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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악마의 비밀문서를 훔치다>
“교회에 뿌린 가라지들을 찾아라”
2011년 04월 20일 (수) 07:33:53 양봉식 기자 sunyang@amennews.com

교회 전복 위한 사탄의 전략 보고서

   
교회는 세상 가운데 있다. 거듭난 백성들은 곧바로 천국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교회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는 세상 가운데 존재한다. 매우 위태로워 보일 수 있다. 세상의 험한 풍랑이 교회를 삼킬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교회는 희한하게 잘 견디고 있다.

세상은 교회를 아예 삼킬 수 있는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마치 신천지의 ‘산 옮기기’ 같은 전략 같이 교회를 전복시키기 위한 전략이 세워진다. 이 책은 악한세력이 어떻게 교회에 침투해서 성도들의 사고를 성경적이지 않도록 미혹하고 바꾸는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사단이 어떤 방법으로 사람들을 혼미하게 하고 교묘하게 교회에 침투하고 있는가를 보고서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매우 객관적인 태도로 일관된 기술을 하고 있지만 책을 읽는 독자들은 사단의 냉혹한 전략을 목격할 수 있다.

사단은 먼저 ‘우리의 대적 자’인 예수의 가르침의 목적이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뒤집어 생각할 수 있는 반대의 전략을 철저하게 세운다. 그것은 허를 찌르는 사단의 전략이다. 그렇지만 이 책의 또 다른 의미는 사단의 전략을 뒤집으면 교회의 세상을 이길 전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악마의 비밀…>는 기독교 지성작가로 알려진 오스 기니스의 작품이다. 발신자와 수신자가 있고 ‘서신 0호’라는 보고서 형식이다. 서신은 사단의 편에서 교회와 신도들의 믿음을 파괴하고 전복시키는 것에 대한 전략 보고를 담고 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세계관 심기
저자가 ‘비밀 문서’라고 말하는 글은 철저하게 사단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거슬리는 사고와 세계관을 통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사단의 전략이다. 교회에는 그리스도가 말씀하지 않은 많은 것들이 들어와 있다. 사단의 전략을 보자.

전복의 단계를 보면 첫째는 침투, 둘째는 무력화 혹은 사기저하, 셋째는 전복(교회 핵심지도자들의 마음과 생각을 사단의 편으로 만드는 작업), 넷째는 이탈(개별 그리스도인들을 개종시킴), 마지막 단계는 ‘해방’으로 그리스도를 완전히 배신하는 단계다.

<무덤파기 작전>이라는 제목으로 한 때 출간되었던 이 책은 현대화하는 교회에서 뿌려진 악한 자의 씨가 교회 안에서 얼마나 교묘하게 자라고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어쩌면 저자의 사단의 전략을 도식화 시켜 드러내면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거부할 만큼 교묘하게 들어와 있다. 우리 안에는 뿌리 깊은 이성적이고 지성적이이라고 믿고 있는 비진리의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문제가 전혀 없는 것으로 여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저자는 ‘세속화’라고 말한다. 이 ‘세속화’는 세상을 닮아가거나 세상의 방식을 교회 안에 들어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초대 교회는 핍박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고 또 성장했었다. 집요한 피 흘림이 지속되었지만 피 흘림이 오히려 기독교를 참된 진리 가운데에 교회가 서도록 했다.

로마화된 기독교

사단은 죽음의 위협이 기독교의 성장을 저지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아님을 간파했다. 그들이 택한 또 다른 전략은 로마 제국의 기독교화다. 이 전략은 맞아 떨어졌다. 결국 기독교의 신앙이 예수의 길에서 이탈하는 길을 열어놓게 했다.

