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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권위의 기원은 하나님이다
2011년 03월 25일 (금) 07:38:29 장경애 jka9075@empal.com
<순종> 중에서
존 비비어 지음/ 두란노 펴냄


먼저 '위에 있는 권세'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13:1-2)에서 바울은 정부 당국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명령은 정부 지도자뿐 아니라 다른 영역들에 있는, 하나님이 권위를 위임하신 사람들에게도 적용해야 한다.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이 권위를 위임하신 분야는 정부, 교회, 가정, 사회다(사회에는 고용주, 교사 상사가 포함된다). 신약 성경은 각 분야에 구체적 지침을 제시하지만, 일반적으로 이 말씀은 모든 영역에 위임된 권위에 널리 적용해야 한다.

‘각 사람은’이라는 첫 말에 유의하라. 예외가 없다는 점을 명심하라. 이 말은 명령이지 의견이 아니다. 주님은 지금 가볍게 귀띔하거나 충고하시는 것이 아니다.

이어서 바울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고 한다. 여기 ‘굴복’은 헬라어로 hupotasso(후포타스)다. ‘지도자 명령 하에 군대의 진용을 갖춘다’는 뜻을 지닌, 헬라의 군대 용어다. 군대 용어로 쓰지 않는 경우에는 ‘자발적으로 복종하 고 협조하고 책임을 감당하며 짐을 지는 태도’를 뜻한다(테이어 헬라어 사전). 이 구절에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온전히 순종할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권위에 복종하고 권하기 위해서다.

각 사람은 자기 삶을 다스리는 모든 권위를 하나님이 정하셨기 때문에 권위에 굴복해야 한다. 모든 권위의 기원은 하나님이다. 예외가 없다. 사실 이 구절에 나오는 '정하셨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지명하다. 임명하다'는 뜻인 tassoa(타소)다. 이 단어에는 ‘우연’의 의미는 전혀 들어 있지 않다. 하나님이 직접 지명하셨다. 모든 권위는 하나님이 정하셨으므로 그들의 명예를 더럽히거나 그들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은 곧 그들 위에 있는 하나님의 권위를 부인하는 것이다.(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하나님의 명령과 통치에 저항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위임하신 권위에 반대하면 하나님을 반대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인간 권위에 접할 때마다 성격을 넘어서 직분을 존중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가 그 사람들 위에 있기 때문에 인간 권위에 순종한다. 그 사람 성격이 마음에 들든 그렇지 않든, 그 사람이 그런 직분을 가질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신자들은 하나님에게 복종한다고 고백하면서도 하나님이 위임하신 권위에는 복종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미혹된 것이다!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법을 배우면 인간에게 하나님이 위임하신 권위도 쉽게 인식할 수 있다. 하나님의 직접적 권위와 그분이 위임하신 권위 중 하나를 택해야 할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럴 때가 있다! 그러나 신자 대다수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다만 그리스도인 대다수가 순종을 예외로 생각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정칙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를 따르다 파멸하는 길에 접어들 수 있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그 결과는 혹독하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심판 아래 들어갈 뿐 아니라 귀신의 세력이 합법적으로 들어올 길을 내주는 것이다. 계속 하나님에게 순종하며 복 받으며 살아가려면, 하나님이 위임하신 권위에 관한 한 우리가 선택할 것은 단 하나다. 복종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이렇듯 성경은 모든 권위를 하나님이 정하셨다고 그 권위를 존중하고 복종하는 것이 마땅한 반응이라고 가르친다. 이 점에서 흔히 사람들은 마음에 담을 쌓는다. 흔하게는 이렇게 반박한다. “인정사정 없고, 철두철미하게 악한 지도자들이 있다. 어떻게 감히 그 사람들도 하나님이 정하신 권위라고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면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자.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지도자 말이다. 이 두 사람은 20세기에서 가장 악한 지도자일 것이다. 이들과 같은 부류라면 당연히 무척 잔인하고 악한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다름 아닌 애굽 왕 바로 얘기다. 당연히 같은 범주에 드는 자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로의 폭정에 시달렸다. 바로는 이스라엘 사람을 노예로 부리고 피폐하게 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학대했다. 그것도 모자라 수천 명씩 잔혹하게 죽였다. 인간의 생명이나 하나님은 신경도 쓰지 않는, 호전적이고 오만한 사람이었다. 그 권위의 근원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백성이 어쩌다 그 밑에 들어가게 되었는가? 우연이었는가?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바로에게 “내가 너를 세웠다”(출9:16)고 말씀하신다. 바울도 로마서에서 그 사실을 확증한다(롬9:17).이 두 구절을 보면 이것은 잘못된 해석이 아닌 정확한 말씀이다. 두 사람이 증거하면 참되다고 하지 않았는가(요6:17). 바로를 그 권세의 자리에 앉힌 것은 하나님이지 마귀가 아니다. 하나님이 바로에게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지배할 권세를 주셨다.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는 말씀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어쩌다 이 사악한 지도자의 권위 아래 들어가게 되었는가. 아브라함이 75세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그가 순종하면 그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순종했다. 하나님이 그 순종을 어찌나 기뻐하셨는지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부리게 되었다(롬4:11-12). 그 순종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다. 언약을 세우실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종살이하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창15:13).

괴롭게 한다는 말을 학대한다고 번역하기도 한다.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든 말인가! 내 자식과 손자와 증손자에 대해 이런 말을 듣는다면 나는 별로 달갑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힘과 위안을 주는 예언이 아니다. 생각해 보라. 지금은 새 천년의 첫 세기다. 그런데 거의 2400년대까지 내 후손들이 학대받을 것이다. 아마도 나라면 금방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에게 순종한 대가로 주시는 약속과 축복이란 말인가?’ 더 흥미로운 것은 아직 이삭이 잉태되기도 전에 하나님이 이 예언을 하셨다는 것이다.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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