점에서 신중하게 평한다면, 이윤호 박사는 지금에 와서 자신의 학설을 “가계를 타고 흐르는 복과 저주”라고 말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주장해 온 것은 가계를 타고 후손에게 악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저주와 이 저주의 절단의 문제였지 축복의 문제는 아니었다. 따라서 비평가들이 그의 주장을 가계저주론이라고 하는 것은 정확하게 지적하는 것이다.

이윤호 박사가 온갖 가능한 방법으로 자신의 주장이 성경에서 나왔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필자가 그의 주장이 비성경적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는 그의 저주 개념이 성경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가 여러 번 지적했지만 이윤호 박사는 이 문제에는 전적으로 침묵으로 일관하며 전혀 다른 방향으로만 자신의 주장이 성경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주 개념 자체를 바꾸기 전에는 그가 어떤 신학적 주제를 끌어와 변론하고, 어떤 신학자들의 말을 인용하든지 성경적이 될 수 없다. 이 문제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지적해 본다.

이윤호 박사는 “복이나 저주가 하나님의 통치행위에 속한다”는 필자의 비판에 동의한다고 천명하였다. 물론 그는 전적인 동의를 표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다음과 같은 도피구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필자(= 이윤호)는 복과 저주가 인간의 순종과 불순종의 선택 없이 하나님의 ‘일방적’ 혹은 ‘전적’ 통치 행위만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그가 지적한 것은 사실 예외 조항으로 말할 만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통치행위란 당연히 사람들의 무엇에 대한 보답이기 때문이다. 필자도 그가 이 점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판한 적은 없다.

필자의 비판은 인간적 행동, 전제 조건들에 대한 저주 문제가 아니라 저주 개념 자체를 향한 것이었다.

이윤호 박사가 성경에 나타난 축복이나 저주는 하나님의 통치행위일 수밖에 없다는 필자의 말에 동의한다고 했을 때 이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한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정말 이렇게 동의하려면 그의 저주론 자체를 전체적으로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한 편으로는 저주를 하나님의 통치행위로 본다고 동의하면서도 그의 저주론의 핵심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그의 저주론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냥 피해 간 것이다.

즉 자신의 저주론을 수정하지 않으면서도 성경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동의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는 두 책에서 저주를 하나님의 통치 행위로만 말하지 않고 여러 주체에게서 나오는 것으로 때로는 가계를 타고 흘러 내려오는 무인격적 세력으로 말하기도 했다. 이것이 그의 저주론의 핵심이다. 필자의 말에 동의한다면 이 주장들을 포기해야만 한다. 무언가 동의하지 못하는 요소도 있다고 말했다면 하나님의 저주 이외에 다른 저주가 있을 수 있다거나 힘으로서의 살아 움직이는 저주도 있다고 변론했어야 한다.

본인은 이윤호 박사의 가계 저주론을 비판하면서 성경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의 저주든지, 사탄의 저주든지 하나님의 저주 이외에는 어떤 저주도 효력이 없다고 말했었기 때문이다. 세력이 되어 가계를 타고 흘러내리는 그런 저주는 성경에 있지도 않고 성경이 인정하거나 보장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본인의 모든 비평은 살아 움직이는 것으로 그가 인정하는 온갖 종류의 저주들, 세력으로서의 저주에 집중되어 있었다.

두번째 책에서 이 부분을 인용해 보면, 그가 유효하다고 인정하는 저주는 “하나님의 저주” 이외에 “사탄의 저주”, “사탄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이 내리는 저주” 즉 마법사/주술사나 무당이 발설하는 저주, “사람의 저주” 즉 하나님의 종들이 내린 저주, 권위가 있는 사람들이 내린 저주, 일반 사람들 혹은 자기 자신에게 내린 저주, 원한의 말, 악담 등 누가 해를 받기를 원하는 모든 종류의 악한 말 등이다(<가계의 복과 저주 전쟁에서 승리하라>, 99∼107쪽).

이렇게 모든 종류의 악한 말들을 유효한 저주로 보면서도 “저주란 하나님의 통치행위이다”라는 필자의 말에 동의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동의한다는 그의 말은 결국 위장일 수밖에 없다. 이윤호 박사가 자신의 책을 포기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반론의 끝에 모든 독자들이 이 책을 참고하여 그의 가계 저주론을 배우도록 선전하지 않았는가!

그의 글들 중에는 심지어 이런 말도 있다: “가계의 저주는 사탄의 역사이다”(<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 153쪽) 이윤호 박사의 동의를 사실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는 “사탄의 역사”와 “하나님의 통치사역”을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윤호 박사는 저주를 하나님의 일로도 보지만 그보다는 살아 움직이며 피, 유전인자를 통해 후손들에게 전달되고 신물 등을 통해서도 활동하는 세력으로 보고 있다. “부정적 영적 능력을 방출하는” 세력, 힘인 것이다(<가계의 복과 저주…>, 97쪽). 이 설명과 “하나님의 통치 행위라는 입장에 동의한다”는 말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치지 않고서도 동의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비판을 피하기 위하여 자신의 책을 스스로 부정하든지 아니면 그냥 피해 가면서 성경적 신학자로 자신을 내비치려는 시도이다.

첫번째 책으로 돌아가 보면 더 많은 얘기들이 나온다. 아직 이 책을 파기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 내용들도 모두 유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 말하는 저주의 결과들에는 “정신적/감정적 장애, 미침, 마음의 혼동이나 생각의 혼동, 떨리는 가슴과 걱정, 영혼의 비통이나 절망적 마음, 만성적인 질병, 염병, 열병, 염증, 낫지 않는 종기, 혹, 괴혈병, 괴창, 가려움증, 눈멂, 유산, 무월경, 월경불순, 허약한 월경, 성 불감증, 낭포, 암, 출산에 관계된 여러 종류의 기관에 영향을 주는 구조적 결함, 마약, 섹스, 사탄적인 음악 등에 사로 잡힘, 결혼의 붕괴와 가족 불화, 계속되는 재정 부족, 개인적 사고, 자살, 비극적/비정상적 죽음, 요절, 수면장애, 악몽에 시달림, 술 중독, 이유 없는 피곤, 건망증, 폭발적 분노, 모든 종류의 중독 현상, 정신 질환, 담배, 도박, 거식증, 폭식, 과다 운동중독증, 과소비 중독증, 낭비벽, 염려, 불안, 초조, 실의, 정신분열, 자위행위, 노출증, 오랄 섹스, 항문 성교, 거짓, 질병, 알레르기” 등이 모두 들어 있다.

그의 말을 따르면 사람들에게 이러한 일들이 나타나면 가계에 저주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저주를 사탄의 사역, 내지 가계를 타고 흐르는 부정적 영적 세력으로 보지 않는 한 이런 것을 저주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윤호 박사는 저주를 하나님의 통치행위라고 동의하면서도 이 모든 말들을 계속 유지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이제는 버리고 하나님의 통치행위로서의 저주만을 인정하겠다는 것인가?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정말 성경적 복과 저주를 다루는 길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길에선 하나님이 자신의 저주를 어떻게 복음의 축복으로 바꾸어주셨는지도 -아마- 바르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이윤호 박사의 입장이 이런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이윤호 박사가 자신의 주장을 성경적이라고 굳이 말하고 싶다면, 온갖 저주의 부정적 파괴력과 위해성을 계속 유지하려 할 것이 아니라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의 한 방면인 저주를 바르게 관찰하고 그것이 신약 시대로 넘어오며 어떤 복된 구속적 상황으로 바뀌었는가를 바르게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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