이 책은 로마화된 기독교처럼 사단이 어떤 전략을 가지고 교회를 전복하려 하는지를 보여준다. 보고서 형식을 띈 이 책은 전체로 보면 3부로 나뉜다. 1부는 작전의 개념, 2부는 현대 세계의 등장과 기독교 신앙에 개하는 엄청난 영향력에 대한 분석, 3부는 문화에 의한 오염이 기독교 제도와 사상과 기독교 사회 참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사단이 교회에 들어오는 전략 중에 하나가 문화를 통한 것이다. 저자는 “우리의 예상대로, 문화를 이용해 교회에 침투해서 전복시킨다는 계획은 전략적으로 놀라운 기회일 뿐 아니라 뜻밖에도 교회가 방어하기 어려운 약점에 대해서도 밝혀주었다”고 말한다.

교회는 믿음의 지성적 차원을 탐구했지만 신앙의 사회적 차원을 간과하는 경향이 강했고, 사단은 이 틈새를 이용해 교회 안으로 새로운 사고방식을 들여보냈다고 말한다.

“기독교 신앙에 대해 더 효과적인 무관심을 조장할 수 있었습니다. 진리 자체를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이 한물 간 것으로 치부되고 나서 포스트모더니즘 운동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길이 열렸으니까요”(p.58).

저자의 지적처럼 교회는 지성적인 탐구의 자유 속에서 다양성이라는 문을 잘못 판단해서 진리의 유일성을 객관적 증명과 같은 위치에 놓도록 허용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과학적, 혹은 합리적 이해와 지성적인 온전성은 진리 자체의 신뢰성보다 설득력이 더 타당성을 갖게 했다. 저자는 이 전략을 이렇게 적고 있다.

“신자들이 믿음에 대해 진실인지 검증하기 원할 대, 회의론자들은 그것을 ‘합리화’시키는 것이라고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불신자들의 믿음이 거짓 것 같다고 검증하기를 원하면, 그 회의론자들이 스스로 회의주의를 포기하고 그것을 이성적인 자세라고 찬사를 보내었습니다. 물론 그 덕에 우리는 기독교 신앙이 진리라고 주장하고 있는 사실 자체를 쉽게 희석시킬 수 있었습니다”(p.61).

진리가 설득력을 통해 무력화돼

교회의 진리가 설득력을 통해 무력화된 것이다. 설득력이란 “공동의 사회적 지원을 얼마나 받는지”에 있다. 이런 현상은 “‘믿음 밖에 모르는’ 광적인 근본주의자들의 구호에 질린 진영에서는 믿음의 사망을 기원하며 건배를 들면 무조건 환호의 대상”이 된다. 이것은 두 진영에서 모두 흔하게 일어나는 청중의 호응을 통해 진리를 입증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기독교 변증가답게 저자의 글은 매우 예리하게 진리가 어떻게 교회에서 왜곡되게 인식하게 되는가를 보여준다. 가령 믿음과 관련해서 사단은 “믿음의 비합리적인 면들을 강조하는 동시에 왜곡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진리에 대한 반응을 극단으로 흐르게 했다. 지성적 문제에만 매달리는 모습에서 이중적인 모순이 발견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고하는 것에 대해 매우 반감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일종의 지성주의적 편견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적의 우두머리가 이에 대해 너무나 분명히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이론에 치우치는 또 다른 극단으로 흐른다는 것입니다. 그는(예수)는 ‘구체화’ 이론이라는 개념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자입니다. 그의 지도 방향은 항상 믿음은 실천적 진리(믿음에 사회적 측면을 부여하는 것)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고백하고 헤석하고 선포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혹은 순전히 이론적 반응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죠, 우리는 한때 교회에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하느라 애를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p.63).

저자는 진리는 이론이 아님에도 교회는 이론으로 생각하도록 조장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교회가 진리 자체의 신뢰성 증명에 매달리고 사회적 설득력의 중요성을 무시한다는 것”의 오류도 함께 가졌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교회 안의 설득력의 증가로 인한 신뢰성의 확보가 있는 반면 사회에 대해서는 설득력을 무시하는 교회 전형의 문화적 약점을 가지는 아이러니가 있다는 것이다.

교회에 사단이 준 가라지들은 여러 가지다. 저자는 그 중에 하나가 세속적 시간이 예배 시간이나 주일을 비롯해 삶의 모든 영역에 침범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것은 세속화와 관련지어 설명한다. 세속주의와 세속화는 다르다. 저자는 세속화의 개념을 “세계가 현대화될수록 종교성이 희박해진다”는 것으로 정의한다. 세속화의 목표는 종교(교회)의 소멸이 아니라 결정적인 왜곡이다. “왜곡은 소멸보다 더 강력한 세속화의 목표”이다.

소멸 아닌 왜곡으로 세상에 영향력 감소

사단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의 신앙을 버릴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안다. 결국 버릴 수 없다면 그들의 영향력이 사회에 감소시키는 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저자가 말하는 ‘세속화’ 전략이다. 현대 사회의 핵심 분야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을 제거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권위에 타격을 입히는 것이 전략이다.

저자는 이 방법은 전통 종교가 삶의 영역에서 권위를 상실하게 하는 것이고, 교회의 신학자들인 이 상황을 설명하려 들고, 용어 규정에 몰두하지 실제적인 행동은 전혀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어둠의 전략이다. 이것은 ‘신앙의 개인화’라는 세속화 전략이라는 것이다.

“자기 견해를 타인에게 강요할 권리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디 있단 밀입니까? 과거에는 통합을 위한 노력이었지만 지음은 ‘강요’하는 것이니까요. 그들에게 더 최악의 일은 그들이 자신들과 가치가 다른 이들에게 강제로 자기주장을 강요한다는 말을 듣는다는 것입니다”(p.94).

저자는 이런 전략의 결과 그리스도인들은 “창문 없는 세계라고 부르는 곳에 사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더 이상 초월성을 이야기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교회는 예배, 설교, 출판물과 모임은 천장 아래에 존재하는 현실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도록 만들어 버리고 더 이상 천장을 뚫고 나가는 일은 거의 없게 돼버렸다고 지적한다.

세속화는 어떤 한 가지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매우 복합적이고 종합적이며 다양하고 폭넓게 진행되는 교회를 향한 전략이다. 그래서 어느 한가지만을 문제 삼고 고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세속화는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매우 집요하면서도 은밀하게 오랜 시간을 두고 진행되어 왔다. 결국 과거처럼 종교가 더 이상 사회의 많은 부분을 주도하지 못하고, 사람의 모든 인생에 관여하는 기독교 신앙의 당연한 모습도 사라지고 말았다(미국의 경우).

   
세속화는 정신세계의 산성비

저자는 “세속화는 정신세계의 산성비”라고 규정한다. 결국 이 신성비의 교회는 엄청나다. 저자는 “이성이 모든 현상을 장악하면 신적 개입은 우연인 것처럼 무시될 것이며, 신의 율법은 왕들의 신성불가침적 권력처럼 한물간 개념으로 치부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결국 현대 세계의 그리스도인의 가진 문제는 “실제적 이성이 비종교적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점점 더 많은 삶의 영역과 실제적으로 무관해지고 있다는 데” 있다.

“종교는 한 때 그들의 인생을 지배하는 신비의 원천이었고, 예배는 가장 경이로운 경험이었으며, 신앙생활은 가장 확실한 소속감을 보장해 줄뿐 아니라 삶의 의미를 보호해 주는 가장 넒은 차양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 세계에 살아남은 종교는 신자가 아무리 열정적이고 헌신적이라 해도 개인의 취형이나 자투리 시간의 취미 또는 여가 활동에 불과한 것으로 전략하고 말았습니다”(p.111).

세속화 전략은 종교의 영역을 사적인 영역으로만 남도록 했다. 현대사회가 될수록 사람들은 보장된 자신들만의 사적 영역을 향유한다. 이런 경향은 종교도 더 이상 전체 구성원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종교를 개인의 취향으로 여기도록 해서 전체에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 결과 “개인적으로 매력적이지만 사회적 관련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결국 “예수는 주”라는 말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예수는 입술의 고백만 있을 뿐, 삶의 실천은 사라지게 된다.

“기독교 신앙이 그 본질적 가치를 잃고 거의 순전히 순간적 가치로 전락한 정도가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점이었습니다. 기독교는 그것이 주장하는 진리 때문이 아니라 기독교를 이용해 얻을 수 있는 이득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p.229).

신앙은 개인의 취향이다
저자는 세속화와 함께 다원화가 교회 안은 물론 일반 사회에도 동일하게 침투, 기독교 신앙은 사생활로 남겨져, 개인의 취향일 뿐 현실에는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는 종교로 전락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럴 때 교회의 신자들에게 얻어내는 것은 ‘확실성의 약함’이다. 교회의 진리에 대한 확실성이 사라진 반면 변질되어 나타난 것이 “적극적 정신과 태도,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다. 믿음의 확실성의 실종은 정체성 확인의 방식에도 변화를 주었다. 의무가 선택이 되고 전통이 붕괴되어 취향의 문제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악한 자의 의도대로 “오늘날에는 신의 선택보다는 인간의 선택이 기독교적 확실성의 토대”가 된 것이다. 여기에 진리의 토대에 충격을 가해 다원주의로 약화된 신학의 권위와 윤리적 적용의 혼란에서 확실성이 실종되게 한 것이다.

이 책은 오늘날 사회와 기독교 안에서 일어나는 각종 문제들, 다원주의, 동성애 목사, 심지어 역사적 예수 탐구를 통해 나타나는 기독교의 탁월성과 유일성을 거부하도록 하는 사단의 치밀한 전략을 드러낸다. 진리의 상대적 개념을 교회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한 사단의 전략도 목격한다.

<악마의 비밀…>을 읽다보면 교회는 전혀 희망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절망을 해야 하는가? 저자는 책의 후기에서 절망이 아니라 희망임을 강조한다. 이 책에서 비밀 보고서를 작성한 자의 회심이 그 증거다. 비밀보고서를 작성한 자가 회심한 까닭을 “우리는 내내 제3의 바보를 상대해 왔다”는 것으로 답을 내린다.

저자가 말하는 ‘바보’란 무엇인가? 제1 바보는 실제로 바보다. 어리석기 짝이 없어 지성적, 도덕적으로 바보스러움이 가득하다. 제2의 바보는 ‘초연한 바보’다. 조롱을 당해도 결코 낙심하지 않고 모욕을 당해도 요동치 않고 웃을 수 있는 자다. 기독교 관점에서 두 번째 바보는 세상에서는 바보라 불리지만 실제로 바보도 아니고 세상에 의해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라 살 수 있다.

제3의 바보는 바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바보 제조자다. 스스로 어리석은 행위를 통해 그 어리석음을 폭로하는 사람이다. 저자는 비록 교회가 전복되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복될 수 없는 역설이 있음을 제3의 바보를 통해 말하고 있다.

비밀문서를 만들어 전복을 꾀했지만, 이것이 오히려 가치의 뒤집기가 이루어졌을지라도 기독교의 ‘전복적 성격의 복음’ 때문에 대전복이 일어나 사단의 비밀 전략은 가장 멍청한 짓이 될 것을 깨달게 되는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기독교의 가치관을 무치한 것으로 여기고, 없는 것처럼 무시하시만 세속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한계는 삶의 목적으로 삼을 만한 것은 거의 갖지 못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기독교의 가치를 붙잡을 수밖에 없는 전복이 일어나는 것이다.

<악마의 비밀…>에서 저자는 결국 세상은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머리 되신 교회의 최종적 승리는 선언한다. 그렇지만 과정 가운데 흘리지 말아야 할 피와 소비되지 말아야 할 에너지를 위해서 사단의 악한 전략을 깨닫고 지혜롭게 신앙생활을 해 나갈 것을 권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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